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음 칼럼 : “왜 농목으로 사는가? 3”
스물여섯의 신학생 때부터 시작한 농촌교회 목회였다. 나름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여기며 다시 농촌을 찾아 내려온 것이었다. 그런데 웬걸! 이곳에 부임한지 불과 5개월 동안 황당하도록 어이없는 일을 연속하여 겪은 것이 세 가지였다.
어느 수요 기도회 후 승합차 운행을 마치고 들어오니 컴컴한 교회 마당에 어떤 남자가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자동차에서 내리자 다짜고짜 다가와 내 발 앞에 가래침을 거하게 뱉어내고는 돌아서면서 “씨~발! 이게 교회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목소리로 볼 때 나이가 50대는 된 사람이었고 잔뜩 술에 취한 상태였다. 이후로 나는 그 소릴 자주 들었는데 당시 시무장로가 문맹인 마을 주민들의 토지 사기 매매로 계속 문제를 일으키며 소송을 남발하고 있었다.
두 번째 일은 5학년이던 작은 아이가 겨울방학을 맞으면서 ‘조별 모둠 숙제’를 해야 한다고 같은 반 남녀 아이들 대여섯 명을 데리고 왔다. 숙제를 하려면 인터넷 검색을 해야 하는데 당시만 해도 아이들 집에 컴퓨터와 프린터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왁자지껄 아이들이 컴퓨터 앞에 몰려 앉아 숙제에 열중하기에, 다 마치면 교회 승합차로 데려다 줄 테니 부모님 걱정하지 않게 전화로 알려드리라고 했다.
그러고 한 30분 뒤, 어떤 어머니가 사택의 낡은 현관문을 마구 두드리며 잔뜩 화난 목소리로 한 아이를 불렀다. 문을 열자마자 자기 아이를 다짜고짜 마구 야단쳤다. “처음 뵙겠습니다. 제가 이 교회 목사이고 의호 아빠입니다. 어차피 숙제는 컴퓨터 있는 집에 모여서 해야 하고요, 마치는 대로 교회차로 태워다 줄 테니 걱정 마세요.” 그러자 그 어머니는 마치 내게 뺨이라도 한 대 맞은 듯 시뻘건 얼굴로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니? 왜 우리가 아저씨한테 신세를 져요?! 자동차도 없이 사는 줄 아나? 빨리 나와 이년아!?” 그러고는 숙제해야 한다며 울먹거리는 아이를 앞세우고 연신 투덜거리며 돌아갔다. 이건 뭐, 미전도 종족 오지(奧地) 선교사가 어느 밀림 지역에 상륙한 거나 거의 다름없었다.
그리고 아이들과 성탄절 행사 준비로 정신이 없었지만, ‘부임 심방’외에 구역예배 인도까지 겸해야 했다. 어느 날 서울에서 귀촌한 집사님 댁에서 예배를 마쳤는데 그분들이 이런 말을 했다. “서울에서 살던 집이 팔렸는데 십일조를 하려고 합니다.” 그러는데 목사가 더 무슨 말을 하겠는가? “아, 예. 그러시군요.” 그리고 나는 그 일을 잊고 있었다.
몇 주 지나자 교회 할머니 한 분이 큰 근심거리가 생겼다고 걱정했다. 무슨 말인가 이야기를 들어보니 기가 막혔다. “서울 집을 판 돈의 십일조라면 몇 천만 원은 될 텐데, 그 돈이 어디로 갔냐?고 한다”는 것이었다. 십일조 한다고 목사한테 말했으니 그 돈을 목사한테 준 거 아니냐고 의혹을 한 달 내내 부풀렸던 모양이다. 느닷없이 ‘씨발!?’소리를 들어도 괜찮았던 나는 그만 너무나 어이없어 크게 낙심하고 말았다. /계속 (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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