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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배움

위기의 민주주의 : 룰라에서 탄핵까지

by 농자천하/ 2021. 4. 2.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3927712960628683&id=100001700520383

/ 강소연


되찾아야 하는 봄

연일 비가 내리고 꽃이 진다. 서울과 부산에서는 봄이 왔으나 봄이 아니라고 아우성이다. 봄은 아직 오지 않은 것일까? 봄의 의미를 노래한 많은 문학작품을 두고 넷플릭스 다큐 에서 브라질의 룰라가 구속을 앞두고 인민들을 향해 전하던 봄 얘기를 반추한다. "권력자들은 하나, 둘, 백개의 장미를 죽일 수 있어도 봄이 오는 것은 절대 막지 못할 것이며 우리의 투쟁은 봄을 찾고 있습니다"

브라질의 룰라 전 대통령은 모든 면에서 경이로운 역사의 산증인이다. 낡고 오랜 과두제 하에서 금속노동자 출신이 61%로 당선됐다. 재임 후 후계자인 지우마를 브라질 최초의 여성대통령으로 만들고 퇴임 시 지지율이 87%에 이를 정도로 인민들의 굳건한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민심은 조석변, 룰라와 노동자당에 반대하는 폭동까지 일어났다. 사법쿠데타로 거론될 정도로 언론을 쥐고 단기간에 브라질 반부패 영웅으로 떠 오른 세르지우 모루 검사이자 연방법원 판사에 의해 증거는 없고 추정만 있던 재판 때문이다. 모루 검사는 언론을 통해 의혹을 흘렸고 언론은 그의 이야기를 의심 없이 받아썼다. 우익단체들은 SNS를 통해 움직이면서 대중들의 반부패 정서를 건드린 것이다.

지난 2019년 광화문광장에서 태극기부대가 외치던 구호는 “조국 구속, 문재인 하야”였던 것처럼 룰라를 지지하던 뜨거운 인민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룰라 전 대통령으로 분장하고 감옥 퍼포먼스를 펼치는 사람들의 행태가 부각됐다. “언론도 시위를 세세하게 보도하면서 그들의 공격적인 행태를 정상으로 보이게 하는 역할을 했습니다.”라는 나레이션처럼.

다큐는 “21년간의 독재 끝에 민주정부를 세워 많은 귀감이 되었으나 브라질의 민주주의는 짧게 끝난 꿈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두렵다.”는 나레이션으로 시작된다. 다큐 감독이자 나레이터인 1984년생 아나 페트라는 자신이 열아홉이던 때 룰라의 당선과 함께 룰라를 끌어 내리려 하던 자들의 공포와 불신을 기억한다고 했다. 브라질의 민주주의는 망각에 기초했다고 했다. 지우마의 탄핵으로 대통령 관저를 청소하던 청소부는 “물 한 양동이로 모든 걸 지울 수 있다면 쉽겠죠.”라고 했다. 지우마는 “우리의 실수는 우익 패권주의가 늘어나는 것을 감지하지 못한 거예요.”라고 했다. 룰라는 ““제일 후회되는 건 내가 대통령이었을 때 새로운 언론 규제를 하원에 발의하지 못한 거죠. 9개 가문이 브라질 전체 언론을 경영하잖아요. 우리에겐 수백 년간 쌓인 편견이 있어요. 플랜테이션 농장주들이 수백 년간 지배해 왔죠. 그 모든 걸 바꾸려면 정말 어려워요.”라고 했다. 나레이션은 룰라는 구속 중이라면서 “과거만큼 절망적으로 보이는 미래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면 이 고통을 어떻게 해야 하냐고, 가면이 벗겨지고 우리 자신의 불쾌한 모습이 드러나면 어떻게 하죠?”라는 의문문으로 끝을 맺는다.

룰라는 580일간의 구속을 지나 2019년 11월 석방됐다. 며칠 전 브라질 연방대법원은 3대 2의 의견으로 모루 판사의 재판이 편파적이었다고 판결했다. 룰라의 정계복귀와 내년 대선 출마 가능성 앞에 돋는 기시감, 데자뷰는 잊고 지냈던 과거이거나 도래할 미래이기도 하다. 브라질을 넘어 지금 우리에게도 여전한 민주세력에 대한 공포와 불신, 언론과 우익의 광기, 청소하듯 모든 걸 지울 수 없는 적폐. 민주세력의 안이한 인식...

그동안 봄은 질척일 뿐, 일희일비하는 눈과 귀가 봄이 오는 소리를 막고 봄의 행로를 가릴 뿐이라고 여겼는데, 봄은 되찾아야 하는 것이라고 룰라는 일깨운다. “항상 잘 안됐고 힘들지만 보상은 더 크다고, 우리가 민주주의의 가치가 무엇인지 배우기 때문”이라는 룰라의 목소리를 기억하는 아직 오지 않은 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