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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 칼럼]

[한마음 칼럼] 나는 왜 농목으로 사는가? 74

by 농자천하/ 2021. 2. 20.

 

한마음 칼럼 : “농목으로 사는 이유”

협동조합 설립을 완료하였지만, 협동조합에서 가장 중요한 ‘협동조합의 필요성과 정신 그리고 그 비전’을 조합원들이 제대로 공유했던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교인들이 무언가 부족한 면이 있다는 말도 아니다. 사실 지금까지 협동조합을 해 온 이들 대부분이 그렇게 시작했고 또 그런 이유로 실패하고 있을 것이다.

그만큼 협동조합 운동은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것이었다. 무슨 일이든 그 사회적 필요성을 남보다 앞서 파악하고 실천해 보려는 선구자들은 있기 마련이다. (요즘 들어서야 대두되고 있는 ‘사회적 농업’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그 운동에 함께 하는 동지들을 만나지 못하고 대부분이 고군분투하다가 지쳐서 실패하고 만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지 않은가. 그렇게 앞선 이들을 통해서 점차 널리 알려지고 공유되면서 그제야 제대로 실천하고 열매를 거두는 이들이 나오는 법이니까.

그래도 농촌교회 하나 함께 살려보자고 끊임없이 시도하고 도전하는 나를 신뢰해 주는 장로님들과 교우님들이 마음을 모아 얼마간의 출자금을 맡겨 주셔서 그나마 가능했던 일이다. 그리고 우리는 2012년부터 시작했던 ‘공동농사’의 경험을 살려 몇 가지 우리 협동조합이 할 수 있는 주 사업들을 모색하였다. 그것은 공동농장과 가족형 체험농장이었다.

하지만 내게는 한 가지 분명한 원칙이 있었다. 그것은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농촌교회에 또 다른 부담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오직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으로 하겠다는 결심이었다. 아닌 말로 목사들은 교인들의 손으로 자신의 목회적 비전 아닌 욕망을 달성하려는 함정에 빠지기 쉽다.

물론 우리의 꿈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함께 양생(養生)하며 살아가는 예수님 공동체를 일구어 지역사회와 소통하며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닦아내는 일이다. 하지만 자신은 손가락만 움직이며 교회를 부흥시키겠다는 것은 더 이상은 있어서 안 되는 일이다. 앞장서서 실천하고 앞서 땀 흘리기를 주저하지 않는 솔선수범을 넘어서, 나는 지난 우리의 한국교회 역사에서 거의 아무도 주시하지 않는 ‘조사(助事)님’들의 이름도 빛도 없는 활동을 참으로 많이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들은 사실 전부가 한국교회에 목사가 태부족하던 시절의 농촌교회를 받들던 이들이었다. 목사들은 자전거를 타거나 수십 리를 걸어서 농촌교회들을 한 주에 한 번씩 순회 방문을 하며 설교하고 성례식(세례, 성찬)을 집전했다. 그 외의 예배들 곧 주일 저녁예배, 수요 기도회, 금요 구역예배, 새벽 기도회 그리고 주일학교를 인도하며 교회를 지켜낸 이들은 그나마 문자해독이 가능하여 성서를 읽을 수 있어서, ‘조사’로 임명을 받은 그 교회의 집사나 장로였다.

그들은 분명 목회자였지만 생계형 농사꾼이었고, 그렇게 얻은 적은 소득을 나누어 교회 아이들을 가르치고 방문하는 담당 목사의 사례비를 떠맡은 분들이었다. /계속 (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