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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문희 (시사IN 한반도 전문 기자)
지난 6월부터 정년 퇴임 이전 6개월의 퇴직휴가 시작되어 좀 쉬어볼까 했더니 바이든 대통령이 유럽을 휘젓기 시작하더군요. 할 수 없이 페이스북 담벼락에 기록하기 시작했지요.
10월20일 북한이 단거리 SLBM 발사를 끝으로 두어달 침묵을 지켜 덩달아 쉬었습니다.
그리고 월요일인 12월27일, <시사저널>에서 시작해 <시사IN>으로 이어져온 시사주간지 기자 인생 32년 여정을 마무리 하는 `퇴임식'이 있었습니다. 물론, 매체를 떠난다 하여 저널리스트로서의 기록하는 일을 그만 두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은 늘 해왔지만 이건 참 공교롭네요. 당일 북한이 김정은 총서기의 사회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4차 전원회의를 개최하였다는군요. 이 소식이 알려진 것은 12월28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서입니다. 하루 전인 27일 당 전원회의가 개최됐다고 보도를 한 것이지요.
물론 12월2일 이미 하순에 열릴 것이라 예고를 한 바 있어 이제나 저제나 하긴했지요.
어쨌건 다시 페이스북 담벼락을 통해 기록을 이어가 볼까 합니다.
북한의 '귀환'이 시작되다
-2021년 말 당 전원회의 의미
올해 북한에 많은 회의가 열렸습니다. 김정일 시대에 대외적으로 공표된 회의가 손을 꼽을 정도였다면 김정은 시대는 갑자기 '회의 공화국'이 된 것 같습니다.
올해 중 열린 다른 회의들은 기억을 못하더라도 지금 평양에서 열리고 있는 당 전원회의는 꼭 지켜보아야 할 것입니다. 북한이 2020년과 2021년 2년에 걸친 실험 끝에 다시 대외관계에서 커다란 방향 전환을 시도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입장에서 명명을 해보자면 가히 '북한의 귀환'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한때 우리 곁에 왔다가 지난 2년 동안은 다른 시공간을 떠돌다 다시 우리 곁으로 다가오려 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 결과가 나오지도 않은 회의의 결론을 미리 얘기하는 것이라 조심스럽고 위험한 측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다른 선택의 길이 있을 것 같지 않아 보입니다. 그래서 그런 선택이 나왔을 때 사전에 이해를 돕기 위한 기록 정도로 여겨 주셨으면 합니다.
'북한의 귀환'이라 했는데 좀더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2018년 2월 북한이 전격적으로 평창올림픽에 참가하기 전야의 상황을 연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17년 11월 경 중국이 북한에 대한 제재를 대폭 강화했지요. 당연히 12월쯤 북측이 찾아와 사정을 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북은 그러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신 1월1일 신년사에서 평창올림픽 참가의 운을 띄운 뒤 2월10일 개막식에 맞춰 전격적으로 대표단을 파견했지요. 2018년 4월의 드라마가 그렇게 시작됐던 것입니다.
중국 의존 생존 모델의 한계
그렇다면 지금이 그때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라는 질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그때와 지금이 같지는 않습니다. 당시는 중국 시진핑 주석의 북한 길들이기 차원의 강경 제재에 대한 반발로 한국행을 택한 것이었다면 지금은 시진핑 정권의 한계를 체감한 뒤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의 측면이 강한 것 같습니다.
<시사IN>지면이나 또 페북에 그동안 관련 내용을 써와 아시는 분들이 꽤 계시리라 생각됩니다만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이 깨진 이후 북한은 대미 협상 노선을 폐기하고 중국 의존적인 생존전략을 택해왔습니다. 2019년 12월 말 지금과 같은 당 전원회의가 열려 내린 결론이 그것이었지요. 당시 대미협상의 지속을 주장하던 리용호 외무상과 리수용 당 국제부장이 숙청되고 친중 강경파 일색으로 물갈이가 됐었지요.
그뒤 북중합작의 콜라보로 진행된 게 바로 2020년 6월16일 남북연락사무소 폭파와 6월17일 하와이에서 열린 폼페이오와 양제츠간의 협상이었지요. 북한이 무력도발로 미국에 충격을 가하면 중국이 등장해 수습해주는 척하며 외교적 이익을 취하는 한편 북한에도 어느 정도 떼어주는 방식이었던 것이지요.
미국 대선에서 북측이 기대했던 트럼프 대신 바이든이 되자 북한은 올해 1월 8차 당대회를 열어 이 노선으로 4년을 더 버티기로 결의를 합니다. 자력갱생 정면 돌파 전략이 바로 그것이지요.
그리고 올해 들어 두차례 같은 시도를 합니다. 첫번째는 지난 4.15 태양절을 중심으로 함경남도 신포에서 원자력 잠수함 진수식과 SLBM 발사, 그 대가로 중국의 대규모 원조를 연동하는 시도였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압박을 받은 시진핑 정부가 약속을 지키지 못합니다. 중국을 과연 믿을 수 있나라는 의구심을 갖기 시작합니다.
화성-8호 발사와 10월6일 설리반 양제츠 회담
9월28일 북한이 발사한 극초음속미사일 화성-8호는 발사한 자신들조차 그 후폭풍을 우려할 정도로 게임체인저급 위력을 평가받았습니다. 10월 초쯤, 분석을 끝낸 미국의 미사일 전문가들이 '경악'을 하다시피 했다고 합니다. 가히 충격이었던 것이지요.
2020년의 사건으로 치자면 멀쩡한 남북연락사무소를 느닷없이 폭파했던 충격까지는 아니더라도 군사적으로는 쇼크를 주는데 성공한 것이지요.
이번에도 중국에서 똑같은 인물이 나섭니다. 바로 양제츠 외교담당 정치국원입니다. 당시 북한의 요망 사항은 2017년 8월의 유엔안보리 대북제재 2371호 중 1년에 약 4억달러어치에 해당하는 석탄 수출만이라도 풀어달라는 것이었지요. 그런 요구사항을 양제츠가 10월6일 취리히에서 제이크 설리반 백악관 안보보좌관을 만나 중국이 주선하는 형태로 제기한 것이지요. 회담이 끝난 후 백악관이 발표한 문장에 그 정황이 잘 드러납니다. "특히 설리반 보좌관은 지구온난화와 핵비확산 등 양국이 공통의 국익을 가진 문제들에 대해 중국이 협력을 조건으로 미국의 양보를 얻어내려는 시도에 반대했다." 이 문장에서 '중국의 협력을 조건으로'라는 것은 북한이 극초음속미사일을 발사해 초긴장 상황이 된 한반도 정세를 중국이 나서서 수습하는 시늉을 하는 것을 얘기하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미국의 양보라는 것은 북한이 석탄 수출을 할 수 있도록 미국이 유엔안보리 제재를 완화하는데 양보를 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2020년 6월17일 하와이에서 폼페이오와의 회담에서 재미봤던 방식을 그대로 써먹으려 한 것이지요. 그러나 '같은 말을 두번 사지 않는다'는 속담을 애용하는 미국이 똑같은 수법에 당한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을 겁니다.
제이크 설리번 보좌관은 미 외교가에서도 영민한 사람으로 정평이 나있는 인물입니다. 그런만큼 북중 군사 콜라보레이션에 대해서도 충분히 대비를 했던 것 같습니다. 바이든 정부의 대응 과정을 보면 나름의 분명한 원칙이 있는 것 같습니다.
즉 과거 오바마 때처럼 북한이 무력도발 하면 오바마 정부 고위급들이 중국에 찾아가 매달리는 식의 짓은 안한다는 것이지요. 금년 3월 알래스카 회동 당시 북한의 무력도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제재완화내지 중국의 대북 지원 필요성이 있다고중국측이 주장 하자 미국측이 단호히 반대했다고 합니다. 중국이 지원하게 되면 북한에 대한 중국 영향력만 커지는 꼴이 되기 때문에 지원을 해도 미국이 하겠다는 것이었지요.
실제로 취리히 회담 이후 미국이 북측과 직접 접촉한 정황이 나타납니다. 그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대화 요구에 침묵으로 일관하던 북한도 중국이 결국 미국의 벽을 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나자 얘기나 들어보자고 만났던 것 같습니다. 10월19일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이 북한과 직접 접촉했다고 공표를 한 바 있지요. 그 직후 외교가에 "미국이 북한과 만나 화이자백신 200만명 접종이 가능한 분량을 지원하겠다고 제안했는데도 북한으로부터 답을 못받아 당황해 하고 있다"는 얘기가 돈 적이 있습니다.
대만을 무기로 한 미국의 압박과 중국의 협조#
바이든 정부의 대북 정책에서 과거 정권과 다른 점은 바로 대만을 무기로 중국을 압박 하는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오바마 정부는 북한이 사고를 치면 중국에 달려가 매달리는 식이었다면 트럼프 정부는 세컨더리보이콧을 동원해 중국으로 하여금 대북 지원에서 손을 떼도록 압박을 가했지요. 중국의 대북지원이라는 퇴로를 차단하고 앞에서는 북한을 포용하여 북에게 다른 선택지가 없게 만든 것이지요.
트럼프가 완력을 사용한다면 바이든 정부는 지능적입니다. 바로 대만 카드의 활용입니다. 금년 4월 북의 무력시위와 중국의 대규모 지원이 맞물리려 하자 4월16일 미일정상회담을 통해 대만에 대한 미일의 군사지원을 이슈화하여 중국의 지원을 중단시킨 게 대표적이지요.
그 뒤로도 미국 고위층의 대만 방문 등을 통해 시진핑 정권의 아킬레스건인 대만 문제를 계속 건드립니다. 또 9월15일의 오커스 발족 등 대만해협과 남중국해에서 압력의 수위를 높여가자 중국 역시 10월1일 국경절을 기해 대만 방공식별구역 내로 중국 전투기들을 대대적으로 보내 일촉즉발의 상황이 빚어집니다. 이런 상황이 10월6일의 설리반- 양제츠 회담을 낳았고 결국 11월15일의 바이든-시진핑 화상정상회담으로 이어졌습니다.
저는 이 회담을 계기로 미중간에 '대만 문제와 북한 문제를 둘러싼 빅딜'이 성립된 것이 아닌가 판단합니다. 미국이 대만에서의 현상변경을 자제하는 대신 중국 역시 북한의 무력도발에 뒷배 노릇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당시 양 정상의 공개된 회의 내용은 온통 대만을 둘러싼 설전 뿐이었지요. 바이든 대통령은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전제로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킬 것을 약속합니다. 이에 대해 시진핑 주석은 대만 독립을 추구하는 시도에는 단호히 대처하겠다고 하면서도 평화로운 방식에 의한 통일을 약속합니다. 즉 대만에 대한 무력통일 운운하는 얘기는 내년 20차 당대회를 통한 3연임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시진핑 주석의 관심사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공개된 내용은 이 정도이지만 그 다음냘 설리반 보좌관에 의해 북한문제가 주요 안건으로 협의됐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즉 11월16일 브루킹스 연구소 주최 화상세미나에서 그는 "미중관계 발전을 지속하기 위한 다음단계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북한문제를 양국간 협력이 필요한 국제현안 중 하나로 꼽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북한의 일련의 미사일 시험을 봤다"며 "북한이 같은 준비가 돼있다면 미국은 선의와 외교로 관여할 준비가 돼있다는 점을 보여왔다"라고 답을 한 것이지요.
즉 미국은 시진핑 주석이 거의 노이로제처럼 반응하는 대만 독립 시도를 자제하는 대신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에 대해서는 중국과의 양국간 협력을 통해 대처함으로서 러면서도중국이 북한의 뒷배 노릇을 못하도록 막겠다는 것이죠. 그 트럼프 정부와는 결은 다르지만 북에 대해 대화의 문호는 열어놓고 있는 것이지요.
11월 중순에 이미 남북 접촉이 시작
북한 입장에서 11월15일의 바이든 시진핑 회담을 봤다면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이미 10월의 취리히 회담을 통해 석탄 수출 관련한 유엔 제재 완화는 물 건너 간 상황입니다. 그리고 이어진 미중 정상회담을 통해 더이상 중국을 통한 생존전략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을 것입니다. 북한이 접하는 중국의 당이나 군의 인사들 생각이 어떻든 최고 지도자인 시진핑이 미국과 맞서 신냉전 상황으로 끌고갈 생각이 없다는 것이 명확해진 것입니다. 즉 하노이 회담이후 2년여를 끌고왔던 중국 의존 생존전략의 종언이자 새로운 대안 마련이 시급해졌습니다.
이미 그 시도는 이루어지고 있었지요. 지난 4월 중국이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김정은 총비서가 중심이 돼 문재인 대통령과 친서를 통한 남북채널을 가동하기 시작했지요. 그리고 9월21일 문재인 대통령이 제76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남북미 3자 또는 4자가 모여 한반도에서의 전쟁이 종료됐음을 함께 선언하자"며 종전선언을 제의합니다.
북한은 3일간 침묵을 지킨 끝에 9월24일 오전 리태성 외무성 부상이 지극히 원론적인 입장에서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으나 그로부터 7시간만에 등장한 김여정은 담화를 통해 그와는 반대의 메시지를 내놨었지요. 종전선언에 대해 흥미있는 제안이자 좋은 발상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9월25일 발표한 두번째 담화에서는 자신들에 대해서만 일방적으로 '도발이라는 막돼먹은 평'을 하지 않고 서로를 존중하고 공정한 태도를 보이면 종전선언, 북남공동연락사무소의 재설치, 북남수뇌상봉도 가능하다고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종전선언에 대한 북의 태도 변화는 사실 중국에 대한 압박 수단으로서의 의미가 더 컸습니다. 10월10일을 목표로한 대중국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남한 카드를 사용하는 차원이었지요. 그리고 그뒤 미사일 발사 등 도발이 이어지면서 종전선언 얘기는 쏙 들어가 버립니다.
그런데 지난 12월9일자 <중앙일보>가 그 전날 청와대고위관계자와 통화한 내용을 보도했는데 그 관계자가 "종전선언 관련 한미간에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북한 측과도 소통해왔다"는 사실을 밝혔다고 합니다. 즉 그동안 남북간에 별도의 채널을 통해 종전선언 문제가 협의돼 왔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그 협의가 시작된 시점은 언제일까요. 제가 취재한 바에 의하면 그 시점이 바로 11월 중순입니다. 미중 정상이 대만 문제와 북한 문제간의 빅딜에 암묵적으로 합의해 북한이 더이상 중국 의존 생존전략이 어렵겠다는 판단을 하게 된 그 시점이었던 것입니다.
그때 북이 대안으로 다시 찾은 게 바로 남쪽이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그 만남이후 북한 내부에서 2018년의 평창과 같이 남쪽을 통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기로 결정이 내려진 게 11월 말~12월 초라고 합니다.
김정은 총비서가 당 중앙위 제8기 제5차 정치국 회의를 주재하며 12월 하순 당 전원회의를 예고한 것이 바로 12월1일이니 바로 그 시점에 북한의 새로운 생존 전략의 방향이 잡힌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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