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음 칼럼] "덜 된 교회, 덜 큰 교회?"
덜 된 교회, 덜 큰 교회?
고맙게도 최근 ‘당당뉴스’에서 ‘선교적 교회’라는 연재를 시작하면서 다음과 같은 제목을 올렸다. “60년간 믿었던 미신적 확신 - 교회 성장.” 그러니까 지난 60여 년 동안 한국교회가 너도나도 믿고 희망했던 그 ‘교회 성장’이라는 것이 이제와서 보니 안타깝게도 하나의 미신적 확신일 뿐이었다는 말이다. 이는 1998년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라는 선교 신학적인 개념을 주창한 북미 신학자이며 목회자인 알렌이라는 풀러 신학교 교수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그는 북미 기독교가 침체된 이유로 △기능적 합리주의 △교회성장 프로그램 △교회 중심적이어야 한다는 신념 △성직자 중심의 교회 등 인간 중심적 교회론이라면서 이것들은 ‘미신적 확신’이었다고 비판했다. 그동안 거의 신앙과 같았던 ‘교회 성장주의’는 바로 그 풀러 신학교가 ’큰 교회 만들기’에 열광하는 우리나라 목회자들에게 판매한 인기 상품이었다. 그들은 교회를 성장시키려면 백화점같이 교회당을 넓고 크게 건축하라, 주차장을 확보하라, 대형 스크린과 음향시설을 설치하라고 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 꽤나 효과가 있어서 그렇게 만들어낸 대형주의교회 프리미엄을 잘도 누렸고, 예수 이름으로 뭐든 얻을 수 있다는 기도와 설교는 매우 요란했지만, 예수님의 영성과 삶은 없는 기업형 교회들을 만들어 버렸다. 미안하지만 우리는 그런 설교를 ‘원조 보이스 피싱’이라고 부른다.
지난번에 우리교회 선임 장로님이 여전도회 전국 연합회에서 겪었던 실로 ‘웃픈 이야기’를 하였는데, 장로님이 그런 일을 겪은 건 한두 번이 아니다. 장로님이 그처럼 충남노회 여전도회 연합회 회장을 역임하기 전에는 충남노회 여전도회 서부시찰회 회장을 맡아 태안군과 서산시 교회들의 여전도회 연합회를 섬기고 있었다.
당시 서산의 어느 ‘큰’ 교회를 담임하고 있던 목사에게 연합회 모임의 설교를 부탁하는데 그 목사가 물었다. “회장님 교회는 어느 교회인가요?” “한마음교회입니다.” 그러자 대뜸 한다는 소리가 이러더란다. “아이고~ 그 쬐깐한 교회?!” 그리고 얼마 후 그 목사는 더 큰 욕심을 부리다 결국 그 교회에서 쫓겨났다. 장로님은 꽤나 속상하셨겠지만 나는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허허실실한 웃음이 나온다.
과연 우리의 예수님도 그리 생각하실까 싶어서이다. 작은 교회라고 해서 ‘덜 된 교회’가 아니다. ‘아직 덜 큰 교회’가 아니라는 말이다. 설령 두세 사람이 모였더라도 소박하나마 예수님을 모시는 진솔함이 있다면 그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는 온전한 교회다.
사실은 그런 교회가 훨씬 낫다. 사람이 많이 모이면 그만큼 본질을 벗어나게 되고 넘쳐나는 재물로 결국은 처절한 교회 꼴이 되고 만다. 어떤가? 당신은 아직 덜 된 교회, 아직 덜 큰 교회의 목사인가? 지나치게 덩치가 커진 교회 아닌 기업에서 시달리고 있는 전국의 ‘큰’ 교회 목사들에게 심심한 위로와 안타까운 격려의 마음을 보낸다.
/계속 (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