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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배움

[진영을 넘어서] '이재밍 현상'은 민주화 운동권의 자폭 현상, 《혁명의 해부》인용, 아이고~

by 농자천하/ 2022. 6. 29.

요즘 한국기독교연구소에서 지난 2000년 말에 출간한, 존 도미닉 크로산의 《역사적 예수 : 지중해 지역의 한 유대인 (소작)농부의 생애》 (The Historical Jesus: The life of a mediterranean jewish peapant)를 정독하며 공부하고 있다.

이 방대한 연구서는 크로산 - 조나단 리드의 공저인 《예수의 역사 : 고고학과 주석학의 통합》(Excavating Jesus: Beneath the stones, behind the texts), 리처드 호슬리의 《예수와 제국 : 하느님 나라와 신세계 무질서》(Jesus and Empire: The kingdom of God and new world disorder), 《제국의 그림자 속에서 : 신실한 저항의 역사로서 성서 새로 보기》 (In the Shadow of Empire: Reclaiming the bible as a history of faithful resistance), 등와 함께 '역사적 예수연구'의 총합판이라 할 수 있으니, 이 몇 권의 연구서들을 토대로 삼고 공부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위 책 《역사적 예수》 제2부(브로크 체제와의 싸움)의 작은 단락으로 C.E. 1세기 로마제국 치하에서의 유대인 반란/저항 또는 유대 전쟁의 정치 사회적 속성을 다루는 '혁명 내부의 또 다른 혁명'에서 상당히 재미있는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의 현대사에서 하나의 분명한 줄기를 형성하고 있는 소위 '민주화 운동'(이 책의 맥락으로는 '민주화 혁명')이 최근 이재명이라는 기막힌 반사회적 현상의 속성을 파악하도록 힌트를 주는 것으로 보여, 기록해 둔다. 아래 인용문 중 괄호 안의 흐린 글씨들은 내용 파악을 돕기 위해 임의로 달아 놓은 것이다.


「1938년 추간된 《혁명의 해부》에서 크레인 브린튼(Crane Brinton)은 영국혁명(1640), 미국혁명(1776), 프랑스혁명(1789), 러시아혁명(1917)에 관한 비교 연구를 내놓았다.

그는 책 첫 머리에서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혁명에 대한 완결된 사회학은 다른 종류의 혁명도 고려해야만 한다. 그것은 특히 다음 세 종류의 혁명 곧 독재주의자, 소수의 독재자들, 혹은 보수주의자들이 시작한: '우파'혁명, 영토적-민족적혁명, 그리고 실패한 혁명 등이다." 그리고 결론에서는 "(물론) 이 책에서 다룬 네 개의 혁명들은 단지 한 종류의 혁명으로서 이것을 모든 혁명들에 적용시킬 수 있는 일반론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중략

최근에는 이처럼 (브린튼 연구의) 상당한 약점에도 불구하고 쎄실 로쓰(Cecil Roth)와 테싸 라작(Tessa Rajak) 등 두 명의 성서학자는 브린튼의 유형론을 로마에 대항한 유대인 반란(저항)에 적용시켰다. 이들은 모두 '유대 전쟁'이 브린톤이 제시한 <혁명의 다섯 단계>를 따랐다고 주장한다.

첫 단계는 경제적 개혁으로 혁명보다는 개혁 단계로 일차적인 단계이다. 둘째 단계는 정치적 혁명으로 발전한 단계로서 특히 개혁이 성공하지 못하고 처음의 몇몇 군사적 행동들이 의외의 성공을 거둔 후에 발전하는 단계이다. 셋째 단계는 사회적 혁명의 단계로서 단순한 개선책이나 상층부의 재배치가 아니라 훨씬 더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단계이다. 정치적 혁명은 그 내부의 알력이 숙청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사회적 혁명 단계는 넷째 단계인 (반동들에 대한 숙정작업인) 공포정치로 특히 연결된다. 다음 마지막 단계에서는 이전 단계의 (혁명 내부의) 무정부 상태에 대한 반작용으로(두려움으로) 독재가 나타나는데, 그것은 그 혁명을 구출하기 위해 곧 정치적 혁명을 사회적 혁명으로부터 구출하기 위해, 절대권력이 한 개인에게 맡겨지는 단계이다.」


'민주화 혁명'의 패착, 하지만 그것은 일견 '민주화 혁명의 시민화'로 매우 바람직한 일이지만, 그것을 무정부 상태로 인식하며 자신들이 버려지고 있다는 두려움/초조함으로 그동안 소위 좌파 식자를 자처하던 이들이, 반 대중적인 이석기로는 안 되겠으니 한심하게도 반민주 부정부패 파쇼 이재밍이라는 자를, 한편에서 허접 추악한 이명박 허상을 만들어서 그랬듯 열광하지 않을 수 없는 일종의 극단적 메시아니즘의 자폭 현상. (아이고, 이제 좀 살겠네~ 쿨럭. 이 기이한 현상을 한 줄에 쓸 수 없어서 그동안 얼마나 답답했던지.)

지난 대선을 치르며 이재밍교도들이 보인 그 모양이 꼭 '수령님 신격화로 보일 정도'라는 이런 일반 인식을 직시하지 않으면 당연히 완전 폭망일테고, 그 반대 급부로 민주화 혁명 역사 지우기 내지는 아예 '파시즘'이 등장할 수 있다는 우려가... (박정희근혜교 파이팅이다. 믿음을 더 굳게 해라. 이러다 박정희 반인반신이 두환이까지 데리고 부활할 수도 있겠다. 그러니 운동권 망국론이 나온다 ㅜ,ㅜ)

이러니 언급하기도 쉽지 않은 5.18을 움켜잡고 지역토호 브로커/거간꾼 노릇에 맛들려 광주의 미래마저 온 몸으로 가로막고 있는 자들의 한심한 역할처럼, 저 이재밍 교도들로 인해 우리의 민주주의 역사가 통째로 날아가고 있는 중이다.

'왜 교회가, 목사님이 이런 세속 일(?)에 신경 써요?!?!'라는 옹알이를 하는 기독교인님들은 여기에 아예 들어오지 않을테지만, 노파심에 한 마디 미리 달아놓는다면, "젠장, 그럼 예수님은 왜 이 '세속 세상'에 오셨어요?!"라고. 에휴. 그냥 그렇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