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諫諍/封駁] 개혁교회와 교단의 정체성에 무지한 교회 1. 2.
[封駁/諫諍] 2015.10.31
008 / 소속 교단의 정체성에 무지한 교회 1
“우리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이다!”이는 우리교회 주보에 붙박이로 인쇄해 넣은 문구이다. 왜 이 당연한 일을 새삼스럽게 해야 하는 것일까? 역시 ‘오죽했으면’이 답이다. 한 해에 무려 20만여 명이 넘는 피서객이 방문하는 몽산포 해수욕장이 우리 마을에 있기 때문이다.
여름철이면 다른 지역에서 해수욕장에 들르는 교인들이 적잖이 주일예배에 참여하고, 인근 지역에 이주하여 지역교회들을 ‘간보러’다니는 교인들이 많다. 한 사람이라도 더 교회당을 채워주면 좋아들 하겠지만, 우리는 이게 몹시 불편하다. 요즘 우리는 온 교우들이 말 그대로 ‘한마음’이 되어, 우리 교단의 신앙고백들과 예배 지침들에 충실하고 있다. 그렇게 해야 아주 작은 데서 무너져 마침내 상실해 버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기초부터 지켜낼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우리 교단의 여러 신앙고백들 특히 우리 교단의 ‘21세기 신앙고백서’와 요리문답 읽기이다. 둘째는 우리 개혁주의교회의 신학과 교회체계 배우기이다. 셋째는 우리 교단 총회의 주요 정책인 교회일치운동과 생명살리기운동 배우기이다. 그런데도 이에 대해 놀랍고 황당스런 일을 겪는다. 외지에서 방문하는 이들이 우리의 이런 노력들에 대해서 ‘낯설다’아예 ‘이상하다’며 예배 끝나기도 전에 나가거나 아니면 도망치다시피 인사도 없이 가버리는 걸 종종 본다.
심지어 어떤 무지한 자들은 자신이 다니는 대도시의 ‘큰 교회’에서는 이렇게 하지 않는다며 한심하기 짝이 없는 훈수를 두기도 한다. 마치 그들을 따르지 않아 농촌교회가 부흥하지 않는다는 식이다. 물론 가끔은 ‘참으로 오랜만에 은혜 많이 받았다’며 함께 고무되는 분들도 있지만. 도대체 이게 어찌된 일인가? 요즘에야 교단 구별이 거의 되지 않는 때가 되었지만, 어쩌다가 이렇게 전부 그저 조씨류(趙氏類)아니면 온누리식이 정답이라는 건지 정말 한심할 일이다.
다 알다시피 그 조 아무개는 사실 조직신학도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자이고, 온누리는 통합측 교회라지만 사실 내용은 합동측 수준이면서 외형은 미국 회중교회식이라는 건 다 아는 사실이다. 정체성이고 뭐고 이런 식으로 무슨 신학적 기초도 없는 자들이 일단 교인들 왕창 모아놓은 걸 분별도 없이 따라 몰려다닌 우리의 무지에 대한 부메랑이다. 우리 교단 교회의 정체성에 충실한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낯설다, 또는 아예 틀렸다고?! 이게 제 정신인 건가?
첫째는 장로회 교회 체제이다. 일종의 ‘민주주의적 협동 지도체제’인 당회가 장로회 교회 고유의 치리회라는 걸 무슨 유명한 대형교회 교인이라며 아예 모른다. 이럴 땐 ‘늬들은 대체 뭘 가르치냐’고 그 교회 목사를 호되게 야단치고 싶다. 둘째는 교회의 협동조합, 지역사회선교이다. 이건 우리 교단의 주요 정책인 <치유-화해-생명 공동체 10년 운동>의 실천 노력이고, 총회 농어촌부가 매년 발행하는 <농어촌선교정책 연구서> 등에서 계속 권고하고 있는 내용이다.
셋째는 WCC 곧 세계기독교교회협의회이다. 왜 이걸 ‘용공세력’또는 ‘마귀’라고 하지 않느냐는 거다. 그러면 그런 교회와 목사는 우리 예장통합측에서 속시 축출돼야 한다. 소속 총회에 반하는 걸 가르치고 선동하는 것이다. 넷째는 매주일 성만찬 예배이다. ‘천주교 같은데?’이따위 말로 개혁교회 본연의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우리를 모욕한다. 도대체 개혁주의교회가 뭔지 장로회 교회가 뭔지도 모른다. 자신이 소속된 교단의 예배서를 한 번도 읽지 않은 거다.
다섯째는 주기도와 사도신경에서 ‘저는’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다. 오히려 하느님께 ‘나는’이라는 게 몹시 이상한 게 아니고? 총회 헌법에는 ‘신조는 번역 상의 문구로 되어 있으니 예배 시에는 존칭어로 사용하기로 하다’고 명시되어 있는데? 이게 다 만만해 보이는 농어촌교회를 제 맘대로 하고 싶은 수작이다. 순식간에 증식하는 이런 암세포를 처음부터 걸러내기 위해 앞으로는 ‘우리 교회는 WCC 가맹 교단이다’고 주보에 커다란 글자로 박아 넣어야겠다.
무례하기 짝이 없는 이런 교인이 이리도 많은 걸 보면 우리 교단 목사라는 자들이, 총회 홈페이지 자료실은 커녕, 총회 헌법 교리편, 총회 예배서 조차 제대로 읽어본 적이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고, 더구나 21세기 신앙고백서는 존재조차 모른다는 게 틀림없다는 사실이다. (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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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封駁/諫諍] 2015.10.31
009 / 소속 교단의 정체성에 무지한 교회 2
그러므로 우리가 지향하고 있는 ‘소금 전도, 진짜로 자역사회에 녹아드는 복음선교’나 우리의 매주일 말씀-성찬 예배에 거부감이 든다면 너희 교회 목사들이 한심기 짝이 없는 거라는 반증이다. 그런 자들은 우리 교단에 남아 있으면 안 되는 양심도 기본 상식도 없는 자들이다.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측)이라는 대 교단에 소속되었다고 자부하면서도, 자신이 속한 교단의 정체성은 커녕 신앙고백서들에도 관심 없고 그에 합당한 고백도 없이, 그에 반하는 설교를 하고 주장하는 자들이 과연 정상일까? 더구나 도대체 우리 한국 개신교 교인들은 어째서 이리도 무례한가? 아무리 작은 농어촌교회이고 또 아무리 순박해 보이는 노인들만 거의 남아있는 교회라고, 도리어 우리와 교단도 다른 자들이 자기네들 ‘큰 교회’와 다르니 틀렸다고 하는가?
이런 장탄식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자신들에게 낯익은 것은 옳은 것, 낯선 건 이상한 것으로 여기는 이런 코미디를 과연 우리가 그냥 웃고 넘겨야 하는 걸까? 오히려 순교자들을 따라 목숨으로 지켜내야 하는 복음 내용에는 그리도 관대하면서? 기독교 곧 예수 그리스도교의 복음이 기도 응답일까? 아니면 철저한 회개 회심과 중생일까? 축복 남발일까? 아니면 회심과 헌신 그리고 희생의 촉구일까? 감정적 고백일까? 아니면 지-정-의에 기초한 삶과 실천일까?
그래서 나는 아예 그런 자들에게는 이렇게 말해준다. “다른 교회로 가시지요.”“저기 읍내에는 있는 ‘조금 큰’교회로 가시지요.”그래도 이만큼 예를 차려 말해주는 걸 고마워해야 할 거다. 자신들이 소속된 교단 총회의 신앙고백, 주요 교리들, 각종 지침과 결의들, 그리고 지교회의 공교회적 권위에 대하여 목사 자신들이 먼저 충실하지 않아 이 사달인 거다. 그런데도 오히려 그것이 목사 자신의 주장과 정서적으로 맞지 않으니 무시하거나 반대로 처신한다고?
아니 어떤 정신 나간 목사나 장로들은 이런 말도 한다. “교단 헌법을 바꾸어야 한다?!”“총회가 잘못되었다?!”이런 반 교단적인 자들은 이제라도 모두 교단에서 철저히 색출하여 축출해야 한다. 그리고 제발 모든 신대원에서는 우리 교단의 역사와 정체성에 대한 교육을 필수과목으로 좀 가르쳐라. 당연히 목사고시에도 성서 다음으로 교단의 신앙고백과 정책과 역사를 주요 과목으로 포함시켜야 한다. 지금까지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이 얼마나 기막힌 일인가?
어째서 이토록 당연한 걸 이토록 새삼스럽게 말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제라도 WCC와 치유와 화해와 생명공동체 운동에 저항감이 드는 목사들, 장로회 교회의 정체성도 모르는 자들은 각자들 양심껏 좀 다른 교단으로 가라. 최소한 자신이 속한 교단이 주도적으로 세계 기독교 교회들과 소통하며 이끌고 있는 WCC 세계교회일치운동에 대해서 관련 자료들을 한 번이라도 좀 읽어 봤는가? 그게 왜 가장 앞선 성서적인 실천들이라 하는지 이해는 되나 말이다.
신앙은 신념이 아니다. 신앙은 자기 생각이나 자신의 주관적 체험에 불과한 것을 일반화 시키는 참람한 행위가 아니다. 배우처럼 연기(演技 : 예수님이 가장 끔찍이 여기신 외식, ‘υποκριτης)하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공동체적이고 인류애적이지 않은 건 기독교 신앙이 아니다. 총회가 노회로 보낸 공문이 하나 있던 것을 뒤늦게 알았다. 제목을 보아하니 노회 임원들이 자기들 정서에 맞지 않는다고 자의(恣意)로 선별하여 지교회에 전달하지 않은 게 틀림없다.
공문 제목이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을 위한 주보 게재 요청의 건’이다. 도대체 지금이 어느 시대라고 교단 총회의 공문을 ‘중간 검열’인가? 농촌의 작은 교회로서 우리는 ‘총회주일 헌금’을 두어 번 밖에 내지 못했다. 아무리 가르쳐도 일반 교인들은 총회주일 헌금은커녕 적잖은 노회 상회비도 선뜻 이해하지 못한다. 더구나 우리는 교회당을 구입하여 이전하였기 때문에 노회의 공식적인 지원금도 받지 못했다. 교회당을 신축해야만 지원한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총회나 노회가 지교회의 살림에 아니 혼신을 다하고 있는 지역사회 복음 선교에 무슨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는지 우리는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 이런 중대한 사안들에 대해 총회와 노회에서 녹을 받아 살거나 명예를 누리고 있는 이들이 깊이 재고해야만 한다. (聾)
참고할 < 화란개혁교회 교회질서 해설>
http://m.blog.naver.com/kamangi1010/220451199028
화란개혁교회 교회질서 해설
본 글의 바로 윗글이 화란개혁교회 헌법의 교회질서 부분을 번역해 놓은 자료이고, 이 글은 이 교회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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