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음 칼럼 : “농목으로 사는 이유”
하지만 ‘가화만사성’이라 하던가. 한시도 평온하지 않은 교회 상황에 나는 소진되고 있었기에 그나마 주말 하루를 또 교회 아이들과 ‘자연탐사반’을 운영할 여력이 없었다. 교인 중 스스로 우두머리라고 여기는 자만심으로 자신도 교회도 망치는 이들이 구역마다 한두 명씩 있다면...? 그런 이가 한 사람만 있어도 목회자들이 얼마나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지쳐 버리는지. 담임목사가 한 사람의 목회자로서 성서를 연구하고 기도하며 주님의 양 떼를 돌보는 일에 성심을 다하는 본연의 목회 사역에 전념할 수 있는 그런 교회를 사실 얼마나 만나기 어려운지.
목사로서 내가 꿈꾸는 그런 교회는 줄곧 성장하는 생명력을 가진 교회로서 지역사회에서 이미 존중을 받고 있는 교회이다. 교회의 영이신 성령께서 그 교회의 구성원들에게 어찌 충만히 임하시지 않겠는가. 하지만 어떤 교회는 거의 단 한 번도 스스로 성장하지 못하고 주님께서 보내주시는 종들과 그 가정을 건전지처럼 소모하는 일을 수십 년 내내 반복하기도 하니,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그처럼 쓸데없이 겪어야 했던 온갖 어이없는 일들에 거의 매일 시달리면서 ‘그렇게 성장하는 교회가 과연 될 수는 있는지’ 매 순간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모든 일을 참아내는 것만으로도 영육이 소진되던 나날이었기에 매일 ‘배터리 방전되듯’ 하던 영력을 마치 이미 바닥난 우물을 파내고 또 파내듯 몸부림을 치며 견뎌 나가야 했다.
더구나 그때는 이미 총회의 ‘비자립교회 지원정책’이 바뀌어 그나마 우리 교회 정도의 명목상 자립교회들은 그 어떤 지원금도 받을 수 없게 되어 그야말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이런 고군분투의 상황은 사실 현재도 계속되고 있으니 그야말로 협력자가 더없이 절실하고 또 절실하다. 그래서 해외 선교사 보내듯 농어촌 선교사를 좀 보내 달라고 기회 있는 대로 이야기해 보았지만, 누구도 귀 기울이는 이는 없다.
물론 그렇게 많은 고민을 하며 수없이 기획하고 또 포기했던 경험은 헛된 일이 아니었다. 더욱 발전된 ‘면 소재지 농촌 마을 체험 프로그램’을 창의적으로 설계해 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다음 해에 우리 협동조합이 지원한 ‘사회적기업육성사업’에 선정된 바탕이 되었다.
지금 나는 지난 2015년 시점의 일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 당시 나는 이미 이야기한 대로 협동조합, 본격적인 영농작업, 농업인대학 수강과 갈릴리박사원의 세미나 수업 등을 한꺼번에 감당하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농사일은 엉망이 되었고 거의 매일 수면 부족에 시달렸다. 그렇다고 해서 목회자로서의 기본적인 직무들 곧 예배와 설교 준비 그리고 성서연구와 기도(도고) 또한 결코 소홀히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가을이 되어 태안 농업인대학 종강이 가까워졌다. 나는 동기생 귀농인들에게 한 가지 일을 제안했다. /계속 (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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