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공보 칼럼 2
목양 칼럼 : “여성들의 역량을 무시 말라”
우리 마을로 귀촌하신 교우님의 병문안에 장로님들과 노 권사님들이 동행해 주셨다. 가고 오는 먼 길, 비좁은 승합차 안에서 이야기꽃이 피었다. 아침 일찍 서둘러 나오다 보니 옷은 제대로인데 밭일하는 흙 묻은 장화를 신고 있더라고 한바탕 웃으시더니, 금방 또 친정엄마 얘기들로 숙연해진다.
고생하며 사는 딸 걱정을 매일 안고 사시는 게 마음이 아파 공연히 엄마한테 마구 퍼부었던 옛날얘기며, 평생 한 번도 앉아계신 걸 못 봤는데 이제는 종일 침대에 앉아만 계신다니 다들 눈시울이 붉어진다.
홀몸으로 자녀들을 다 키워내신 권사님이 얘기를 얼른 옮긴다. 개불이며 갯지렁이 잡는 기술로 주가를 올리던 한창때, 그게 ‘을매나 재미지던지’ 허리 끊어지는 줄도 모르고 일했다고. 이제는 자꾸만 허리가 구부정해지신다. 그러다 시내에 접어들자 입원하신 분과 가족들 생각으로 차 안이 조용해진다. “이번에도 괜찮아지시겠지요?” 젊은 장로님의 목소리에 안타까운 마음이 그대로 묻어난다. 우리 장로님 세 분은 다 대장부 여성들이시다.
귀가 길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이제는 내 편이 되어주는 남편’ 얘기였다. 어느새 할아버지가 되더니 웬 세탁기도 돌리고 빨래를 싹 털어 널어 주신다고. “이런 일까지 해 주시니 고맙습니다아.” 그랬더니 “별말씀을요, 우리 장로님이 늘 수고 많으십니다아.” 하시더라고. 또 다른 장로님은 밭일하다 전기밥솥 눌러놓는 걸 깜빡한 게 생각나 급히 전화했다. “밥솥 좀 눌러 주세용~” 그리고 부랴부랴 들어가 보니, 전원 스위치만 눌러놓고 취사 버튼은 그냥 있더라나. 온갖 농기계로 평생 농사일을 하셨는데 ‘밥솥 운전은 왕초보’더라는 얘기에, 평소 과묵하신 어르신이 생각나 웃음이 실실 나왔다. 권사님이 무슨 일로 가보니 마당에 혼자 서계셨다. “점심은 잡셨슈?” “점심은, 어제 먹고 아직 한 번도 안 먹었슈!” 읍내 나간 장로님을 기다리다 은근히 서운하셨던가 보다.
그렇게 돌아와 밤이 늦었는데 나가보니 교회 식당에 불이 훤하다. 말려 놓은 가래떡을 후딱 썰어놓고 가시겠다고 한다. 한창 여전도회 활동 활발할 때, 우리 장로님들은 다들 연합회 회장을 한 번씩 맡으신 리더들이시고, 남편 집사님들도 외조의 달인들이시다.
그런데 나는 요즘 마음이 답답해지는 소리를 가끔 듣는다. “여 장로들이 뭘 몰라서...” 어떤 자리에서 남자 장로들이 그러더라는 것이다. 바라건대 각 노회 여전도회 연합회의 시찰회 모임에라도 겸손히 배우려는 자세로 한 번 참석해 보시길. 1백 년이 넘은 역사에 쌓아온 선교, 연합, 봉사, 교육, 리더십 양성, 그늘진 이웃을 위한 사역들과 역량들을 사실 우리는 너무나 모르고 있다.
최소한 법과 규칙을 지키며, 절차에 따라 회의를 진행하고, 민주적으로 의결된 사안들을 함께 실천해 가는 여전도회 연합회의 활동들이야말로, 정쟁의 장으로 변질되고 있는 노회들과 우리 총회를 회생시켜낼 엄청난 자원이라는 사실에 부디 환기 되시기를.
/계속 (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