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農牧의 농촌살이/2020년

그리스도, 나의 구세주 39

by 농민만세 2020. 9. 29.

2020/09/27/주일예배/한마음교회


성서본문 : (히브리서 12,1-13)
설교제목 : “ 그리스도, 나의 구세주 -39 ”



/시작

(1) 우리를 살리는 질문 하나!

㉠한국 개신교 선교역사 1백 년이 넘는 동안, 다음과 같이 너무나 당연한 질문이 없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기함을 하게 된다. “구원을 받았다? 그러면, 그 다음은?” “십자가 은혜로 죄씻음을 받았다? 그러면, 그 다음은?” “하늘의 복을 받았다? 그러면, 그 다음은?”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 그러면, 그 다음은?” 그 다음은? 무엇을 어떻게 하고 살지?

㉡믿는다고 하는지 수십 년인데, 아직도 ‘구원 받은 줄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러고만 있으니 히브리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히 1,12) “시간으로 보면, 여러분은 이미 교사가 되었어야 할 터인데, 하느님의 말씀의 초보적 원리를 남들에게서 배워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는 것이 말이 되는 것입니까?)”

(2) 사실 우리끼리 얘기지만, ‘구원 받은 줄 믿습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된 줄 믿습니다(...)’라고 자꾸 말하는 의도는 그 말줄임표 안에 숨어 있다. ‘그러니 헌금 많이 내고 더 큰 복을 받으시오’ 이 따위짓을 염치도 없이 해온 게 6.25 한국전쟁 이후 기도원식 부흥회 운동이다. 숱한 무속적 사이비 이단이 여기에서 나왔다. “하늘 은총을 입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 그러면, 그 다음은?” 이에 대하여 성서에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있는가. 바울서신만 보아도 그 걸 말하는 분량이 거의 절반 이상이 아닌가.


/펼침

(1) 교회 가지마, 코로나 걸려!?

㉠우리 갈릴리 예수교, 갈릴리의 그리스도 예수님교, 갈릴리 메시야교, 이룸교 아닌 따름교, 기도교 아닌 본받음교는 바로 그 당연한 질문에 대해 계속해서 우리/나 자신에게 먼저 이야기하기 위해 성서전체를 읽고 또 읽는다. 그리고 급변하고 있는 세대의 언어로 지속하여 번역하며 세상을 향해 말을 건다. 이것이 그리스도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이다.

㉡그런데 요즘 코로나19시대에 복음전파는 더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신천지라는 사이비 이단만이 아니라, 전狂훈 마귀자식의 사랑제일교회 덕분에 이제는 ‘교회’ 소리만 나오면 다들 머리를 흔들고 진저리를 치는 시대를 맞았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이미 20년 전에 지역사회로부터 ‘도둑놈의 교회’ ‘ㅆㅂ놈의 교회’라는 말을 듣고 있었다. 우리는 이것을 바꾸려고 정말이지 최,선,을, 다하며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저 ‘만희교’ 것들과 ‘전 마귀’ 떼거리로 인해 이게 지금 다시 시작된 것을 본다. 주일아침, 교회 차를 기다리고 있는 권사님들한테 마을 사람들이 그런다. “코로나 걸리려고, 교회는 왜가?” 성경가방을 메고 교회당에 오는 길에 주민들이 그런다. “교회 가지마! 코로나 걸려!!” 아이고, 젠장. 박수!

(2) 코로나 좀 고쳐봐!

㉠궁금한 거 있지 않나? 전 세계에 기독교 인구가 얼마이고 또 기적을 믿는다느니 자신들도 그걸 한다고 하던 이가 몇인가? 우리나라만해도 그동안 그런 자들이 도대체 몇 명이었나? 그런데 어째서 그 자들은 조용할까? 요즘 그 자들은 다 어디로 갔나? 코로나 바이러스쯤이야 기도하고 안수해서 낫게 했다는 말이 없나? ‘전 마귀 사탄’이 바로 그 대표자이다.

㉡광화문 불법 집회에 나와도 코로나19 걸리지 않는다고 대놓고 기망(欺罔)했다. 그리고 정작 자신은 코로나에 걸릴까봐 집회 끝나자 마자 몰래 개인 병원으로 달려가서 검사받고 감염 확진자가 되었다. 물론 그 병원은 두 주간 폐쇄되었고 온 나라에 이 놈들이 끼친 경제적 손실이 몇 조 원이나 된다고 한다. 하지만 이래 놓고도 되레 정부의 탄압이란다. 그 교인들은 ‘그래도 우리 목사님을 믿는다’고 한다.

(3) 우리의 갈릴리 이야기

㉠‘예수 믿는다고? 그러면, 그 다음은??’ 그러니 교회당에 열심히 모여 기도하고 헌금 바쳐서 복을 더 받자? 아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자식으로 살기 위해 주님을 따라 흩어지자! 이런 이유로, 우리는 ‘그 예수가 바울과 사도들과 초기교회와 원시교회 공동체와 순교자들이 알고 있던 그 예수인가?’를 끊임없이 묻는다. 그리고 그들이 온 맘과 삶을 다해 본받고 따르고 선언하며 살았던 흔적들을 찾고 또 찾아 본다. 그리고 지금 여기 우리 자신을 생각한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이웃들을 주님의 눈으로 본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갈릴리 그 예수의 이야기’가 과연 오늘과 내일의 모든 이웃들을 구원하는 이야기인가? 왜 그런가?를 묻고 또 묻는다. 그리고 여기에서 말하는 그 ‘구원’이라는 것이 ‘참 사람됨의 상실로부터 인간성의 회복과 그 이후의 삶’이라고 말하고 있는 성서 전체를 통시적으로 보면서 오늘 우리의 생생한 삶의 언어로 이야기하게 되기를 희망한다. 바로 여기에 이런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옵는 주 예수님의 영이 계시옵길 삼가 청하고 또 간청한다.


/갈무리

(0) (히 12,1-2; 12-13) “이렇게 구름 같이 수많은 증인이 둘러싸고 있으니, 우리도 갖가지 무거운 짐과 얽매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우리 앞에 놓인 달음질을 참으면서 달려갑시다.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봅시다. 그는 자기 앞에 놓여 있는 기쁨을 내다보고서, 부끄러움을 마음에 두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의 보좌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나른한 손과 힘 빠진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똑바로 걸으십시오. 그래서 절름거리는 다리로 하여금 삐지 않게 하고, 오히려 낫게 하십시오.”

 



<從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