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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나눔

설악산의 작은 거인

by 농민만세 2020. 3. 11.

 

퍼온 글

 

임기종씨는 40년이 넘도록 설악산에서 지게질만 한 지게꾼이다. 키가 160cm도 되지 않고, 몸무게는 60kg도 나가지 않고, 머리숱은 듬성듬성하고, 이빨은 거의 빠지거나 삭아서 발음까지 어눌한 사람이다. 그는 열여섯 살 때 처음으로 지게질을 시작한 이후, 40년간 오직 설악산에서 짐을 져 나르고 있다. 그리고 그는 삯을 받아서 정신지체 2급의 아내와, 그 아내보다 더 심각한 정신장애를 가진 아들을 부양하고 사는 산 사나이다.

 

맨 몸으로 걸어도 힘든 산길을 40kg이 넘는 짐을 지고 날마다 산을 오르내린다. 하루에 적게는 4번, 많게는 12번이나 설악산을 오른다. 설악산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상인들과, 사찰에 필요한 생필품을 져다주고 그가 받는 삯이 한 달에 150만원 남짓이라고 했다. 한 달에 150만 원이야 누구에게는 이 돈이 별것 아닌 돈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충분한 돈이라고 했다. 아내가 장애인이라 정부로부터 생활보조비를 받기 때문에 부족한 가운데서도 생활이 가능하고, 술 담배를 안 하고 허튼 곳에 돈을 쓰지 않으니 먹고 사는데 불편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한낱 지게꾼에 불과한 그를 많은 사람들이 왜 작은 거인이라고 칭송할까? 그 까닭은 그가 그렇게 힘들게 일해서 번 돈을 자신과 가족을 위해 사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기 때문인 것이다. 그는 십년이 넘도록 장애인 학교와 장애인 요양시설에 생필품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독거노인들을 보살피고, 더 어려운 이들을 위해 자신이 번 돈 모두를 사용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임기종씨가 그렇게 사용한 돈이 수천 만 원이 넘는다고 했다. 작은 거인의 말을 들어보자.

 

“힘들게 일을 하지만 적어도 땀 흘려서 번 이 돈 만큼은 내 자신을 위해 사용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날마다 산을 오른다. 자신이 지게를 짊어지지 않으면 휴게소 상인들이 장사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가스통을 4개나 짊어지고 산을 오르기도 하고, 어떤 날은 100 kg이 넘는 대형 냉장고를 통째로 짊어지고 산을 오르기도 한다.

 

“처음에는 지게를 지는 요령을 몰라 작대기를 짚고 일어서다가 넘어지기 일쑤였습니다. 너무 힘들어 몇 번이나 그만 둘 생각도 했죠. 하지만 배운 게 없고 다른 재주가 없으니 육체일 밖에 할 것이 없었어요. 그때는 내 몸뚱이 하나 살아내는 것도 쉽지 않았거든요."

 

그는 열 살이 갓 넘었을 때 부모님이 연이어 세상을 떠나셨다. 원체 가난한 집안이었기에 남겨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는 6남매의 셋째였다. 그렇게 남겨진 6남매는 제각기 자기 입을 해결해야 했다. 초등학교 5학년도 못 마친 그는 남의 집 머슴살이부터 시작했다. 그러다가 돌고 돌아 설악산 지게꾼이 되었다. 그렇게 젊은 시절을 보내고 있을 때, 지게꾼 선배로부터 정신지체 2급에다 걸음걸이도 불편한 여성을 소개받았다. 그 선배는 이런 여자는 자네와 살림을 살아도 결코 도망가지 않을 것이라며 그에게 소개를 했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그의 아내는 일곱 살 정도의 지능을 갖고 있다.

 

“이런 여자를 소개해준 것은 내가 별 볼일 없어서 그랬겠지만, 어쨌든 그녀를 처음 보는 순간에 어찌나 애처로웠던지요. 저런 몸이니 그동안 주위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구박을 받았을까 싶어서 따지지 않고 내가 돌봐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와 정상적인 대화가 되지 않으니 많이 답답하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자신의 팔자로 받아들였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돌보지 않으면 그의 아내는 도저히 살 수 없다고 생각하니 자신이 끝까지 그녀를 돌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이들 부부 사이에 아들이 태어났다. 하지만 아들은 말을 못했고 아내보다 더 심각한 정신장애 증세를 보였다. 아내가 정신장애를 겪고 있으니 그 아이의 뒤치다꺼리를 하려면, 자신이 일을 그만둬야 했는데 그럴 형편이 못 되었다.

 

결국 아이를 강릉에 있는 어느 시설에 맡겼다고 한다. 그렇게 아이를 데려다 주고 떠나오는데 그는 ‘나만 편하려고 그랬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그래서 용달차에 과자 20만 원어치를 싣고서 다시 발길을 돌려 시설로 되돌아갔다. 그 과자를 먹으며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니 자신이 훨씬 더 기뻤다. 그때 처음으로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 그 사람만 기쁜 것이 아니라 자신도 기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때부터 임기종씨는 지게일로 번 돈 모두를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그는40년 동안 설악산을 오르락 내리락 했다.

 

가진 것이 부족하다며 늘 더 가지려고 바둥거리며 사는 우리다. 남의 입에 있는 것도 뺏어 먹으려고 하는 세상이다.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 세태이다. 이고 지고 갈 것도 아니다. 우리는 너무 많이 먹고, 너무 많이 가지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