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news.v.daum.net/v/20210509093605761?x_trkm=t
"아이들 존중했더니 교실에서 말화살 싹 사라졌어요"
'공감대화로 교육 변화' 김선희 선생님
전부터 상담 잘하는 교사였지만
감정노동으로 서서히 지쳐가다
상대 마음 존중 '공감대화' 안 뒤
"젖과 꿀의 푸른초원 같은 교실 돼"
말썽쟁이 행동에도 야단치는 대신
'무슨 사정인지 알고 싶네' 물어
따뜻한 분위기에 아이들도 변화
"존중받는 만큼 아이도 품격 지켜"
“아이들을 각각 하나의 존재라고 생각하면 그 존재가 가진 모든 역동성이 다 옳은 거잖아요. 그런 시각으로 상담하고부터는 전혀 피곤하지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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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급 분위기를 “젖과 꿀이 흐르는 푸른 초장 같다”고 표현했는데 어떤 모습일까 되게 궁금했어요.
“서로 격려하고 자기들끼리 도와주고 그랬어요. 그런 모습을 떠올리면 지금도 뭉클해요. 어른들에게 존중받고 공감받는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공간에 얼마나 힘찬 평화가 생기는지를 봤어요. 얼마 전 한 아이가 ‘선생님은 모든 아이들의 손을 잡고 간다’고 제게 편지를 썼어요. 사실 제가 모든 아이들에게 똑같은 시간을 할애하지는 않아요. 예를 들어 에이디에이치디(ADHD,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가 있어 보이는 친구하고는 거의 매일 대화를 하다시피 했지만, 어떤 아이는 한 학기에 한번 정도밖에 깊은 얘기를 못 했어요. 그런데도 아이들은 자기들이 모두 내 손을 잡았다고 느끼더라고요. 그건 친구를 통해서 자신의 자유를 느끼기 때문이에요. 자기들이 보기엔 엉망진창인 아이가 교사에게 존중받는 것을 보면서 어떤 일을 해도 선생님이 나의 존재를 뿌리치지 않는다는 안전한 느낌을 아이들이 갖게 되는 거죠. 일벌백계가 아니라 한 아이를 존중함으로써 100명의 아이들이 다 자신이 존중받았다고 느끼는 거죠. 예전에는 개인 면담으로 1년 동안에 언제 이 많은 아이들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는데 마음으로 아이들과 대화를 하면 일파만파인 거 같아요.”
―이른바 부적응 아이 한두명을 잘 지도해서 학교생활에 적응하게 만드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학급 전체를 협력적이고 상생하는 분위기로 만드는 것은 대단한 일이죠. 아이들 전체에게 신뢰받는 비결이 뭐예요?
“인간 존중에 대한 시각을 가지면 아이들에게 함부로 할 수가 없어요. ‘너, 왜 엎드려 자?’라는 식의 말을 할 수 없잖아요. 대신 아이의 등을 토닥토닥하고 귓가에 대고 ‘오늘 많이 힘드니?’라고 묻죠. 그러면 아이들이 ‘어? 이상하다’며 저를 관찰하는 거죠. 보통 아이들이 친구한테 미운 말을 하는 것은 ‘난 쟤가 떠들어서 미워’가 아니에요. 오히려 ‘쟤가 떠드는 것 때문에 선생님이 흥분할 거 같아. 분위기 나빠질 거 같아. 그러니 야, 좀 조용히 해 이 새끼야’ 이렇게 되는 거거든요. 그런데 떠들거나 주변을 불편하게 하는 아이에게 선생님이 ‘거기 무슨 일이 있니? 무슨 사정이 있니? 좀 소란한 거 같은데 무슨 일인지 좀 알고 싶네’ 이렇게 말을 하면 아이들은 그 언어가 얼마나 안전하고 평화로운지 느끼잖아요. 그러면 그걸 보고 있는 사람도 치유를 받죠. 이런 편안함은 아이들한테 바로 스며드는 거 같아요. 그래서 몇달이 지나니까 누군가 문제 행동을 했을 때도 아이들이 그 애에게 말화살을 쏘는 걸 별로 못 봤어요. 일단 지켜보고 많이 불편하면 ‘야, 선생님이 지금 기다리신다. 너, 무슨 일 있어?’ 이렇게 서로에게 묻더라고요.”
―애들이 떠들어도 차분하고 조용하게 ‘너 무슨 사정 있니’라고 묻는 것은 어떻게 보면 무른 행동이잖아요. 그러면 아이들이 얕잡아보고 더 난삽해지지는 않아요?
“그렇게 걱정들을 하는데 저는 학기 초에 아이들과 일대일로 꼭 관계를 맺어요. 그렇게 해서 아이들이 ‘이 선생님이 나를 한 존재로 인정해준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오히려 아이들이 저를 보호해주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지난해 중2 담임을 몇년 만에 했는데도 하나도 힘들지 않았어요.”
―중2병이라고 할 정도로 그 시기 아이들의 행동이 거친데도요?
“제가 ‘참을 인’자로 버티는 사람이었는데 중학생과 지내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3년 전에 고등학교로 간 거예요, 사실은. 아이들이 다른 데서 억압이 심하니까 조금 여리다 싶은 선생님을 만나면 숙변처럼 그동안 참았던 것을 다 쏟아내거든요. 저로서는 지쳐서, 이제 말이 통하는 고교생들과 지내자는 마음에서 전근했죠.”
―다시 중학교로 돌아왔는데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군요. 2년 동안에 아이들이 변하지는 않았을 텐데요.
“제가 달라진 거죠. 전에는 교사로서 아이를 길러내는 대상이라고 생각하면서 관리하고 장악하면서 가르치려고 했죠. 지금은 내가 좀 앞서 살았으니까 좋은 여러 보기 중에 하나가 되어주자는 생각을 하면서 아이의 존재를 독립적으로 바라보게 됐어요. 그런 마음으로 바꾸고 나니까 아이들이 너무 귀해서 실제로 함부로 대할 수도 없는 거예요. 옆자리에 앉은 동료 대하듯이 말입니다. 동료가 과제를 빨리 안 했더라도 ‘왜? 그거 안 했어요. 지금까지’라고 말하지는 않잖아요. ‘선생님이 뭔 사정이 있었구나’ 생각하죠. 아이들에게도 그 마인드 그대로 대해요. 그렇게 대하니까 아이들로서는 자기를 존중해주는 선생님에게 애기 짓을 하고 싶지 않은 거예요.(웃음) 아이들을 어떻게 상대해주느냐에 따라 자기의 정체성을 그에 맞게 만드는 것 같아요. 굉장히 산만했던 아이가 참 많이 괜찮아지는 것을 자주 지켜봤어요.”
김 교사가 바뀐 것은 공감대화를 소개한 책 <당신이 옳다>와 정혜신, 이명수 두 저자를 2018년 중후반에 만나면서부터였다. 공감대화는 상대방의 감정이나 생각을 평가하거나 판단하면서 충고나 조언(충·조·평·판)을 늘어놓는 대신에 상대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대등한 위치에서 공감을 주고받는 대화법이다. 그때가 마침 학부모 상담 기간이어서 그는 학부모들과의 상담에서 공감대화의 치유 효과를 확인했다. 그러고는 2학기 때부터 아이들에게도 적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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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터뷰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상대해주느냐에 따라 자기의 정체성을 그에 맞게 만드는 것 같아요. 굉장히 산만했던 아이가 참 많이 괜찮아지는 것을 지난해에 지켜봤어요”라고 말했다.
김선희 교사는 지난달 27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상대해주느냐에 따라 자기의 정체성을 그에 맞게 만드는 것 같아요. 굉장히 산만했던 아이가 참 많이 괜찮아지는 것을 지난해에 지켜봤어요”라고 말했다.
“성적 말고 인간 존재로 바라보니
거부·반항하는 아이가 더 멋져
이상주의자란 비판도 받지만
아이들과 함께 행복한 길 갈 것”
―아이들과의 상담을 2018년에 처음한 것은 아니죠?
“네. 오래전부터 상담을 잘한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사실 그것은 저를 갈아넣는 상담이었어요. 철학이 받쳐주지 않는데 상대의 말을 무조건 수용하는 것은 참는 것이거든요. 예를 들어 ‘선생님, 시험은 잘 보고 싶은데 공부는 하기 싫어요’라는 말에 마음속으로는 ‘양심이 없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겉으로는 좋은 말로 답하거든요. 생각의 품이 넓지 않을 때 이런 상담을 하는 것은 아주 피곤한 일이죠. 그러다가 <당신이 옳다>를 만나면서 사람을 대할 때 무엇이 중요한가를 알았죠. 한마디로 인간의 존엄성을 뛰어넘을 수 있는 가치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었어요. 학력지향 사회에서는 제일 중요한 것과 그다음 중요한 것 등등 위계가 있어요. 그래서 ‘얘는 공부는 못해도 인성은 착하니까’라는 식으로 모든 것을 위계 속에 두고 아이들을 바라보죠. 그러나 아이들을 각각 하나의 존재라고 생각을 하면 그 존재가 가진 모든 역동성이 다 옳은 거잖아요. 그런 시각으로 상담하고부터는 전혀 피곤하지가 않아요. 오히려 ‘아, 이 아이가 이렇게 꿈틀대는 마음과 생각을 지녔구나’라는 생각에서 아이들이 거룩한 존재로 느껴지죠. 아이들이 거부나 저항을 하면 할수록 굉장히 멋있게 보여요. ‘어떻게 이렇게까지 다 드러내고 얘기해줄 수 있을까’ ‘나를 정말 신뢰하나 봐’ 싶어서 감사한 마음이 들어요. 저의 존엄도 같이 올라가는 걸 느끼고요.”
학교의 각종 평가에서는 하위
그러나 그는 동료들에게는 대체로 인정받지 못한다. 오히려 “부모도 포기한 아이를 왜 감싸고도느냐. 그렇게 하면 다른 아이와의 형평성이 깨진다” “아이들과 대화하느라 중요한 행정업무를 게을리하는 것 아니냐”는 등의 비판을 받기도 한다.
―아이들과의 대화에 시간을 많이 할애하는 게 현장에서는 비판의 대상이 된다고요?
“저는 쉬는 시간에도 아이들이랑 얘기를 많이 하는데 어떨 때는 ‘한가하게 아이들과 얘기나 하고 있다’라는 눈총을 받죠. 그러나 저는 진짜 배움은 관계 속에서 일어난다고 봐요. 아이들 머리에 문제집을 쑤셔넣는다고 해서 그들 인생이 크게 바뀌지 않거든요. 수업 시간에 우울하거나 친구에게 까칠한 아이들은 지금 분명히 큰 어려움이 있는 거예요. 그러면 깊은 대화는 아니더라도 ‘힘들어 보이던데 이제 좀 괜찮니?’라면서 인간으로서 관계를 조금씩 맺어가는 그런 터치가 있어야 되잖아요. 그런데 지금 학교 현장에는 선생님들이 그럴 시간이 없어요. 수업 마치고 자기 자리로 오면 10분 동안 메신저를 보고 빨리 행정 일을 처리해야 해요. 거기에 빨리 응대를 안 하면 다른 선생님들이 기다리게 되니까 화살이 금방 날아오죠. ‘지금 그럴 때냐. 왜 이렇게 메신저 안 보나 했더니 지금 애랑 수다 떨었어요?’라는 원망을 많이 들었어요. 수다든 깊은 상담이든 아이들하고 대화를 나누는 건 너무나 중요한 일인데 그게 지금의 교육 시스템에서는 잘 안돼요.”
―이상주의자라는 얘기를 듣기도 한다고요?
“네. 많이 듣고 있어요. 이상주의자라는 말은 ‘너는 현실에서 통용될 수 없어’라는 거절의 말이죠. 그래서 엄청 외로운 생활이죠, 사실은.”
―학교의 각종 평가에서도 하위라고요?
“교육 수요자가 점수를 주는 평가는 높지만 성과급 등 학교 내에서 이루어지는 평가에서는 최하위죠.(웃음) 저 같은 마인드를 가진 선생님이 더러 계시는데 다들 마찬가지예요. 이런 분들은 평가를 낮게 받더라도 교육에서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묵묵히 실천하죠. 승진이나 보직에는 연연해하지 않고요. 그러나 학교에서 승진도 하고 인정받는 성공하는 사람이 되고픈 젊은 교사들이 따라 하기는 힘든 생활이죠. 현재의 보상 및 교사 평가 체제에서 어떤 선생이 우대받고 환영받는지를 다 알거든요. 그래서 다른 선생님들한테 ‘당신들도 이렇게 해보세요’라고 할 수 없죠. 그 점이 가장 아쉽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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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상담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어요?
“가평의 한 중학교에서 초임교사로 일할 때 가난해서 굶는 아이, 매 맞는 아이,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 등을 보면서 너무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혼자 힘으로 어떻게 할 수도 없어서 고민하고 있는데 동료 선생님 한분이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라는 단체의 교사모임을 알려주면서 수련회에 같이 가자고 이끌어줬어요. 학창 시절에 제가 만난 훌륭한 선생님들의 뒤를 따르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부터 있었기 때문에 그때부터 ‘㈔좋은교사운동’에 참여했어요. 마음이 아픈 아이들과 물리적으로 폭력을 당하는 아이들에게 관심을 본격적으로 쏟게 된 거죠. 좋은교사운동을 하던 송인수 선생님 등이 2008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만들 때는 처음부터 참여해서 활동했고요. 그때 초등학교에 들어간 큰아이가 학교 가기를 싫어했어요.(웃음) 저는 그때만 해도 공교육은 사람을 살리는 구제기관 중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 생각하고 엄청난 프라이드를 가졌는데 저희 아이가 학교를 안 가고 옆으로 새고 하니까 ‘어, 이것 뭐지’ 하면서 의문을 갖기 시작했죠. 그때부터 교육의 본질에 대해 고민을 하고, 비판적 사고를 하게 됐어요. 큰아이한테 종종 말해요. 엄마가 좋은 사람이 되는 데 네가 많이 기여했다고요.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저는. 우리 아이를 통해서 학교에 얼마나 강압적 요소가 많은지를 제가 잘 알게 됐고, 그 덕에 교사로서 자신감을 갖게 됐거든요.”
지난해 한 학급에서 삼행시 짓기를 했다. 그때 한 아이가 ‘김선희’ 글자에 맞춰 “김선희 선생님께서는/ 선한 영향력으로 학생들을 이끌어주시고/ 희망을 주시며 포기라는 절벽에서 학생들을 구해주십니다”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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