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신학연구소/[갈릴리 밥상 공동체]

제 3 장 성서의 밥과 밥상 공동체 - 3.1.

농민만세 2020. 7. 18. 12:58

 

[ 제 3 장 성서의 밥과 밥상 공동체 / 3.1. 성서의 밥과 밥상 ]

 

한마음교회의 지역사회 선교와 자활 밥상 공동체
LOCAL COMMUNITY MISSION OF
THE HANMAEUM CHURCH AND
THE SELF-SUPPORT BAPSANG COMMUNITY



제 3 장 성서의 밥과 밥상 공동체


이상과 같이 성서로 들어가기에 앞서 우리 고유의 정서와 풍토와 의식 속에서 이미 발전되어 온 우리의 밥과 밥상에 대해서 그리고 하늘의 자비로 모든 이에게 주어져야 하는 밥상을 독점 악용함으로써 하늘을 대행하려는 불의한 밥상들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우리에게 있어서 밥과 밥상은 놀랍게도 이미 화해와 연대와 평화 그리고 우리의 현세 속에 스스로 품겨 있는 하늘과 그에 대한 적대적 도전에 관한 통찰이었고, 그것은 우리의 성서가 말하는 밥과 밥상을 우리의 신앙 언어들로 읽어내기에 충분한 영감과 언어를 주는 것이었다.


3.1. 성서의 밥과 밥상

  그러면 그와 같은 불의한 제국의 밥상에 지속하여 저항하던 갈릴리 민중의 밥상에 대하여 성서는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가? 구약성서의 뿌리는 ‘히브리 사람들’이라는 것은 이미 주지된 사실이고 신약성서에는 ‘예수의 오클로스(οχλος)’인 갈릴리 민중이 있다.

3.1.1. 하비루, 히브리 사람들

  ‘히브리’라는 말은 고대 근동에서 통념적으로 하층민을 나타내는 말이었다. ‘히브리’가 천민을 가리키는 말이었다는 것은 고대 근동의 많은 기록에서 증명된다. 이집트뿐 아니라, 메소포타미아, 소아시아의 기록, 시리아, 페니키아, 가나안의 고대 문헌에서 천민의 대명사로 자주 나오는 ‘아피(삐)루’라고도 표기할 수 있고 ‘하피(비)루’라고도 표기할 수 있는 말이 구약성서의 ‘히브리’와 같은 말이라는 것은 이미 학계의 정설이 되어 있다.153)

  “하비루는 일종의 ‘범법자’로 규정할 수 있는데 이는 지배적인 사회 정치질서 밖에 존재하는 국외자(局外者) 신분(outsider status)으로 나타난다. 이는 또한 두 가지의 의미를 포함한다. 곧 지배질서로부터 도피한 도망자 또는 피난자 등과, 지배질서를 거슬러 침범하거나 위협하는, 그래서 도적 떼로 불리는 반동분자들이다. 이들은 이유가 어떻든 간에 인정된 사회질서체제 밖에 존재하는 사람들로서 그 인정된 사회가 그 구성원들에게 베푸는 정치적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박탈당한 사람들이다. 후에 이드리미(Idrimi of Alalalkh)라는 왕이 된 사람은 그의 부친이 다스렸던 ‘알렙포’ 시민들의 폭동에 의하여 그의 형제들과 함께 그 도시를 떠나 베두인154)들 사이에서 (...)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가나안 땅에 위치한 얌미야라는 도시에서 그를 찾아온 무리와 함께 다시 권좌에 오를 준비를 하는데 원정군을 조직하여 출동하기 전에 이렇게 말한다. ‘하비루들 사이에서 나는 7년 동안 머물렀다.’ 곧 ‘나는 7년 동안 하비루였다.’”155)

  구약학자인 문익환 목사는 책 『히브리 민중사』에서 이렇게 말한다.

  “하비루에 관한 기록은 B.C.E. 15세기부터 부쩍 는다. 그 기록의 분포가 북에서 남으로 이동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특히 이집트 기록에 많이 나타난다. 그 자료들을 살펴보면 하비루는 용병 혹은 강도 떼, 종, 노예 계약을 맺고 고용된 사람들, 포도원 일꾼들, 전쟁 전리품, 도둑 떼, 이집트 원정대에 토벌되어야 하는 무법자들 등이다. 특히 이집트에 지배를 받고 있던 가나안의 벳스안이라는 데서 발견된 이집트 왕 세토스 1세(BCE 1305~129)의 기념비를 보면, (...) 당시 예루살렘의 영주 압디하바도(...)가 이집트 왕에게 다급한 소리로 도움을 요청한다. ‘하비루들이 이집트 왕의 땅을 침범합니다.’ ‘하비루들이 예루살렘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라기스 왕은 하비루와 합세한 노예들에게 암살되었습니다.’ ‘세겜 왕 라바유와 그의 아들은 하비루들과 한편이 되었습니다.’ ‘예루살렘 근방의 도시 벳니니브는 하비루들에게 함락되었습니다.’ ”156)

  김이곤 교수를 통해 성서의 히브리 사람들에 대해서 좀 더 살펴보면, 이처럼 ‘히브리 사람’이라는 말은 ‘아모리 사람’이니 ‘아람 사람’이니 하는 따위의 종족이나 민족을 지칭하는 말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것은, 메소포타미아 전역의 ‘하비루’와 가나안과 이집트 영역의 ‘아피루’가 그러했듯, 종족이나 민족의 구분 없이 어느 민족과 어느 지역 어디에서나 발견되는 한 특수 ‘사회 계층’을 지칭하는 특수한 사회적 용어이며 그것은 또한 그 뿌리를 잘 알 수 없고 낮고 천한 떠돌이 유민이나 하역부의 무리를 지칭하는 사회 계층적 이름이었다는 것이다. 구약성서가 이스라엘인 조상들을 히브리인과 일치시키는 곳은 거의 예외 없이 나그네, 노예, 하역부 등등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창 14,13; 39,14-17, 출 1,16 19; 2,11 13 등)고 한다.157)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야훼 신명(神名)의 의미를 밝히는 대표적이고도 고전적인 전거인 출애굽기 3장이 놀랍게도 불꽃 떨기 속에 나타나서 해방(출애굽)에 관한 약속을 주는 그 ‘조상의 하느님 야훼’를 가리켜 ‘이스라엘의 하느님’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히브리 사람의 하느님’이라고 증거하였다는 것은 구약성서의 특성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곧 구약의 하느님 야훼(조상의 하느님)는 고난받는 사람들의 삶 속에 모성적 긍휼(라함 - רחם의 어원은 ‘자궁’/레헴)로 화육(化肉)하는 분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비로소 구원 또는 해방이라는 새 생명을 창조해 내는 분이라는 것, 바로 이 점에서만, 야훼가 진정한 의미의 히브리인의 하느님으로서 고백 될 수 있었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사회적으로 짓밟혀온 경험을 가진 고난 받아 온 계층만이 고난을 통한 혁명적 성격의 평등 공동체로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하겠다.”158)

  이러한 히브리 사람들의 사유를 이해하기 위하여 『히브리적 사유와 그리스적 사유』라는 책에서 주장하는 보만(Boman)의 분석을 살펴보면, 우선 히브리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그것의 동적(動的)인(dynamisch) 특징들 곧 힘찬, 정열적인, 때로는 거의 폭발적인 특징들인데, 이에 상반되는 그리스적 사유의 특징은 정적(靜的)이고 정지적(靜止的)이며(statisch), 평온한, 중용적, 조화적인 특징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히브리적인 특성은 그리스 사람들에게는 파격하고 중용을 잃은, 조화되지 못하고, 무식하고 상스러운 것으로 보였다는 것이다.159) 이상의 보만의 연구서가 비록 불트만(R. Bultman)의 서평에 의해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 많다는 평을 듣고 있지만160) 성서 히브리 사람들의 사유와 사상이 직접적이고 즉자적이며, 관념적이지 않고 매우 실제적이었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다. 브루스 J. 멜리나 교수는 책 『Windows on the World of Jesus』에서 1세기 연안 팔레스틴 사람들 곧 유대인들의 기질로 대표적인 것은 중립이 거의 없이 행동이 앞서는 ‘뜨거운 기질’이었다고 한다.161)

  그런데 문익환 목사는 이렇게 몹시 불안정한 기질의 사람들이 야훼 하느님을 통해 이집트를 탈출하는 역사의 주체로 나서고 자신들을 12지파 동맹으로 조직하여 저 강대 제국들의 틈새에서 생존하였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이라고 한다.

  “그들 자신이 곧 하비루이며 ‘야훼’가 하비루인 자신들의 신(神)이라는 것을 주체적으로 천명하게 되면서 출애굽 곧 해방은 시작된다. (...) 그러나 그리도 그리던 자유는 ‘광야 유랑의 자유’였다. 그것은 분명 자유의 시련이었다. 너무나 오랜 노예생활에 길든 하비루들에게 있어서는 퍽 소중한 시련이었다. 우선 그들은 시내산에서 하비루들의 모든 사이비 신들을 버리고 야훼만을 중심으로, 그의 뜻만으로, 그와 함께 살아가는 신앙공동체, 생활공동체를 형성하는 계약을 맺는다. 이집트에서 당하던 온갖 억울한 일들이 우리 사이에서는 절대로 재현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서로 다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침략군’이 아닌 ‘해방군’으로서 전투 대열을 갖추고 행군을 개시한다. 이집트를 떠난 해방군은 가나안의 농민해방군과 합세하여 출애굽에서 시작된 해방전쟁을 끝내려고 요단강을 건너게 되는 것이다.”162)

3.1.2. 무리, ‘오클로스’(οχλος) 

  이러한 하비루 곧 구약성서의 히브리 사람들은 신약성서 특히 복음서의 예수를 따른 민중(오클로스, οχλος)과 무슨 공통점이 있을까? 여기에서 우리는 민중 신학의 민중, 곧 안병무 교수의 오클로스를 살펴보아야 한다. 안병무 교수의 민중은 특히 마가복음서에서 항상 예수의 주변에 있던 이들로 마가는 이들을 묶어 오클로스라고 한다. 물론 다른 복음서들도 이러한 ‘무리’들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보인다.163) 그런데 마가복음서에서는 예수의 공생애를 말하면서 먼저 ‘예수 주변에 모여든 무리들’에 주목한다. 그리스어에는 대중을 지칭하는 말로서 라오스(λαος)라는 말과 오클로스(οχλος)라는 말이 있다. 안병무 교수는 이 라오스는 ‘하느님의 백성’ 또는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할 때 쓰는 말이며, 한 유기적인 집단에 종속된 다수를 가리키는 말로 현대어로는 ‘국민’에 해당한다고 한다. 구약성서를 그리스말로 번역한 70인역(LXX)에서는 이른바 ‘백성’을 거의 라오스로 쓰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오클로스라는 말은 아주 드물게 쓰는데, ‘노예들’이나 ‘고용된 사람들’이나 ‘강제 징용자들’을 가리켜 오클로스라고 번역한다고 한다. 글자 그대로 ‘오합지졸’이라는 의미라고 하면서 오클로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어떤 집단에 권리와 의무를 지고 종속되지 않아 그 사회와 아무런 연대 관계도 맺지 않은 자들이 바로 ‘무리’이다. 무리는 ‘국민’과 엄격히 구별된다. 국민(라오스)은 그 민족 사회에 소속되므로 권리와 의무가 있고 보호를 받는다. 그러나 ‘무리’에게는 그것이 없다. 그런데 마가복음서는 이 두 말 중 오클로스라는 말만을 골라 사용하고 있다. 라오스는 구약성서를 인용한 곳에서 한 번 그리고 율법학자들이 하는 말에서 한 번씩 단 두 번만 나오고 마가가 직접 언급하는 경우는 없다. 예수를 따랐던 사람들은 라오스가 아니고 오클로스라는 것이다. 마태복음서나 누가복음서는 이와 좀 다르다. 특히 누가는 라오스라는 말을 그리스도의 구속공동체의 일원이라는 뜻에서 즐겨 사용한다. 비록 오클로스를 라오스로 바꾸었으니 이들의 처지가 버림받은 사람, 수난당하는 사람들로서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소외되었다는 점에 있어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164)

  그리고 이어 안병무 교수는 이 오클로스의 특징을 다음 몇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예수가 가는 곳 어디에나 그들이 있다. 민중을 빼고 갈릴리의 예수를 생각할 수 없으며 복음서의 민중은 예수를 빼고 생각할 수 없다. 둘째, 예수는 민중과 ‘밥상’을 함께 했다. 이는 예수가 이른바 죄인(세리)들과 함께 먹고 마셨다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예수가 그들의 친구(동료)임을 드러내는 구체적 행위였다. 셋째, 오클로스를 ‘예루살렘파’와 대립시킴으로써 예루살렘파에 대립 된 예수와 오클로스의 연대성을 드러낸다. 넷째, 그처럼 예수와 일체인 오클로스는 집권자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다섯째, 예수는 오클로스를 ‘목자 없는 양’처럼 보았고 자신을 그들의 목자로 여겼다. 여섯째, 나아가 예수는 이 오클로스를 ‘내 어머니와 내 형제’라고 선언한다. 일곱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예수가 오클로스에게는 그 어떤 윤리나 종교적 평가도 내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예수는 오클로스를 무조건 영입할 뿐이다. 민중을 미화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맞아들인다. 자신을 개방한 예수에게 오클로스는 자신들을 개방하므로 예수의 어머니요, 형제가 되는 것이다.165)

  김진호 교수는 ‘오클로스’가 이렇게 마가복음서에서 독특한 의미가 있다는 점에 주목한 또 한 사람으로 일본의 급진신학자인 다가와 다츠조(田川建三)를 소개한다. 1968년의 책 『원시 그리스도교 연구』에서 마가복음서의 오클로스는 세리, 병자, 창녀, 천민의 어린아이 등과 같은 사회의 최저변층을 나타내고 있다고 보면서 특정한 성격을 가진 하나의 행동 주체로 볼 수는 없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오클로스 용법은 마가가 제자들을 비판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도입한 개념이라고 한다. 대신 안병무는 마가복음서의 오클로스를 단지 편집사적으로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역사적 예수와 관련시킨다는 점에서 다가와를 넘어선다는 것이다.166) 안병무의 오클로스론에서는 예수의 오클로스 사건이 마가의 오클로스 사건에서 재현되었음을 강조한다. 예수의 오클로스나 마가의 오클로스 양자는 사회의 경제적 문화적 분배과정에서 총체적으로 소외된 최악의 박탈(剝奪) 계층으로서 사회적 고난의 담지자(擔持者)이며, 예수를 통한 해방을 염원하며, ‘예수와 더불어 사건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예수의 오클로스가 ‘역사적 예수와 더불어 예수 사건의 공동주체’였다면, 마가의 오클로스는 부활한 ‘예수와 더불어 예수 사건의 공동주체’이다.167)

  이렇게 오클로스는 단순히 예수를 따르는 객체적이고 즉자적(卽自的)인 무리가 아니었다는 점이 우리에게 특히 중요하다. 안병무 교수는 우리가 쉽게 예수가 민중을 위해, 민중을 부르러 또는 저들의 병을 치료하며 해방하기 위해 민중에게로 갔다고 하는데, 예수가 갈릴리로 간 것 그리고 민중에게로 간 것은 틀림없지만 예수 사건의 일체 행태를 예수는 주체요 민중은 단순한 객체라는 주객도식으로 보는 것은 사실과 맞지 않는다고 한다. 복음서의 서술은 예수와 민중 어느 누가 주동한 것인가를 부각시키지 않고 어디서나 예수와 민중이 함께 어울릴 뿐이라는 것이다. 예수 자신도 한 사람의 민중으로서 민중과 예수는 구별되지 않았고 예수가 민중을 인도한 면이 있지만 동시에 예수는 또한 민중에게 포위되어 저들의 뜻에 따라 말하고 행동할 뿐 아니라 마침내 그의 운명까지도 결정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168) 그리고 안병무 교수는 이 복음서의 오클로스와 구약성서의 하비루의 관계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예수의 행태는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그들의 요청에 따라 도와준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따른다’(imitatio Christi)는 것을 바로 구제사업으로 인식해 온 오랜 전통을 서구신학은 가지고 있다. (...) 우리는 비록 복음서에 명확하게 제시되어 있지 않으나 갈릴리 민중을 이스라엘의 민중전통에서 볼 필요가 있다. 이미 밝힌 대로 고대 이스라엘 부족 지파 동맹을 형성한 하비루(하삐루)는 민족 개념이 아니라 계층을 지칭했다는 사실은 정설로 되어 있다. 이 하비루는 군주들의 농노(農奴) 상태에서 탈출하여 자주적인 자치동맹을 형성했다. 이 동맹을 지탱하는 결정적인 것은 군주제도를 배격하는 일이었다. 그것이 ‘야훼만(mono Yahwism)’이라는 간단하고 확고한 기치가 된 것이다. 곧 야훼 외에 어느 인간의 주권도 용인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야훼만’이 통치하는 사회가 하비루의 이상이요 염원이었다.”169)

  편 서남동 교수는 더 적극적으로 이러한 민중에 대한 객관적이고 개념적인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린다. “민중이 역사의 주체라고 할 때, ‘민중’이란 말은 ‘백성’이라는 말과 철저하게 구별되어야 한다. 백성이란 복종과 예속을 생리로 하지만 민중이란 자기 주권을 찾으려는 의식을 갖는다.”170) 그리고 서남동 교수는 민중을 ‘사회경제적으로 말하면 정치적으로 억압받고, 경제적으로 착취 받으며,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급과 계층들이며 정치 신학적으로 말하면 역사의 주체’라고 정의한다.171)

3.1.3.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

   이상과 같은 민중(오클로스) 속의 예수, 민중의 예수는 그의 반대자들로부터 비난과 경멸조의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라는 별명을 얻는다.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 세리와 죄인의 친구다.”(눅 7,34) 그런데 이 말은 예수의 적대자들이 예수를 비난하려는 의미에서 한 말이지만, 자신에 대한 그 말을 예수는 스스로 공공연하게 인용하여 언급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의미심장한 ‘예수의 자기 이해’ 중 하나임을 알게 된다. 우선 안병무 교수는 당시 어떠한 사회적 보호도 받지 못하는 버림받은 사람들로서 예수를 따르는 무리인 오클로스(οχλος)에 ‘세리들과 죄인들’을 포함시킨다. 

  “오클로스의 실체는 무엇일까? 그것은 마가복음 2장 13-17의 문맥에서 파악할 수 있다. 13절에 ‘모든 무리(πας οχλος)가 예수께 나온다’는 말이 있는가 하면, 예수를 따르겠다는 세리 레위 집에서 고별잔치가 벌어졌을 때 예수는 많은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식탁을 같이 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세리들과 죄인들’이 바로 오클로스임을 시사한다. (...) 이에 대해 바리사이파의 율법학자들이 예수가 저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보고 ‘왜 예수는 세리와 죄인들과 같이 식사하시오?(마가 2,16)’라고 항의했다. (...) 여기에 대해 예수는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으나, 병자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오지 않았고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가 2,17)’ 여기에서 우리는 ‘예수는 민중을 부르러 왔다’고 단언할 수가 있다. 세리와 죄인과 같은 민중, 이들이 바로 오클로스이다.”172)

  여기에서 ‘세리(稅吏)’173) 곧 ‘텔로네에스’(τελωνης)는 일종의 세금 징수원이었다. 신약성서 시대에 팔레스타인에 주재한 로마 관리는 조세(租稅)나 지세(地稅)같은 정규적인 세금을 징수할 직접적인 의무가 있었는데 그들은 유대인을 고용하여 실제 세금 징수를 집행하였다. 통상 ‘조무래기패’에 적용된 말이 텔로네에시스(τελωνησις)임을 감안한다면 이 세리가 사회적으로 어떤 취급을 받는 사람들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세리들은 저급하게 멸시받는 자들이었고,174) 부도덕과 속임수의 상징이었다. 그들은 관세(關稅)와 통행세(通行稅) 징수원이었다. 로마의 세금에는 토지세, 인두세, 통행세와 관세가 있었는데 일반적으로 토지세나 인두세는 당시 행정관들이 산헤드린에 위탁하여 징수하였기에 세리가 관할하는 세금은 통행세와 관세에 한정되었다. 이처럼 그들의 주 수입원은 도로나 강 혹은 성문 앞이나 성을 통과하는 여행객과 장사꾼들에게 통행세와 관세를 받아 일부를 따로 챙기는 것이었다.

  ‘세리장(稅吏長)’은 삭개오와 같이 상당한 부와 권력을 소유한 자들이었지만 그들에게 고용된 세리는 생계의 방편으로 동족들에게 지탄받는 하층계급이었다. 로마 제국은 입찰을 통해 최고액수를 제시한 세리장에게 관할 지역의 관세와 통행료 징수권을 팔아서 안정적으로 세금 징수를 확보했고 세리장은 능력에 따라 더 많은 통행료와 관세를 거두어 자신의 수익을 무한 증대시킬 수 있었다. 세리장은 폭력과 횡포에 능숙한 세리 왈패들을 고용하여 더욱 많은 관세와 통행료를 받아냈다. 길가에 세리들을 세워 고액의 통행료를 받던 그들의 모습은 가히 ‘허가 낸 강도들’로 보였다. 그래서 당시 랍비들은 세리를 강도로 취급했고 로마 지식인들은 그들을 매춘굴의 포주와 같은 자들로 서술했다. 복음서 역시 그들을 창녀와 상응하는(마 21,31-32) 범죄자로 여긴다(눅 5,1). 랍비들은 세리가 들어간 집은 모두 부정하다고 여겼을 만큼 세리는 부정의 대명사였다.175)

  ‘죄인(罪人)’은 곧 ‘하마르톨로스’(‘αμαρτωλος)인데 당시 유대 사회에서 버려진 사람들이었다. 어떤 이유로든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율법과 전통에서 벗어난 사람이면 누구나 열등 인간 하류계층으로 취급받았다. 놀란(Nolan)에 의하면 복음서의 죄인이란, 넓은 의미의 가난한 사람들과 동일한 하나의 사회계급이었다. 외식(外飾)에 사로잡힌 바리새파 사람들이 보기에 불경스럽거나 부정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 곧 대부분 집안의 남자들(아버지나 남편 또는 장성한 아들)에 의해 그 어떤 법적 보호도 받을 수 없도록 경제적 권리까지 박탈되어 거리의 여인이 된 창녀들, 세금을 징수하여 그 여분으로 살아야 했던 세리들, 광야를 떠돌며 양을 치느라 남의 사유지에 침입하여 소출을 도둑질해 먹인다는 혐의를 받는 목동들, 그리고 모든 생존 수단을 상실하여 마침내 강도 떼가 된 이들, 양심은 이미 팔아버린 채 누구보다 악착같이 살아야 하는 고리대금업자나 도박하는 자들도 이 부류에 속했다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십일조를 제사장들에게 바치지 못하는 소작농(小作農)들, 안식일 규례조차 지킬 수 없는 일용직 잡역 노동자들 곧 율법을 모르는 불학무식한 자들, 나아가 하느님의 징벌을 받아 마땅하다는 저주를 한 몸에 받는 통상 한센병(=나병, 癩病)으로 취급되는 악성 피부병 같은 난치병자들, 전쟁이나 고문 그리고 뇌졸중(중풍) 등으로 인한 후천적 장애인들, 맹인 농아인 같은 선천적 장애인들, 조현병(調絃病)이나 우울증과 같이 당시의 상식으로 ‘악령이 들렸다’고 여기던 심리적 정신적인 환자들까지 조상과 가문을 불명예스럽게 하고 성전에 입장할 수 없는 ‘부정한’ 사람들이었으며, 또는 이방인(異邦人)으로 지칭되는 비유대인, 외국인 떠돌이들로 유대교의 율법과 상관이 없이 사는 모든 사람을 총칭하는 말이 ‘죄인’이었다는 것이다.176)

  그런데 예수는 당시에 율법에 대한 충실한 실천을 경건의 최우선으로 삼은 바리새인들이 불가촉민(不可觸民)으로 여겼던 이런 사람들과의 친분이나 교제를 조금도 망설이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런 사회적 종교적 정죄에 좌절하는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공표를 서슴지 않는다.177) 율법과 성전 세력들이 볼 때 경건한 사회체제의 근간을 위협하는 이런 ‘사회적 불한당들’ 곧 주변부 사람들이야말로 예수는 오히려 하느님 나라에서 환영받는 중심부의 사람들이라고 선언한다. 그리고는 공공연히 그들의 밥상에 ‘함께 앉아’(아나케이마이/ανακειμαι - 왼쪽 팔꿈치를 바닥에 대고 비스듬히 함께 옆으로 누워 먹는 당시 유대인들의 공동식사 자세) 먹고 마신다. 공공연한 이런 예수의 언행은 당시 유대의 관원이었던 서기관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의 호된 비난과 저항을 일으킨다.

  그들이 예수를 몰아세운다. “어찌하여 당신들은 세리들과 죄인들과 어울려서 먹고 마시는 거요?” 그러자 예수는 이런 질문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그들에게 대답한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서 회개(μετανοια)178)시키러 왔다.” 이처럼 예수는 세리와 죄인들의 밥상에 함께 누워 먹고 마시는(아나케이마이) 그들의 ‘친구’(φιλος - 능동적으로 사랑하는 친구, 이웃, 동료)로 불리는 것을 오히려 당연히 여긴다. 그리고 나아가 그들과 함께 누워 먹고 마심으로써 그들이야말로 ‘임마누엘’ 곧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선언의 주인공들로 회개 곧 자기혁신을 하게 하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라고 천명한다.

  크로산과 리드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당신의 하느님과 어떻게 식사를 하는가? 자리의 배치와 음식의 분배가 자유로운가 아니면 규칙적인가, 평등한가 아니면 계급적인가? 만일 계급적이라면 그 계급이 세워지는 규범은 무엇인가? 당신은 당신의 왕과는 어떻게 식사를 하는가? 초대받는 사람들은 모든 사람인가 특별한 사람들인가? 모두에게 똑같이 개방되는가 아니면 극소수의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허락되는가? 그리고 또 당신은 어떤 기준을 세워서 저 극소수의 특별한 사람들을 선별하는가? 로마 제국 안에서 당신은 아우구스투스 또는 헤롯 또는 안티파스와 어떻게 음식을 먹는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느님 나라 안에서 당신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어떻게 음식을 먹고 마시는가?”178)

3.1.4.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이’

  민중의 환호를 받던 또 한 사람 광야의 예언자인 세례자 요한은 ‘밥도 먹지 않고 포도주도 마시지 않는 미치광이’로 매도한 저들은 이번에는 예수를 ‘불가촉민들과 거리낌도 없이 함께 누워 게걸스럽게 먹고 포도주로 폭음을 즐기는 자’라고 매도한다. 그런데 이런 ‘악플’(惡性 reply)쯤이야 예수는 당연한 것, 역설적이지만 자신을 제대로 본 것이라고 그런 악의적 별명을 오히려 자신이 공개적으로 인용하여 말한다. 이로써 곤란하고 심사가 불편한 것은 예수를 그처럼 몹시 불경한 자라고 비난함으로써 그의 무리(오클로스)로부터 격리하려고 온갖 시도를 하던 자들이 된다. 불가촉민들과 친구요 동류로 불리는 것을 공공연하게 드러내 보이는 예수의 행동에 고무된 사람들은 전에 없던 통쾌한 해방감을 만끽한다.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이’라는 말도 심한 저주로 상대방을 호되게 경멸하고 부정(不淨)한 자로 단죄하는 욕설이었다. 신명기 율법에서 그런 자식은 부모가 앞장을 서서 집안 친지들 앞에 공개 단죄하고 처형해야 할 패륜아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에게, 아버지의 말이나 어머니의 말을 전혀 듣지 않고, 반항만 하며, 고집이 세어서 아무리 타일러도 듣지 않는 아들이 있거든, 그 부모는 그 아들을 붙잡아, 그 성읍의 장로들이 있는 성문 위의 회관으로 데리고 가서, 그 성읍의 장로들에게 '우리의 아들이 반항만 하고, 고집이 세어서 우리의 말을 전혀 듣지 않습니다. 방탕한 데다가 술만 마십니다' 하고 호소하십시오. 그러면 그 성읍의 모든 사람이 그를 돌로 쳐서 죽일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서 당신들 가운데서 악을 뿌리 뽑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온 이스라엘이 그 일을 듣고 두려워할 것입니다.”(신 21,18-21)

  여기에서 ‘방탕하며’는 ‘잘랄’(זלל) 곧 ‘시끄럽게 먹어대는 자’이고, ‘술만 마신다’는 ‘쏘베’(סבא) 곧 ‘술고래’로 우리말 개역성서 개정판에서는 ‘술에 잠긴 자’로 번역한 말이다. “보라, 저 사람은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자다.”(눅 7,34) 여기에서도 ‘먹기를 탐하고’는 ‘파고스’(φαγος, 게걸스럽게 먹는 대식가)이고 ‘술을 즐기는’은 ‘오이노포테에스’(οινοποτης, 술고래)를 가리키는 말이다. 한편 이처럼 예수를 완전히 무시해 버리며 사회적으로 모욕을 주어 매장하려고 중상모략을 하는 저들의 말과 행동은 그들 자신의 자가당착을 일깨우려는 탁월한 행위 설교자 예수의 도발에 의한 것이었다.””

  “예수께서 집에서 음식을 드시는데, 많은 세리와 죄인이 와서, 예수와 그 제자들과 자리를 같이 하였다(식사를 하려고 비스듬히 함께 누웠다, ανακειμαι).”(마 9,10) 이와 같은 예수의 모습에 대하여 정경호 교수는 “예수가 세리와 죄인들이라고 하는 오클로스 곧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으며 어울리는 것, 곧 밥상 공동체를 이룩하였다는 것은 가히 혁명적인 사건이었다.”180)고 한다. 지금 예수가 앉아 있는 자리는 하늘의 왕좌는 물론 예루살렘의 산헤드린이나 왕 같은 대제사장이 군림하고 있는 성전이 아니다. 그가 무방비 상태로 함께 하는 벗들과 밥상 주변에 함께 누운 곳은 한 가족이 당장 하루를 ‘먹고 마시기’/살기 위해 얼마나 호된 노동으로 인생을 모두 소비해야만 하는 사람들의 땅 위이다. 작은 먹을거리나 마실 거리가 생기면 배고픔을 참지 못해 허겁지겁 먹어치우고 마구 퍼마셔 술에 잠기게 되는 사람들의 굶주린 배를 알지 못하면, 우리는 예수와 함께 예수를 환호하던 그의 사람들 곧 그의 민중들의 예수에 대한 환호를 결단코 이해하지 못한다. 이제 단죄를 받아야 할 대상은 온갖 가증스러운 가식(假飾) 이면에서 먹고 또 먹고 마시고 또 마시기 위해 위 속에 가득 찬 음식을 토해내는 저 점령군 로마의 귀족들과 그 가증스러운 자들에게 영혼을 판 예루살렘 권력자들의 단죄 받을 추한 모습181)이다.

  그런데 섣불리 오해하지 말아야 하는 가르침도 있다. “예수께서 [자기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고,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라.”(눅 12,22) 결론부터 말하자면 마태복음서에도 있는 이 내용은 ‘먹고 마시는 일’을 천하게 여기라는 식의 말이 아니다. 지금 예수는 그야말로 ‘먹고 마시는 일’이 하루하루 최우선의 문제로 벼랑 끝에 내몰려 사는 갈릴리 소작농(小作農, peasant)들에게 말하고 있다. “우리가 비록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하듯 살아도, 사람 목숨보다 음식을 더 절실히 여기고 사람 몸보다 옷을 더 중히 여기게 되지는 말아야 한다.” 그리고 농노(農奴)나 다름없던 이 소작농들의 고혈(膏血)로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서도 밤낮없이 먹고 마시고 몸에 입는 것과 저택을 호화롭게 치장하는 것으로 과신하는 게 전부였던 저 헤롯과 그의 귀족들과 대지주 예루살렘의 제사장들에게 말한다. “너희 목구멍을 즐겁게 하는 음식보다 이 땅의 사람들(암 하아레츠, עם הארץ) 목숨이 더 중하고, 너희가 사치하며 자랑하는 옷보다 하늘에 울부짖는 이들의 몸이 더 중하다.”

  이처럼 예수가 세리와 죄인들과 한 자리에 누워 ‘먹고 마신 일’은 갈릴리와 유대 농(촌)민(중)들의 하루하루의 목숨을 함께 나눈 일이었고, 또한 예루살렘 성전산 맞은편 언덕에 호화 저택 단지를 조성하고 군림하던 J. D. Crossan & J. L, Reed, 앞의 책, 308-318 참고. 대제사장들과 대 헤롯의 권세와 영화를 질투하여 갈릴리 중부에 구도시 세포리스(Sepphoris, 찌포리)를 중건하고 갈릴리 서안(西岸)에 신도시 티베리아스(Tiberias)를 건설하고는183) 자신의 왕국을 세웠다고 야심만만하던 헤롯 안티파스에게 그것은 ‘먹고 마시는 일’로 울부짖는 이들을 전적으로 편애하는 하늘의 지엄한 심판의 목소리였다.

  “그 말씀(λογος)은 육신(σαρξ, 肉, 육체)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의 영광을 보았다.”(요 1,14) 이 요한복음서의 선언은 화육(化肉)의 예수를 사상이나 정신 속에서 만날 수 있는 게 아니라 구체적인 세속의 육체적 삶 속에서, 그리고 그 삶의 가장 적나라한 요소인 밥을 나누어 먹고 마시는 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부활한 예수의 현현(顯現) 또한 제자들이 밥을 함께 누워 먹는 자리에 반복하여 일어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가장 물질적이고 일상적인 밥을 나누어 먹는 데서 부활한 예수를 만난다는 것184)은 다름 아니라 기독교 신학의 핵심인 성육신(成肉身) 곧 화육(化肉, Incarnation)의 연속되고 개방된 경험이다. 이것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와 동행하며, 토론하고, 식사를 함께 나눈 부활한 예수의 현현 이야기에서 극적으로 묘사된다(눅 24,1-35).

  그뿐 아니라 예수는 당시의 랍비들처럼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그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고, 그 나라를 오게 하시고, 그 뜻을 하늘에서 이루심 같이 땅에서도 이루십시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매일 먹을) 양식을 내려 주시고”(마태 6,9-13). 이처럼 이 기도의 관심은 ‘하늘’이 아니라 전적으로 ‘땅’에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주의 기도 전반부 또한 하늘 아버지는 온 ‘세상 사람들’로부터 하느님으로 높여져야 하고, 아버지의 나라/통치는 ‘여기’에 오셔야 하고, 아버지의 의지는 하늘에서처럼 우리의 ‘땅’에서도 실현되어야 한다는 탄원들이다.

  더구나 예수 설교의 중심 주제인 하느님 나라 비유들은 모두 ‘땅’에 심기는 씨앗, 땅에 숨겨진 보화, 땅에서 자라는 겨자씨, 씨앗의 싹을 내는 밭, 포도원의 일용직 노동자들, 가난한 집에서 매일 구워 먹는 빵(밥) 반죽, 갈릴리 호수의 고기잡이 생계현장 등이다. 그리고 그렇게 삶의 현장에 떨어지는 하늘 씨앗은 모두 그 땅에서 열매를 맺는다. 남의 밭을 농사짓는 소작농의 비밀스런 보화로 발견되고, 싹이 나고 자라 생명력 질긴 겨자나무가 되어 광야의 새들을 깃들이고, 남의 포도원에서 품을 팔아 하루 품삯을 받는 농촌 노동자의 한 날의 보람이 되며, 가난한 농민 한 가족이 하루 한 끼를 해결할 빵 반죽 한 덩이로 부풀고, 그물을 던지는 갈릴리 농어민들이 반농반어(半農半漁)의 생계 현실 안에 있다.

  물론 농촌 민중의 삶의 현장이 아닌 하느님 나라 비유들도 있다. 그것은 좋은 진주를 구하려는 장사꾼, 종들과 결산하고 있는 임금, 아들의 혼인 잔치에 초대하고 실망하는 임금, 혼인날 등불을 들고 신랑을 맞는 신부 들러리들 등이다. 하지만 이 비유들도 역시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겪는 일들이다. 그런 이 땅에서의 일상의 삶을 불경(不敬)하다거나 속된 삶이니 경계하고 부정하라는 식의 어떤 초월 지향적인 내용은 볼 수 없다. 이런 내용을 내용 그대로 인식하고 더 이상의 확대 해석을 말아야만 갈릴리의 예수를 제대로 읽어낼 수 있다. 하느님 나라 곧 천국 그러니까 ‘하늘’의 일들은 모두 땅에서 경험하는 일이며 땅에서 일어나고 일상에서 겪는 일들로서 ‘땅의 사람들’과 직접 관련된 일들이다. 절실한 현세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일명 갈릴리 농민들(소작농)의 하늘이 갈릴리 예수가 품고 보여주고 가르쳐 준 하늘이다.

  그리하여 성서의 하느님 나라는 처음부터 끝까지 ‘땅에 심기고, 땅에서 자라는 어떤 것’임을 역설하였고 또한 자신의 삶과 죽음으로 그것을 실천해 보인 예수이다. 그러므로 그의 도반(道伴)의 삶은 당연히 그의 하늘 뜻이 다름 아닌 우리의 땅에서 실제적이며 구체적으로 이루어지기를 온 삶으로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하느님 나라 운동(movement)으로 귀결된다. 예수가 하느님의 화육임을 선언하는 요한복음서의 “말씀(λογος)이 육체(σαρξ)가 되어”(요 1,14) 또한 그 방점이 ‘하느님 말씀’이 아니라 전적으로 우리의 현세인 ‘땅에 육체가 되어’에 있다. 요한복음은 초현실적 영지(靈知)를 강조하여 초기 기독교에 많은 혼란을 주었던 영지주의(靈知主義, Gnosticism)를 배제하면서 화육(化肉)의 신학을 선언한 요한 공동체의 복음서이기 때문이다, 요한복음서에서 예수는 자신이 초월적 천상의 존재인 영지(靈知)가 아니라 지상의 현세 속에 주어져 매일의 생존을 위해 먹어야 하는 주식(主食) 곧 ‘밥’으로 이 세상에 왔다고 선언한다. 예수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으면서 세상을 초월하려는 이’가 아니다. 도리어 ‘이 땅에 와서 먹기를 탐하고 마시기를 즐기는 사람(너무도 소박한 그것이 최상의 희망이던 청중 곧 갈릴리 농민)’으로서 자신의 비유들과 가르친 기도를 통하여, 하늘이란 ‘땅을 위하여 땅에 내려 있어야 하며, 그것은 대제사장들의 성전이나 헤롯의 궁전에 있는 것이 아니고 겨자씨처럼 땅에 심겨 끈질기게 자라는 것’이라 선언한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인자(人子)의 살(σαρξ)을 먹지 아니하고, 또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는 생명이 없다.”(요 6,53) 이토록 단언적인 선언 어디에도 기독교가 일방적으로 자신들의 구원이라고 여기는 ‘하늘이 땅(세상)에 내려와 우리를 건져 올린다’는 식의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예수에게 있어서 하늘 곧 하느님 나라는 여전히 땅에 심기고 거기에서 자라고 열매를 풍성히 맺어 그 땅의 사람들이 먹고 살아야 하는 밥이 되는 하늘이다. 우리가 여기 우리의 땅과 이 땅의 사람들인 우리 속에 우리 중 한 사람으로 있는 예수를 보아야 하는 이유이다. ‘먹기를 탐하고 마시기를 즐긴’ 그 사람은 혹독한 갈릴리의 한 소작농 목수 곧 절실한 육체노동자로서 하루의 끼니를 위한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하루하루의 치열한 생존 속에 있었다.

  이상과 같이 예수는 당시 사회적인 최하층민이며 전적인 타의로 소외되고 또 경제적 가난과 질병으로 멸시받던 죄인들과 격의 없는 밥상을 함께 나눔으로써 그들을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공공연히 환대하고 재선포한다. 그리고 이러한 ‘예수의 밥상’은 성전을 독점한 대지주 대제사장 사두개 사람들과 율법을 독점한 바리새 사람들 그리고 서기관들을 넘어 갈릴리와 유대 농(촌)민(중)을 환대함으로써 그들의 근본을 파격하는 도발이었다.



========= 각주

153) 문익환, 『히브리 민중사 - 문익환의 이야기 마당』 (서울:삼민사, 1990), 15.

154) [Bedouin, badw] 고대로부터 중동사막에서 반(半)유목 생활을 하는 사람들로 현재 약 1백만 명 정도가 있다고 한다. 한편 예언자 무함마드는 베두인들은 좀처럼 이슬람화 되지 않는 무리라고 비난했을 정도로 독립적인 생활이 강한 사람들이다. (이상, 아래 두 인터넷 사이트 검색, [네이버 지식백과 검색], “베두인족” (위키 백과) / “베두인” (이슬람사전, 학문사:2002), 2017.11.9. 접근)
https://ko.wikipedia.org/wiki/%EB%B2%A0%EB%91%90%EC%9D%B8%EC%A1%B1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051125&cid=43011&categoryId=43011

155) 문희석, 『사회학적 구약성서 해석』 (서울:양서각, 1984), 244-245. (참고:‘하비루의 발생’에 대한 고고학적 고찰은 같은 책, 240-244에 나와 있다.)

156) 문익환, 앞의 책, 17-18.

157) 김이곤, 『구약성서의 고난신학』 (서울:한국신학연구소, 1989), 365-366 참고.

158) 앞의 책, 366.

159) Thorlief Boman, 허혁 역, 『히브리적 사유와 그리스적 사유의 비교』 (왜관:분도출판사, 1985), 33-34 참고.

160) R. Bultman, “이 책(2판)에 대한 서평”, 앞의 책, 313-321에 함께 실려 있음.

161) Bruce J. Malina, 최대형 역, 『신약시대로 가는 시간여행』 (서울:은성, 2001), 60-63 참고.

162) 문익환, 『히브리 민중사』 (서울:삼민사, 1990), 26-33 참고.

163) 물론 ‘오클로스’(οχλος)는 비단 마가복음서에만 나오는 낱말은 아니다. 세 권의 공관복음서에는 마태복음서에 48회, 마가복음서에 36회, 누가복음서에 41회로 비슷한 비율로 나타나고, 요한복음에 19회, 사도행전에 22회 그리고 요한계시록에 4회 나타난다. (죠오지 V 위그램, 고영민 김만풍 역, 『신약 성구사전』 (서울:도서출판 기독교문화사, 1984), 795-796. 참고.)

164) 안병무, 앞의 책, 137.

165) 앞의 책, 138-141 참고.

166) 김진호, “민중신학 민중론의 성서적 기초 - 안병무의 ‘오클로스論’을 중심으로”, 『예수 민중 민족 - 안병무 박사 고희 기념 논문집』 (서울 : 한국신학연구소, 1992), 165-166.

167) 앞의 논문, 앞의 책, 168.

168) 안병무, 앞의 책, 142-143. 참고.

169) 앞의 책, 143-144.

170) 서남동, 『민중신학의 탐구』 (서울:한길사, 1983), 175.

171) 권진관, 『성령과 민중 - 실천적 신학과 신학적 실천』 (서울:한국신학연구소, 1993), 242 참고.

172) 안병무, 『갈릴래아의 예수 - 예수의 민중운동』 (서울:한국신학연구소, 1992), 138.

173) [네이버 지식백과] “세리” [稅吏, tax collector], (교회용어사전:교회 일상, 2013. 9. 16., 생명의말씀사) 세무에 종사하고 세금을 징수하는 관리. 유대 사회에서 이들은 권한을 남용하여 착복하는 사례가 많아 동족의 원성을 샀다. 또 직업상 이교도와 거래가 잦아 율법 상 부정한 자로 규정되었고, 압제자(로마)의 하수인 노릇을 하여 반역자로 낙인 찍혔다. 그래서 세리는 창기, 이교도, 죄인과 같은 부류로 취급되었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375787&cid=50762&categoryId=51365 (2017.11.9. 접근)

174) 황성규, “바리새파 사람과 세리”, 『신학연구 13』 (서울:한신대학교 한신신학연구소, 1972), 162.

175) 이민규, “사회적 관점에서 본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에 대한 비유 - 종교적 착취와 경제적 착취자의 기도(눅 18,9-14)”, 『신약논단 10(4)』 (서울:한국신약학회, 2003), 922-923 참고.

176) Albert Nolan, 정한교 역, 『그리스도교 이전의 예수』 (왜관:분도출판사, 1984), 42-53 참고.

177) 이와 관련된 자료로, 적어도 ‘Q복음서의 예수’는 ‘공관복음서의 예수’와 달리 ‘세리의 친구’가 아니었다는 주장도 눈에 띈다. 이 논문은 특히 (마 5,46)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만 너희가 사랑하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세리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에서 Q복음서는 세리에 대해 명백하게 비판적이며 세리를 공동체의 외부 인물로 보며, Q복음서가 제국 로마에 대해서 취했던 입장에 대해서도 재고하도록 이끈다고 주장한다. 물론 우리는 공관복음서 특히 마가의 영향을 받은 누가복음서의 예수를 주로 읽고 있다. 누가복음서에 대한 바울의 영향이나 누가 공동체 자신의 선교적 정황 등에 대한 자료들은 본 논고가 ‘농촌교회인 한마음교회의 선교적 자립 자활의 모색’에 협소한 초점을 두고 ‘우리의 성서 읽기 또는 예수 읽기’를 하고 있는바 과감히 생략하고 있음을 참고 바란다. / (참고할 논문) 김재현, “세리의 비판자 예수 - Q 복음서의 세리 이해”, 『신약논단 21(2)』 (서울:한국신약학회, 2014), 269-294.

178) J. D. Crossan & J. L, Reed, 김기철 역, 『예수의 역사 - 고고학과 주석학의 통합』 (서울:한국기독교연구소, 2010), 157.

179) “메타노이아”는 죄책감이나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회개나 뉘우침이 아니라 ‘생각 또는 마음을 완전히 뒤집어 혁신함’을 가리키는 말이다.

180) 정경호, 『성서를 통해 맛보는 생명의 밥상 평화의 세상』 (서울:대한기독교서회, 2013), 142.

181) 정경호, “제국의 불의한 밥상을 넘어 하느님의 ‘생명정의평화’의 밥상으로”, 『신학과 목회』 (경산:영남신학대학교, 2011), 13-17 참고.

182) J. D. Crossan & J. L, Reed, 앞의 책, 308-318 참고.

183) 앞의 책, 20 참고.

184) 박재순, 『예수운동과 밥상공동체』 (서울:도서출판 천지, 1988), 73-74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