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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신학연구소/[갈릴리 밥상 공동체]

"나의 역사적 예수와 마을 목회 현장 보고" - 제 6기 마을목회자학교 강의안

by 농민만세 2023. 2. 6.

** 이 강의안은 어떤 새로운 것을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나의 치열한 목회 현장에서 고군분투해 온 이야기일 뿐이며, 고백이며, 보고이니 이를 고려하고 읽어주기 바란다.

** 그리고 이는 총 6개 교단의 목회자들(예장 통합, 예장 합동, 예장 합신, 예장 한국총공회/고신측, 감리회, 순복음 등)이 한 자리에 모였던 '마을목회자학교'에서 나눈 내용이다. 말하자면, 보수적 신학 노선에 있는 목회자들과 '나의 역사적 예수'의 다리 놓기였기에 제대로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는 점을 밝혀둔다. 그리고 여기에서 결정적으로 빠진 부분이 있는데, 당연하게도 이 맥락에서만 제대로 알게 되는 <바울의 '십자가 역설'> 그리고 <갈릴리 예수의 '구원'>이다.

** 전체의 내용은, 대체로 2013년 3월 31일(부활주일) 이후의 설교문들을 참고하면 될 것이다. 물론 상업적 이용은 금물이다.(노파심) 인용은 출처를 밝히는 게 기본이다. 요즘 유튭 채널에서 '역사적 예수'라는 타이틀로 강의하는 자들이 많던데, 대부분이 뻘짓들이니 유의하고, <한국기독교연구소>에서 출간한 관련 서적들을 읽으며 스스로 공부하길 바란다. 스터디 모임을 하면 유익할 것이고 또 언젠가 다음에 다시 정리하게 될 것이다만, 생계 노동이 먼저라서리ㅜ,ㅜ



[제6기 마을목회자학교 강의안]

/날짜:2023년 02월 06~07일(1박 2일) /장소:태안휴힐링센터


“ 나의 역사적 예수와 마을목회 현장보고 - 아나케이마이 공동체를 꿈꾼다 ” (누가복음 13,1-35)



/ 시작 : 20년 동안의 목회 현장과 지역사회


(1) 교회의 현실과 혁신의 노력들

1987년 신학교 3학년 휴학중, 산골 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했을 때 이런 기도를 했는데 이것이 평생 사슬이 되었다. “기존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데 헌신하겠습니다?!” 이후 고통 겪는 교회들만 시무하다 남면에 오니 처음 보는 상황이었고 20년 지난 지금까지 교회는 지역사회 교회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 몇 년 전, 나보다 15년 먼저 시무했던 추귀환 목사님의 자서전을 보았는데 그때에도 <지역사회에 고통을 주는 교회>였다. 마을에서 ‘최ㅇㅇ이 교회’ ‘도둑놈의 교회’라는 것도 좋은 말이었다. 주민들은 대놓고 분통을 터뜨렸다. “ㅆㅂ놈의 교회, 우리 마을에서 꺼져!” “하느님이 저런 ㄴㄴ들을 왜 그냥 놔둬?!”

그동안 겪은 일 중에 가장 무서운(?) 장면이 있다. 이런 교회에 왔으니 너도 같은 놈이라며 마을 주민들이 내게 담뱃불을 던지거나, 교회당 현관문을 발로 차며 쌍욕하던 일들이나, 부엌칼을 꺼내 보이며 내 멱살을 잡고 ‘늬 장로, 쥑여버릴 겨!’ 하던 일이 아니다. 그건 예배 때마다 교인들이 눈을 뜨고 대표 기도하는 장로 권사들 은퇴전도사를 바라보고 있던 장면이다. 교회당에 올 때마다 ‘ㅆㅂ놈의 교회’ 소리 듣게 하는 것들이 기도는 또 열심히 하고 있었으니.

그들은 문해력이 없던 마을 주민들 토지를 거듭 사기매매 하고, 별일도 아닌 일로 고소 고발을 일삼는 자들이었다. 더구나 자신들은 하느님께 기도 응답받는 선민이라고 간증(?)하고 다녔다. 면 소재지도 파렴치한 범죄들이 난무하여 마을 공동체는 와해 되어 있었다. 내 앞선 목회자들은 모두 ‘이건 교인도 교회도 아니다’며 갱신을 촉구하였지만, 그분들은 모두 교회당 안에서 멱살 잡혀 끌려나가거나 예배 중 폭행을 당하는 등 편안히 이임한 목회자가 없었다.

연말, 새해, 사순절, 부활절, 성령강림절 등 온갖 명목을 만들어 연중 특별기도회와 새벽기도회를 계속했다. 바울의 십자가 회심을 강하게 촉구했다. 그러자 그들이 엄청난 은혜(?)를 받으며 방언 통성기도를 일삼았다. 확신에 차서 자기들 죄는 예수님 피로 다 씻겨서 복 받는다며, 농사일로 참석하지 못하는 교인들을 정죄하고 온 마을을 다니며 전도(?)했다. 이걸 어찌해야 하는가? 신광은 목사는 일명 ‘아르뱅주의’1)라고 분석하는데, 아울러 나는 일종의 ‘영지주의’와 ‘마즈다이즘 이원론’의 혼합물 또는 '은혜 편리주의'라고 본다.

마을 아이들을 다 모았는데 30여 명이었다. 집에 컴퓨터도 없고 절반 이상이 조손가정이었다. 이전 교회의 전별금 5백만 원으로 악기 OHP 컴퓨터 탁구대 등을 구매하여 공부시키고 간식 먹이고 귀가시키는 지역아동청소년센터를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했다. 호응해 주는 마을 주민들이 찾아와 걱정해 주었다. ‘그것들이 저 목사가 무슨 돈으로 혼자 저러는지 모른다고 마을에서 험담하고 다닌다’는 거였다.

모든 기도회와 무슨 기도 응답, 은사 행위들을 모두 중단시키고 성경을 집중하여 가르쳤다. 찬양 예배는 십자가 속죄 찬송에서 예수님을 드높이는 찬양들로 바꾸었다. 아이들과 함께 만든 밴드가 한몫했다. 찬송학교, 기도학교, 성경 원문 강해를 계속했다. 설교는 철저히 성경 본문설교에 집중하여 ‘목사가 설교로 공격한다’고 저항을 할 수 없게 했다. 꽤나 괴로웠던지 ‘왜 맨날 성경만 얘기하냐?!’고 했다.

예배 갱신을 위해 온갖 시도를 했으나 예배 시간에 막말로 서로 나무라는 게 다반사였다. 말씀의 구체화를 위해 연중 성만찬 예배도 시도해 보았다. 여러 설교 유형들을 연구했는데 설화체 설교, 4페이지 설교, 현상학적 전개식 설교 등이 가장 효과가 좋았다. 교인들은 새로 온 목사가 그들을 모두 내쫓아 주지 않고, 봉변을 당하고 쫓겨날까 봐 그들을 옹호하는 것으로 여겼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당시 나는 바알신상을 찍어 넘어뜨린 벌목공 기드온 곧 ‘여룹바알’을 사명으로 여겼고 나아가 ‘미전도종족 해외 선교사’를 자처해야 했다. 한겨울에도 매일 밤 홀로 강단에 엎드려 지냈다. 고질적인 호흡기 질환과 심한 비염이 생겼고 극심한 심장 부정맥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들은 갑자기 교회당을 이전하자고 벌려 놓고는 뒤로 물러섰다. 중단할 수 없는 공사가 계속되자 본색을 드러냈다. 이전 교회당 매도금 중 자신들 지분(?) 2/3를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신속히 노회유지재단에 완전 귀속시키자 이탈하겠다고 위협하며 시찰회와 온 마을을 시끄럽게 했다. 또 마을 주민들이 응원해 주었다. “그것들 제 발로 나가면 좋은 거니께, 목사님은 흔들리지 마시우!”

결국 그들은 "우덜이 떠나면 교회 제대로 되나 보자"며 자진 이탈해 주었다. 45년만에 하늘 이적이 일어난 것이었다. 남은 교인들은 내가 본격 농사꾼이 되자 수십 년 닫고 있던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지금도 이분들이 가장 고무되는 예수님은: 물 위를 걷고 죽은 이를 살리는 예수님, 병자를 치유하신 예수님,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 우리 기도를 응답하는 예수님이 아니다. ‘종교심’ 없이 즉자적이기만 했던 이분들이 졸지 않고 듣는 예수님은, (히 5,7-10)이다. 가장 낮은 한 소작 농사꾼으로 극심한 가난과 노동으로 어머니를 봉양하시다가, ‘하느님의 진짜 자식들은 저 예루살렘 것들이 아니라 우리 농사꾼들이다’고 온갖 반대와 고초를 겪으시며 가르쳐 모본을 보이신 예수님이다. 너무 느리지만 분명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소박하지만 너무 먼 소망은 이것이었다: <지역사회에 복이 되는 교회>. 교회당 현관에 써붙이고 길가에 간판을 만들어 세웠다. 그로부터 어언 10년뒤 교회당을 이전했을 때 마을 주민들이 이런 말을 했다. “교회가 가까이 오고나서 잠을 푹 자게 됐시유!”


(2) 지역사회 선교를 위해 존재하는 교회

“선교가 교회의 한 기능이 아니라 교회가 선교의 기능이다.”(요하네스 호켄다이크) “교회는 선교적이어야 한다.”(레슬리 뉴비긴) 그렇게 소진하고만 있을 수 없었다. 교회의 본래 사명인 지역사회 선교를 병행했다. (이들에 대한 상세 보고는 다음 기회로)

①상설교회학교-지역아동청소년문화센터 4년 ②남면중학교 밴드 결성, 활동 ③마을어르신학교 ④면 소재지 농활(아웃리치)과 축호 전도 11년 ⑤학부모 성경읽기 모임 ⑥공동농사 2년 ⑦교회 협동조합 법인 ⑧메주 된장 제조 판매 7년 ⑨면내 독거노인 밑반찬돕기 4년 ⑩절임배추 5년 ⑪노인 공동홈, 마을 노인센터 추진 ⑫교회당 건물 구입 이전 ⑬개인 농사 3년, 1천3백 평 ⑭귀농귀촌협의회 사단법인 ⑮귀촌인 농업회사 법인 ⑯사회적 기업가 육성사업 ⑰태안귀농귀촌신문 창간 ⑱면단위 평생학습센터 추진 ⑲식용귀뚜라미 시험사육 ⑳예장귀농귀촌상담소 ㉑귀농인영농조합 법인과 공동가공센터 추진 등이다.

이중 ‘협동조합’은 교회 공동체 회복과 신앙 인격 훈련에 매우 유용한 도구로 본다. ‘우리의 3자(三自)’는 이것이다: 신앙-삶-교회의 자활(自活), 선교적 교회로 자립(自立), 우리 복음을 자전(自傳).


(3) 이상의 노력이 실패한 요인 분석

이같은 지역사회선교 활동들은 교회에 대한 지역사회의 관점 전환과 교인들의 의식 변화에 크게 기여 하였지만, 이들을 모두 실패 곧 ‘지속 가능한 구조’로 발전시키지 못했다. 이유는 자원과 역량의 부족 그리고 교인들의 비협조였다. 지역사회 선교 프로그램들을 상당히 발전시킨 교회들을 정말 많이 연구해 보았다. 그들과 나의 현장이 다른 것은 두 가지였다. 교회와 지역사회의 관계가 원만하여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고, 또 하나는 교인들이 자신들의 일로 여기고 관심을 둘 줄 아는 환경이었다.

첫째로 교회는, 협동 협업과는 정반대의 풍토, 비협조, 변화에 저항, 몹시 인색한 영성이었다. 둘째는 교단적으로, 교역자 생활비 평준화 정책으로 농도교회의 유기적 관계 단절과 농어촌선교에 대한 사명의식 저하였다. 셋째는 주변의 교회와 목회자들은, 이런 벼랑 끝 상황이 자신들과 무관하다거나 다른 교회로 이임하지 뭐하냐는 식이었고 가까이에서는 오히려 질시와 책망을 하기도 했다. 넷째로 지역사회는, 지역 교회들과 교인들의 ‘신행 불일치’를 경멸하고 있었다. ‘다 저 잘났다는 것들’ ‘장로는 천만 원짜리, 권사는 오백만 원짜리’ ‘술집사 담배집사들’. 이것을 목회자들만 모르고 있다. 다섯째 귀농 귀촌인들은, 협동 협업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이들이 많았으나 사단법인을 출범시키자 장악 사사화 욕망들이 충돌했고 ‘성-속 분리 이원론적 비기독교 신앙관’에 절어 있는 기독교인들이 도리어 이해하지 못했다.

나 자신의 가장 큰 요인은 자기 역량의 한계를 알지 못했고 선택과 집중하지 못한 것이었다. 첫째, 적대적인 마을에 더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둘째, 교회 내적인 상황에 시달려 이미 소진되고 있었다. 셋째, 전도 문을 가로막는 이들을 너무 오래 참고 있었다. 넷째, 창업을 하나의 돌파구로 삼아 실패하는 초보 창업자들의 길을 답습했다. 사업 경영에 대한 역량 부족으로 ‘믿음과 소망 비용’을 필요 이상 지출했다. 재무 회계 지식도 거의 없었다. 다섯째, 함께 할 사회적 자원을 얻지 못했다. 여섯째, 교회 일과 많은 농사일, 온갖 모임 조직과 활동 등으로 선택과 집중이 불가능했다. 일곱째, 목적을 따라 사는 삶의 위험과 목적 실현을 위한 기반 확충의 필요에 무지했다. 여덟째, 정신적 육체적 영적인 burn-out을 관리하지 못했다. 아홉째, 농사를 너무 쉽게 여겼다. 열째, 성취보다 과정을 너무 중시했다. 열한째, 수천만 원의 채무 관리에 소홀했다. 현재는? 지난 4년, 현장 노동으로 모두 상환하고(노동현장 보고는 다른 기회에) 다시 영점 상태가 되었다. 남은 건 쓸모 없어 보이는 경험들, 건강 악화, 은퇴 후 무대책이다.

나에게 ‘역사적 예수 탐구’ 곧 역사적 예수 신앙은 필연이었고 이런 상황을 살게 한 유일한 길이다.


/ 펼침 : 역시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


(1) 왜 ‘갈릴리’ 예수인가?

첫째, 한국교회의 고질병 신행 불일치의 탈출구

신행 불일치 그리고 아르뱅주의에 절어있는 교회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의 구원 경험 세 차원 곧 과거 완료 - 현재 진행 - 미래 완료적인 구원경험을 말씀하는 성경을 다시 설교했다.(찬송가 287장) 그것은 ‘하느님의 구원은 단회 완료이지만, 우리의 구원 경험은 결코 절대적이지 않다’는 말씀들이다.

(히 4,1)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벧전 1,5)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하느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느니라.”

(빌 2,12)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고전 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히 6,4-6) “하느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그들이 하느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되게 함이라.”

그동안 우리는 ‘구원, 그 이후’ ‘은혜, 그 이후’에 소홀했다. 그냥 예배 참석이나 기도응답 체험만을 강조하였다. (기도교? 기도 갱신 / 딤전 2,1 - δεησις, προσευχη, εντευξις, ευκαριστια) 정작 복음의 씨앗을 뿌릴 세상 속 신자들의 삶에는 무심했다. 이 현재적 구원은, ‘철저한 도성인신(道成人身)’ 곧 ‘하느님의 완전한 자기 계시’ 예수님을 본받아 따르는 일이라는 성경 말씀들을 계속 설교하고 있다.

예수님의 신성을 표현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요한의 ‘독생자’(μονογενης; 요 1,14; 3,16; 3,18; 요일 4,9) 신학은 오히려 당시 교회의 위협이었던 '영지주의'를 극복하려는 것이었다. 그와 함께 예수님의 인성을 표현하는 바울과 히브리서의 ‘맏아들’(πρωτοτοκος; 롬 8,29; 히 1,6; 그외 '첫 열매' ')을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신다. 우리는 사도들과 초기교회 신자들이 이토록 중시했던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의 기둥 하나를 잊었다는 각성이 필요하다. 요한신학의 '독생자'는 예수님의 부활 승귀/성천 이후 최소 50년이 지난 기록물들이므로, 오히려 바울 공동체를 비롯한 초기/원시 교회공동체들은 요한복음과 서신이 나오기 이전까지는 '맏아들' 예수님을 본받고 따르는 신앙을 지속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둘째, 실용주의 기독교, ‘아르뱅주의’ 내지 '은혜 편리주의'의 극복

그러다가 우리말 성경의 너무나 무서운 오역(誤譯)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오직 믿음’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또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라는 구절들이다. 이들은 전부 ‘δια πιστεως Ιησου Χριστου’ 그러니까 명백하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라고 되어 있었다. 이것을 굳이 ‘여격’으로만 번역하여 읽는 바람에 얼마나 심각한 부작용이 있는가?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나의?) 믿음’이 아니라 ‘예수님<의> 믿음으로’ 칭의 된다!

(롬 8,29) “하느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을 본받음은 자력 구원의 오해가 없게 ‘바늘구멍 사진기’, ‘프리즘’, 호오든의 ‘큰바위 얼굴’로 설명하고 있다. (히 3,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히 12,2-3)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느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우리의 역할은 ‘막연하지 않은 갈릴리 예수님’을 바라봄, 내려섬 뿐으로, 예수님을 본받도록 이끄시는 성령(=예수님의 영)의 인도하심을 극빈자의 심령으로 갈망할 뿐이다.

셋째, 관념과 이론이 아닌 실제의 모본

나에게 실로 절실했던 것은 어떤 목회적 신학적 이론이 아니라 보다 실제적인 이정표를 삼을 모본이었다. 그리고 교회와 세상, 신앙과 삶이라는 이중구조를 교인들의 인격과 실제 삶에서 타파해 내지 못한다면 우리의 복음 전파는 모두 헛것일 수밖에 없다는 위기 경험 때문이었다. 한 사람 바울을 많이 읽고 이야기했는데 자칫 ‘바울교’가 되는 위험이 있었다. 그런데 바울을 넘어서도록 바울이 발견한 예수님, 갈릴리에서 목회하신 예수님이 계시니 얼마나 다행인가!

우리의 신앙이 감상뿐이라거나 우리의 목회 사역이 말이나 이론만이 아니라 진짜 우리의 삶인 거라면, ‘갈릴리 예수님’을 찾게 되고 만나는 일은 필연이라고 본다. 복음서에서 가장 많이 반복하시는 예수님의 육성은 ‘믿으라’ ‘기도하라’가 아니다. “나를 따르라”(Ακολουθει μοι. / 나와 같은 길에 있어라) “나를 따라 오라”(Δευτε οπισω μου)는 말씀이다. 이를 저 열두 제자의 일로만 여겨야 할까? 오래전 어느 유명한 기도원에서는 찬송가 323장,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 3절을 이렇게 바꾸어 부르고 있었다. “멸시 천대 십자가는, 주님 지고 가셨으니?!”

넷째, 교리적인 심각한 문제 : 불완전한 성육신?

‘참 사람이신 예수님’ 곧 ‘예수님의 인성(人性)’에 대해 거의 말하지 않는 한국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며 핵심인 ‘도성인신(道成人身)’ 곧 성육신(成肉身)을 진짜 신앙하는 건가 자문해 본다. 우리가 정말 심각하고 진지하게 경청해야 하는 성경 구절은 완전한 성육신에 대한 이런 말씀들이다.

(요 1,14) “말씀이 육신(육체, σαρξ)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일 2,18-23) “적그리스도가 오리라는 말을 너희가 들은 것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냐?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요일 4,1-3)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느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σαρξ)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느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느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요이 1,7-9) “미혹하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나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σαρξ)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런 자가 적그리스도니, 너희는 스스로 삼가 우리가 일한 것을 잃지 말고 오직 온전한 상을 받으라. 지나쳐 그리스도의 교훈(διδαχη) 안에 거하지 않는 자는 다 하느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그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

(히 5,7-10) “그는 육체(σαρξ)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그 경외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느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느님이요 참 인간이다’는 교회의 신조에 오늘 한국교회는 과연 충실한 것일까? ‘예수님의 인성’을 이리도 소홀히 하는 것은, 하느님 로고스의 성육신을 불완전하게 여기는 불신앙이 되고, 예수님이 하느님의 완전한 자기 계시라는 계시론의 기본을 가벼이 여겨 크나큰 부작용을 만들어낸다.

(요 14,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예수님 이외에 도대체 더 무슨 계시가 필요하고 체험과 확신이 있어야 하는가?

다른 사람들이 전달-전달-전달해 준 것을 그대로 믿는 것처럼 어리석고 위험한 일은 없다. 우리가 받았고 또 전해 들은 것들을 부단히 성서의 말씀들과 또 교회의 신조들과 비교하면서 확인을 거듭해야 한다. 실제로 우리의 구원이시며, 삶과 신앙의 사표(師表; 히 3,1)이신 예수님은 제쳐 두고 어쩌면 ‘예수’라는 하나의 낱말 곧 언어기호를 우리 자신의 신념에 활용하는 건 아닐까? 오늘날 기독교가 겪고 있는 무력함 해결의 실마리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다섯째, AI 시대를 넘어서는 길

최근 빌 게이츠가 투자한 ‘OpenAI’에서 초대형AI의 상용화 버전 ‘ChatGPT’를 공개했는데 두 달만에 사용자 1억 명을 넘기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에세이나 컴퓨터 코드 작성은 기본이고 의사면허시험 합격, MBA 시험도 통과했다. 이미 대학 레포트는 물론 설교도 척척 작성해 준다. 무신 지식 시험 학교 등이 무의미한 세상이 되었다. 이제는 더욱 더 삶과 실천 그리고 따름과 본받음 신앙이 답인 시대이다.


(2) 역사적 예수 찾아가기

예수님의 역사적 실체에 다가서는 데는 안됐지만 ‘부정의 신학’이라는 고통을 피할 수 없다. “나는 돌 안에 있는 형상을 드러낸다.”(레오나르도 다빈치) 예수님 주변의 모든 ‘초자연적인/신화적인 부분들’을 모두 제거 또는 실제화 시켜 본다. ‘그 한 사람’이 남으면 그의 실존적 고뇌, 삶의 목표, 관심사에 집중한다. 자신의 주변과 부대끼며 때로 기뻐하고 노여워하며 또 실망하고 희망했던 그 사람은 누구인가?

그래도 그는 여전히 하느님의 아들이신가? 어떤 이유로 그러한가? 그는 무엇을 희망했고, 무엇에 헌신했고, 어떤 일에 의분하고 또 어떤 일에 고무되었기에 그러한가? 그의 활동 무대인 ‘갈릴리’라는 지역에서 짧은 한 생애를 전부 바쳐 그토록 절실하고 치열하게 그가 하고자 했던 일은 과연 무엇이었나?

그리고 하느님은 어째서 하필이면 ‘이런 사람’으로 도성인신하셨는가? 하느님의 실수나 모자람인가? 아니면 그것이 완전하신 하느님의 뜻/의도인가? 이 사람을 통해서 하느님은 자신의 무엇을 드러내셨는가? 이 사람을 통해서 드러내신 그 의는 무엇인가? 또 그 나라는 이 땅/현세에서 어떻게 작동하는가?

어떤 권력자도 성직자도 아닌 한 비무장의 ‘갈릴리 목수’: 당시 유대 갈릴리 농촌에서 목수는 소작농과 노예의 중간 계층이었다. 헤롯 가와 결탁하여 농토 대부분을 차지한 대제사장들과 그 하수인들을 위해 황무지를 개간, 올리브와 포도 농사를 지었다. 헤롯 안티파스와 그의 도시들을 위해 지독한 세금까지 짊어졌다. 모든 의식주를 자급자족하느라 끝도 없는 육체노동을 해야하는 숙명을 자식에게 대물림했다. 갈릴리 목수는 2~3차 소작농(peasant)이었다. 하비루의 근성을 가진 ‘갈릴리 사람들’은 저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갈릴리 하찮은 불한당 농사꾼들’이었다.

‘그 목수의 아들’ ‘요셉의 아들’ 또는 특별하게도 ‘마리아의 아들 목수’라고 마을 친지들이 잘 알고 있던 한 갈릴리 사람, 야고보와 요셉(요세)과 시몬과 유다와 누이들의 형제, 농사만으로는 생계와 세금 납부가 어려워 마을에서 온갖 농기구와 가구들을 만들고 고쳐주는 일을 하는 신분을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사람. 아주 흔한 이름 ‘예호슈아’로 불린 ‘갈릴리 자급자족 동네 목수 소작 농사꾼’, 친지들에게는 무모하게만 보이던 한 예언자의 모습으로 집을 나선 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 사람, 갈릴리 사람들이 특이하게 매우 격렬히 환호하며 따랐던 그 사람.


(3) 그 갈릴리 사람의 목회는 무엇이었나?

바울의 치열한 고뇌와 그의 목회 현장 로마제국이라는 세계를 두고 그를 말할 수 없듯, 예수님의 실존적 상황과 목회 현장인 갈릴리라는 특정 지역의 형편과 그곳 사람들을 덮어두고 갈릴리 예수님을 말할 수 없다. 그게 예수님을 신화적 인물로 만드는 일이고, 종교개혁자들의 ‘신앙의 현세화’를 역행하는 일이다. ‘그 갈릴리 소작농 목수 예수’를 입체적으로 보면, 그는 자신의 현장/현실에 매우 충실했던 예언 운동가로서, 가장 궁극적인 세상 변혁가이다. 이분은 이미 우리 안에 도래/내재하여 긴박한 혁신(μετανοηω)을 촉구함으로 세상을 전적으로 변혁하시는 하느님 나라를 말과 구체적인 실천으로 선포하신다.

이분은 계속해서 길을 걷는다. 쉴 새 없이 갈릴리 마을과 성읍들을 찾아다닌다. 그리고 그곳의 ‘συναγωγη(건물 아닌 마을 모임)’에 참여하여 하느님 나라의 일을 행동으로 보이신다. 갈릴리 농민들이 크게 호응하였고 그들은 언제나 이분을 에워싼다. 이 한 갈릴리 농사꾼의 활동으로 심각한 위기를 맞은 자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총동원하여 그를 제거하기로 결의한다. 갈릴리와 베뢰아의 지배자 ‘여우’ 헤롯 안티파스가 나섰고, 마침내 대제사장들과 산헤드린이 회의 소집 기본원칙까지 깨면서 모의하고 결행한다.

도대체 이들은 왜 이렇게까지 했던 걸까? 사실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한 갈릴리 농사꾼을 이렇게까지 두려워했을까? 농민들이 많이 따랐으나 갈릴리에서 그 정도의 예언 운동은 흔한 일이었고, 그 결말은 모두 자연 소멸되거나 농민 저항군으로 봉기한들 시리아 총독의 레기온이 처절히 진압해 버릴 텐데, 그들은 왜 그래야만 했던 것일까? 갈릴리 예수님의 무엇이 이들에게 그토록 불온했던 걸까.

예수님의 설교들 곧 하느님 나라 비유들과 주기도문을 보라.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는 너무나 당연히 항상 매우 현세적이다. 땀 냄새 나는 삶의 현장 속에 심기고 뿌려지고 넣어지고 숨어있다. 그리고 싹이 나고 질적 변화를 일으키고 온 재산을 탕진시키고 주변을 해지게 하고 또 아예 터뜨리는 전적 혁신을 일으킨다.

주기도문에서 하느님은 제국의 신들과 달리 예수님의 회중 곧 ‘갈릴리 하찮은 농촌 것들’의 아버지 곧 최고의 ’후견인‘이다. 그 이름의 높임과 나라와 뜻이 ‘땅에서<도>’ 실현되는 것은 놀랍게도 매일 먹는 밥 그리고 일상생활 속의 빚(‘αμαρτια가 아니라, οπειλημα) 탕감이다. 그리고 그것에 반(反)하는 것들의 유혹을 이기고 악에서 구출되어 그것을 전복시키는 실천들이 아버지의 나라요 권능이요 영광이다.

또 예수님의 명백한 ‘자기 사명 선언’도 있다. (눅 4.16-21)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희년)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4) 갈릴리 예수의 제 3의 길? 아나케이마이 공동체가 세상을 전복한다

찌포리스와 티베리야스, 두 개의 대도시를 자신의 수도로 건설한 헤롯 안티파스와 성전 권력을 독점하고 왕 같이 군림하던 대제사장들이 겨우 이 갈릴리 농사꾼 하나를 죽이려고, 모든 수단을 총동원했던 것은 그만큼 그의 길이 저들의 근본을 뒤흔드는 위협이었음을 반증한다.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에 고무된 농민들의 각성과 그 근원을 신속히 제거하지 못하면,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처럼 농부들을 가장 괴롭히는 질긴 생명 확장력으로, 마침내 저들을 대대로 호의호식하게 해 주는 모든 농토를 완전히 망가뜨리고 ‘광야어 방황하는 새떼’를 깃들이게 할 것이다.

이러한 예수님의 길은 예수님의 목회 현장인 당시의 ‘갈릴리’라는 지역적 사회적 정치적 상황을 알려주는 기록물들과 촘촘한 고고학적 발굴 결과와 연구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당시의 갈릴리와 유대 지역은 남녀노소 모두가 치열하게 ‘정치적’이지 않을 수 없던 우리의 일제 침략기에 비교되는 상황이었다. 이에 대해 복음서가 자세히 언급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그들에게는 오랜 일상이었던 때문이고, 또 하나는 그때가 ‘유대 전쟁’ 전후 곧 그런 정황을 기록으로 남길 수 없던 ‘묵시록적 분위기’ 때문이었다.

로마제국은 강력한 군사력을 기반으로 점령지의 시골 마을들까지 하나의 정점 곧 살아있는 신, 황제에 모든 나라/통치와 권세와 영광을 집중시켜 다만 로마시의 번영과 향락만을 위하도록, 치밀한 피라미드 구조를 만들어 하부 계층을 잔혹하게 착즙하는 식민 통치를 지속하고 있었다. 대표적인 최하 기층민이던 갈릴리 농민들이 짊어진 경제 정치 사회 종교적 억압과 착취는 오늘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더구나 유대 갈릴리 지역은 최상층 권력자들에게 가장 곤혹스러운 변방 중 하나였다. 갈릴리는 온갖 종류의 메시야 저항운동이 끝도 없이 일어났고 무력 봉기는 지독하게 계속되었다. 그로부터 매우 ‘적당한’ 거리인 호수 건너편 거라사에 저 유명한 로마 군단(레기온)을 장기 주둔시켜야 했을 정도였다.

이렇게 하루도 평온할 날이 없는 혼란의 현장 한가운데에 우리 갈릴리 예수님이 계신다. 예수님의 적대자들은? 헤롯 안티파스, 헤롯당, 사두개파와 서기관들, 바리새파, 그리고 자학적 절망을 재생산할 수밖에 없던 갈릴리 농민들이었다. 그리고 예수님과 다른 길들은? 엣세네파, 셀롯당, 시카리파, 농민 메시야 운동, 가나안 정화 재현운동들과 하느님의 은혜로 위장시킨 거짓 내세 평화운동들이었다. 이들은 각자 나름의 하느님 나라 도래 메시야 운동들이었고 그 본거지를 갈릴리 광야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우리의 갈릴리 예수님의 길이 아니었다.

그러면 예수님의 제 3의 길은 무엇이었나? 벼랑 끝에서 원망과 낙담으로 사는 게 일이던 갈릴리 농민들과 그들로부터 ‘천벌 받은 자들’로 배제된 이들까지, 하느님 나라의 주인공들로 치유하여 일으켜 세움으로, 약탈 제국의 세계를 그 근원으로부터 대체/전복시키는, 들불처럼 일어나는 갈릴리 마을들의 언약 공동체 회복 곧 ‘ανακειμαι 마을 공동체’2) 운동이었다. 그것은 로마 군단도 진압할 수 없는, 제국의 뿌리를 흔들어 위협하는, 종교 권력자들의 가식을 근본부터 무효화시키는, 오늘날도 곳곳에서 또 우리 안에 존재하는 제국주의를 전복하는, 그래서 가장 근원적이고 급진적인, 하느님 나라 운동이었다.

바울은 가증스러운 악의 제국을 근원적으로 대체하는 이 하느님 왕국 선포 운동에 완전히 매료된다. ‘신의 아들, 세계의 구원자, 평화의 왕, 왕의 왕, 은혜 베푸는 주님, 심판자, 신의 현현, 심지어 온 세상의 대속자’ 등은 전부 그 당시 살아있는 신 로마 황제의 공식 칭호들이었다. 본래 ‘복음’(ευαγγελιον)이라는 말도 황제가 ‘은혜’를 베풀어 자신의 군단을 파견하여 또 한 번의 정복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소식, 피 정복지를 처절히 짓밟고 약탈한 자원으로 로마 시민들의 번영과 향락이 계속될 것이라는 소식이었다.

바울은 그 모든 호칭들을 대담하게도 저 변방 중의 변방 갈릴리의 한 사람에게 모두 헌납하여 공표한다. 황제의 제국 전체를 저 갈릴리 소작농 목수가 전파하고 실천해 보인 하느님 나라로 대체된다는 것을 복음으로 선언한다. 황제가 아니라 저 갈릴리 사람으로 자신을 드러낸 하느님 나라(통치, 세계)가 인류 구원의 길이라는 지상 최고의 ‘역설’(paradox). 바울과 원시 교회 공동체들은 이 변방의 한 갈릴리 소작농 목수가 진정한 신의 아들이라는 이 역설이 또한 구원의 갈림길이라고 자신들의 성경에서 읽어낸다.



/ 갈무리 : ‘이미’와 ‘아직’의 사이에서


(1) 우리가 예수님의 사람들이라면

우리의 갈릴리 주님께서 ‘육체에 계실 때’ 전적으로 집중하신 일, 부활 이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반복 재현해 보이셨고 또 성령(=예수님의 영) 강림으로 확산하기 시작한, 이 ‘ανακειμαι 공동체 세상’을 우리도 끝까지 희망해야 우리가 예수님의 교회인 게 아닐까?

이 일을 위해 우리의 현실에서 ‘아직’ 건재한 인간 약탈 제국주의를, 지금 여기에 ‘이미’ 오셔서 전복하고 계시는 하느님의 구속사(救贖史)에, 더 낮은 자리의 벗들을 찾아내 연대하면서, 서로 사랑 곧 양생(養生)을 일상화하는 마을 만들기 곧 세상 변혁시키기에, 각자의 형편과 현실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끝까지 희망하며 살아내야 하는 게 아닐까?

‘나를 따르라’하시는 예수님을 환호하며 따라나서는 일이 가장 간절한 통성기도의 제목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아마 교인이 현저히 줄어드는 아픔을 겪을 수도 있고 희망하는 만큼의 고통이 동반되겠지만, 그것이 ‘이미’와 ‘아직’이라는 하느님 나라의 역사 속을 살아가는 오늘 우리의 최고 바람이며 사명이라고 여겨야 하지 않을까?

다만 ‘희망하는 용기’(블로흐)를 몸소 보여주신 갈릴리 주님을 바라면서. 그래서 갈릴리 예수님은 나 곧 우리의 유일한 구원이시라고 외치면서! 아직은 사도들과 순교자들의 근처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그래도 갈릴리 예수님을 높여 바라는 ‘인간 구원’이 나와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거라면 그걸로 충분히 찬미할 일이 아닐까?


(2) 참고 : 누가복음 본문 읽기

㉠빌라도의 피 섞은 제물, 여우 헤롯의 위협 : 당시 갈릴리와 거기 계시는 예수님의 단적인 상황

㉡너희도 혁신하지 않으면 / 실로암 망대 사건 / 그러면 찍어 버리소서 : 예수님의 제 3의 길 곧 가장 정치적이나 가장 정치적이지 않고 / 가장 종교적이나 가장 종교적이지 않은 / 가장 긴박한 최우선 과제

㉢진정한 치유는? 사람과 사람의 삶을 혁신하여 종교와 정치를 전복하는 실제적인 겨자씨와 누룩 같은, 한 번 퍼지면 전체를 바꾸어 버리는, 막을 수 없는, 하느님 나라에로 부르시는 성령(=예수의 영)을 받은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람들(=민회인 교회)이 되는 것

㉣(22절) : 예수님의 목회를 한 줄로 요약

㉤바로 그런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힘쓰라!’ 예수님과 상관 없는 길로 가지 말라. 하느님 나라의 파격적인 개방성에 가장 놀랄 것은 바로 너희들이다.

㉥“예루살렘아! 내가 네게로 간다!” (끝)


=== 각주

1) 신광은, <천하무적 아르뱅주의>, 포이에마, 2014. - 한국교회의 나쁜 신학이 판매하는, 쉬워도 너무 쉬운 구원론. 끝없이 추락하는 한국교회 타락의 원인인 ‘아르뱅주의’ 곧 아르미니우스주의식 ‘구원의 확신’ + 칼뱅주의식 ‘성도의 견인’을 제멋대로 결합한 편의주의 신학으로 오늘날 한국교회가 남발하고 있는 현대판 면죄부.

2) 예수님과 유대인들이 왼쪽으로 비스듬히 기대 누워 음식을 나누어 먹는 자세를 복음서에서는 ‘음식을 먹는다’는 것을 ανακειμαι 외에 ανακλινω, αναπιπτω, κατακειμαι, κατακλινω 등으로 그냥 ‘기대 누워’ 또는 ‘기대 앉아’라고 표현한다. 잔치에 온 ‘손님’(마 22,10-11)을 원문에서는 ‘음식을 먹으려고 기대 누워있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복음서는 반복해서 이 독특한 자세를 중요하게 다루어 설명하는데, 이것은 배제, 혐오, 차별, 적의, 경계심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어떤 공동체 구성원들의 공동식사’를 가리킨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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