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음 칼럼] 나는 왜 농목으로 사는가? 082
한마음 칼럼 : “농목으로 사는 이유”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의 주장이 다 잘못된 건 아니었다. 보통 누군가가 진심으로 화를 내며 말하면 그건 그만큼 진지하게 자신의 말을 누군가 들어주기 바라는 것일 테니까 말이다. 그러니 그런 감정 표현에 휘말리지 말고 상대방의 진의를 파악해야 한다.
그는 이참에 아예 불교 신도 누구누구를 배제하고 철저히 기독교인 조직으로 만들자면서, 그러지 않으면 ‘하나님의 역사에 훼방을 놓는 마귀 짓 하는 목사다, 이건 내 아내와 함께 기도 응답을 받은 것’이라고 했다. 무려 4시간 동안 그의 집에서 식당에서 다시 그의 집에서 격정적으로 계속된 그의 주장과 나의 차이점은 의외로 간단명료했다. 그는 철저한 ‘호교론(護敎論) 신봉자’였고 나는 절실한 ‘선교 우선주의자’였다. 그 이후에 더 일어난 일들을 보면 그는 목회지 없이 귀촌한 목사로서 귀농인 기독교인들을 자신이 모아 다시 교회도 할 수 있겠다고 내심 기대했던 것 같다.
‘나는 왜 농목으로 사는가’라는 부제를 달아 놓은 이 칼럼을 시작하면서 이야기의 방향을 생각해 둔 게 있었다. 그것은 무슨 성공이나 미담 같은 흔한(?) 이야기보다는 뼈아픈 실패의 사례들을 있는 그대로 가감 없이 써서 남기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칫 연관된 어느 누군가를 험담하거나 정죄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는 부작용도 있겠지만, 처음부터 나는 그것이 두려워서 이 실패와 좌절의 사례들을 마다하지는 않겠다고 생각했다.
이는 사실 일반적인 교회 목회현장에서도 엄청나게 많이 일어나는 일들이다. 목사 대부분은 나름 다들 목회자의 심정을 가지고 있기에 자신들이 목회현장에서 겪은 기막힌 일들을 이야기하거나 더구나 글로 남기려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목회 초년생들은 매번 어이없는 상황들에 휘둘리다가 또 다른 교회를 찾아 떠나 버리는 일을 반복한다. 그러니 교회들은 제대로 가꾸어지고 세워질 기회를 아예 얻지 못하는 실정이다.
더구나 사람들이 감동하고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성공 이야기들은 사실 무슨 일이든 고군분투하며 가야 하는 이들에게는 거의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자신의 현장에 일반화시킬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특별한 성공 미담 사례들이기에 뜬구름을 잡게 만들고 헛된 희망을 품게 하여 끊임없이 길을 만들고 찾아가야 하는 일에 잘못된 이정표가 되기 십상이다,
본래 성공 사례에서는 배울 게 없는 법이다. 각 분야의 성공 이야기들을 잘 들어보라. 소위 성공했다는 이들은 사실 자신이 성공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요소들을 알지 못한다. 오히려 뼈아픈 실패를 거듭해 온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작 거기에 깊은 자기 성찰이 있고 실패의 원인 분석이 있게 마련이다. 본의 아닌 오해가 있겠다 싶어서 다시 한번 더 이렇게 언급해 두고 이야기를 계속해 보겠다.
그와의 일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대체 이 의미 없는 악연은 무엇일까? /계속 (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