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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 칼럼]

[한마음 칼럼] 나는 왜 농목으로 사는가? 5

by 농자천하/ 2019. 9. 21.




한마음 칼럼 : “왜 농목으로 사는가? 5”  


그렇다고 해서 내가 다른 목사들에 비해서 뭔가 대단하다는 것이 아니다. 나는 누구보다도 깊게 또 자주 좌절하고 또 그러기에 희망의 실천 또한 치열한 것뿐이다. 교회는 어떤 인간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주인이시라며? 그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님의 몸이라며?


그런 교회가 그렇게까지 지역사회로부터 존경은커녕 어떤 존중도 받지 못하고 나아가 만시지탄의 대상이 되어 있는 현실을, 어떻게 한 사람의 목사로서 그냥 두고 볼 수 있단 말인가! 할 수 있는 무슨 일이든 다 해보고 그래도 정 안 되는 일이라면 주님의 이름이 걸린 간판을 차라리 떼어 버리든가 해야 하지 않겠는가!


선교비 지원 요청에 서울의 구의교회와 강북제일교회가 연락을 해 왔다. 내가 잠시 부목사로 시무하던 구의교회 연합 여전도회에서 바자회를 하고 남은 기금을 급한 대로 우선 송금하겠노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여러 차례 찾아와 의료 미용봉사, 경로잔치, 면소재지와 인근 마을을 가가호호 방문하며 전도를 해 주었다.


4~5명씩 조를 짜서 교회 승합차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마을 입구에 내려주고 다시 교회당으로 혼자 실어 날라야 했다. 그러다보니 막상 아무 연고도 없는 이곳까지 와서 도와주던 분들과는 인사 한 마디 나눌 수 없었다. 교회당에서는 한방의료 봉사로 침과 뜸을 시술했고, 면사무소 회의실을 빌려 치과 의료봉사와 미용봉사도 했다. 많이 찾아왔던 마을 어르신들과도 인사할 겨를이 없었다. 정말 필요한 것은 외부의 지원과 함께 할 수 있는 자체 역량임을 절감하였다.


해마다 여름이면 이런 일들과 여름성경학교로 너무나 지쳐 한 이틀씩 앓아눕곤 했다. 그래도 마을 아이들은 이른 아침부터 교회당 문을 두드렸다. 그런 날은 교회당 창문 커튼을 모두 내리고 구입해 둔 어린이용 영화를 종일 틀어 주었다. 하지만 지역사회 봉사활동이 처음부터 그렇게 성황을 이룬 것은 아니었다.


이곳에 부임한 다음 해 여름, 구의교회 연합 여전도회에서 축호전도와 경로잔치를 준비하여 내려왔다. 1백 인분이 넘는 음식을 준비하여 교회당과 마당에 차려놓았지만 한 사람도 오지 않았고 이웃 할아버지 한 분만 다녀가셨다. 전날부터 마을을 돌며 알렸지만 다들 싸움이라도 하듯 거절했다. “우덜이, 뭐하러 교회 잔치를 먹으러 간대유?!” 결국 우리랑 상관이 없이 먼데 있는 경로당에서 노인들을 태워 왔다. 그런데 예의 그 장로라는 분은 맨 앞에서 자기 것인 양 선물을 나눠주며 생색을 내느라 여념이 없었다. 마을 분들이 모두 고개를 돌려버린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행사를 마친 다음 연합 여전도회장과 통화를 했다. “저희가 그동안 여러 곳에서 봉사활동을 했는데요, 그곳처럼 완고한 곳은 처음이라 다들 놀라고 실망이 컸습니다. 회원들이 내년에는 다른 곳으로 가자고 하네요...”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몇 해 동안 더 지역 선교비를 보내주었다. /계속  (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