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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무소의 외뿔

(ㅠ0ㅠ  이렇게 혼자 구도하다가 사라지겠지만)


農民神學(농민신학 / 소작농신학 / The Peasantry Theology)
 

농민신학은 農의 신학이요, 民의 신학이다.

1) 農의 신학이라 함은, 하늘을 농사 짓는 땅의 신학이다.

2) 民의 신학이라 함은, '民衆(Min_jung, Οχλος)의 신학'이며 '人民(people, Λαος)의 신학'이다.

3) 그것은 땅에 심겨 하늘을 향해 자라는 '생명들의 신학'이며,
    또한 그것은 하늘을 품고 땅을 일구며 사는 '사람들의 신학'이며,
    그것은 이 땅의 사람들(עם הארץ)의 터전에서 결실되는 '평화의 신학'이며,
    무엇보다도 그것은 주체적(subject) 노동에 의한 '정의의 신학'이다.

4) 그래서 농민신학은 '갈릴리 예수의 사람들의 신학'이며, '농민예수신학'이다.
    마침내 <온 세상과 스스로를 養生하는 농민들이 삶으로써 이야기하는 양생의 신학>으로 발전하길 바란다.

/ 2019.8.13.아침


    갑자기 이른 아침에 확! 신내림(?)을 받아서리, 일필휘지로 써 갈겨놓고 농민신학 이야기를 본격 시작하다,, 하기사 뭐든 수십 년 묵히고 묵혀야 제맛을 비로소 내는 법이지,


(송구스럽게도 갈릴리신학대학원의 홍성현 홍정수 그리고 서광선 은사님들의 가르침으로 겨우 걸음마.)

 
"농민신학, 매우 중요한 거다"
홍정수 은사님 말씀이 있었는데
그런데 생존 노동이 우선이니
찾아 봽고 질문드릴 게 산더미인데
이야기는 아주 천천히 조금씩~ㅜ
우선 지금까지 해 온 이야기의 연장이니

누구도 이야기 못하거나 하지 않는
누구도 관심조자 주지 않게 당연한 농민,
농민에 의한 농민의 신학이라니ㅡ,ㅡ

젠장~ㅋ

[농민신학의 숙명]
 
2021년 전국 농민 인구
250만 명이 채 되지 않는
그중 일평생
농사꾼으로 살아온
불과 100여만 명
소농민과 함께
농민신학은 사라진다
그게 처음부터 당연한
농민신학의 숙명

다만 한 사람
광야의 수도자처럼
살아가는 농목
몇 명이나마 남게 된다면
그래서 농민신학의
명맥을 이으며
이 땅 농사꾼들의
삶 속에 녹아 있던
이야기들을 기록하게 되길

세계 어느 곳에서도
한 번 제대로 
주시된 적 없이
그저 너무나 당연한
공기처럼 살던
소농민들 그 가장
인간적인 그래서
이 행성에 사람이 산
유일한 흔적이 될

하느님이 하필
사람 되실 때
소작농과 농노 그 중간
동네 농사꾼 목수로
이 일이 시사하는
바울이 눈치 챈
죽음을 겪은 구속자
요한이 묵시로 본
심판하는 어리신 양

모든 세대를 초월하여
인류에게 더할 나위없는
인간 구원의 희망
그리로 가는 이정표
우리가 농민신학을
여전히 고뇌하며
포기할 수 없는 이유
저 갈릴리 농사꾼에게서
드러난 하늘이 보이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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