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격: 정은경 본부장과 질병관리본부의 힘
헤르매스 아이
1. 바이오 테러, 최전방에 선 그들
“자세한 건 질본에서 발표를 하겠지만 저희가 지금 대구 신천지 교회 유증상자에 대해서 검사를 집중적으로 많이했죠. 그러니까 하루 1000~2000케이스 이상의 검사를 계속하고 있어서, 지금까지 평균적으로 우리가 하루에 대구 쪽에서 한 100에서 150정도 이상의 환자들이 나왔지만, 아마 지금 검체가 많이 들어가 있는 상황이니까 그보다 몇 배 이상이 증가가 될 것 같습니다.”
-CBS 김현정의 뉴스쇼 27일 인터뷰 내용 중-
27일 새벽,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한 대구시 의사회 코로나19 대책본부 민복기 본부장이 면구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전날 대구신천지 교인들의 전수조사가 이뤄져 확진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이 당연한데도, 목소리엔 ‘면목 없습니다’가 깔려있다.
인터뷰가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질병관리본부는 ‘코로나19 신규확진자는 334명이며 국내 확진자가 총 1595명’이라고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신천지 교인 검사가 진행될수록 수치는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다. 이번 주가 최대 고비다.
전시상황이지만, 정부의 감염병 대처능력, 질병관리본부의 검역, 검사, 진단 대처능력에 대한 찬사가 쏟아진다. 국내 언론만 빼고.
국민들도 질병관리본부에 감사인사와 응원 메시지를 보내는가 하면, 청와대 게시판에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응원, 감사를 전하는 청원이 벌어지고 있다. 진료의사 출신인 전 미국 FDA(식품 의약안전처) 국장 스콧 고틀리브도 한국의 코로나 19에 대해 “정말 대단한 진단 능력을 보이고 있다”고 극찬했다.
2. 국민들이 새롭게 알게 된 사실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국민들은 많은 사실을 알게 됐다.
사이비종교 집단이 현실에서 국민 개개인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 서울에서 대구까지 KTX를 타고 출‧퇴근하는 대구시장, 청도대남병원의 수상함(정신병동 환자들에게 인권유린에 가까운 일이 벌어졌을 가능성이 농후한), 외신과는 상반된 국내 언론(언제는 안그랬겠냐만은)의 보도 행태, 대구경북의 집단감염 사태가 발생하자 자신의 병원 영업도 접고 코로나19 진단 지원 인력에 자원한 의료진들의 숭고한 희생정신, 대구시장과 경북도지사를 제외한 각 지자체 장들의 우수한 행정능력, 전문가 그룹들로 구성된 공직자들의 우수한 공직수행능력과 감동을 자아내게 만드는 그들의 퍼블릭 서번트(public survent)가 그러하다.
물론 이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건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을 위시한 질병관리본부라는 국가조직 그 자체다.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집단 폐렴환자가 발생한 후, 질병관리본부는 지난 달 3일 "'우한시 원인불명 폐렴 대책반'을 구성하여 가동한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약 두 달, 정은경 본부장을 위시한 보건의료진은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다. 매일 언론에 등장하는 정 본부장의 외관이 나날이 초췌해져가는 것에서 그들의 노고를 엿볼 수 있다. 극한상황을 짐작케 해 안쓰러우면서도 가슴 한 편으로는 뿌듯하고 또 고맙다. 그들이 ‘국가의 격’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고생스러운 상황에서 사람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했다. 인성 뿐만 아니라 그 사람과 조직이 가진 역량(기술력, 능력)이 그대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해서인지 코로나19 전파속도에 적잖이 긴장되기도 하지만, 질병관리본부나 정부의 대처능력에 안심이 되기도 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3. 메르스 때와 너무 다르다
지금 정부의 코로나19 대처와 박근혜 정부의 '메르스 사태' 대처는 상반된다. 그 때도 질병관리본부는 존재했는데 왜 차이가 나는 걸까?
감염병, 전염병 등의 질병을 전문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국립보건원이 질병관리본부로 승격된 건 사스 사태가 있던 2003년 12월이다. 의료와 보건 전문가로 구성된 질병관리본부는 이 전문가 그룹이 공적인 일을 하는 데 전문성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그 환경을 시스템화 시켰다.
중요한 건 긴급한 상황에서 이 전문가 그룹에게 대처를 맡기는 것이다. 전문성도 없으면서(쥐뿔 알지도 못하면서) 권한만 많은 대통령이 나대지 않고 말이다. 코로나19 사태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의 케미가 좋은 본보기가 되었는데, 이 차이가 코로나19 상태와 메르스 사태의 결정적인 차이를 만들었다.
아무리 유능한 인재라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이는 쓰는 사람의 역량과 의지에 달려 있다.
2015년 메르스 사태 수습 당시 정 본부장은 질본 질병예방센터장을 역임하고 있었다.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 현장점검반장으로 감염 예방과 역학조사 과정을 지휘하고, 공식 언론브리핑으로 직접 상황을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럼에도 메르스 사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감봉’ 징계처분을 받았다.
비록 징계는 받았지만 메르스 때의 경험이 정 본부장에게 도움이 되었다. 메르스 발병 때도 질본에서 현장을 진두지휘 했던 정 본부장은 ‘오답노트’를 아주 잘 썼고, 지금 그 오답노트의 경험치까지 모두 발휘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유시민 이사장은 본지와의 짧은 서면 인터뷰를 통해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질본은 (그동안) 꾸준히 역량을 키워 왔습니다. 메르스 때와 이번이 가장 다른 것은 대통령과 정부가 질본의 전문적 능력을 신뢰하고 질본의 판단을 전적으로 존중하며 그에 따라 모든 가용자원을 신속하게 지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메르스 때는 대통령의 리더십 결여로 대한민국이 보유하고 있던 감염병 관리 역량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던 것이지요. 그리고 질본 역시 메르스 사태를 ‘오답노트’로 삼아 많은 발전을 이룬 상황이었습니다. 메르스 이후 5년간 질본이 이룬 자체 역량의 발전, 그리고 그것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한 대통령의 리더십 스타일, 이 두 가지 때문에 정본부장의 노력이 빛나 보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4. 공무원 의사, 그 선택이 위대한 이유
질병관리본부 인력들의 전문성은 어느 정도이고, 그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정은경 본부장은 의사출신이다. 서울대 의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보건학 석사, 예방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1998년 연구관 특채로 보건복지부에 입사했다. 공무원이 된 의사의 모범적 케이스라 할 수 있다. 이후 보건복지부 질병정책과장과 응급의료과장 등을 거쳐 질본으로 소속을 옮겼고, 만성질환관리과장과 질병예방센터장을 거쳤다. 2016년부터 약 1년 동안 긴급상황센터장을 맡기도 했다.
본부장으로 임명된 건 2017년 7월 문재인 정부 때였다. 정 본부장은 질병관리본부 긴급상황센터장에서 내부승진한 첫 케이스이자 질병관리본부 최초의 여성 본부장이기도 하다. 질병관리본부의 전신인 국립보건원 시절에도 수장이 여성인 경우는 없었다.
질병관리본부에서 ‘내부승진’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행정의 안정성이 발휘된 것이고, 앞으로도 행정은 더 발전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실제로 정 본부장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행정조직의 미비한 점,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질병관리본부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강조하면서도 “감염병 등 공중보건위기에 대한 체계적 대응”을 내세웠다. “현재로서 감염병이나 기후변화 같은 공중보건위기에 전문적으로 잘 대응하는 조직을 만드는 게 우선”이라고 한데서 알 수 있듯 위기를 예측하고,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고 있다.
개인병원을 운영했다면 많은 돈을 벌 수도 있었을 테고,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면 교수, 학장이 되어 갖은 명예와 부를 쌓을 수 있었을 것이다. 기회와 여력이 됐던 사람들이 택한 공직자의 길이다. 스스로 ‘남과 다른 가치’를 선택한 사람들이니 만큼 사명감이 남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유시민 이사장은 ‘그분들 스스로 선택한 인생이며, 존재의 이유’라고 까지 표현했다.
"정은경 본부장은 스스로 공무원이 된 의사입니다. 전염병 퇴치와 공공보건 정책 발전에 인생을 걸고 공무원이 된 것이지요. 보건복지부에 근무하는 의사 선생님들은 모두 그런 분들입니다. 질본과 질본의 업무는 단순한 생업이 아니라 그분들 스스로 선택한 인생이며 존재의 이유입니다. 정 본부장은 지금 감염병과 공중보건 전문가로서 자신이 가진 모든 지식과 정보, 경험, 권한을 남김없이 쏟아 붓고 있는 중이라고 봅니다."
5. ‘기자가 된 의사’가 본 질본과 정은경
공무원이 된 의사가 있는가 하면, 기자가 된 의사도 있다. <한겨레신문>에서 18년 동안 의료전문 기자로 근무하다 2019년 12월 한국보건복지인력개발원으로 자리를 옮긴 김양중 교수의 이야기다. 그와 코로나19 사태와 질병관리본부의 역할, 과제에 대해 짧게 이야기를 나눴다.
Q: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에 대해
A: 정은경 본부장과는 기자로 일하던 2009년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신종 인플루엔자가 돌았고, '스페인 독감과 같은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하여 국민들이 지금보다 더 많은 불안을 느끼던 시기였다. 이때도 정 본부장은 어느 여론에도 흔들리지 않고 치료제와 예방백신 확보를 위한 행정가로서 활동했다. 많은 언론인으로부터 질타를 받았어도 항상 전문가이자 행정가로서 차분하게 답했다. 요즘 언론의 여러 지적에 대해, 궁금증을 풀어주면서도 설득하는 자세가 정 본부장의 힘이라 생각한다.
Q: 질병관리본부의 대처수준, 기술수준, 위기 대응 능력의 수준은?
A: 거의 한 달 사이에 코로나19의 진단 건수가 1만 명으로 증가했다. 전파가 빠른만큼 대처도 빨랐다는 뜻이다. 격리병실이나 감염 전용 환자 병상이 부족했지만 이 역시 잘 대처해나가고 있다. 감염병 유행은 한 나라의 위기 대응 능력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현재 상태에서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사스를 거치면서 국립보건원이 질병관리본부로 승격됐고, 신종플루를 거치며 조직과 예산이 늘어났다. 메르스 후에눈 조직의 격이 더 높아졌다. 과거보다 해외 다른 나라들로 이동이 많고 해외의 외국인 역시 국내를 많이 찾고 있음을 감안할 때 이런 감염병 유행의 위기는 더 자주 나타날 수 있고 이에 대한 대처 역시 더 철저할 필요가 있는데, 질병관리본부 이에 맞춰 대처 능력을 향상시켜왔다.
Q: 혹시 전염병을 많이 겪어봐서 잘하게 된 것인지
A: 사실 바이러스 질환이라는 것을 빼면 이들 전염병은 모두 유행 양상이나 치명률이 다르다. 질본에게 있어선 매번 새로운 시험문제를 풀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단순히 감염병 사례를 많이 접했다고 해서 대처능력이 좋아지지는 않는다. 감염병 상황에서 나타난 문제들을 해결해야 그 능력이 향상되는 것이다.
Q: 코로나19는 어느 정도 지나야 안정기에 접어들까?
A: 전망은 어렵다. 다만 기온이 올라가면 바이러스의 활동이 크게 줄어든다. 아주 일부는 평소 감기를 일으키는 코로나처럼 남을 수 있다. 신종이라 변화 가능성은 남아 있지만 말이다.
Q: 질본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A: 감염병 등 질병관리 영역에서의 인력이나 예산이 부족하다. 이번에도 당장 역학조사관이 부족했다. 중앙과 지역으로 해서 역학조사관 인원을 정해서 뽑도록 했는데, 인원을 다 채우지 못했다. 전염병의 경우 다른 나라에서 생겼다고 해도 우리나라로 유입될 가능성이 큰데, 감염병 대응 역량이 좀 더 높아져야 (해외에) 바로 인력을 파견해 대응할 수 있다. 대처 경험과 치료 능력 등을 향상시키고 국내 전파를 막는 방법 등을 연구하는 것도 필요하다. 치료제나 백신 개발 등에 나서는 것도 두말할 필요 없다.
또 격리병상을 갖춰놓은 공공병원이 부족하다는 것과 의료체계 자체가 감염이 전파되기에 쉽다는 것, 정신질환자나 만성질환자 등이 사회에서 소외된 병원 등에 입원해 있으면서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하는 현실 등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다. 이는 질병관리본부를 넘어선 영역이기는 하지만 감염병 대응의 최고 전문가 조직으로서 끊임없이 해결책을 주문해야 한다는 역할이 있다.
Q: 메르스 때는 우리나라의 대처능력이 많은 비판을 받았다
A: 메르스 유행 당시는 전문가 조직보다는 정치권의 논리가 더 강했다. 쉽게 말해 메르스 유행의 해결에 있어 대통령이나 복지부 장관이 주역으로 보이게 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살려야 한다’ 같이.
현재는 코로나19에 대한 모든 정보가 신속하고 투명하게 공개되지만, 메르스 때는 청와대 등에 보고된 뒤 하루 정도의 시차를 두고 언론 등에 발표됐다. 질병관리본부의 전문성과 이를 바탕으로 한 내용이 국민들에게 곧바로 제공되지 못했다.
메르스 이후에 질병관리본부의 많은 분들이 징계를 받았고 일부는 떠났다. 그럼에도 정은경 본부장을 비롯해 많은 이들은 여전히 그 현장을 지켰고, 부족한 점 등을 메꾸기 위해 애써왔다. 적어도 검역과 방역 측면에서는 최고의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 결과가 코로나19에 대한 질본의 대처다.
인터뷰를 마친 뒤, 그는 중요한 게 있다며 당부 해왔다.
“혐오와 배제로는 감염병을 막지 못합니다. 감염병의 경우 사회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이 많을 수록 감염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고 전파될 위험도 커집니다. 즉, 건강 격차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게, 우리 공동체를 감염병으로부터 지키는 길이라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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