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갈릴리 칼럼]

[한마음 칼럼] 나는 왜 농목으로 사는가? 091

by 농자천하/ 2021. 6. 19.

 

한마음 칼럼 : “농목으로 사는 이유”

그 집사님은 개인 일로 필리핀을 여러 번 방문했다가 그곳에서 ‘코피노’들의 딱한 처지를 알게 되었고, 자신의 퇴직금으로 그 아이들을 한국에 데려와서 가르치고 양육하는 ‘기독교 학사’를 세우겠다는 소명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우리가 사회적기업 육성사업 멘토링 프로그램에 임할 때, 집사님의 이런 신앙적 간증이 관계자들에게 큰 감동을 주기도 했다. 그런 비전이 있었기에 우리가 남면 몽산포의 천혜의 자연환경을 활용하여 ‘종합 자연-사회 체험장’을 조금씩이나마 이루어가려는 계획을 알고, 크게 고무되어 함께 하기로 했었던 것이었다.

‘코피노’란, 사업 또는 영어 연수 등으로 필리핀에 장기 체류하는 일부 한국 남성들에 의해 필리핀 현지의 여성 사이에 태어난 혼혈아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아이들은 한국인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매우 열악한 환경에 방치된 경우가 많아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미국 윌 스트리트 저널’은 2014년, 필리핀 내에 코피노 수가 무려 3만 명에 이른다고 추정했다. 한편 이에 앞서 일본인 남성과 필리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나 버려졌던 ‘자피노’도 매우 심각한 사회적 문제였다.

하지만 그해 여름, 우리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집사님은 동료 환우들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무리한 여름 휴가를 떠났고, 너무나 황당한 사고로 그대로 돌아오시지 못하고 말았다. 그해 남은 여름 내내, 우리는 어쩌면 그 유가족들보다도 더 그 사건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았다.

설상가상이라던가. 830평의 밭을 나에게 임대해 준 밭 주인은 임대차 계약 기간을 10년으로 늘려 준다고 말을 했지만, 여름 내내 연락이 쉽게 되지 않았다. 간신히 통화가 되면 추석에 시골에 내려가서 계약서를 써 주겠다는 말만 반복했다. 모든 국가 지원금이 투입되는 농촌 사업들에는 자가 소유 토지가 아닌 경우 당연하게도 최소 7년~10년의 임대차 계약 기간을 요구한다. 적잖은 예산의 시설물들이 들어서기 때문이다. 그 일이 작게나마 시작되어 오늘까지 왔다면 우리 지역의 출향 인사들과의 교류와 협력이 활발하게 되었을 것이고, 어떤 자체 자원도 거의 없는 우리 교회도 상당한 돌파구가 열렸을 것이니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가 버리고 떠난 우리 고향을 위해 관련도 없는 목사님이 이렇게 좋은 일 하느라 애쓰시니 참 고맙고 좋은 일입니다.”라고 진심 어린 말을 했던 그분을 탓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임차인이 비닐하우스 하나라도 지으면 그에 대한 지상권이 생겨서 나중에 임대인 입장에 상당히 처리 곤란한 일이 생길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그럴 것이었다면 처음부터 ‘10년 임대차는 곤란하다’고 솔직하게 말해 줬더라면 1년 동안의 그 고생을 하지 않았을 텐데.

덕분에 엄청난 일을 배우고 경험하였으니 그나마 다행일까. 이런 숱한 실패의 경험들이 좋은 결실을 볼 날은 올까. 이제는 신념도 용기도 거의 바닥 수준인데,  /계속 (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