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당 예배 없으면
교회의 의미가 없다고?
이런 무식한 놈들 때문에
쉰천지교가 나오는 것
더구나 이런 3류 선동을,
코로나 종교탄압??
그 아래 앉아 헌금해 주는
멍청한 교인들이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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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reanchristianity.tistory.com/m/818
옥성득 교수의 한국 기독교 역사
예배 중단이 기독교 핍박인가?
"제 정신이 있나?"를 경상도에서는 "니 지정신이가?"라고 한다. 요즘 신천지 설교는 물론이고, 일부 총회장, 대형교회 목사, 작은 교회 목사, 기도원 목사 등의 설교를 들으면 지정신인가 싶다. 한국 교회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와장창 요란하다.
지금처럼 목사들의 설교가 저질이고 비성경적이며, 탈신학인 적이 없었다.
1.
예를 들어 보자.
1) 강남금식기도원 김성광 목사 "예배하면 천국에서 신선한 공기 내려와…마스크 벗어야": 코로나19 확산에도 매일 집회 "현장 예배 안 드리는 목사는 또라이"…문재인 대통령 비하도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300412&fbclid=IwAR37P_K36mkCUUeOO7nklF2PF5nV8-3WrB5Xp51DH4Kqe36YGDHbeOb4HeY
2) 김정석 목사 “예배 사라지면 교회는 의미가 없다”: 15일 광림교회 주일예배 설교
https://www.christiandaily.co.kr/news/87624?fbclid=IwAR1eZ2g54IJhWOzV00Urgm95E1yoRmkchNtZgQP_x-fquIxFqhqyTVl1H3s
3) 예장통합 총회장까지 '코로나 종교탄압' 주장: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 총회장이자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 공동대표회장인 김태영 목사(부산 백양로교회)의 15일 설교
http://www.logosian.com/news/articleView.html?idxno=835
2.
California 주정부는 며칠 전 확진자 300명밖에 되지 않았을 때, 250명 이상 교회 집회를 금지했다. 3월 15일 CDC는 50명 이상의 모임은 중단하라고 권고했다. 소수가 모여도 1.8m 거리를 유지하라고 지시했다.
3월 16일 미국 전체에서 확진자 4,000명이 넘자 대통령이 나서서 10명 이상의 모임은 중지하라고 지시했다. 그래도 교회에서는 아무 군소리가 없다. 교회들은 자진하여 예배 중단, 미사 중단을 선언했다. 한국의 우파 목사들이 그리도 사모하는 "기독교 국가 미국"에서 우찌 이런 일이 있을까?
미국이 기독교 핍박국이라도 되었다는 것인가? 트럼프가 기독교를 핍박하는 네로라도 되었다는 말인가? 목사들은 목사들이 먼저 정신이 돌아오기를 기도해야 한다.
종교의 자유와 종교 집회의 자유는 다르다. 종교적행사, 종교적집회 등의 자유는 상대적 기본권으로서 대한민국 헌법 37조2항의 질서유지, 공공복리 등을 이유로 제한할 수 있다. 이재명 경기도 지사도 이 헌법을 기초로 집회 금지를 명할 수 있었으나, 교회의 입장을 존중해 주었다.
3월 16일자 LA Times 기사에서
3.
일부 무식한 목사들의 예배를 강행해야 한다는 논리를 보면, 6.25 전쟁 중에도 피란 중에도 예배를 드렸다고 강변한다. 역사 공부를 언제 그렇데 열심히 했는가? 그때 70년 전에 10살이라도 되어 직접 경험하고 하는 말인지 모르겠다.
한국교회사에서 예배를 중지한 적이 없다고 용감하게 말하는 일부 목사들이여, 신학교 때 한국교회사 한 과목 대충 듣고 나서 교회사를 공부하지 않은 무지를 드러내지 않기를 바란다. 1919년, 1938-45년 예배 중단은 몇 번 이야기했으니, 전쟁 기간만 보자.
1950년 6월 28일 한강다리가 폭파되고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했을 때, 7월 2일 주일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렸는가? 9월 28일 서울이 수복될 때까지 3개월 동안 예배는 중단되었다. 이북에서는 1949년부터 예배가 중단되다가 전쟁 중에는 당연히 다 중단되었다.
한편 한강 다리 폭파 전에 남쪽으로 피란 길에 오른 40만 중에서 5%가 교인이었다고 치면 그 2만 명이 과연 피난길에 예배당에 가서 예배들 드렸는가? 일부는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피난 길에 들판에서, 나무 아래에서, 혹은 임시 수용소에서 예배를 드렸을 것이다. 개인예배, 가족예배, 소그룹으로 드렸으므로, 지금의 온라인예배나 가족예배와 다를 바 없었다.
1951년 봄부터 휴전할 때까지 전쟁은 지금의 휴전선에서 조금씩 오르락내리락했기 때문에, 남한에서는 어느 정도 평온을 되찾고 일상으로 돌아와, 1953년 7월 휴전 때까지 파괴된 예배당에 모여서 예배를 드렸다. 휴전이 되자 교회당을 복구하기 시작했다.
아래 필름을 보면 복구하는 과정과 부서진 교회에서 간절히 예배하는 신도들의 모습을 알 수 있다. 60년까지 교회 건축 붐이 일었다. 1951년 이후 전쟁 중에 혹 예배를 드린 경험이나 글에 근거해서 "전쟁 중에도 예배를 드렸다"고 하면 안 된다. 전쟁이 거의 끝나고 협상 중일 때 예배를 드렸다.
https://www.youtube.com/watch?v=N373rAHa3CU&t=716s
4.
미국은 1918년 스페인독감 유행 때 많은 교회들이 예배를 중단했다. 이것을 기독교 핍박으로 본 목사는 없었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목사들은 지정신이 아니기 떄문에, 전염병 기간에 잠시 예배당 문을 닫고 가정예배 드리는 것을 핍박 운운한다. 그냥 목사직, 원장직, 총회장직 사퇴하고 조용히 지내기 바란다. 그게 소자 한 명이라도 덜 실족시키고, 작은 연자 맷돌을 매는 일이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킴으로써 기억하는 것이 안식일의 정신이다. 주일 예배당에 가서 예배드리는 것만이 주일성수가 아니다. 교회당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면 교회가 아니다라는 신학없는 설교를 하지 말고, 살아있는 주님의 몸인 교회를 건강하게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 목사는 희생적 노력을 해야 한다.
몸이 아프면, 팔이 아프면 주님이 우신다. 나사로처럼 죽어 썩은 시체에서 냄새가 나기 전에, 치유하시는 주님의 손길이 온 성도들에게 임하도록, 목사는 골방에서 금식하며 기도하기 바란다.
파손된 예배당에 가마니로 벽을 만들어 예배드리는 광경,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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