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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 칼럼]

[한마음 칼럼] "목회는 영빨로 한다?"

by 농자천하/ 2019. 8. 17.

 

한마음 칼럼 : “목회는 영빨로 한다?”

신학대학 재학 중이던 때를 추억해 본다. 그처럼 난무하는 커닝에 질린 한 어린 학생이 참다못해 시험 중에 소리를 질렀다. “커닝 좀 제발 그만! 신학생들이 양심이 있어야지!”

그리고 시험장을 박차고 나갔던 그 학생은 다시는 학교로 돌아오지 않았다. 학생회에서는 ‘무감독시험’을 치러보자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별다른 이슈도 되지 못하고 그냥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오히려 나이 지긋하여 학교에 들어온 학생 중에는 노골적으로 반대하는 이도 있었다. “아니, 그럼. 우리같이 나이 많아서 외워도 머리에 들어가지 않는 사람들은 목회하지 말라는 거냐?” 그랬었다. 아닌 말로 목회는 ‘기도 빨, 영 빨’로 하는 거지, 일반대학처럼 이성을 앞세워 공부한 지식으로 목회자를 뽑으면 되냐는 거였다. 대체 무슨 이유로 그 많은 젊은이가 농촌교회는 외면하면서 너도나도 신학교로 몰려드는 걸까? 초대형교회를 일군 ‘성공신화’들이 그렇게나 매혹적인 것이었던가.

한국 개신교 교단들은 사분오열되어 왔는데 겉으로는 무슨 ‘교리적 신학적 차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이면에는 교단장 같은 교권 다툼이나 초기 선교사들이 남겨준 신학교 병원 등의 막대한 재산으로 인한 갈등이었다. 신학대학들은 가만히 있어도 성공신화를 꿈꾸며 마구 몰려드는 신입생을 수용할 공간만 있으면 학기 당 수백만 원씩 하는 등록금으로 엄청난 수익을 낼 수 있는 초대박 사업이었던 것이다.

한국교회의 양적 폭발은 결코 손뼉 칠 일이 아니었다. 교회당을 크고 화려하게 지어 ‘성공신화’를 이룬 걸로 보여주기만 하면 마구 몰려드는 교인들에게 우리는 두려움을 가졌어야 한다. 교회당을 두세 번 증축 신축하고 수양관을 짓고 공원묘지를 마련하면서, 그렇게 자신들만을 위해 치부하냐는 세상의 눈총을 의식하여 명분도 번듯한 ‘해외 선교’를 유행처럼 할 일이 아니었다. 그 와중에 그 많은 교인을 도시교회로 보내준 농촌교회 목회자들은 흔한 성공신화도 못 이루는 무능한 목사들이라는 낙인을 얻게 되었다.

넘쳐나는 목회 지원자들로 전국 곳곳에서는 신학교 간판을 내걸고 ‘목회를 공부로 하냐? 성령(?) 받았으면 되지!’라며 ‘무 학력 대 부흥사’ 딱지를 붙여 ‘D.L. 무디의 신화’로 고무시키는 일도 유행처럼 번졌다. 몇 년의 수업 과정 동안 제대로 된 최소한의 기본 소양들 곧 기본 인성의 함양, 리더십 훈련은 물론 기독교 역사나 기초 교리, 그나마 성서는 좀 제대로 읽고 연구할 수 있는 정도의 기본적인 독해력, 나아가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는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인문학과 고전 읽기 정도는 철저히 시켰어야 했다.

목회는 기도 빨로, 설교는 영 빨로 한다고? 천만의 말씀! 목회는 기본 양심과 인성으로 하는 거고 설교는 꾸준한 성서와 인문(人文) 연구 그리고 자기 성찰로 하는 거다! 은혜와 영성이라는 말이 비양심과 요행수와 욕망과 무지를 포장하는 수단인 이상 우리에게 희망은 없다.



/계속 (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