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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나눔

프로테스탄트, 저항하는 교회

by 농자천하/ 2016. 8. 22.

저항하는 교회, 저항하지 않는 교회

 

/ 2016.06.11

 

뉴스앤조이

 

- 한국교회는 무엇을 회복해야 하는가…다시 '프로테스탄트'를 생각하다

 

종교개혁, 저항의 본질

 

(전략)


종교개혁의 본질은 무엇일까. 흔히 카톨릭 교회가 개신교를 자신들의 한 분파로 간주하기 위한 비하적 표현으로 개신교회를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로 부르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프로테스탄트의 본의미인 저항, 'Protestatio'는 결코 비하하는 개념에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 종교개혁의 핵심으로, 더 나아가 교회의 핵심으로 발전된다.


저항이 교회의 본질이란 명제에서 우리는 무엇으로부터의 저항인지 그 함축된 의미를 숙고할 필요가 생긴다. 교회는 본질적으로 세속의 모든 이교적 가치로부터 저항한다. 이때 말하는 이교적 가치엔 기복신앙과 함께 현세주의에 뼛속까지 물들어 있는 속물근성까지 포함한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본령과 위배되는 모든 부조리와 모순에 저항한다. 그러한 저항의 저변에는 인간을 인간답지 못하게 만드는 황폐한 사회구조, 공동체 정신 말살에 대한 저항 또한 예외가 될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언급되어야 할 교회의 저항은 사실 하나의 테마에 집중하게 된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를 받아들이는 자녀로서의 인간다움, 그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회복하기 위해 이를 가로막는 사회적, 현상적, 실존적인 부조리에 맞서는 저항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요, 프로테스탄트의 본질이다.


(하략)


원글 읽기 : http://m.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03982





나는 저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나는 해체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나는 개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나는 부정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루터 :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 / Ecclesia semper reformanda!

칼뱅 : 개혁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 / Ecclesia reformata et semper reformanda!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언제까지 저항만 할 것인가?'

하지만 저항(Nein!)이 정체성이 되지 않으면 쓰나미 같은 바알을 거슬러 나를 세울 수 없음이다.

히브리 야훼 신앙의 일종의 딜렘마!

갈릴리 예수님이 긍정의 화신으로 보이는가, 부정/저항의 화신으로 보이는가...에 달렸음?

그래서 어린아이와 같은 성서읽기가 필요함...


'예수님의 유머'인가? 하는 책을 쓴 어느 서방의 목사가 그 책을 쓰게 된 경위,

어느날 거실에서 평소처럼 소리를 내어 마태복음을 읽고 있었다.

(마 7:3-4) “너는 어떻게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제 눈 속에 들어 있는 들보는 못 깨닫냐?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도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에게 '네 눈의 티를 빼내어 주겠다.' 하냐?”

그런데 곁에서 혼자 놀고 있던 손자가 어이없다며 갑자기 깔깔대며 웃더라는 것...

연유를 물으니 아이는 그 내용을 말 그대로 알아들었던 것,


자고로 성서는 그렇게 읽어야 해!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