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리 칼럼]

[한마음 칼럼] 나는 왜 농목으로 사는가? 66

농자천하/ 2020. 12. 26. 11:25

 

한마음 칼럼 : “농목으로 사는 이유”

아직 이른 봄이었지만 볕은 따뜻했다. 온종일 땀을 흘리며 밭에서 함께 고사리 종근을 심다 보니 이런저런 농담도 주고 받으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식당에서 점심을 시켜놓고 둘러앉았다. 그분이 물었다. “목사님이 왜 이런 험한 일을 하십니까?” “저에게 이건 험한 일이 아니라 농촌 목사로서 가장 가치 있는 일입니다.”

긴 이야기를 나눌 처지는 아니었지만, 이것도 하나의 전도이지 싶어서 이곳에 와서 겪은 몇 가지를 이야기했다. 그러자 그분이 물었다. “혹시... 여기 남면 장로교횐가요?” “예, 그렇습니다. 지금은 한마음교회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그분이 잠시 주저하더니 말을 툭 던졌다. “거기 누구누구가 읍내에서도 유명하지요...” 누굴 얘기하는 건지 바로 알아들었다. “...여럿 당했어요. 내 집안 동생도...” 고개를 가로저으며 걱정스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 오신지 15년째라고요? 그동안 대단하셨겠네요.”

오후 새참을 하려고 잠시 밭둑에 다시 둘러앉았다. 막걸리 한 대접을 들이킨 젊은 분은 담배 좀 피우겠다고 밭머리 쪽 그늘로 갔다. 그 어르신이 한마디 더 들어보겠냐고 했다. “이 고생하는 목사님한테 내 그냥 지나는 말로 할 테니 들어보십시오.” 태안 읍내를 단 한 번도 벗어나지 않고 70 평생을 잡화상을 하며 살았다고 하는 그 어르신의 말은 이랬다.

태안군에는 태안읍 주변으로 4개 면이 있는데 읍내에서 장사를 오래 하다 보면 각 면에 사는 거의 모든 원주민을 알게 된다. 그렇게 근 3-40년을 살다 보니 묘하게 각 면 사람들의 특성이 보이더라는 것이다. “읍내에서 수십 년씩 장사하는 이들이 다 같이 하던 말이 있어요. 특히나 여기 남면에서 태어나 지금껏 사는 이들한테. 다른 면 사람들은 ‘근흥면에 누구’ ‘원북면 사람’ ‘이원면 누구네 손자’ 이렇게 부르는데, 유독 이곳 남면 사람들을 가리켜 말할 때는 다들 이랬어요. ‘아이고, 남면 것들’이라고요.” 그리고는 자리를 피하듯 일어나 흙을 긁어 고사리 종근을 덮기 시작했다.

나는 이 말을 지금도 다시 생각해 본다. 어느 한 지역에서 온갖 사람들을 수십 년씩 대하며 장사해온 분의 이런 진솔한 경험치에는 결코 간과해서 안 되는 시사점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면 이곳 원주민들이 읍내 사람들에게 그런 공통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게 된 원인이 무엇일까? 

‘반도 사람들’의 어떤 특이한 기질이 있는 것일까? 무려 1천 5백여 년 전의 백제 시대의 흔적과 심지어 저 유명한 별주부 전설의 흔적이 역력한 지명들도 많고, 특히 후백제 견훤의 군사 훈련장까지 있었다는 이곳 태안반도의 지리적인 역사적 특성 등이 어떤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닐까?

그동안 농촌교회를 오랜 세월 섬겨온 나는 그런 가능성을 상당히 긍정하게 되었는데, 우리 남면 원주민들의 매우 독특한 언어습관, 사고체계나 가치관 등에 집단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다름 아닌 ‘극심한 가난과 지역적 소외’였다고 보인다. /계속 (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