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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나눔

일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권력 그리고 기독교의 하나님 타령,,, 아이고

by 농민만세 2021.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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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굴레’라는 책을 읽었다. 일본인의 시선도, 일본에 피해를 입은 동아시아인의 시선도 아닌 점령국 미국인의 시선으로, 그것도 오랜 기간 일본에서 생활하며 얻은 생생한 체험으로 얻은 시선으로 현재 일본이 딛고 있는 문제점을 파헤친 글이다. 근래 과거의 역사로부터 현재의 문제점을 이보다 잘 분석한 책을 본 적이 없다.

일본의 역사는 한마디로 ‘권력의 무책임성’으로 요약된다고 한다. 일본 역사에 딱 한번의 시기만 제외하고, 토쿠가와 막부 시대.

토쿠가와 시대 이전의 일본은 천황이 친정을 하지 못하고 실질적인 권력을 가지지 못했는데, 모든 행위가 천황의 이름 하에 행해졌다. 고대 일본은 황후가인 소가씨가 대부분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고, 어쩌다 천황가가 친정을 할 때도 천황의 아버지가 일찍 아들에게 양위하고 상황으로 섭정하면서 권력을 행사했다. 심지어 쇼토쿠 황태자는 황태자 시절에 섭정을 했다. 권력을 휘두르는 자와 그것을 책임지는 자가 달랐다.

이것을 종식시킨 자가 토쿠가와 이에야스였다. 천황은 종교적인 상징으로만 남고 모든 권력행위를 쇼군의 명의로 했다. 가장 큰 권력 행위였던 다이묘의 임명과 외교행위를 자신의 이름으로 직접 행하기 시작했다. 조선 등 외국과의 외교도 쇼군의 명의로 하면서 천황의 존재로 인한 외교적 문제를 회피할 수 있었다.

문제는 메이지 유신 이후였다. 인민의 혁명으로 근대화된 것이 아니라 사무라이들이 천황의 친정을 명분으로 근대화한 것이기 때문에 모든 권력의 원천과 권력 행위가 천황으로부터 연유한 것처럼 만들었다. 그리고 사실상의 권력은 메이지 유신의 주역이었던 몇몇 번의 사무라이들이 행사했다. 그래도 이들은 나름대로 책임의식이 있었다. 문제는 러일전쟁 이후로 실질적으로 일본을 강국으로 이끈 군부에 있었다.

군부는 이제 기득권이 된 유신의 주역과 그 관료들이 천황의 이름을 팔아 책임지지 않는 권력을 휘두르는 것을 용인할 수 없었다. 군부가 점차 권력화하고 나이먹은 유신의 주역들을 무력화하기 시작했지만 이들은 이제 이 정치권력자를 허울로 삼아 책임없는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 결과는 폭주로 나타났다. 관동군이 내각의 반대 하에 승인도 없이 시작한 만주국 건국, 중일전쟁의 시작, 진주만 폭격이 모두 이런 군부의 폭주로 인한 것이었고 이런 중요한 결정에 아무도 책임질 사람이 없었다. 메이지 천황의 아들인 다이쇼는 지능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었고 이때부터 이미 천황의 권력은 허울 뿐으로 실질적인 권력은 유신의 주역으로 완전히 넘어갔고, 히로히토 시절에는 유신의 주역의 권력도 허울이 되었다. 메이지 시절보다 권력의 책임성 문제가 더 악화되었다.

미군 점령부터 지금까지 일본의 천황은 일본의 상징 천황이 아니고 미국이다. 일본의 정치인들은 외교와 군사 문제를 미국에 내맡기고 내정은 관료에 내맡긴 채 책임없는 권력을 다시 휘두르기 시작했다. 점령자를 사실상의 천황으로 모시면서 일본인 천황을 숭배하자는 일본의 극우는 정신분열증에 걸릴 수 밖에 없다. 전쟁할 수 있는 나라, 천황 권력의 부활은 자신의 책임없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레토릭일 뿐이다. 전쟁할 수 있는 나라라는 목표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이 정해준 것이다.

경제와 복지 등 내정마저 관료에 내맡긴 채 책임없는 권력을 휘두르던 자들이 아베를 통해 관료의 자율권을 빼앗아오자 일본은 급격히 몰락하기 시작했다. 사회를 책임질 사람이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이다. 인사권, 예산권을 총리 직속 내각실에 빼앗긴 관료들은 이제 최소한의 책임도 질 필요가 없어졌다. 후쿠시마 사태와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에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일본의 모습을 본다.

하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