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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람과 경외/미제레레,루오

조르주 루오(Georges-Henri Rouault), 미제레레(Miserere) 연작; 머릿말과 해설

by 농민만세 2016. 5. 6.

 

조르주 루오 / Georges Henri Rouault (1871.5.27.~1958.2.13.)

 

종교화의 대가로 인정받는 조르주-앙리 루오의 작가 생애를 통틀어 최고의 작품으로 자주 언급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미제레레>다. 1927년 발표된 <미제레레>는 총 58매에 달하는 판화집이며 각 작품의 크기는 대부분 58×40cm(가로×)에 이른다. 또한 동판으로 제작되어 에칭과 애쿼틴트 작업으로 펴냈다.

<미제레레>는 첫 판화부터 33번까지는 ‘미제레레’를, 34번부터 58번까지는 ‘전쟁’을 주제로 한다. 예수로 시작하는 <미제레레>는 고통 받는 인간의 모습을 전쟁이라는 비극으로 보여주는데 종교화를 당시의 시대상에 곁들여 루오만의 예술성을 가미해 풀어낸 작품으로 평가된다.

즉 전쟁의 비참함을 겪는 인간의 모습과 예수의 자비로운 모습이 극명하게 대비되어 나타나고 있다. 각 작품의 제목은 대부분 루오의 자작시에서 따온 것이며, 나머지는 성화, 시구, 격언 등에서 뽑은 것이다. 화면의 작품은 <때로는 장님이 눈이 보이지 않는 자를 위로했다>는 제목을 가진 55번째 판화다.

<미제레레>에 대한 루오의 열정은 그가 이 판화집의 서문에 남긴 글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실제로 루오는 <미제레레>를 위해 1912년부터 많은 양의 습작을 거쳤다고 알려져 있다. 게다가 제1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미제레레>에 전쟁 내용을 담게 되었다.

본격적인 작품 제작은 1922년부터이며 1927년까지 6년 동안 루오는 <미제레레>의 완성에 혼신의 힘을 쏟았다. <미제레레>는 1917년 루오와 계약을 맺은 화상 볼라르와의 인연으로 제작된 것이다. 이 판화집 외에도 루오는 볼라르와 모든 미완성작에 대한 계약을 맺었는데, 루오는 훗날 이 계약으로 1939년 볼라르가 사망한 후 자신의 작품을 반환받기 위해 송사에 휘말리면서 많은 고통을 겪었다.

이는 <미제레레>가 볼라르가 사망하고 10년이 지나서야 처음 출간된 이유와 무관하지 않다. [네이버 지식백과] 미제레레 [Miserere] - 조르주-앙리 루오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지엔씨미디어) <조르주 루오의 머리말> 나는 이 작품을 스승이신 귀스타프 모로(Gustave Moreau) 선생과 나의 용감하고 사랑하는 어머니께 바친다.

어머니는 예술의 젊은 길손으로 갈림길을 빈손으로 헤매던 나의 첫 노력을 돕느라 밤을 새우곤 했다. 두 분은 서로 달랐으나 이제는 우리 삶의 몫을 이루는 비통과 수모의 이 시대와는 달리 한결같은 미소 띤 어지심으로 용기를 주었다. 주제의 대부분은 1914-1918년에서 발단했다. 본래는 먹으로 그린 소묘의 형태로 처리되었던 것을 나중에 앙브루아스 볼라르의 요청에 의해 회화로 발전시켰다.

그는 우선 모든 주제를 동판에 옮기게 하였다. 그런데 무엇보다 내 필적을 동판에 남겨야 옳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으면서 당초의 율동과 그림을 살리느라고 무진 애썼다. 동판에 따라 잘 될 경우도 잘 안될 경우도 있었는데, 여러 가지 연장을 써가면서 끊임없이 작업을 거듭했다.

거기에는 아무런 비결도 없다. 만족을 얻지 못하는 나는 같은 주제를 무제한 다루면서 열두 번 내지 열다섯 번까지도 다시 해보곤 하였다. 모두 같은 수준이 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이 일에 내가 애착했던 것은 사실이다. 어느 미국 대사가 동판 중 몇을 금판에 옮겨 대사관 벽에 붙였으면 하는 요구에 무심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나 자신이 정성껏 감독한 인쇄가 1927년에 드디어 끝나자 앙브루아스 볼라르는 원판을 그어버리도록 하였다. 여러 사정으로 20년을 끈 작품 발간을 고대했던 끝에, 다행히도 1947년에 판화들을 되찾아 에투알 필랑트 사에 발행을 위탁할 수 있었다. 본래는 앙드레 쒸아레스가 그림에 글을 짓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는 그 일을 못하고 말았다.

앙브루아스의 죽음 - 전쟁 - 점령과 그 후환, 그리고 나 자신의 재판 등이 무기한 지연의 원인이 되었다. 본성으로는 낙관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나였건만 때로는 어두운 시간들을 겪었으며 벌써 언제부터 완성되어 있었고 나 자신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던 이 작품의 출판을 못보고 말리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제나마 이 세상에서 사라지기 전에 목적에 도달했음을 기쁘게 생각한다. 앙브루아스 볼라르에 대해 내가 공평치 못했다면, 아무튼 속도 기록과는 멀 망정 아름다운 책들을 만드는 취미도 있고 열정도 띤 그였으나 역시 우리네 세상의 한계를 돌보지 않고 그가 길손에게 맡기려던 허다한 작품과 그림을 모두 마치려면 삼백 년은 걸렸을 것이라고 해두자.

 

형상, 색채, 조화 -
눈, 마음, 정신에게는
오아시스 아니면 신기루

어둑한 수평선에 사라지기 전
그림의 부름인 울렁이는 바다 보고
'내일은 날이 좋겠지' 하고 난파자는 되뇌었다.

그림자와 가면으로
괴로워진 이 세상에
평화가 깃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무명이거나 혹은 축성된
순교자나 성인들만큼이나
잔 다르크는 자신의 재판에서 간결하고 고결한 답변으로,
"십자가의 예수는 나보다 당신들에게 더 잘 말해 줄 것이다!"


1948년 파리에서

조르주 루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