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과 함께 여는 제7공화국] 총체적 위기, 누구를 불러내야 하는가
<국민과 함께 여는 제7공화국>
이런 제목의 시국토론회가 어제(10일) 광주에서 열렸습니다. 제가 기조연설을 했습니다.
총체적 위기가 몰려왔는데도 그에 대처하기는커녕, 지금 우리는 정치로 내전을 치르고 있습니다.
충정으로 국가위기를 진단하고, 가장 기본적인 처방을 제시했습니다. 개헌과 극단정치청산입니다. 특히 '윤석열 이재명 정치의 동반청산'이 시대정신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87년 체제 종식, 극단정치 청산으로 제7공화국을 엽시다>
2025.2 이낙연
저는 작년 4월 국회의원 선거에서 광주시민의 매서운 질책을 받았습니다. 그 뒤로 저는 조용히 성찰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선거에서 저는 정치를 혁신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이 위기에 빠질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불행하게도 저의 우려는 현실이 됐습니다. 정치는 험악해졌고, 위기는 심각해졌습니다. 저는 대한민국의 위기를 외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의 충정을 국민 여러분께 호소드리기로 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이 위험합니다.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가 모두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국민은 예전보다 더 극심하게 분열했습니다. 한 해에 자영업자 100만 명이 폐업할 만큼 민생이 도탄에 빠졌습니다. 북한의 동향과 미국 트럼프 정권의 관세전쟁 등 외부 환경이 심상치 않습니다. 한류로 쌓아 올린 국가 이미지가 계엄으로 무너졌습니다. 그렇게 총체적 위기가 몰려왔습니다. 그런데도 지금 우리는 위기에 대처하기는커녕, 정치로 내전을 치르고 있습니다.
위기는 이렇게 왔습니다. 첫째는 정부의 파탄입니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2년 7개월 만에 파탄을 맞았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5.17 쿠데타 이후 44년 만에 느닷없는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가 6시간 만에 해제했습니다. 대통령으로서 박근혜 이후 8년 만에 탄핵소추돼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과 법원의 내란혐의 재판을 동시에 받게 됐습니다. 국무총리도 대통령 권한을 대행한 지 13일 만에 탄핵소추돼, 경제부총리가 대통령을 대행하고 있습니다. 여러 부처 수장과 수사 검사들이 탄핵소추에 의한 직무정지 등으로 공석입니다. 계엄 사태 이후 TV를 통해 고위공직자들의 실태를 보는 국민들은 “저런 사람들에게 나라를 맡겼던가” 하며 한숨을 쉬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초기부터 저는 윤석열 정부가 대한민국 민주화 이후 최악의 정부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윤석열 정부의 파탄은 일찍부터 예고됐습니다. 비판 세력을 ‘반국가 세력’으로 규정하며 섣부른 이념논쟁을 너무 자주 촉발했습니다.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소동처럼 무의미한 논란만 야기하고 흐지부지된 일도 많았습니다. 외교에서 부적절한 언동으로 국격을 손상한 일도 한두 번이 아닙니다. 이태원 참사와 채상병 사건에 대한 대처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무감각과 무책임을 드러냈습니다. 의대 입학정원의 대폭 증원을 즉흥적으로 결정해 의료계를 혼란에 빠뜨리고, 국민께 고통을 드렸습니다. 그런 거듭된 실정으로 작년 4월 총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처참한 결말을 맞았습니다.
둘째는 거대 야당의 폭주입니다. 작년 4월 총선거에서 국회 300석 중 192석의 기록적인 거대 야권이 탄생했습니다. 171석을 얻은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은 탄핵소추를 29회 발의해 13건을 의결했습니다. 입법에서도 독주해 무리한 법안들을 잇달아 일방 처리했습니다.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에서 대통령실 특활비, 감사원 특경비 특활비, 검찰 특경비 특활비, 경찰 특활비 치안활동지원비 등을 전액 삭감하고, 몇 가지 민생예산도 삭감했습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8개 사건, 12개 혐의로 5개의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선거법 위반사건은 1심에서 피선거권 박탈형을 선고받고 2심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제2야당 조국 대표는 대법원 유죄판결로 국회의원직을 잃고 수감됐습니다. 민주당의 폭주는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를 방어하는 ‘방탄’을 위해서도 강행됐습니다. 입법권력을 악용한 ‘방탄’은 전례 없이 다양하고 집요하게 이어지며 법치주의와 삼권분립을 훼손하고, 법치에 대한 국민의 냉소와 우려를 심화시켰습니다.
셋째는 권력 충돌입니다. 각기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과 국회 다수세력, 즉 행정권력과 입법권력이 충돌했습니다. 타협을 모르는 두 권력이 마주 달리는 기차처럼 충돌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거대 야당은 탄핵과 입법과 예산삭감 등으로 윤 대통령을 끊임없이 압박했고, 윤 대통령은 25차례나 거부권으로 ‘방탄’했습니다. 비상계엄 선포이유를 윤 대통령은 거대 야당의 잇따른 탄핵과 입법 및 예산의 폭주로 국정수행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분명히 계엄은 윤 대통령의 망상과 오판에서 비롯된 중대 실책입니다. 그럼에도 거대 야당의 집요한 압박이 윤 대통령의 비상식적 심리상태를 더욱 악화시켰을 수도 있습니다.
넷째는 사법부 불신입니다. 공수처를 비롯한 수사기관과 헌법재판소를 포함한 사법부마저 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시비에 휘말렸습니다. 그들도 진영으로 나뉘어 정치의 영향을 받는다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폭력은 결코 용납될 수 없지만, 법원 청사가 시위대의 공격을 받는 초유의 사태까지 발생했습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라는 사법부가 국민으로부터 의심받고 공격받은 일은 대한민국의 위기가 어디까지 왔는지를 아프게 말해 줍니다. 이번 사법부 불신은 이재명 경기지사의 선거법 재판과 관련된 대법관 매수 의혹에서 시작됐습니다. 국민의 불신이 해소되지 않은 채로 헌법재판소와 법원의 판단이 나온다면, 국민이 온전하게 승복할지 걱정됩니다.
다섯째는 국민 분열입니다. 예전부터 정치 양극화와 진영 대립에 동원되며 분열했던 국민이 이번에 더 극심하게 분열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서는 파면요구 여론이 시종 압도했지만, 이번에는 시간이 흐를수록 찬반의 격차가 좁아졌습니다. 이것은 헌재와 법원이 어떤 판단을 하건, 국민 분열이 상당 기간 이어질 것임을 예고합니다. 더구나 국민을 동원하는 정치는 내전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위기적 사태가 이번에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닙니다. 그동안 감추어졌던 대한민국의 취약 또는 추악한 실상과 오랜 숙제가 이번 위기를 맞아 한꺼번에 표출됐습니다. 우리 민주주의에 잠재돼 있던 약점과 위험요인도 동시에 드러났습니다. 그런 약점과 위험요인을 최소화하고 오랜 숙제를 해결하며 제7공화국을 여는 국민적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런 결단 없이 이대로 간다면, 우리는 ‘예정된 비극’을 겪으며 침몰의 길로 들어설 수도 있습니다.
지금 국민의힘은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선포마저 두둔하고,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를 호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대한민국을 ‘예정된 비극’으로 끌고 가는 위험한 일입니다. 만약 국민의힘이 계엄선포를, 민주당이 사법리스크를 정리하지 않은 채로 대선에 임한다면, 대선 후에도 지금같은 혼란이 계속되거나, 진영만 바꾸어 혼란이 이어질 것입니다. 그것이 ‘예정된 비극’의 서막입니다. 그런데도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과 이재명 대표의 여러 재판을 온갖 방법을 동원해 지연시키는 ‘법꾸라지’ 행태에 국민은 진저리를 치고 있습니다. 이미 ‘윤석열 이재명 정치의 동반청산’이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그 현실을 우리는 직시해야 합니다.
희망의 제7공화국을 열려면 크게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 ‘87년 체제’를 종식해야 합니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탄생한 현행 헌법은 대통령 직선제와 5년 단임제를 통해 1인 장기집권을 끝내고 정치적 민주화를 이루는데 기여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에게 권력을 집중시켜 놓은 결과로 많은 대통령이 불행한 결말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현행 헌법이 시행되고 지금까지 38년 동안 8명의 대통령이 나왔습니다. 그 가운데 네 분이 감옥에 갔고, 두 분은 아들을 감옥에 보냈습니다. 한 분은 퇴임 후 검찰 수사를 받다가 참담한 일을 당했습니다. 세 분이 탄핵 소추돼 한 분은 파면됐고, 한 분은 심판을 받고 있습니다. 8명 중에서 문재인 대통령만 그런 불행을 겪지 않았으나, 그분도 퇴임 후에 이런저런 곤욕을 치렀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은 영광의 자리가 아니라, 불행이 예약된 자리처럼 돼버렸습니다.
이 헌법을 고치지 않고 대통령을 뽑으면, 그 대통령이 불행을 겪을 가능성은 전임자들보다 더 높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과거 어느 때보다 심각하게 국민이 분열해 있기 때문입니다. 국민이 극렬하게 분열해 있는데, 분열의 이유가 됐던 세력의 책임자가 대통령이 되고 지금 같은 제왕적 권력을 갖는다면, 국민의 다른 한편은 처음부터 저항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불행을 뻔히 예상하면서도 헌법을 고치지 않고 간다면, 대한민국은 불을 보고 덤벼드는 불나방 같은 신세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분권형 대통령제로 개헌할 것을 국민과 정치인 여러분께 호소드립니다. 대통령의 권한을 책임총리 등에게 제도적으로 분산하고, 계엄요건 강화와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도입 등을 포함했으면 합니다. 저는 18대 국회에서 헌법연구회 공동대표로 일했습니다. 의원 182명이 회원으로 가입한 그때의 헌법연구회도 분권형 대통령제로 접근했으나, 개헌에 이르지는 못했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도 비슷한 개헌을 구상했거나 추진했으나 역시 실패했습니다. 우리가 이번 같은 국가위기를 다시 겪지 않으려면 분권형 개헌을 통해 ‘87년 체제’를 종식해야 합니다.
대통령 선거 이전에 개헌에 대한 정치적 합의를 이루고, 개헌 국민투표를 대선과 함께 실시할 것을 제안합니다. 헌법상 120일이면 개헌이 가능합니다. 정치권, 특히 개헌을 공약해놓고도 이번에는 침묵하는 민주당의 동참을 요구합니다. 그래도 만약 개헌에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면, 정치적 합의로 차기 정부를 ‘87년 체제’ 종식과 제7공화국 출범을 위한 과도정부로 만들 것을 제안합니다. 차기 정부 출범과 함께 개헌을 본격 준비해 2028년 총선과 함께 개헌 국민투표를 실시하고, 차기 정부가 3년 만에 퇴진하는 것입니다. 이미 몇 사람의 대선 주자들이 그런 의사를 밝히고 있는 것을 주목합니다.
둘째는 극단정치의 청산입니다. 양대 정당이 극단적으로 적대하며 사생결단의 투쟁만 계속하는 정치를 이제는 끝내자는 것입니다. 만약 이런 정치를 끝내지 못하고 계속한다면, 대한민국은 국가생존의 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침몰의 수렁으로 빨려 들어갈 것이라고 저는 걱정합니다. 대한민국의 성공 이유를 포함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라는 책의 공동저자이며,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런 애쓰모글루 미국 MIT 대학 교수도 “한국의 가장 큰 문제는 타협할 줄 모르는 양대 정당”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극단정치를 청산하기 위해 저는 양쪽의 극단세력을 배제한 합리적 책임정당의 출현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독일처럼 극단세력이 소수화 변방화되고, 합리적 좌우세력이 협력적으로 경쟁하며 국정을 책임있게 이끌어 가기를 바랍니다. 만약 지금처럼 양극단 세력이 정치를 주도하며 그들끼리 정권을 주고받는다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중요 국가정책이 시계추처럼 오락가락하며 국정을 표류시키고 국내외적 신뢰를 잃을 것입니다. 피비린내 나는 정치보복의 악순환도 계속될 것입니다. 이제는 국가의 중심을 잡는 책임정당이 출현해 대화와 타협을 주도하며, 국민생활과 국가생존을 최우선으로 중시하는 정치를 실현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을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정치인과 뜻있는 국민 여러분이 결단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도록 저는 작은 밀알이 되겠습니다.
극단정치 청산을 위해 또 하나 필요한 것은 정당의 당내 민주주의 확립입니다. 극단정치는 극단적 지도자와 강성 지지자들의 합작품입니다. 극단적 지도자와 강성 지지자들은 당내 민주주의를 봉쇄하며 극단정치를 강화합니다. 당내 민주주의가 질식하면, 당내는 극단적 지도자와 강성 지지자들의 비위 맞추기에 급급하고, 극단정치는 더욱 기승을 부립니다. 그런 악순환을 끝내고 합리적 책임정치를 구현하는 첫걸음이 당내 민주주의 확보입니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발전 수준에서 아시아 최고로 평가돼 왔습니다. 그러나 정당의 당내 민주주의는 다릅니다. 역대 보수정당은 권력의 부속품처럼 순응하며 지내온 탓에 당내 민주주의가 미숙합니다. 민주당 계열의 역대 정당은 당내 민주주의가 활발한 편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즘 몇 년 사이에 민주당은 그 자랑스러운 전통을 버리고 전례 없는 ‘일극 체제’의 늪에 빠졌습니다. 다양성과 포용성이 없어지고, 폭력적 배타적 언동이 인기를 끄는 지금의 당내 문화로는 극단정치를 청산할 수 없습니다. 당내 민주주의를 활성화하기 위한 여야의 결단을 촉구합니다. 당내 민주주의를 못하는 세력이 국가 민주주의를 잘할 수 있겠습니까.
끝으로 광주와 전남북 시도민 여러분께 특별히 호소드립니다. 역사의 고비마다 호남인들이 국가를 바로 세워주셨듯이, 이번에도 여러분이 대한민국을 침몰의 위기에서 구출하는 데 앞장서 주시기 바랍니다. 총체적 위기가 몰려왔는데도 내전만 계속하는 극단정치를 끝내고, 국민생활과 국가생존을 우선하는 책임정치로 가도록 여러분이 함께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국정을 책임졌던 사람의 하나로서, 대한민국이 ‘예정된 비극’을 피하고 희망의 제7공화국으로 가도록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헌신하겠습니다.
/ 이낙연 제45대 국무총리, 전 민주당 당대표
권순욱의 팩트 파인더: 시대정신은 윤석열과 이재명 동시 청산 / 지역주의에 맞선 노무현 / 진영주의에 맞선 이낙연 / 진영주의에 갇힌 문재인
https://www.youtube.com/live/Wa6GhPs6q_0?si=g1p5Rl2gwmsfQePF
https://youtube.com/shorts/G3lgZwSB_vA?si=QNHseTnK6yudbg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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