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리 칼럼]

한국기독공보 칼럼 4

농자천하/ 2019. 3. 30. 20:54

 

목양 칼럼 : “울타리 밖으로 나가보라”

이른 봄비가 어깨를 적시던 며칠 전, 군청 일로 서둘러 읍내로 나가고 있었다. 80대의 할아버지 한 분이 우산도 없이 조금 무거워 보이는 비닐봉지를 땅에 놓고 그대로 서 계셨다. 휙 지나쳐 벌써 면소재지를 벗어났지만, 도저히 그대로 갈 수 없어서 승합차를 돌렸다.

할아버지는 아까 있던 곳에서 겨우 50미터 정도를 가서 또 그렇게 비를 맞고 서 계셨다. “어르신, 댁에 모셔다 드릴까요?” 그랬더니 고마워하며 서둘러 차에 오르시는데 주름진 손이 창백했다. 내려놓은 비닐봉지 안에 1리터 우유 팩이 서너 개 보였다. “괜찮으십니까? 병원으로 모실까요?”

“괜찮아요. 이게 조금 무거워서 그래요. 그런데 뉘신지? 참 고맙습니다.” 이럴 때 나는 목사라는 걸 들킬까 싶어 에둘러 대답을 한다. “아, 저는 요 아래 삽니다. 그런데 어디를 이렇게 다녀오셔요?” 목사가 친절을 베풀면, '전도 당할까 봐' 경계부터 하게 된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기 때문이다. 말씀을 들으니 지난해 마을 꼭대기 집에 노부부가 이사 오신 것이었고, 이웃들과는 거의 내왕치 않고 성당에서 서예를 배우러 매일 읍내에 다니고 계셨다.

어제께는 교회당 앞에서 작년 농사에 쓰고 남은 상토 유박 소석회와 황산고토 열댓 부대를 귀농인 친구의 화물차에 함께 싣다가 다시 뵀는데 전과 달리 어색하게 인사를 받으시는 게 눈치를 좀 채셨나 보다. 이런 일이 없도록 나는 어서 교회당이라는 고치 속을 제대로 벗어나 목사 껍데기도 벗고 그냥 예수님 극진히 모시고 일하며 사는 평범한 마을 주민으로 살게 될 날을 고대한다.

3년 전, 태안군 농업인대학 에서 귀농ㆍ귀촌인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좋은 분들과 의기투합하여 농업회사법인, 영농조합, (사)태안군귀농귀촌협의회, 태안귀농귀촌신문 등을 설립하여 자활의 길을 찾고자 함께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서로 알게 된지 2년 만에야 실토한다. “실은, 저희가 장로랑 권사입니다.” 그 표정과 목소리에 그분들이 교회라는 데서 받은, 결코 적지 않았을 상처와 실망들이 그대로 묻어났다. 도대체 하나님 뜻을 앞세운 자기 성취욕은 어찌 그리도 대단한 걸까. 교인들의 녹록지 않은 현실은 그 ‘믿음’이라는 한 마디에 외마디 소리 한 번 못 내는 걸까.

“왜 그 얘길 하세요? 목사한테 또 엮이면 어쩌시려구요!” “그동안 겪어보니, 목사님은 안 그러실 거 같아요...” 사실 우리 마을 어르신들도 전부터 나에게 이런 말씀을 가끔 하신다. “목산님은, 교회 오라고 안 해서 좋은 목사래유. 다들 좋은 차 타고, 좋은 집에 살라구 그러는 거 잖유.”

도대체,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까지 된 걸까? 목사님들, 울타리 밖에 좀 나가서 살아 보시길! ‘교회의 난민’이 된 성도들을 좀 만나 주시길! 거기 마을에 사는 더 많은 사람을 울타리를 걷고 나가 서슴없이 만나 주시길! ‘체험 삶의 현장’을 월 1회씩만 해도 허공에 뜬 설교가 현실로 내려올 테니 부르심을 받은 종으로서 용기들을 좀 내 보시기를!



/계속 (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