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음 칼럼] 나는 왜 농목으로 사는가? 090
한마음 칼럼 : “농목으로 사는 이유”
이제는 지난 몇 년 동안 노력했던 사회적 선교 활동 중, 문턱까지 좋은 기회로 다가왔던 일들을 이야기하겠다. 이 역시 끝내 결실하기까지 인내하지 못한 일들인데, 무슨 일이든 그렇지만 모두가 나의 역량 부족이 원인이었을 것이다. 2015년 태안농업인대학의 종강을 앞두고 농업기술센터의 교육 담당자와 동기생들에게 본래 제안했던 것은 귀농귀촌인들이 함께 협업하여 소득을 창출하는 ‘협동조합’이었다.
당시 우리 교회 협동조합에서는 전국 규모의 한 소비자 단체와 함께 약 1백여 명의 농촌체험 프로그램을 연중 진행하였고 상당 수준의 직거래를 이루고 있었는데, 그 소비자 단체가 대규모의 CSA 농산물 꾸러미 사업을 나에게 제안했던 터였다. 하지만 그 일은 사업 규모가 워낙 커서 우리 교회 협동조합이 감당할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당시 태안군 어르신 일자리 창출 특별위원회 위원장과도 몇 번 논의했었지만 여의치 않았다. 그러는 중 태안군 농업인대학 동기 귀농인들과 협동조합을 구성하여 하나씩 해결해 나갈 수 있다면 좋으리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함께 논의하는 과정에서 귀농 귀촌인들이 서로 소통하는 모임의 필요가 시급하다는 의견이 앞섰다. 우리는 ‘태안군 귀농귀촌협의회’를 출범시켰고, 협력하여 공동의 소득원을 만들어가는 사업 구조는 당장 절실한 이들이 따로 모여 시작하기로 하였다.
약 3천여만 원의 초기 자본금을 공동 출자하여 ‘농업회사법인 솔향’을 설립하였다. 우리의 소박했던 생각은 ‘솔향’ 법인으로 충남도 사회적 기업인 육성사업에 지원하여 사업 방향을 잡아 나가는 것이었다. 법인 대표인 장로님과 함께 아산의 순천향대학의 육성사업 설명회에 참여했다. 그런데 마지막에 관련 법 규정을 보니 법인 설립 2년 이상의 자격 요건이 있는 것이 아닌가. 갑자기 사회적 기업 육성사업에 도전하는 일이 우리 교회 협동조합의 일이 되었다.
부랴부랴 지원서를 작성하고 몇 번의 사전 교육과 세미나에 참여하였다. 당시 내가 꼭 해야 하는 일들에 워낙 많이 매여 있었기에 속으로는 선정되지 않기를 바랐다. 그런데 충남도 15개 단체 중 하나로 덜컥 선정되었다. 며칠 밤잠을 설치며 작성하여 제출한 농촌 면 소재지 마을 살리기 관련 사업 아이템을 특별히 참작하였다고 했다.
어차피 이 또한 나 혼자 씨름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솔향 법인의 임원들이 우리 협동조합 조합원이 되어 함께 도전하자고 제안했는데, 이상하게 선뜻 동의하는 이가 없었다. 어떻게 하든지 최소한 3인 이상이어야 하는 기본 규정을 갖추어야 했다.
당시 읍내에서 매 주일 오셔서 교회 차량 운행을 자원해주셨던 집사님을 설득하였다. 또 한 명의 팀원은 점점 나빠지는 ‘소뇌위축증’으로 크게 고생하시던 농업인대학 동기생 한 분이 선뜻 나서 주셨다. 우리는 매주 순천향대학을 방문하였고 현장 맨토링 교육에 임해야 했다. /계속 (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