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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신학연구소

홀로코스트의 공모자들 - 나치 독일 교회들

by 농민만세 2024. 6. 12.

홀로코스트의 공모

나치 독일의 교회들과 대학들

/한국기독교연구소

Peter Hayes, Why? Explaining the Holocaust, 306-15.

(이번 주말에는 인쇄소에 넘길 수 있겠습니다. 역자주를 열몇 개 달았습니다.)

역자주:

전쟁이 끝난 후 나치의 전쟁 범죄자들 대다수는 처벌을 받았다. 유럽의 법정들에서 약 10만 명, 연합국 법정에서 8,812명, 미국 법정에서 1,030명, 소련 법정에서 26,000명과 지역의 부역자 11,000명, 서독 법정에서 6,479명, 동독 법정에서 12,861명이 재판을 받고 형을 선고받았다.

마트하우센 수용소의 독일 요원들 48명이 1947년 5월 말에 이틀 동안 다카우에서 처형되기도 했다. 그러나 악명높은 전쟁 범죄자들 가운데 요제프 멩겔레, 아돌프 아이히만 등 180여 명이 탈출 루트를 통해 스페인,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 해외로 탈출하도록 가장 크게 도운 것은 가톨릭교회였다.

나중에 교황 바오로 6세가 된 몬시뇨르 지오반니 몬티니는 그 학살자들에게 새로운 신분증과 여행 문서를 제공했고, 오스트리아인으로서 신학교 학장이었던 알로이스 후달 주교는 멩겔레, 아이히만, 에두아르드 로슈만(악명높은 리가 게토 사령관), 에리히 프리프케(이탈리아인 335명을 학살한 전범), 프란츠 슈탕글(유대인 20만 명 이상을 살해한 소비보르 수용소와 87만 명 이상을 학살한 트레블링카 수용소 소장), 구스타프 바그너(소비보르 수용소 부소장), 발터 라우프(가스 트럭 발명가) 등의 탈출을 도왔다.

로마의 크로아티아 사제 크루노슬라브 드라가노비치 역시 “리옹의 도살자” 클라우스 바르비(리옹의 친위대를 위한 고문, 프랑스 저항운동을 진압), 안테 파벨리치(나치 독일의 괴뢰 정권인 크로아티아 국가 원수로서 유고슬라비아에서 75만 명 이상을 학살한 주범) 등의 탈출을 도왔다.

전쟁 후에 “사목적 책임”을 강조한 교황 비오 12세와 대다수 독일 주교들은 전범 재판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법”은 “눈에는 눈이라는 모세의 법”과 대조된다는 주장이었다.

그리고 공포스럽게도

전범국 일본과
그 전범자들 중
처벌 받은 건 극소수였다

기이하게도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은 늘 언급되지 않는다

곧바로 시작된
소련과의 경쟁을 빌미삼은
미국의 만행 중 하나

위 책은,

소위 기독교라면
신구교를 막론
홀로코스트를 결단코
외면하거나 그에
무지해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
기독교도 뭣도 아니라는 거

우리 자신들의 극악한
악마성에 대한 보고서

출간예정

함께 읽을 책은
엔도 슈사쿠의
단편소설 <침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