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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 칼럼]

[封駁/諫諍] 4영리는 가라, 3박자 축복이 왔다

by 농자천하/ 2016. 12. 30.

[封駁/諫諍] 2015.11.23


011 / 4영리는 가라, 3박자 축복이 왔다!?



“엑스플로 74”라는 한국교회사에 거의 전무후무한 일을 기억하는 이가 의외로 적다. 말 그대로 1974년 여름방학 중 오래된 내 기억으로 한 주간이었는지 며칠간이었는지 희미하지만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미국의 빌리 그레이엄 목사를 초청한 한국교회의 대규모 집회가 있었다.

김포 비행장으로 이전한 뒤 남아있던 콘크리트 포장된 비행기 활주로였다. 그늘 한 점 없는 뙤약볕 아래, 교회 선생님들을 따라갔던 나는 중학교 2학년 까까머리였다. 대형 스피커를 통해 까마득히 보이지 않는 강단 위에서 설교하는 빌리 그레이엄 목사와 전담 통역하는 목사의 목소리가 드넓은 광장을 울렸었다. 그 유명하다는 목사님은 무슨 이야기를 할지 어린 마음이었지만 내심 궁금했는데, 그야말로 복음의 핵심이랄 수 있는 내용들이어서 꽤나 고무되었었다.

당시 전담 통역사가 ‘김장환 목사’였고 내 느낌에도 그의 통역이 아주 역동적이었는데, 주변 다른 지방에서 온 어른들이 ‘통역하는 목사님이 더 열정적이고 대단했다’고 평가하는 소리에 ‘왜 그게 인상 깊은 걸까?’하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당시 건축을 마감했던 여의도순복음교회당에 들어갔던 기억이 있고 어느 집회 중에인가 나중에 보니 ‘조영남’가수가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찬양을 특송으로 불렀다. 사회자는 ‘찬양을 아주 잘 하는 청년’이라고 소개했었다.

광장 곳곳에 있던 천막들에서는 “예수의 계절이 오게 하자!”는 구호가 나부꼈고 아마도 그 이후로 C.C.C 곧 ‘한국대학생선교회’가 활성화되기 시작했던 게 아닌가 한다. 그때 쯤 저 유명한 소위 '4영리(靈里)’라는 전도지를 만났다. 그런데 이후에 교회에 처음 나오는 대학생들이 이 전도지를 거의 성서 이상(?) 절대시 하는 걸 보고 의아스러웠었다. 물론 4영리는 <긴급 전도용 메시지>로서는 충분히 인정할 만큼 간결하면서도 전달하려는 내용의 핵심을 찔러든다.

하지만 10단계 성서교재나 이 4영리 전도 메시지만으로 양육된 C.C.C. 학생들이 기존 교회에 제대로 적응을 못하고 나아가 여러 문제들을 일으키기도 했다. 예를 들면 기존 교회는 전도의 긴급함도 모르고 ‘죽어가는 교회’로 치부되었고 심지어 담임목사는 그들에게 '4영리도 모르는 목사’로 취급 받는 어이없는 일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곤 했었다. 아무리 긴급 전도용 메시지라고 하더라도 소위 4영리 그 다음을 이야기하지 않고 가르칠 역량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사도 바울의 선교단이 저 안디옥교회를 비롯한 기존의 교회들과 매우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수레의 두 바퀴의 역할처럼 복음 전파를 했었다는 상식이 무시된 결과였다. 더구나 빌리 그레이엄을 비롯 C.C.C. 김준곤 목사와 같은 우리 개신교회 내의 소위 ‘복음주의자’들의 한계점 곧 무 역사적이며 이원론적인 사고에서 오는 비사회적 내지 반사회적 분위기가 우리의 젊은 세대에게 지나친 영향을 끼쳤다는 점이다. 이는 명백히 비성서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복음이 필연적으로 품고 있는 이 세상에 대한 책임과 사명 그리고 그것을 위해 ‘부르심 받은 공동체/교회’를 (물론 긴급 전도용이므로)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우리 사회와 역사에 대한 그리스도인 공동체/교회의 마땅한 임무들이 언급되지 않은 전도용 메시지를 ‘진짜 복음’이라고 하였니, 그 빈곤함은 실로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이후로 이처럼 ?영리’가 전부라고 하듯이 웬 ?박자 축복’이라는 것이 또 한국교회와 신학교들을 휩쓸어 갔다.

이 얼마나 영악스런 일인가? '4가지 영적 원리’니 뭐니 하는 것 보다야 '3박자 축복’이라니! 4영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그 ?박자 축복’은 한국교회 최고의 인기 상품이었다. 그것은 조용기가 주창한 것으로 성서에는 결단코 나오지 않는 ‘조용기 복음’일 뿐이다. 조용기는 그 성서적 근거로 (요삼 1,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를 제시하였지만, 이는 그야말로 ‘핀셋 성서 읽기’의 전형이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성서 구절들을 핀셋으로 콕 집어 읽고 설교한다는 말이다. 오히려 요한3서는 그런 ‘조류(趙類)’들을 적그리스도로 단언하며 경계하는 내용이니 제발 한 번이라도 좀 그 전체를 읽어보기 바란다. 정작 요즘은 저 '4영리’가 절실하도록 서글픈 한국교회이다. (聾)

지거 쾨더(Sieger Kod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