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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can't breathe!”
근본 원인은 빈곤이 인종차별 앞서
트럼프와 문재인, & 한•미 시민사회
미국 정치의 우민화가 부른 부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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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미니애폴리스의 흑인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46) 사망 사건으로 시위가 확산되면서 미 전역이 들끓고 있다. 인종차별에 대한 분노가 거세게 일면서 폭력을 동반, ‘제2의 LA 폭동’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주류 언론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지구촌이 그렇듯이 COVID-19와 더불어 미국이 대변혁기를 맞이할 수 있다고 진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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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각국도생’이 일반화되고, 지구촌은 힘의 지배에서 의료시스템으로 전환, 평화와 협력, 상생이 키워드가 되면서 세계질서 재편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이다. COVID-19로 이런 인식은 이미 상식이 되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미국이 조심스레 ‘변화’를 받아들이려는 모양새다. 그 저변에는 미국 정치 시스템의 붕괴, 즉 트럼프라는 변종과 그의 딸 이방카, 사위 재러드 쿠슈너가 지배하는 ‘패밀리 정치’의 파행이 도사리고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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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can't breathe!”(숨을 쉴 수 없다).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의 무릎에 목이 눌려 죽어가면서 한 말이다. 단순하게 '살려달라'는 데서 끝나지 않고, 복합적인 의미로 읽어야 작금의 폭동을 치유할 수 있을 게다. 그런데 폭동의 원인을 인종차별로만 본다면 지금껏 그래 왔던 것처럼 근본적인 치유는 있을 수 없다. 또다시 제2, 제3의 조지 플로이드가 나올 수밖에 없고, 폭동은 계속될 것이다. 문제의 근본 원인은 인종차별에 앞선 경제적 갈등과 심화된 빈부 차이, 즉 자본주의의 폐해다. 조지 플로이드 역시 그런 범주의 경제적인 문제로 $20짜리 위조지폐가 화근이었다. 대부분의 흑인들이 이런 삶의 형태를 오랫동안 유지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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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들이 이렇게 가난한 삶을 이어오는 것은 일차적으로 그들의 문제지만, 확장하면 미국이라는 국가 제도상의 문제다. 인디언 말살정책을 위해 알코올 중독자로 전락시켰듯이 흑인들에게도 역시 술과 마약, 그리고 푼돈을 던져줌으로써 미래의 싹을 잘라버린 것이다. 결국 우민화다. 그런 범주에서 보수적 성향을 지닌 가난하고 교육 수준이 낮은 백인 농부, 노동자인 레드넥(Redneck)들 역시 마찬가지다. 조지 플로이드를 살해한 ‘트럼피’(트럼프 추종자)인 데릭 쇼빈 역시 그런 유형의 백인이자, 경찰관인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경찰의 경우 대부분 교육 수준이 낮고 우편향적이어서 지나치게 공권력을 행사하는 습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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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죽어가는 것은 우민화와 시민사회의 몰락 때문이다. 미국은 한국에서 배워야 한다. 특별히 흑인 커뮤니티는 백인들로부터 차별을 벗고 스스로 서기 위해서라도 우민화를 떨쳐내야 한다. 관행처럼 굳어진 폭력을 동반한 폭동의 패턴은 누구에게도 어필할 수 없다. 오히려 ‘흑인=폭도’로 귀결돼 자식 세대에까지 멍에를 씌울 뿐이다. 한국의 시민사회를 보라. 공수부대를 투입해 무자비하게 시민을 살육 한 광주 민주화 운동 시, 무법천지임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의 점포가 털린 적이 없고 방화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불의한 대통령을 탄핵하고 검찰에 저항할 때도 수백, 수천만의 군중이 평화적인 방법으로 투쟁한다. 그리고 세계가 찬탄해 마지않는 투명한 민주주의를 세웠다. 인류사의 롤 모델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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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개개인이 깨어나지 않는 변화란 없다. 흑인사회가 미국에서 400년이 넘는 무명을 벗지 못하는 이유다. 1619년 최초로 미국에 발을 딛게 된 이후로 그 긴 시간 동안 여전히 차별을 벗지 못한다면, 국가 제도나 정책에 앞서 스스로의 문제를 성찰하고, 연대해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지금 흑인사회에 인권운동가였던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 같은 지도자와 정신이 없다. 왜 그런가? 스스로 묻고 답해야 한다. 그래야 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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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민들이 돈 몇 푼에 ‘자유민주주의와 인권, 타 문화에 대한 개방성, 남녀평등, 가치의 존중과 인간애’라는 미국의 정신을 던져버리고 트럼프 같은 자를 대통령으로 지지하고 뽑아준 것 역시 우민이라는 증거다. 작금의 폭동은 결국 미국 시민사회의 몰락이 부른 참화다. 그런 면에서 지구촌이 한국 시민사회와 민주주의를 크게 평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재인과 트럼프를 비교해서 보듯 지도자가 얼마나 국가에 큰 영향을 미치는지 미국 시민사회는 똑똑히 알아야 한다. 정치인이 주권자인 국민을 섬기기보다 권력을 탐하고 사유화할 때 어떤 비극을 초래하는지, 지금 미국의 폭동사태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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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의 작은 나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조용한 아침의 나라’로 불리던 대한민국이 어떻게 세계가 주목하는 나라가 됐을까? 한 때 식민지배를 받던 나라가 구매력 평가지수(PPP/Purchasing-Power Parity) 기준 1인당 GDP에서 지배자였던 일본을 앞서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지구촌 핵으로 등장한 것은 깨어난 시민사회와 국민을 목숨처럼 받드는 겸손한 대통령과의 랑데부 때문일 것이다. 시민사회가 온전히 깨어 일어서야 진정한 선진국이자 민주주의다. 미국은 바로 한국의 이런 시민사회를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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