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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세] 아파트, 부동산의 획득, 사회계층간의 문제

by 농자천하/ 2021. 1. 10.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10158560535436014&id=519211013

/John Hyun Kim

아주 오래전부터 한국의 여러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면 부동산에 몰려 있는 시중 자금이 증시로 대거 이동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대략 20년 가까이 그렇게 생각해 온 것 같다. 그러나 그길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부동산은 망국적 현상의 원흉이 아니다. 적절한 투자 대상을 만들어내지 못한 한국사회가 찾아낸 고품질 상품이다. 가령 부동산 시장을 견인하는 아파트는 그 어떤 제품들 보다 경쟁력이 월등히 좋은 제품이다.

처음 한국에 등장한 이래로 아파트는 수십년간 수천만명이 참여한 시장의 요구와 압력을 꾸준히 소화시킨 막강한 성능을 갖고 있다. 한국의 아파트에는 물리학, 건축공학, 소재공학, 철학, IT 공학, 사회학, 심리학, 교육, 지정학, 미학, 정치, 도시관리 등 지금까지 인류가 중요하게 생각해 온 거의 모든 분야들이 집결해 있다. 이 정도로 막대한 시장의 요구를 100퍼센트 구현하는 제품을 생산하는 산업군은 거의 없다. 식품으로 치자면 완전식품이라는 우유나 달걀에 비교할 만한 완전제품이다.

이는 아파트뿐 아니라 그 밖의 다양한 신축 건축물에도 적용된다. 앞으로 기술은 계속 발전할 것이고 특별한 재앙이 닥치지 않는 한 수요자들의 욕망수준도 점차 올라갈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시장에서 요구하는 부동산 실물의 품질도 함께 높아질 것이다. 즉 부동산 신제품들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완벽해질 것이고 언제나 더 질 좋고 더 비싼 신제품이 계속 양산된다는 뜻이다. 이는 다시 구축 건물의 보완에도 압력으로 작용한다.

이런 제품군은 정말 흔치 않다. 건축물이라는 게 덩치가 크고 공사현장이 어수선해서 보통 체감하지 못하지만, 한국의 여러 건설사들이 내놓는 신축 아파트들이나 주택단지 등에 들어가는 다양한 버전 업그레이드 양상을 애플의 아이폰 신제품 발표회로 바꿔 상상해 보면 실로 엄청난 기세다. 부동산 제품의 혁신과정은 반도체, 컴퓨팅, 통신, 자동차 등 첨단 기술제품에서나 보는 모습이다. 새우깡은 업계 최강자 자리를 수십년 유지했지만 매운 맛 하나 추가하는 것도 그만큼 오래 걸렸다.

그러나 부동산은 제품의 취득기간 동안 자본을 묶어 두고 특별한 생산을 하지 못하면서 시중 자금의 순환을 방해한다. 기업의 생산성 주변에서 돌아야 할 돈이 땅에 박힌 채 흐르지 않으면 기업환경이 경색되어간다. 일반 근로자나 자영업자의 삶도 점차 활기를 잃어간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돈에 목마르게 되어 아파트에 더 몰입할 수밖에 없는데, 이미 부동산에게 밀린 기업활동에 투자를 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개인과 사회는 부동산에서 헤어나올 수 없게 된다.

개인이 이 악순환의 고리를 벗어나는 방법 중 지금까지 그나마 검증되고 안전한 길은, 고학력 고학벌을 획득하여 높은 소득수준을 고정시켜서 다시 부동산 투자금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뿐이다.

그런데 자녀의 교육에는 기본 20년 이상 비용이 투입되어야 하므로, 부모세대는 더 이른 시기에 더 빠르게 부동산 소득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때문에 초기에 부동산 획득을 위한 투자비용과 자녀의 교육 투자 비용은 서로 맞물려 돌아가게 된다. 이 과정이 가계에 이중고로 작용한다. 당연히 이 지점의 경제적 문제는 사회적 관계의 문제로 비화된다. 한국사회가 맞닥뜨리는 거의 대부분의 사회문제들 - 가족해체, 갑질, 폭력, 교육, 차별 등 - 은 여기에 강하게 영향을 받는다.

어쨌든 이렇게 키운 자녀가 소득활동을 하게 된 뒤부터는 최소 2대에 걸친 "1) 부동산 투자 - 2) 회수 - 3) 교육 투자 - 4) 회수"가 다시 1')부동산 투자로 이어질 수 있다. '부동산 4행정'의 동력기관이 완성되는 것이다. 이제 상당한 자본과 지적 역량을 갖춘 계층의 출현도 완성되면서 이들이 내보내는 목소리의 사회적 압력은 다른 이들보다 영향력이 커진다.

즉 부동산의 획득은 소득의 격차, 삶의 격차 뿐 아니라 지식의 격차에서 나아가 정치력의 격차로 이어진다. 그게 다시 계층간 사회문제로까지 비화된다.

이런 상황에선 아파트를 아무리 많이 만들어 공급해도 문제개선에 크게 소용이 없다. 어차피 욕망의 4행정 기관은 꾸준히 잘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규모만 달라질 뿐 상대적 약자는 끊임없이 계속 양산될 것이기 때문이다. 즉 문제를 개선하려면 사회 체질을 개선해야 하는데 공급은 본질적으로 체질개선과 연관이 없는 것이다.

단순히 집을 소유하지 못했을 뿐인데 가계의 이중고에 정치적 삼중고를 견뎌내느라 동력을 잃어가던 이들의 사회적 안전/행복 격차는 더욱 벌어질 뿐이다.

공급이 늘어봤자 그저 부동산 산업을 키워주고 현재의 양상이 볼륨을 더 키울 뿐이다. 풍선에 점을 몇개 찍은 후 바람을 불어넣어 풍선이 커지면 그 점들의 간격만 벌어지는 것과 같다. 내집 마련이 어려운 이들은 계속해서 더 어려울 뿐 특별히 나아질 건 없다. 공급 정책의 동시 실행은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급이 마법의 열쇠는 아니라는 뜻이다.

부동산을 잡겠다고 부동산에 몰입하면 해결이 되지 않는다. 한국의 부동산 문제는 정확히는 부동산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건강한 투자처의 발굴에 관한 문제다. 시중에 수익을 내줄 거라는 기대를 받을 만한 곳이 많지 않아서 사회적으로 돈이 안 돈다는 데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 자본 투자가 분산되어야 하는데 분산되지를 않고 있는 게 원인이다. 여기에서 다양한 사회적 문제도 양산된다.

애석하게도 특별한 첨단 기술을 보유한 소수의 기업을 제외한 보통의 기업들이 일반적인 시장경쟁 방식으로 아파트와 경쟁할 수 있는 제품을 생산할 여력은 거의 없다. (앞서 쓴 대로 아파트는 그야말로 가공할 위력의 완전제품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강한 경쟁력을 가진 제품을 생산하는 부동산 산업에 몰린 투자 축이 주식시장으로 옮겨가는 걸 가능케 하냐는 것이 오랜 관심사였다. 부동산과 증시의 길항적인 관계를 해결하는 게 우리사회에 정말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 왔다.

이는 어떤 면에선 기업활동에 대한 기대나 희망 등의 '믿음'에 관한 문제다. 즉 한국에서의 기업활동은 부동산 보다 믿음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투자 비용 대비 기대수익이 그만큼 되지 못한다는 불신의 언저리엔, 사회적으로 자본가나 기업인들이 불신받는 것과 뿌리가 같은 인식이 있다.

우리사회에서의 기업경영에는 기술력이나 상업적 능력 외의 보다 중요한 것들이 관여한다고 믿는 것이다. 음지의 질서에 대한 믿음이 양지의 질서에 대한 믿음을 훨씬 압도한다.

즉 주식에 투자하는 게 이익이 된다는 기초적인 믿음을 가지려면, 제대로 된 경영이 그에 걸맞는 성과를 창출한다는 사회적 신뢰가 축적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기업의 경제활동에 불공정과 불평등이 방해를 하지 말아야 한다. 법제도의 공정한 실행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게 없이는 복불복이나 다름없는 기업활동에 베팅하느니 부동산이 훨씬 나은 대안이다.

따라서 검찰개혁이나 사법개혁처럼 사회가 개혁의제로 삼은 것들은 우리 일상과 먼 뜬금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와 사교육비 걱정 없는 나라와 돈 많이 벌 수 있는 나라와 내 집 마련이 쉬운 나라와 저녁이 있는 삶 등의 복합적 목표를 구현하기 위한 기초적인 사전정지 작업을 뜻한다. 돈과 권력이 부당한 힘을 쓰지 못하도록 하는 사회 개혁은 단순히 정의감 때문에 필요한 게 아니라, 실제로 모두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필요하다.

때문에 정부의 부동산 억제 정책이 오히려 시세를 올리고 서민들에게도 불안을 가중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억제 정책과 증시 활성화 정책 그리고 개혁추진이라는 세가지를 동시에 목표로 삼는 장면에서 크게 반겼더랬다. 정확히 내가 바라던 상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각각의 실제 진행이 만점짜리였냐고 하면 그건 당연히 아니다.)

그런 한편으로는 늘 두가지 의구심이 있었다. 첫째로는 과연 한국의 기업들이 질적으로 남다른 부동산 제품들을 이길 수 있을지였다. 다른 하나는 개혁정책이 이제 겨우 시작인데 기업경영에 대한 민간의 인식을 바꾸는 데에 시간이 꽤 걸릴 거라는 우려였다. 뭐부터 먼저 할 수 없는 게 정부정책이니 동시에 시도해야 하지만, 생각만큼 안될 줄 알았다.

그랬는데, 이게 이런 식으로 될 줄은 몰랐다. 국가가 인위적 정책으로 부동산을 억제시키고 세계적인 판데믹 유행으로 유동성 자금이 늘면서 일반 서민들의 자금이 자연스럽게 증시로 몰리고 있다. 주가가 3000을 넘겼다. 지금과 같은 상황을 상상해왔지만 다소 예상밖이다. 경제 환경의 변화라는 요소는 있지만 이게 사람의 의지로 밀어붙인다고 해서 되긴 되는 거였다니.

물론 현재의 주식열풍을 아주 건강하게 보진 않는다. 묻지마 투기의 성격으로 위험해질 수 있는 과열조짐이 있다. 기술력이라든가 경영실적이 좋은 우량주나 미래가치가 있는 기업들이 약진하고 있다지만, 어쨌든 상황을 보면 부동산 제품을 압도할만큼 사회적으로 공인받은 기업결과물들이 투자에 영향을 끼친 건 아니기 때문이다. 강남 개발된다니까 부동산 사고, 재개발이 돈 된다니까 몰려들고, 비트코인이 대박 친다니까 그래픽 카드 사던 모습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시 말해 증시가 부동산 시장을 실력으로 이긴 게 아니라 정부정책의 인위적인 도움에 수혜를 입은 형국이다. 부동산 제품의 품질과 증시의 우량제품 사이의 사회적 지배력 차이. 딱 이 차이만큼을 나는 거품으로 본다.

그렇잖아도 원래 이런 식의 인위적 접근을 부질없다고 생각했다. 정책이 바뀌면 언제든 원상태로 돌아갈 것이고, 사회의 체질개선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시장의 자연스러운 경쟁을 통해 각 행위자들이 개선되어 가야 전체적인 판의 성질도 따라서 바뀐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왔었다. 그런데 지금 모습을 보면서 약간 생각이 바뀌었다.

일단 인위적으로 밀어붙이는 것도 방법 중 하나일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결국은 경험이 중요하다. 이득을 보는 경험이 있어야, 그렇게 돌려본 경험이 있어야 새로운 4행정 기관을 상상할 수 있다. 그래야 그 상상을 믿어볼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지금 증시를 조금 더 길게 잘 관리해서 부동산만이 돈을 벌게 해준다는 생각이 약간이라도 누그러진다면, 그래서 기업들이 보다 활발하고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는 토대가 자꾸 갖춰져 나간다면, 아마 우리 사회의 모습이 조금은 더 나아질 것 같다.

물론 나는 주식을 하지 않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