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의 환상
사회학 고전 시리즈 3
/ 조르주 소렐
[책 소개]
한겨레신문 > 2020년 7월 4주 선정
진보의 희망과 환상을 기록한 역사서!
『진보의 환상』은 소렐이 의회사회주의와 결별하고 급진 사회주의로 변신하던 1908년에 쓴 책이다.
이 책은 진보의 기원부터 20세기 초 볼셰비키혁명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굴곡을 다룬 역사서이다. 이 굴곡진 역사는, 사건이나 사상의 전개를 통해 써 내려가기보다는 문학, 과학, 사상, 사건뿐 아니라 살롱문화, 정치꾼의 협잡 같은 온갖 것들을 통해 기술하고 있다.
이런 뜻에서 『진보의 환상』은 소렐 자신의 복합적인 사상체계와 사상편력사이자 진보에 대한 소렐의 열망을 드러내는 책이기도 하다.
한편 1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제2인터내셔널 내에서 계급투쟁과 민족전쟁을 둘러싼 논쟁 끝에 많은 사회주의자들이 민족전쟁에 가담한 시기가 있었다.
이 당시 혁명적 생디칼리즘과 민족주의의 결합을 추구한 소렐의 노력은, 불행하게도 대중동원 정치와 결부되어 파시즘의 사상적 기반이 되기도 했다.
[목차]
옮긴이 서문 / 6
서문 / 11
2판 서문 / 21
제1장 최초의 진보 이데올로기들
1 고대작가와 근대작가의 논쟁 / 종교와 문학의 좋은 모델 / 부알로에 반대하는 상류층 / 훌륭한 언어 기술자의 승리 … 29
2 17세기 말의 도덕 / 퐁트넬 철학 / 자연관의 정치적 기원 / 파스칼 대 피상적 합리주의 / 데카르트 사상과 상류층 … 42
3 인간 교육학 / 대중화 전도사 / 콩도르세의 대중교육은 귀족주의 모델에 기초한다: 교육의 결과와 그 환상 … 57
제2장 부르주아계급의 최종 승리
1 왕립 관료제 창설 / 관료계급의 성장 / 좋은 행정의 중요성 / 평정의 필요성 / 고등법원의 재정 장악 … 73
2 관료계급 이데올로기의 성격 / 이론가들의 엄청난 자유 / 실천영역의 3대 주요 측면 … 84
3 계약이론 / 루소 저작의 모호함 / 추상적 이론의 성공 이유 / 계약 개념의 기원과 로크의 체계 / 구성원들의 합의 / 일반의지 / 사회계약의 모순된 해석들 … 94
4 중농주의자들 / 행정 이념 / 중농주의의 재산 및 토대 이론 / 대혁명 후 중농주의 사법제도의 성공 … 105
5 문필가들 / 귀족계급이 부여한 문필가들의 영향력 / 귀족정치체제에서 문필가들의 진정한 역할 / 비판적 태도의 부재 … 115
제3장 18세기 과학
1 호기심 대상으로서 과학 / 백과전서 / 행정가의 필수 지식 / 거대한 희망을 고무하는 발견들 … 131
2 형이상학의 사회문제 적용 / 콩도르세의 환상 / 오류의 원인 / 허위 과학의 영속 가능성 … 145
제4장 대담한 제3신분
1 실천 문제에 대한 루소의 신중한 태도 / 튀르고의 대담성 / 이데올로그들에게 확신을 가져다준 미국혁명 … 159
2 자연으로의 복귀 / 계몽의 중요성 / 교육 영향력의 변화 … 167
3 야만인에 관한 문헌 / 교부 샤를르부아의 묘사들 / 현존 질서에 대한 무관심 … 177
4 경제 진보 / 새로운 행정 편견 / 물질적 진보와 혁명의 탄력성 … 183
제5장 진보 이론들
1 튀르고의 담론 / 보쉬에와의 불화: 부르주아적 편견 / 생활환경 속의 예기치 않은 진보의 발전 / 중세 시대의 물질적 진보 … 193
2 스탈 부인의 새로운 질서 옹호 / 새로운 문학 비평 원리 / 상이한 문명들의 융합 / 기독교 / 폭력 … 202
3 민족독립 전쟁 종식과 함께 탄생한 진화이론 / 법과 사법적 양심의 역사적 형성 / 진화와 진보의 대립 … 209
4 토크빌과 평등을 향한 필연적 행진 / 프루동과 마르크스의 반론 / 필연성 개념 폐기하는 프루동 ; 도덕적 진보 … 218
5 민주주의 문헌에 나타난 진보 개념 / 라콩브 이론: 그 순진한 환상; 민주주의가 보여주고자 한 것은 무엇인가 … 228
6 생산의 자연적 진보와 기술적 진보 / 기계 발달 / 현 시대의 이데올로기 … 236
제6장 위대함과 몰락
1 그리스 철학의 주기적 발전 / 명백한 퇴보의 법칙 / 원시공산주의와 사회주의강령의 중요성 … 245
2 법의 퇴보 / 형법제도 / 이혼 / 상행위 및 유동자본의 영향력 … 251
3 역사의 독특한 사건들 / 로마법의 근거 / 르네상스와 프랑스혁명 / 혁명에 관한 일반 견해들 … 258
4 천재와 범인(凡人) / 예술과 오락 / 교육기술과 정치기술의 쇠퇴 / 종교: 범인(凡人)의 근대적 역할/ 철학 … 265
5 민주주의에 관한 결론 … 277
제7장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
1 자본주의의 세 유형 / 고리대금업 / 상업 / 공업의 우위성 / 동시성이냐 연속성이냐 /마르크스의 헤겔주의 편향 … 283
2 제조업 / 곤충 역할로 전락한 노동자 / 마르크스의 자유로운 협업 / 직업교육 … 292
3 카우츠키의 자본주의 단계론 / 루시에의 트러스트 및 카르텔 개념 / 미국인의 고립 성향 / 트러스트의 환상 / 트러스트와 사회주의 … 298
4 마르크스의 예견이 적용되는 조건들 / 사회민주주의의 비효율성 / 프루동의 해체 개념 / 볼셰비키 이념의 영향과 사회주의 부활 … 307
찾아보기 …… 319
[출판사 서평]
『진보의 환상』의 사상적 배경
프랑스 철학자 조르주 외젠 소렐(Georges Eug?ne Sorel, 1847~1922)은 대개 혁명적 생디칼리슴 창안자 또는 아나키스트로 분류되곤 하지만 그의 사상체계는 어느 한두 가지 이념으로 위치 지울 수 있는 사상가가 아니다.
그가 창안한 혁명적 생디칼리슴은 사회주의, 반자본주의, 국가주의, 민족주의에다가 마르크스주의적 요소와 레닌주의 요소까지 아우르는 복잡한 사상체계이다.
실제로 소렐은 극좌적 무정부주의에서 극우적 파시즘에 이르는 양 극단의 사상체계를 오가는 그야말로 분류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사상체계를 소지한 인물이다.
소렐의 이러한 복합적인 사상체계는 단순히 그의 사상편력 때문도 아니고 상황에 따라 권력을 위해 여기저기 이동하는 세칭 정치철새 성향 때문도 아니다. 순간순간 급변하는 역사적 사건은 하나의 이념으로서는 해결할 수 없는 그의 고뇌에 찬 결단의 산물이다.
소렐의 복잡한 사상체계는 마르크스이론에다가 프루동, 베르그송, 니체 등 서로 상반되는 사상가들의 영향을 받은 탓이다. 심지어 그의 사상 편력은 극좌에서 극우에 이르는 광범한 스펙트럼으로 이어져 모호하다 못해 모순된 사상체계를 이루고 있어 양 극단에서 인정과 배척을 공유하는 카멜레온 사상가이자 실천가이다.
이러한 복합적인 사상체계와 사상편력은 그가 살던 시대와 맥락을 같이한다. 알다시피 프랑스는 혁명 전야부터 2차 대전 직후까지 격랑의 세월을 겪었다. 소렐은 그 격랑의 시대 정중간인 1847년에 태어나서 1922년에 생을 마감했다.
소렐이 태어나고 바로 다음 해 2월 혁명이 일어나 루이 필리프를 몰아내고 두 번째 공화정이 들어섰다. 그러나 불과 3년 만에 나폴레옹 3세 루이 보나파르트가 쿠데타로 공화국을 폐지하고 제2제국을 선포했다. 1870년 프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제국이 몰락하고 다음 해 민주정부인 제3공화국이 수립되었다.
제3공화국은 2차 대전 때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 독일에 의해 프랑스 점령되는 1940년까지 약 70년 동안 존속하였다. 70년 동안 존속한 제3공화국은 프랑스 혁명사에서 가장 안정된 민주정부로 평가받고 있지만, 그 시대는 노동운동과 사회주의운동이 가장 활발하던 시기이다.
과격한 급진주의부터 온건한 진보주의는 물론이고 그 반대편의 보수주의에다가 사상적으로는 낭만주의, 허무주의 등에 이르기까지 온갖 사상이 난무하고 각 사상 내에서도 방법론상의 이견이 충돌하던 시기이다. 바로 이런 시기를 시대배경으로 하고 있다.
[소렐의 생애]
몰락한 포도주 상인 집안에서 태어난 소렐은 파리 명문 공과대학 에콜 폴리테크니크(?cole Polytechnique)에서 수학했고 졸업 후에 토목기사로 일을 하다가 45세가 되던 1892년에 은퇴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소렐은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은퇴한 소렐은 문필가로서 생활을 하며 여러 사상가들과 접촉하기 시작했다. 그의 사상편력의 출발점인 것이다.
처음에 그는 당시 공화파가 장악하던 제3공화정의 지지자였다. 그러나 1891년 파나마운하 개발이권을 둘러싸고 정부가 거대 자본과 결탁하자 이에 공화주의에 실망하여 사회주의에 눈을 돌린다.
쥘 게드(Jules Guesde), 폴 라파르그(Paul Lafargue) 등 저명한 사회주의자들과 교류를 하며 사회주의 사상가로 발돋움한다. 특히 마르크스주의 혁명론을 지향하는 게드파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당대 프랑스 최고의 마르크스 사상가로서 입지를 굳혔다.
그러다가 독일 사민당의 한 분파인 베른슈타인(Ferdinand Bernstein)이 개량주의(reformism)를 주장하며 마르크스주의 내 수정주의가 등장하자 소렐은 정통 마르크스주의를 지향하는 게드파와 결별하고 개량주의적 사회주의를 옹호하는 장 조레스(Jean Jaur?s) 편으로 기울게 된다.
이를 두고 한편에서는 당시 프랑스 정계를 뒤흔든 드레퓌스 사건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드레퓌스의 무죄를 주장하는 친 드레퓌스파와 유죄를 주장하는 반드레퓌스 간의 뜨거운 논쟁이 벌어질 때 프랑스노동당의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인 반면 드레퓌스옹호에 앞장선 조레스의 행동에 감명을 받았다.
한편 이때 부르주아정부 내각에 사회주의자 밀랑(A. Millerand)이 입각하여 사회주의 진영에 파문을 일으켰을 때 소렐은 이를 적극 지지했다.
하지만 1902년 총선에서 친 드레퓌스파가 압승하여 급진 부르주아정부가 들어서서 부패와 권력다툼을 일삼자 소렐은 의회사회주의에 등을 돌리고 급진 좌파로 선회하게 된다.
소렐은 당시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를 표방하던 프랑스 노동총동맹(CGT: Confederation Generale du Travail)의 혁명적 생디칼리슴(syndicalisme)의 사상적 대변자로서 활동하였다. 이때가 소렐의 독특한 사상체계가 확립되었다.
소렐의 대표적인 저작 『진보의 환상』, 『폭력에 대한 성찰』 등이 출간된 것도 이 시기이다. 소렐을 혁명적 생디칼리슴, 아나키즘 사상가로 부르는 것도 이에 연유한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곧이어 소렐은 노동운동과 결별하고 우파, 그것도 극우로 돌아선다.
당시 1차 대전을 앞두고 제2인터내셔널 내에서 계급투쟁과 민족전쟁을 둘러싸고 논쟁을 벌이다가 전쟁이 발발하자 결국 많은 사회주의자들이 민족전쟁에 가담한 때와 같은 시기의 일이다.
그는 사회주의와 결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극우 왕정주의자들과 접촉을 하며 이를 옹호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혁명적 생디칼리슴과 민족주의의 결합>(?)을 추구한 소렐의 노력은 대중동원 정치와 결부되어 파시즘의 사상적 기반으로 작용했다.
실제로 프랑스 파시스트당의 창립자인 조르주 발루아(Georges Valois)는 소렐을 정신적 시조로 간주하고 이탈리아 무솔리니 역시 ‘파시즘의 가장 중요한 정신적인 아버지’라 불렀다.
소렐의 사상적 전향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전쟁이 보여준 참상은 소렐에게 극우 민족주의가 더 이상 대안이 될 수 없었다. 마침 전쟁이 한창이던 1917년에 일어난 러시아혁명은 소렐에게 무기력하고 파괴를 일삼는 사회에서 벗어나는 하나의 희망이었다.
30년에 걸친 긴 사상 여정을 겪고 다시 혁명적 생디칼리슴으로 되돌아왔다.
『진보의 환상』의 의의
『진보의 환상(Les Illusions du progr?s)』(1908)은 소렐이 급진파 부르주아 정부가 들어선 시기에 장 조레스가 이끄는 의회사회주의와 결별하고 급진 사회주의로 변신하던 시기에 나왔다. 이 시기에 무정부주의자로서 소렐의 사상체계를 함축하고 있는 저작들이 쏟아져 나왔다.
『진보의 환상』은 소렐이 30년간 사상 편력을 거친 이유를 보여주는 주요한 단서를 함축하고 있다. 『진보의 환상』이 나오던 시기에 소렐은 노동총동맹의 혁명적 생디칼리슴을 이어받아 총파업을 변혁의 도구로 보았다. 어찌 보면 마르크스보다 한발 더 나아간 것이다.
같은 해 『폭력론(R?flexions sur la violence: 1908)』(우리나라에서는 『폭력에 대한 성찰』로 번역되어 있다)이 출간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이 두 책이 나온 직후 소렐은 곧바로 파시즘에 이어 레닌주의로 이어지는 좌충우돌 행보를 한다. 이러한 사상 여정에서 공통점은 진보이다.
아나키즘, 생디칼리슴, 파시즘, 레닌주의로 이어지는 소렐 사상의 여정은 마르크스, 프루동, 베르그송, 니체의 사상을 혼합하여 하나씩 실험한 결과이다. 소렐은 진보의 방향을 두고 여러 가지 길을 택했지만 그때마다 만족하지 못한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진보의 환상』은 진보에 대한 소렐의 열망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소렐은 이 책에서 진보의 기원에서 시작하여 20세기 초 볼셰비키에 이르는 긴 역사의 굴곡을 다룬 역사책이기도 하다. 그러나 소렐은 사건이나 사상의 전개를 통해 진보를 보여주고자 한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문학, 과학, 사상, 사건뿐 아니라 살롱문화, 정치꾼의 협잡 같은 것들이 어우러져 있다.
이런 점에서 소렐의 복합적인 사상체계와 사상편력을 이해하지 않으면 쉽게 따라갈 수 없는 난해함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이를 정독하면 진보에 대한 단편적이고 협소한 인식을 넘어서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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