교회 합병을 통한 자립화? 반 선교적 발상이다
교회 합병을 통한 자립화? 반 선교적 발상이다
http://www.gospel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20
교회합병을 통해 자립모델 제시한 충북노회 청남대교회 최태환 목사
김성수 지역기자
- 생명목회의 뿌리 , 생명교회의 전형, 생명선교의 모델
- 18년 동안 생명목회 일념으로 지역적 신뢰 얻어
- 세 교회 통합의 시너지로 100 프로 성장하여 자립교회 발돋움
충북의 명소로 자리 잡은 '따뜻한 남쪽의 청와대'라는 의미의 '청남대' 인근에 예장 통합 청남대교회(최태환 목사)가 있다. 청남대교회는 문의면에 흩어져 있던 세 교회가 2007년 12월 합병을 통해 한 교회가 되었다
(중략)
예배당은 중심에 위치한 산덕교회를 리모델링하여 사용하기로 하였다. 최태환 목사는 산골오지 마동교회 사택에 그대로 거주하면서 새벽과 주일이면 마동리 성도들을 모아 출발한다. 그리고 예배당에 하차시킨 후, 다시 서쪽 열망교회 성도를 수송한다. 통합하기 전 세 교회 성도는 마동교회가 20명 내외, 산덕교회가 7~8명, 열망교회도 7~8명 재적은 35명 내외였으나 출석교인은 모두 합쳐야 30명이 채 안 되었다. 그러나 작은 교회들이 연합하여 새교회가 되는 신바람 나는 모습을 지켜보던 세 마을의 사람들이 덩달아 교회에 나오기 시작하였다. 신앙생활을 쉬고 있던 사람, 처녀시절 믿던 사람, 믿고 싶었던 사람, 이렇게 다시 나오기 시작한 교인이 기존과 합하여 총 70명이 되었다. 통합한 이듬해 예산이 8,000만 원이 넘어 바로 자립하게 되었다.
예장 통합 총회는 그 동안 교역자생활비 지원을 위해 힘써 왔으며, 생명목회 훈련과정을 통해 다양한 방법으로 교회자립화 사업을 진행해 왔다. 현재도 동반성장위원회를 통해 목회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러나 목회 환경은 변하지 않고, 농촌의 고령화 속도는 빨라져 15명 이하 기도처가 늘어나는 실정이다. 총회는 정책적으로 교회 통합을 이루어 건강한 교회를 만들어 가는 구조적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청남대교회는 합병을 통한 자립의 좋은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급격한 하락세와 함께, 특히 농촌교회들의 비자립(#미자립 이란 말을 고의로 버림)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 우리교단 PCK 총회에서는 이미 교단 내 비자립교회들에 대한 고민을 이미 오래 전부터 총회 차원에서 해 왔고 그에 대한 정책을 개발 실시해 왔다. 15년 전 쯤부터 시작된 교역자 생활비 평준화 정책이었고 그것은 곧 '미자립 교회' 지원정책이었다.
이후 '자립대상'교회 교역자 지원, 그리고 동반성장 정책 등으로 발전해 왔다. 하지만 결국 그 요점은 전국 비자립교회에서 시무하고 있는 목회자들의 생활비를, 점차 줄고 있는 한정된 지원금으로 어떻게 지속적으로 충당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다. 오죽했으면 '이건 하나님도 해결 못하는 문제다'는 한탄이 나오겠는가.
이런저런 이유로 아래의 기사 내용처럼, 비자립교회들의 발전적인 통합 또는 합병을 통하여 제대로 자립하는 교회 하나를 만들어내는 방안도 이미 논의 되어 왔다.
공교롭게도 기사에서 그렇게 합병한 교회 중 하나로 나오는 산덕교회는 마침 내가 2년 간의 교육전도사를 거쳐, 1989년 초부터 신학생 전도사 신분으로 봉직했던 나의 첫 시무지이다.
상상하기 어렵도록 불모지였던 그 지역을 함께 선교하고 있던 이웃 열망교회는 나의 선배가 고군분투하고 있었고, 더 안쪽 산골 마을의 마동교회는 당시 농가를 하나 얻어 참으로 어렵사리 개척을 시도하고 있었다.
5~6명의 교인들은 마을 주민들의 혹독한 박해에 그대로 노출 되어 있었는데, 지금 그 자리,, 방앗간 낡은 창고를 임시로 개조하여 예배처소로 사용했고 두 평 겨우 되는 골방 하나에, 제대로 된 식수가 없어서 앞 논가에 있는 농업용 지하수를 이용해야 했는데 농약냄새가 풀풀 났었다.
딸아이가 두 살이었고 아들아이는 만삭이었다. 바글 거리던 마을 아이들 웃음소리로 연일 예배당이 조용할 날이 없었고, 낮은 천장 속의 엄청난 쥐떼도 만만치 않았었다. 바로 곁에 방앗간이 있어서 무슨 대책도 소용이 없었다.
이런저런 사정을 보고 이러다 교회 없어지면 이 마을과 마을 아이들 어떡하냐고, 무척이나 안쓰러워 하시던 인근의 청남대 주둔 군부대의 대대장과 부사관 집사님들이 매일 일과 후 밤을 새며 손수 재료들을 사다가 예배당을 대대적으로 수리해 주셨던 일도 있었고,
앞장서서 교회를 노골적으로 언짢아 하던 할아버지가 교회에 나오기 시작하셨는데, 당시 무서운 제초제로 유명했던 그라목손을 살충제로 알고 그 넓은 논에 모두 뿌려 연일 빨갛게 말라죽는 걸 지켜 볼 수밖에 없었던 일이며, 실로 미전도종족 오지 선교지와 같았던 일들이 새록새록 떠 오른다. 물론 현재 나의 사정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농촌의 어려운 교회들을 합병하여 하나의 자립교회를 만들었다는 것인데, 그 지역의 여건 상 아마 차량 운행만 적어도 두어 시간 이상씩 족히 걸릴 것이니 운전 봉사자와 또 한 대의 승합차가 무지 절실할 것이고, 교역자의 수는 그대로 필요할 것이다. 나만 같아도 마을목회를 병행하며 예배 준비하고 인도하고 어르신들 돌아보는 일이 얼마나 벅찬지 매일 비명 지르게 되는데 그 목사님은 마을 이장에 마을 목회까지 하고 있다. 그 기사 내용 역시 그만큼 정작 현실에는 깜깜한 얘기일 거라는 말이다.
물론 단편적으로 보도된 기사의 내용만으로 어떻다 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그렇게 재정이 늘고 모이는 사람이 일단 많아지고 교회당을 번듯하게 리모델링하면 교회를 되살린 거고 또는 무슨 한국교회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성공적인 사례라는 걸까. 편치 못한 심기를 숨길 수 없다.
나는 이런 식의 교회 병합은 결국 또 다른 '교회성장주의적 발상'이라고 본다. 나아가 이는 특히 교단적 차원에서 본다면 아예 '반 선교적'인 것이며 '경제 논리'로만 소속 교회들을 관리하겠다는 것 외에 도대체 무슨 다른 생각은 있는 것인지 의아스럽다. 교회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이걸 늘 우리들 스스로에게 정말로 묻고 있으면 된다.
그리고 이어서 주님의 기도를 한 마디씩 한 마디씩, 서릿발에 자꾸만 들뜨는 보리밭을 꼭꼭 밟아 뿌리가 공중에 떠있지 않게 하듯 그렇게, 무시로 숨 쉬듯, 바치며 살면 된다. 교회는 우리 예수님께서 시작하신 하느님나라 운동을 위해 존재한다. 운동은 다만 운동으로서 무형의 영향을 제대로 끼치면 된다. 예수님 '운동'이 교회다. 우리는 그렇게 믿고 간다. 그래서 죽을 힘?을 다해 수시로 주님의 기도를 바쳐야만 겨우겨우 숨이나마 쉴 수 있다.
교회는 교회 자신이 아닌 예수님의 하늘이 온 세상에서 아버지로 받들어지시어 우리의 교만과 자만을 전복하시기를,, 교회는 교회 자신이 아닌 예수님의 하늘 그 풍토가 우리네 사는 세상에 오시어 우리의 썩은 제국주의적 오만과 태만을 전복하시기를,, 교회는 교회 자신이 아닌 예수님의 하늘 뜻이 하늘에서처럼 여기 이 하아레츠에서도 이루어지시어 습관처럼 감히 하늘을 찾는 우리의 기만과 기망을 전복하시기를,, 그리고 그것을 모든 수단과 방법들로 구하고 찾고 두드리며 소금처럼 녹아져버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
사라지는 교회들이 다만 끝끝내, 하루의 태양 중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순간인 붉은 석양처럼 되도록 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게 아닐까. 지교회들이 사라지는 걸 두려워 할게 아니라 바로 그걸 두려워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