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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 칼럼]

[한마음 칼럼] "권사님, 우리 권사님들"

by 농자천하/ 2019. 6. 7.

한마음 칼럼 : “권사님, 우리 권사님들”

우리 교회 어르신들은 대부분 한 번 이상씩은 대수술을 이겨내신 분들이다. 복잡한 집안일을 혼자 다 지고 오랜 세월을 살아오신 이 권사님, 그 덕에 80이 가까워 또다시 위암 재발로 대수술을 받게 되셨다. 수술 날짜가 갑자기 결정되었고 대도시의 병원에 가시기 전에 뵙지도 못하여 안타까운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오후 늦게야 출발하여 서둘러 승합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달렸다.

도착해 보니 시간이 너무 늦어 이미 병실들은 불을 꺼졌고 병원은 적막했다. 그래도 그냥 돌이킬 수 없어 조심스레 병실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니 권사님은 아직 주무시지 않고 병상에 앉아 반색하며 맞아 주셨다. 평소 유치원 아이같이 밝고 씩씩하게 웃으시던 얼굴이 유난히 환했다. 자녀들한테는 내일 아침 일찍 수술 시작할 때 오라고 하고 혼자 계셨다.

“어떻게 계시나 하고 달려오는 내내 염려했더니, 권사님 얼굴이 평소보다 환하시네요!” 그러자 권사님이 대답하셨다. “아까 저녁 식사 때 금식하고 있을 때만 해도, 쬐끔 겁시 나데유. 지난번에도 전신 마취 수술을 했으니 두어 번 심장이 덜렁덜렁 했시유. 근데 불을 끄고 자리에 누으니께, 누가 내 맘을 딱 눌러주는 것같이 평안해유. 아, 하느님이 여기도 계시는구나 싶어서 지금 막 일어나 앉아 찬송 한 곡 하고 예수님께 감사 기도를 하던 참이유.”

청산유수 대표기도, 엄청난 방언 기도가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이보다 더 진솔한 기도가 또 마음이 어디 있으랴! 밤길을 운전하고 내려오는 내내 우리는 이야기했다. “우리 노 권사님들 따라잡으려면 우린 아직 멀었슈!” 이제 겨우 받침 없는 글자를 조금씩 읽을 수 있게 되신 어르신들이 ‘난 암 것두 물러유! 기도 한 줄도 못하니 일체 소용 읎슈!’ 하시면서도 실은 아주 지혜로우시고 또 때마다 은총 아래 사시는 생활을 하시는 걸 보면 마음이 저절로 겸손해진다.

요즘 농촌은 ‘스페인산(産) 마늘’을 캐고 다듬어 매상 준비하랴, ‘유황 육쪽마늘’에 양파까지 캐랴, 연중 가장 바쁜 철이다. 지난주일 오후 예배를 마치고 승합차로 귀가시켜 드리는데, 농사일들이 겹쳐 마음들이 벌써 바쁘셔서 다들 앞 좌석 시트를 붙잡고 계신다. “맨 나중 내리셔도 한 15분 차이니께, 넉넉히 맘 잡수세유. 엉덩이를 의자에 딱 붙이고 편히 앉으시구유~ 안전히 모셔다 드리겠습니다아.” 그랬더니 하하 웃으시며 “나도 모르게 몸이 먼저 내릴라구 앞장 서네유~” 하신다.

댁이 가장 가까워 맨 먼저 내리는 이 권사님이 얼른 양보하신다. “골다공증으로 나는 일을 못한께, 일에 쫓기는 권사님들 동네로 먼저 돌아 나와도 돼유. 일 철에 마음 쫓겨 본 사람이 그 맘 알쥬.” 먼 마을로 돌아오는 길에 권사님이 그러신다. “초등핵교 때부터 교회에서 목사님 사모님한테 자란 손주들이 어느새 공무원이 되고 또 직장엘 다녀유. 우덜은 다들 이렇게 늙어가고유...” 황혼의 태양이 가장 빛나고 아름답다. 우리 어르신 권사들처럼.



/계속 (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