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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배움

일상화된 배제와 차별

by 농민만세 2018. 2. 8.

 

 

여성과 남성의

직능적 차이니 다름이니

할 말들이 또 많겠지만

어찌 되었든 최소한

우리 사회에서 현재 남성들이

차지하고 있는 모든 종류의

기득권들의 절반은

당연히 여성들로 채워져야

상식이라는 데서부터

우리 예수교의 사유와 실천은

시작되어야 한다

 

 

아래 원글보기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2149415918420768&id=100000571422910

 

<일상화된 배제와 차별: "상상으로 하는 실험"에의 초대>

 

1. 1971년 11월 14일 하버드 대학교 채플에서 336년의 하버드 대학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이 설교하게 되었다. 하버드 역사상 첫 여성 설교자는 그 당시 보스턴 대학의 부교수로 있었던 매리 댈리(Mary Daly) 교수이다. 설교 제목은 "신과 아버지의 죽음 이후(After the Death of God and Father)"였다. 메리 댈리는 한 강연장에서 남성들로부터는 질문을 받지 않겠다고 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남성들이 공적영역에서 "침묵당함"의 경험을 잠정적이지만 해 보라는 시도였다. 또한 미국에서 최초로 페미니스트 신학 과목을 개설한 넬 몰톤 (Nelle Morton)교수는 한 강연장에서 청중들에게 "상상으로 하는 실험"을 해보자고 한다. 예를 들어서 어느 남성에게 "당신은 참 똑똑하지만 '남자'라서 목사안수를 받을 수 없어서 참 안 됐군요"라고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느낄 것인가. 매리 댈리나 넬 몬톤과 같은 학자들의 시도들을 통해서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어떻게 이 세계가 철저한 남성 중심적 세계인가, 여성들은 어떻게 지속적이고 치밀하게 배제와 차별을 당해왔는가를 체험할 수 있었다고 한다.

 

2. 인류의 역사에서 남성은 언제나 "발화의 주체(speaking subject)"로, 여성은 "발화의 객체(spoken object)"로 살아오고 있다. 새해를 맞이하는 JTBC의 "2018, 한국 어디로 가나"라는 신년토론 프로그램과 같은 것을 보면,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여성배제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일상화되고 있는가를 보게된다. 한국에서 가장 신뢰받고 있는 방송사의 언론인이 진행하는 진지하고 중요한 프로그램에, 100% 남성들만 '발화의 주체'로 등장하고 있다. 한국의 미래를 예견하고, 비전을 나누는 이러한 자리에 어떻게 이렇게 발화의 주체가 단일성일 수가 있을까. 이러한 장면에서 누가 배제되고 있는가를 보는 그 시각의 정도가, 바로 인권 감수성, 평등감수성 지수의 척도로 사용될 수 있다고 나는 본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남성-비장애인-이성애자'들만이 모여서 한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논의하고 있는 이러한 장면들이 단지 한 TV 프로그램에서만이 아니라, 종교, 정치, 경제, 교육, 언론 등 한국사회 곳곳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3. '상상으로 하는 실험'을 해보자. 이 사진들이 100% 여성으로만 이루어져 있다면, 또는 100% 장애를 가진 사람들로만 이루어져 있다면, 시청자들은 무엇을 느낄 것인가. 아마 지극히 '비정상적'인 장면으로 보일 것이며, 누가 배제되어 있는지를 단숨에 알아차릴 것이다. 우리 사회의 차별과 배제의 문화는 이렇게 우리 모두의 시선을 '세뇌' 시켜서 그 차별과 배제가 마치 '정상적'으로 간주하게 되는 '비정상의 정상화'로 유지되고 있다. 차별과 배제는 두 가지 타입이 있다 "행위로서의 차별 (discrimination by commission)" 그리고 "생략으로서의 차별(discrimination by omission)." 한국사회는 이 두 종류의 차별과 배제가 여전히 곳곳을 지배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마치 숨쉬는 공기가 존재하는지 조차 감지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러한 장면들과 현실을 '자연화'하고 '정상화'하게 된다. 이러한 자연화와 정상화의 지독한 문제는 지금의 불균형적 현실에 "왜 (why it is what it is)"를 박탈한다는 것이다. '상상으로 하는 실험'을 다양한 정황에서 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