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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 칼럼]

한국기독공보 칼럼 3

by 농자천하/ 2019. 3. 23.

 

목양 칼럼 : “점점 지쳐가는 농촌교회” 

농촌교회가 1백20명의 농활팀을 감당하기 쉽지 않은 일인데, 금 년에도 ‘농활’이라는 말에 얼른 그러자고 했다. 교회당 경로당 마을회관 면사무소 주민센터 식당을 활용하면 숙식은 해결되겠지만 이번 팀은 청소년들이라 사실 마을에 더 양해를 구하기도 미안하다.

우리는 이곳에 부임했을 때부터 만 4년 동안 어린이 청소년 공부방 현장학습 악기교실 컴퓨터교실을 매일 하면서 마을 분들이 교회를 싫어하건 말건, 미용 치과 침술선교 어르신 문해교실 축호전도 일손돕기 해수욕장 청소 등을 계속해 왔다. 물론 도시 교회들의 수고와 도움으로 가능했던 일이다.

하지만 ‘목회자 생활비 평준화 정책’으로 그런 지역사회 선교비가 중단되어, 그렇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었던 도시교회들과의 관계도 끊어져 다시 적막한 마을이 되고 말았다. 그러던 중 도시의 한 교회에서 의료 미용 봉사와 2백여 분의 경로잔치를 열자고 했을 때 우리는 극구 사양해야만 했다.

부임 초, 다른 도시 교회의 도움으로 그때도 2백여 명의 경로잔치를 준비했었지만 “교꾼들이나 먹지! 우덜이 뭐하러 가!”라며 다들 손사래 쳤고 마을 어르신 딱 한 분이 오셨던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더는 사양할 수 없었다. 정성껏 초청장을 만들어 인근 마을 이장님과 노인회장님들을 찾아뵙고, 읍소하며 간곡히 말씀드렸다. “편하게 잡수시라고 주민센터 식당에 준비했으니, 교회에서 한다고 마시고 좀 알려 주십시오!” 걱정으로 잠을 설쳤고 무심히 날은 밝아왔다.

아직 이른 시간, 우리 마을 이장님이 마을방송을 시작하셨다. “아~ 아, 마을 어르신들께 한 말씀 올리것습니다! 우리 마을 장로교회에서 경로잔치를 준비했다 하오니, 오늘 점심은 다들 주민센터 식당에 와서 맛나게 드시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이어 이웃 마을들에서도 마을방송이 시작되었고 교회 경로잔치 소식으로 4개 마을의 스피커들이 면소재지를 울려댔다. 예배당에서 혼자 엎드려 있던 아내가 놀라 눈시울을 붉히며 뛰어나왔다.

2백 30여 분의 어르신들이 삼복더위에도 각 마을에서 기꺼이 와 주셨는데 한 마디씩 해 주셨다. “약주가 빠진 게 쬐끔, 서운했지만 참말로 고맙습니다!” 다음 해에 교회당을 이전하고 입당식과 장로 장립식을 아예 마을잔치로 열었고, ‘쬐끔’ 서운하시지 않게 해 드렸다. 어르신들은 정말로 당신들을 생각해 주는 마음씨가 아니냐고 다들 놀라워하셨다.

하지만 그 이후로 지역선교의 물적 인적 지원은 모두 중단되었고 이제는 자가발전 지역선교 구조를 만들려고 7년차 도전 중이다. 최선으로 찾아진 것이 ‘사회적 협동조합’인데 맨손 창업으로 봉사 차원을 넘어 수익구조를 창출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텐트 메이커로 다시 나서야 하지만 통학버스 운전원 자리도 쉽게 나오지 않는다. 수시로 한없이 지치고 번 아웃 된다. 하지만 우리는 본래 희망하는 용기로 생존하는! 들뢰즈의 ‘소진된 인간’의 전형! ‘갈릴리 예수님파’가 아니던가!



/계속 (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