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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 칼럼]

[한마음 칼럼] 나는 왜 농목으로 사는가? 79

by 농자천하/ 2021. 3. 27.

 

한마음 칼럼 : “농목으로 사는 이유”

하지만 그렇게 도저히 어쩔 수 없는 구조적인 상황이 있다고 해서 그냥 손을 놓아버릴 수 있는 일인가? 다른 이도 아닌 ‘목사들’이? 더구나 우리의 그리스도이신 주님의 교회를? 남들은 어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나는 한 사람의 목사로서 결단코 그럴 수는 없다고 여기며 지금껏 살아왔다.

열매는커녕 새순조차 제대로 나올지도 알 수 없는 처지여도 말이다. 사실 이는 전국의 수많은 농촌교회의 현실이다. 그리고 농촌교회들이 이렇게 인적 물적 자원이 턱없이 부족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그 많던 교인들이 도시로 이주하였기 때문이다. 그처럼 농촌을 떠나는 가장 큰 이유는 단 한 가지이다. 농촌 지역에는 굳이 도시로 떠날 필요가 없을 만큼의 삶의 희망도 또 가족을 부양할 무슨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농촌 지역에서도 최소한의 가정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경제활동이 가능하도록 국가 차원에서도 많은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역부족이라는 것은 우리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런 사회적 상황에 더없이 필요한 것이 '주민들의 자치와 협동'이라는 사실도 역시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쯤에서 우리가 늘 하는 말이 있다. “그런데 그 소는 누가 키우고?!” 나는 한 사람의 농촌 목사로서 바로 이 일에 전국의 농촌교회가 그 목회자들과 함께 깨어나기를 지금도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최소한 자신의 복음으로 자신의 지역사회와 소통하려는 가장 기본적인 선교적 사고와 자세를 갖고 실천하려는 일은 교회의 최고 존재 이유 아닌가.

사도 바울처럼 속절없이 자신은 ‘세상에 빚진 자’라는 애타는 열망이 어째서 오늘날의 교회와 목회자들에게서는 볼 수 없을까? 자신이 먼저 알게 되었고 은혜를 입어 누리고 있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복음을 세상에 전해야 하는 엄청난 채무에 눌려 사는 것이야말로 예수님의 복음을 참으로 체험한 목사의 모습인데.

2015년 태안군 농업인대학의 종강을 앞두고 동기 귀농인들에게 이런 제안을 하였다. “농촌을 찾아오는 귀농 귀촌인들은 누구나 고군분투해야 하고 숱한 시행착오를 겪는다. 우리가 서로 돕고 이해하면서 자신의 경험들을 서로 나누고 격려하는 모임을 만들자. 단순한 친교 모임도 좋고 가능하다면 공통의 관심 범위 안에서 유기적인 협업으로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는 협동조합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이에 선뜻 동의하는 동기생들이 우리 교회당에서 첫 번째 모임을 했고, 나는 기꺼이 우리 마을 식당에서 소박한 한 끼 음식을 대접했다. 그리고 이후 모임은 정례화되어 매주 한 번씩 회원들의 농장을 방문하여 서로의 고충을 나누는 유익한 모임으로 무르익었다. 그리고 우리는 ‘태안군귀농협의회’를 조직하였고 나는 모임의 온갖 실무들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사무국장’직을 자원하였다.

그리고 충남도 농업기술원의 인가로 ‘사단법인’을 공식 출범시켰다. 대단히 힘들었지만 큰 경험이었다. /계속 (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