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음 칼럼] 나는 왜 농목으로 사는가/ 78
한마음 칼럼 : “농목으로 사는 이유”
지난 칼럼에서 한 가지 중요한 이야기를 하며 빠뜨린 내용이 있다. ‘어떤 교회는 거의 단 한 번도 스스로 성장하지 못하고 주님께서 보내시는 종들과 그 가정을 마치 건전지처럼 소모하는 일을 수십 년 반복하니 안타까운 일’이라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전국에 숱하게 많은 그런 교회들은 또 그 나름의 사정과 어쩔 수 없는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 교회의 지난 역사를 가정해 보자. 만약, 교회를 시작한 이들이 각자 자신의 마을에서 최소한 보통의 기독교인이었다면. 그들이 수십 년 동안 ‘교회’ 하면 지역 주민들이 진저리치며 욕설이 먼저 나오게 하는 생활을 하지 않았더라면. 새 교인들이 정착하여 살 정도의 여건과 풍토가 지역사회와 교회에 조성되어 있었더라면. 우리 지역이 유동인구가 활발한 도시였다면...
물론 이는 어느 한 가지도 우리가 바꿀 수도 또 고칠 수도 없는 일들이다. 이렇게 도저히 누구도 어찌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라는 결론을 내리면서 나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다른 이들처럼 미련 없이 더 나은(?) 교회로 떠나거나, 아니면 나 스스로 ‘미전도종족 선교사’로 여기며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보거나.
고맙게도 박 권사님의 큰 자제인 정지철 목사님 가족은 현재 캄보디아에서 벌써 15년 넘게 선교사역을 하고 있다. 자녀들 교육이나 생활이 훨씬 편리한 대도시에는 이미 많은 선교사가 있었기에 그동안 기독교 선교사가 한 번도 들어간 적이 없는 농촌 지역을 찾아갔다. 그야말로 ‘미전도종족 선교’라는 가장 어렵고 힘든 길을 자원한 선교사님 가족은 과연 어떤 일들을 맞닥뜨렸을까?
최소한 목사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또 교회 안에서 교인은 무슨 일을 하는 것인지 어렴풋이라도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목사님과 사모님이 하려는 교회 일들을 돕기는커녕 관심 둘 줄도 모른다. 오히려 도끼눈을 뜨고 주변을 서성이거나 훼방하는 이가 없으면 다행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닥치는 모든 일을 전부 다 손수 해결해나가야 한다.
더구나 이 선교사님들은 거의 절망적인 사회적 상황들을 스스로 헤쳐내지 못하는 주민들을 깨우치고 가르쳐서 함께 해결해 보려고 ‘공동농장’을 시작하였다. 농사일은 물론 온갖 잡부일, 청소, 운전, 건물 수리, 현지 언어 배우기, 마을 아이들을 모아 가르치고, 지역 주민들을 설득하고... 이런 과정에서 두 자녀는 과연 어떻게 성장하였고 또 지금은 어떤 처지에 있을까?
그렇게 십수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목사님을 돕고 협력하는 교인은 아직 없다. 다만 ‘일시 고용인’ ‘방관자’ 또는 끝까지 다만 ‘수혜자’로 주변에 있을 뿐이다. 그렇게 온갖 일들을 해결해 주며 길러낸 아이들은 청소년만 되면 모두 대도시로 떠난다. 이런 현장에서 국내 목사들의 일상적인 목회 활동을 기대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런 일보다 더 힘든 것은 지금 이후로도 어떤 희망이 딱히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일 것이다. /계속 (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