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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 '극우 좌파?' 집단 광기의 시대가 다시 오고 있다

농자천하/ 2022. 3. 26. 10:21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14751

/ 르몽드


파시즘에 맞설 대안의 힘은 어디에?


 프레데리크 로르동 | 경제학자, 철학자 


좌파의 우경화 바람

우리 사회는 파시즘 사회가 돼 버렸을까? 아직은 아니다. 하지만 파시즘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는 것은, 이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사회 전체가 격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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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판에 극우 좌파(마뉘엘 발스와 ‘공화국의 봄’ 운동)라는 새로운 사조가 등장했다. 2년 전에 이 모든 것을 감히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사회의 변화 과정에서 파시즘화는 가속도가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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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폐해로 이득을 보는 쪽은 왜 늘 극우파인 걸까? 답은 극우파의 주장이 지닌 본질적인 폭력성에서 찾을 수 있다. ‘유기적 위기’ 상황에서 극우파는 압도적인 우위를 점한다. 실제로 혹은 상상 속에서 개개인이 품고 있던 폭력성, 가학성, 원한, 굴욕과 같은 모든 감정의 배출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공식적인’ 사조로 정계에 합법적으로 등록된 극우파는 이런 정서들의 집합소다. 사람들은 긴장감을 해소하려는 해결책으로 폭력적인  정치 성향을 찾는다. 내면에 쌓인 스트레스를 터뜨릴 곳이 필요하다.

모든 타락의 구조적 원인으로 꼽히는 신자유주의 속에서, 경영자의 시각은 기발한 발상을 낳았다. ‘분노의 방(Fury-room)’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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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신자유주의가 낳은 분노의 방은 전국적인 현상이 됐다. 헬스클럽 등으로 겉모습만 바뀌었을 뿐이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직면한 유기적 위기로, 나라 전체가 분노의 방으로 변해 버렸다.

분노가 우리 사회를 집어삼키고 있다. 파시즘화 때문만이 아니다. 이를 막을 방법이 전무할 만큼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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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는『 혁명론』에서 ‘혁명(Révolution)’이라는 단어를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반추한다. 혁명은 원래 ‘공전’이라는 천문학 용어에서 유래했다. 행성의 궤도를 돌고 제자리로 돌아오는 천체의 회전을 일컫던 단어는 돌연 완전한 정치적 단절이라는 의미를 띠게 됐다. 

아렌트는 단어의 천문학적 어원에 불가피성 또한 내재해 있다고 설명한다. “폭동이 일어났는가”라고 묻던 루이 16세에게 라로슈푸코-리앙쿠르가 했던 대답, “폐하, 폭동이 아니라 혁명입니다”에는, ‘더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따라서 우리는 ‘혁명’이라는 정치용어가 진보주의나 해방가들만의 것은 아니라는 점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익히 알고 있던 바다. 나치즘도 일종의 혁명이었지 않은가?

오늘날 우리는 암흑 속으로 한걸음 내딛고 있다. 사람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모든 것이 서로 맞물려 최악의 국면으로 치달아 걷잡을 수 없는 지경이 됐다고 우려한다. 벗어날 방도는 단 한 가지, 이 어둠을 모조리 누비고 갈 데까지 가서 신물이 날 정도로 즐거움(정신분석학적 의미로 쾌락이나 향유를 일컫는 ‘주이상스(Jouissance)’)을 누리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이 만들어낸 두려움 속에서 잠식됐던 사회는 깨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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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려오는 파시즘 해일의 최전선을 이끄는 원동력은 바로 폭력적인 대안에 있다. 폭력과 대안, 모두 의미심장한 단어다. 먼저 폭력에 대해 논해보자. ‘유기적 위기’의 시기에 극우파가 던지는 충동적인 대안은 엄청난 비교 우위를 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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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극우파는 즉각적, 독재적이며 인종차별적인 정책안을 유기적으로 구성할 힘을 끌어낸다. 하지만 아직 이 정도 수준의 카타르시스로는 대안이 나오기에 충분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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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불안의 경험은 종신 임금으로, 노동의 가치 파괴를 겪었던 경험은 영리 재산을 해체하고 생산자에게 주권을 돌려줌으로써 승화된다. 이 같은 제안은 추상적인 생각이 아니라, 가장 보편적인 사회조건이라 할 수 있는 노동조건과 직접 맞닿아 있다. 따라서 강력한 사회 원동력이 된다.

극우파의 대안은 사회가 겪고 있는 무질서 상태 속에서 세를 불리고 있다. 기존의 가치가 해체되면서 사람들은 불명확한 질서를 따르길 거부한다. 원인 모를 사회적 긴장감이 고조되고, 새로운 무언가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생긴다. 극우파의 대안은 이같이 모호하지만 갈급한 열망을 향해 손을 내밀며 진정제 역할을 한다.

그다지 새로울 일이 아니다. 극우파는 본래 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위기상황에서 활짝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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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 가치를 지닌 정치 대안으로 무게중심을 다시 잡아줘야만 파시즘의 해일을 흐트러뜨릴 수 있다. 따라서 급진좌파 진영의 인물들은 삼가는 미덕을 보여줄 때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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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아직 ‘좌파 총연합’을 촉구하는 순진한 이들이 있다는 것은 경악할 만한 일이다. 자도, 이달고, 포르, 그리고 바이든을 프랑스 공산당(PCF)의 명예 당원으로 만든 루셀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모두가 우파라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일까?


글·프레데리크 로르동 Frédéric Lordon :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CNRS)의 연구책임자, 유럽사회학연구소(CSE) 연구원. 경제학자이자 철학자다. 주요 저서로는 『La Malfaçon. Monnaie européenne et souveraineté démocratique 결함. 유럽 통화와 민주적 주권』(2014), 『D’un retournement l'autre 또 다른 전환을 향해』(2011), 『Capitalisme, désir et servitude. Marx et Spinoza 자본주의, 욕망과 종속. 마르크스와 스피노자』(201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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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thetomorrow.kr/archives/8931

/ 다른백년


다시 등장하는 파시즘
자본주의의 종말을 뜻하는가?



편집자 주:

세계적 명저 ‘거대한 전환’에서 칼 폴라니는 자본주의가 극심한 병폐를 가져오고 시장의 자기조정 기능이 실패하자, 파시즘이 등장하였다고 설명한다. 2007년 이후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지속되자 유럽의 일부 국가를 필두로 신파시즘적 경향이 강화되고 있고 급기야 신자유주의 종주국인 미국에서 트럼프라는 별종이 탄생하였다.

일부 국가에서는 시민참여적이고 집단지성이 작동하는 바람직한 직접민주화의 바람이 일기도 하지만, 신파시즘적 경향은 트럼프의 등장에 힘을 얻어 전세계적으로 확산일로에 있다.

이들 대부분은 편협한 민족우선주의와 배타적이고 복음적 극우적 종교들을 군산복합체와 결합시켜 전쟁의 위험을 증대시키며, 자본가들의 이익을 위하여 거침없이 생태계의 복원이 어려울 만큼 자연을 손상시키고 있다.

한 예로 극우적 성향인 볼소나로가 브라질의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지구환경의 허파역할을 해온 아마존의 생태가 위협받고, 군국주의적 야심가 아베 수상의 장기 집권으로 헌법 제9조 개정을 통한 일본의 재무장의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한반도를 포함하여 동북아 지역 안보에 빨간 불이 켜진 셈이다. 이는 인류의 위기이자 동시에 병든 자본주의를 뛰어 넘을 새로운 기회이기도 하다.


불과 몇 년 만에 온 세계가 들끓고 있다. 마치 독처럼 모든 대륙에 퍼졌다. 일부에서는 포플리즘 또는 국수주의라고 비난하고 있지만,. 역사를 돌이켜 보면1930년대의 이탈리아, 독일 그리고 스페인에서 벌어진 배제와 공포의 사상이자 타인을 향한 증오와 폭압적인 정부로서 정의되던 사상에 대해서는 파시즘이라고 제대로 된 이름이 작명되었다.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독일의 히틀러, 그리고 스페인의 프랑코는 자본주의 교향악단의 피에 굶주린 테너들이었다. 이들은 군산복합체가 지휘한 죽음의 오페라에 맞추어 노래를 불렀다. 파시즘이 이끌어낸 집단정신병이 1945년 러시아와 서구 연합군에 의해 그 끝을 맞았을 때, 세계적으로 6800만에서 8000만에 이르는 사람들이 학살당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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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를 다른 모든 나라들 위에 놓는 이 정책은, 실상 한 나라가 자국민에게 가하는 압제를 정당화시키기 가장 좋은 수단이다. 내부에서든 외부에서든 위협은 계속되어야 하며, 그 위협의 실상은 굴종적 언론에 의해 조작되거나 침소봉대 된다. 이런 위협들은 사회를 긴장에서 벗어날 수 없게 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군이나 경찰의 보안장치를 묵인하거나 포용하도록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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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파시스트들은 스스로를 우민적 포퓰리즘과 국수주의의 깃발로 감싸고 있으며, 그들의 지지자들을 부정한 방법으로 설득하여, 그들이 세계화, 엘리트주의,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정치 체계의 부패와 맞설 수 있는 투사라고 믿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비인간적 자본주의와 그에 수반되는 비참한 수준의 노동착취를 열렬하게 신봉하는 자들이다. 파시스트들은 열정적으로 세계적 군산복합체와, 채광과 벌목을 통해 이루어지는 자본주의의 무분별한 자원착취를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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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도 더 전에 역사가인 브래드 포드스넬이 밝혔듯이, “나치는 GM이 없었더라면 폴란드와 러시아를 침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포드와 GM이 나치 정부와 맺고 있던 밀월관계는 1930년대 초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헨리 포드 스스로가 나치당의 지지자였고, 히틀러는 자동차 회사의 팬이었다. 포드와 GM 두 회사는 미군을 위해 각자의 생산라인을 전용하며 “민주주의의 병기고”라는 말로 스스로를 포장했으나, 적어도 1942년까지 그들은 공개적으로 파시즘의 병기고이기도 하였다.

비슷한 형태의 정신분열증은 지금도 진행중이다. 포드와 GM이 나치와 연루되었듯, 군산복합체의 죽음의 상인들이 조종하는 세계 자본주의는 세계 각지에서 자행되는 전범행위들에서 그 이익을 얻고 있다.

예를 들어, 현재 예멘 내전에서 수천 명의 민간인을 죽이고 예멘 국민들을 기아 속으로 몰아넣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사우디 아라비아의 이슬람-파시스트 정권에 엄청난 규모의 무기를 파는 것처럼. 이런 전범행위들은, 무기를 판매한 양의 순서대로 미국과 영국, 그리고 프랑스의 무기들을 이용하여 자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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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와 스와스티카 (나치당의 표식)를 빙 둘러 양각으로 새겨진 “Gott Mit Uns (신은 우리와 함께 하신다/임마누엘)” 라는 문구는 2차대전 중 독일군의 복장을 장식하였다. 신이 있다면, 신의 힘은 분명 제3제국의 군인들을 돕지는 않았으리라! 그렇긴 해도, 파시즘의 세계적인 대두에 있어서 종교적인 흔적을 분명히 찾을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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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파시즘의 대두가 인류의 생존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고 있음이 보인다. 세계적 파시즘을 이끄는 돌격대원들의 군홧발 아래, 그나마 명맥을 잇고 있는 우리의 생태계가 그 끝을 맞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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