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리 칼럼]

[한마음 칼럼] 나는 왜 농목으로 사는가? 088

농자천하/ 2021. 5. 29. 23:21

 

한마음 칼럼 : “농목으로 사는 이유”

어째서 자기 손해를 감수하면서라도 전체의 유익을 추구하면 사람들은 ‘호구’로 여길까? 대가 없는 호의와 도움을 베풀면 어째서 그것을 자신의 권리로 착각할까? 그렇게 어이없는 이유로 문턱에까지 다가온 소중한 기회들을 매번 엎어버리는 걸까? 어째서 사람들은 자신의 속눈썹만큼도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걸까?

그렇다고 해서 나는 흠이 없으니 억울하다는 말이 아니다. 반복되는 그런 방해 요인을 넘어서지 못하고 실패를 거듭한 나였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이미 나 자신도 필패의 요인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무슨 일이든 그 일이 성사되는 과정을 결과 이상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고유한 가치 중 하나라고 여긴다. 그렇기에 정말 지독하도록 인내하면서 누군가를 설득한다고 해서 사람이 바뀌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도록 많은 세월을 허비했다. 그만큼 짧은 인생을 많이도 소진하는 어리석은 자였다는 말이다.

더구나 나는 이상을 꿈꾸어내는 목회자이지 무슨 사업가는 아니지 않은가. 다시 말하면 더불어-함께 나아가는 일을 추구하는 자이지 어떤 업무를 성취하고 목표를 달성해내는 소질에는 영 아닌 어리석은 목사일 뿐이라는 말이다. 게다가 나의 실패들의 원인 중 하나는 당연히 소모되는 가용 자원이 없이 무슨 일이든 무모하게 도전을 하였다는 점이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이후에 더욱 상세히 기술할 것이다.

어쨌든 다 함께 잘 되는 길을 선택하고 협력하면 자신에게도 없던 유익이 생기는데 왜 이걸 생각지 못하는지. 지난 20년 이곳에 온 뒤 교회 안팎에서 내가 겪은 일들에는 이런 비슷한 일들이 줄곧 일어났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는 물론 목회자회나 노회 심지어 주일학교 아이들 속에서도 말이다. 그리고 눈앞의 자기 이익에만 눈이 벌게지는 이런 매우 인간적인(?) 이들이, 내가 기독교의 복음적 가치 실현에 거의 최상의 실천적 방안이라고 보는 ‘협동조합 운동’의 필패의 요인이더라고, 답답한 심정을 ‘실패 전문가’로서 이렇게나마 토로해 보는 것이다.

앞서 말했지만, 이런 일들의 실패 원인은 세 가지로 좁혀 볼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첫째는 인적 물적 자원이 없이 과도한 기대와 열정만으로 도전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든 최소한의 고정비용의 지출을 고려하지 않고 일단 내가 몸으로라도 메우겠다는 열심만으로는 안 되는 법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소규모 자영업 창업자가 공통으로 겪는 일이라니 정말 놀라운 일이다.

둘째는 친교 모임으로 창업을 시도하여 그만큼 사업 부분에 엄중하지 못했다. 이 둘을 조화시켜야 하는 소규모 협동조합 창업이 얼마나 어려울지 짐작할 수 있다.

셋째는 창업에 진력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최소 2~3년 소득이 없는 창업 기간을 버틸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이 없었다는 말이다. 당연하지만 이는 많은 귀농 창업인들이 겪는 일이기도 하다. /계속 (聾)

 

(그런데, 내가 어느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누가 그랬다. '그래도 목사님은 교회에서 따로 생활비를 받으니 일반적인 전업 영세 귀농인들과는 다르지 않느냐?'고..... ㅜ,ㅜ 아이고~ 아무 말 못했다. 오죽했으면 아내가 별써 15년째 직장생활로 생활비는 커녕 늘어나는 채무를 충당하고 있겠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