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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님들이 아프다. 아픈 사모님들이 병원에 가지만 원인을 진단받지 못한다. 두통이 멈추지 않고, 근육에 경련이 오거나, 시시때때로 체하지만, 원인은 모른다. 기운이 없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다. 밤에는 잠을 못 자고, 낮에는 만성피로와 무기력의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다들 이유는 없다고 한다. 이유 없는 병이 이유가 없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이 병은 엄마들의 병과도 비슷한 것 같다. 우리 엄마들은 다들 그렇게 아프다.
백소영 교수의 <엄마 되기, 힐링과 킬링 사이>(대한기독교서회)는 <엄마 되기, 아프거나 미치거나>(대한기독교서회)의 개정판이다. 나는 첫 번째 제목을 더 좋아한다. '엄마 됨, 엄마 된 상태'에 '아프거나 미치거나'로 이름을 붙여 준 책 제목 자체가 이미 치유라고 생각했다. 아닌 게 아니라 개정판 서문에서 책이 일으킨 반향에 놀랐다며 독자를 만난 경험에 대해 백소영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엄마들은 그녀들의 다소 부정적인 혹은 불순한 모성 경험이 개인의 불신앙이나 게으름 때문이 아니라는 말 한마디에도 큰 자유와 위로를 얻었다."
가부장제 사회를 떠받치는 모성 신화를 살아 내느라 자기를 잃어버린 엄마들이다. 그렇다면 사모님들은 종교적 가부장제 속 엄마일까. 엄마이기나 할까.
목회자 남편 대신 교회 실권을 쥐고 흔드는 권력 뒤의 권력인 큰 사모님이 있다는 것도 안다. 목회자 아닌 목회자 부인에게 받은 상처로 교회를 떠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많은 사모님이 아프다. 조용히 만성적으로 아프다. 반면 급성으로 병증을 보이는 경우도 보았다. 교회 가야 하는 시간만 되면 갑자기 장이 꼬이며 데굴데굴 뒹굴었다거나 심장박동이 빨라지며 손발이 차가워지기도 한단다. 이 '알 수 없는 이유' 역시 알 수 있는 이유이다. "미치겠다, 미쳐 가고 있다"고 말하는 사모님도 만났다. 청산유수의 찬양 인도자, 잘 배치된 악기, 열정으로 노래하는 회중의 찬양 시간이 견딜 수 없다는 것이다.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다 속이 울렁거리고, 울렁거림을 이기고 앉았다가 결국 화장실로 달려가 구토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무언가가 역겨워 결국 토해 내고 만 것이다. 역겨워 토해 낸 그 내용물이 무엇일까. 모두 한통속이 되어 찬양하고 존중하는 집단 안에서 이방인, 아니 투명 인간 같은 자기 존재를 향한 연민일까. 교인들 앞과 부교역자 대하는 태도가 너무도 다른 담임목사의 설교를 들으면 분노가 치밀어 올라 살인 본능까지 느껴진다는, 또 다른 미쳐 가는 사모님도 있었다. 이거 실화냐. 실화다.
사모였던 우리 엄마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사모의 '사' 자는 '죽을 사' 자여.
이런 말을 목사들에 대하여 하는 목소리는 여전히 없다
수 많은 목사들은 병들거나 미치거나이지만 표를 내지 않는다
(용기교나 삼환교 교주들도 실상 다들 미처서 그러는 거다)
그건 곧 바로 한 가정의 생존이 걸린 문제가 되고 말기에
목회자이면서 한 사람의 가장인 목사들은 침묵한다
그들 속의 암도 심장도 타 없어지는 영혼도 침묵한다 깊이 깊이
그들은 소진될 자유도 있어서는 안 된다
이 나라의 중년 사망률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데
그러다가 쓰러져 나가는 목사들에 대한 통계는 없다
그들의 아이들과 사모는 그대로 길거리에 나 앉고 만다
목사 없는 목사의 가족이 교회당에 단 한 주일이라도
눈에 보이는 건 교회 경영인들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곧 바로 쌓일 수백 통의 후임자 이력서들에 방해만 될 뿐이다
사모는 드러난 약자이고 아마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래도 이런 글이나마 가끔 올라온다
사모가 아프거나 미치거나
아니면 다행히도 대신
목사가 병들거나 미치거나
목사의 '사'자는 '죽을 사'자라는 건
벌써 까까머리 중학생 때 내가 배운 건 데
하긴 집사 장로 권사 찬양단 교사들 교회당관리인들
다들 아프거나 아니면 미치거나
이 모든 게 다,
기독교라는 집단 광기 때문이다
이러니 그나마 최선인 건
투명 교인으로 대형교회 안에 묻히거나
정말 교회 졸업하고 맘 편히 살 수 있거나
그래도 무슨 대안을 찾으려면?
다들 무교회주의 신앙으로 홀로 서기를 하고
그래도 필요하다 하는 목회적 기능은
친교와 서로 돌봄의 시스템으로 하게 하고
교회는 다만 선교 기관의 기능만 하도록
그래서 목회 활동 아닌 선교 활동을 지원하기
꾸준히 교회를 비 권력화 하기
그래서 그런 취미생활 찾는 이들이
나오기 싫은 교회 만들기 이러면
스스로 최소한의 교회마저 유지되지 못할 테니
목사도 마땅히 집사 장로 권사들처럼
생활인으로 조금이라도 반드시
자기 생계 수단을 갖게 하기
그래서 모자라는 부분과 활동비로
교회는 선교비 명목으로만 지원하기
정말 당연해 보이지만 전혀 새로운 교회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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