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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 칼럼]

지렁이 기도!? 글쎄, 그런데 그게~?

by 농자천하/ 2017. 12. 12.

아래의 글은 요즘 지렁이 기도로는 책으로

더 알려진 어느 목사의 페북 게시글이다.

 

 

여러 의문과 오해(?)에 대해

 

요즘 제가 가장 깊이 천착하는 가치는 "다투지 말자"입니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공격(?)을 받아도 그냥 씨익 웃고 넘어가려고 노력중입니다. ^^

 

다만 반복되는 질문과 오해에 대해 몇 가지 답을 하고자 합니다.

 

1. 지렁이의 기도가 불티나게 팔리고, 그 결과 사람들이 벌떼 같이 기도받으로 온다는 주장에 대해.

 

1) 그런 일 없습니다. 지렁이의 기도는 처음 2주간은 많이 팔렸지만 그 후에는 상당한 조정기에 접어들었습니다.

 

2) 매일 벌떼 같이 사람들이 오는 일도 없습니다. 하루에 2-3명씩 만나서 상담합니다.

 

3) 제가 지난 19년 동안 기도와 상담을 위해 만난 사람들이 어림잡아 1만 4천-5천 명 사이 정도 될 것입니다. 어떻게 아냐구요? 19년 동안 매일 최소 2-3명, 많게는 5-6명, 집회 설교자로 초청받아 가면 하루에 100명 이상씩 기도를 했습니다. 이게 제 삶의 루틴입니다. 그러니 최근에도 매일 2-3명씩 고정으로 만나서 상담하는 일은 제가 19년 동안 해온 일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4) 물론 많은 분들이 만남을 요청하지만 그분들 중 상당수는 거절당합니다. 아마 거절당한 분들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쁘실 겁니다. 뒤에서 악담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어렵게 약속을 잡아 만나는 분들은 중증 우을중, 공황장애로 고통당하는 분들, 혹은 너무 어려운 문제에 봉착한 분들입니다. 저는 이분들에게 다짜고자 기도하자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제가 가장 노력하는 부분은, 이분들의 어려운 사정을 몇 시간이고 들어주는 것입니다. 사실 매일 5-6시간을 이런 일에 에너지를 뺏기는 것은, 회사를 경영하는 사람으로서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2. 기도는 자기가 출석하는 교회의 목사님께 찾아가 받아야(?) 한다는 말에 대해

 

1) 저도 그 말에 100% 동의합니다. 제발 목사님들, 자기 교회 성도님들 어려운 사정을 잘 헤아리셔서 충분히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괜히 저 같은 사람들 시간과 에너지를 뻿지 마시길 바랍니다. 제가 무슨 죄가 있다고, 저하고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을 만나서 몇 시간씩 삶의 밑바닥까지 떨어져 허우적 거리는 이야기를 들어주고, 기도해드리고, 10원도 못 받고 산단 말입니까. 지역 교회에서, 그 교회 신자들이 담임목사님께 문제를 갖고 찾아가 해결을 받는 것이야말로 제가 가장 바라는 이상적 상황입니다.

 

3. "예언(적) 기도"에 대해

 

은사지속론자들이 이야기하는 예언(적) 기도란, 미래를 점지하거나 맞추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무당이나 점쟁이들이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예언(적) 기도는 한 마디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기도입니다.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의 아픔을 잘 알고 계시고, 어려움 중에 함께 하시며, 충성된 일에 고마워하시는 마음을 풀어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함께 하신 하나님께서 미래에도 함께 하실 것이란 소망을 주는 것입니다. 혹시 그 과정에서 이따금씩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보여주시기도 합니다. 은사중지론자들은 예언 기도 현장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 기도의 성격 자체를 자신들이 갖고 있는 개념 안에 가두고 있을 뿐입니다.

 

4.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에 대해

 

1) 가령 예수전도단 같은 곳에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크게 2가지 정도로 나눕니다. 예컨대, 무엇을 본다든지 혹은 무엇을 느낀다든지 하는 것으로 나눕니다.

 

2) 그러나 제 경험상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훨씬 더 다양한 채널을 갖고 있습니다. 제 경우에는,

가. 실제로 음성이 들릴 때가 있습니다(아주 드문 경우입니다)

나. 주로 환상(이미지, 동영상)의 형태로 많이 나타납니다.

다. 마음에 어떤 영감이 떠오릅니다.

라. 머릿 속으로 전혀 몰랐던 지식이 마치 다운로드 되듯이 침투해들어옵니다.

마.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기도가 한국 말로 쏟아져 나옵니다.

바. 방언과 한국어 통역이 반복되어 나옵니다.

 

오랜 경험상, 저는 이런 다양한 채널이 모두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방법은 틀리지만 내용은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병원에서 엠알아이를 찍든지, 피검사를 하든지, 소변검사를 하든지, 혈압을 재든지 간에 결국은 건강 "검진"을 하는 한 가지 목적에 부합하듯이 말입니다.

 

그럼 여기서 질문이 가능합니다. 마음에 어떤 영감이 떠오를 때 그게 사람의 생각인지, 성령이 주시는 것인지를 어떻게 구별하느냐가 그것입니다. 사실 이 문제는 아주 간단합니다. 그것은 임상경험이 많으면 많을수록 자연스럽게 분별이 됩니다. 저 같은 경우는 임상체험이 아주 많기 때문에, 그것이 제 생각인지, 성령께서 주시는 마음인지 금세 구별이 됩니다.

 

3) 저는 기도상담을 할 당시에는, 그 자리에서 각 채널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을 합니다. 가령,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환상을 보여주신다, 하나님께서 이런 마음을 주신다, 하나님께서 이런 생각을 주신다 등등 모두 구체적으로 적시해서 이야기해줍니다.

 

4) 그럼 왜 책에는 그런 구체적인 방법 대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냐고 적었는지 의문이 들 것입니다. 그 이유도 간단합니다. 가령 예언적 기도는 그 응답 여부가 몇 달 혹은 몇 년 후에 피드백이 옵니다. 몇 년 후에 오래 전에 했던 기도에 대한 피드백을 들으면, 그때 구체적으로 무슨 채널을 갖고 이야기를 했는지 솔직히 기억이 안 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고 밖에 표현을 못합니다. 그리고 앞에서 적었듯이, 실제로 다양한 채널은 통로 혹은 수단일 뿐 각 채널 모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5)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고 이야기하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주시는 모종의 지식이 다른 종교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어떤 인간의 잠재력의 발현, 혹은 무의식의 도출, 혹은 귀신의 역사가 아니라, 이것이 온전히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명확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5.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과 계시의 차이점에 대해

 

신약성경에서 계시(아포칼륍시스) 혹은 비밀(무스테리온)이란 말은 히브리어 쏘드를 번역한 것입니다. 히브리어 쏘드는 구약의 예언자들이 야웨의 어전회의에 초청을 받아, 천상에서 하나님이 종말에 성취하실 구원 계획을 미리 보고 땅으로 돌아와서 그것을 미리 선포한 것입니다. 하늘에서는 이미 선취되었지만 땅에서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예언자들의 선포는 말 그대로 예언이 됩니다. 바울은 구약 예언자들의 이런 언어를 차용하여, 자신의 다메섹 도상의 체험이 종말론적인 계시 혹은 비밀의 사건이라고 천명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이 궁극적으로 성취됨을 말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사도 시대 이후로는 더 이상 계시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계시는 정경의 완성과 더불어 종결되었습니다. 다만 오늘날 (막스 터너의 표현에 의하면) 예언의 영이신 성령께서 교회에서 사람들을 통해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어떤 '지식'들을 주시는 것입니다.

 

6. 당신의 기도는 100% 맞기만 하느냐?

 

당연히 아닙니다. 저도 종종 틀립니다. 그럼 언제 틀리는가? 거의 다 제 개인적인 이해관계와 관련이 있을 때 틀립니다. 가령 제 가족들 문제, 제 개인의 문제, 제가 너무 집착하고 있는 문제를 놓고 기도하면 맞을 때도 있고 틀릴 때도 있습니다. 이건 너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제 욕망과과 바람, 편견과 선입견 등이 무의식적으로 개입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도 제 개인 문제를 놓고 기도할 때는, 제 주변에 신뢰할 만한 복수(3-4명)의 분들에게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물론 최종적인 분별과 결정은 제 몫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7. 공적인 기도 응답은 못받는가?

 

아닙니다. 공적인 문제를 놓고도 기도응답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당장 저희 회사 직원들이 증인이 되어 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를 떠벌이면 정말 난리가 나겠지요. 그러니 그런 문제는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그저 사적인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말할 뿐이지요.

 

이렇게 소상하게 말씀을 드려도 어차피 믿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하실 분들이 더 많을 겁니다. 이 문제는 어떤 책을 펼쳐놓고 학습을 통해서 인지가 가능한 영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종류의 경험을 해본 사람이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운 메커니즘이 있는 영역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런 세계가 부재한 것은 아닙니다.

 

 

이 게시물에 대한 질문은,

궁금한 점은, 딱 두 글자,,

예수,가 한 번도 나오지 않는 데

그와는 이 모든 사역들이 어떤 관계에 있는 것인가?

하는 거!

 

 또 다른 이가 위 게시물을 올린 목사를 변호한다.


요즘 몸이 좋지 않아 페북을 하지 않았다.

지난 주일 교회에서 "지렁이의기도"를 쓴 김요한 목사님이 은사중지론자들의 공격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내 케이스가 그 책에 들어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평소 사랑하는 김 목사님이 공격받는다는 것이 안타까웠기 때문이기도 하다.

 

김목사님을 통해 은혜를 받았던 사람의 한 명으로서 하나님께서 사람의 기도를 통해서 어떻게 우리의 삶에 깊숙하게 개입하시는지를 나누고 싶다.

 

2015년 11월 초였다. 성남의 한 아파트에서 살던 나는 집주인으로부터 전세금을 거의 두 배로 올리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나갈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아내 직장에 가까운 화성 봉담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막내가 마침 그 옆에 있는 대학교에 합격했고 아내가 멀리 다니는 것이 늘 안쓰러웠고, 현실적으로 우리 전세금에 맞는 아파트는 봉담 아래쪽으로만 가능했다. 현장답사도 했다. 아파트단지가 무척 좋아 보였다. 그러나 나온 집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부동산중개소에 전세나 매매나 물건이 나오는 즉시 연락을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까지 부동산중개소에서는 단 한 번도 연락을 주지 않았다.)

 

그러다 일터신학을 강의하던 새물결아카데미에서 김요한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이사 문제를 꺼내게 되었다. 김 목사님은 나와 눈을 마주치면서 대화하면서 "하나님께서 봉담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고 말했다. 난 깜짝 놀랐다. 옆에 앉아있던 이철규 원장님이 성령의 은사가 많은 김 목사님의 이야기를 잘 들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목사님은 계속 눈을 뜨고 기도하면서 수원, 안양, 과천은 어떤지 하나님께 물었고, 하나님은 아니라고 하면서 서울로 들어와야 한다고 말씀하신다고 전해주었다. 난 난감하다 못해 황당했다. 전세난 때문에 서울 살던 사람들이 수도권으로 떠나는데 반대로 서울로 들어오라고?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은사중지론자가 아니지만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더군다나 내 아내가 당시 제안받았던 서울의 한 대학의 자리를 포기하지 말고 옮겨야 한다고 했다. 하나님이 마련해주신 자리라고 했다. 그 자리는 아내의 연봉이 30%나 깎이고 여러 환경이 맞지 않아 포기했었다. 나는 아내에게 그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아내는 다음 날 당장 김 목사님을 찾아가 다시 기도를 받았다. 그리고 결심했다. 옮기기로. 마음에 내키지는 않았지만 믿고 옮기기로 했다. 김 목사님과 대화를 나눈 아내는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나저나 나는 전세 문제로 마음이 답답했다. 기도원에 들어가 금식기도를 했다. 기도중에 이사갈 전세집이 서울 어디에 있냐고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기도원에서 핸드폰으로 서울의 전세가격을 샅샅이 살폈다. 우리 조건에 가능한 곳은 사당사거리 주변의 빌라 혹은 연립주택이었다. 나는 기도원에서 나와 추운 겨울에 며칠 동안 걸어다니면서 사당사거리 주변을 뒤졌다. 너무 비좁거나 실제 가격이 높았다. 낙망스러웠다.

 

이사나갈 날짜는 다가왔다. 다급한 마음으로 12월 중순쯤 아내랑 신림동 근처를 알아보기로 했다. 우리 전세값으로는 가능성이 없는 곳이었다. 그러다 어느 부동산에 들어갔는데 따라오라고 해서 자동차로 10분을 따라갔더니 처가 바로 옆에 있는 아파트 단지로 데리고 갔다. 그곳에 2억3천만원짜리 32평 아파트가 나와있었다. 시가는 2억7천만원인데 전날 밤에 집주인이 갑자기 4천만원을 내려서 그 부동산에서 물건을 보유하고 있었다.

 

우리가 첫 손님이었다. 우리는 바로 이집이구나 했다. 우리가 가진 돈에서 빚을 지지 않아도 되었다. 사실 우리는 은행에서 융자를 받을 자격이 없어 돈을 추가로 낼 수가 없었다. 문제는 이사 날짜가 우리가 한 달 늦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부동산중개소 사장님이 우리를 위해 자신이 무이자로 한 달 대납해줄테니 다른데 가지 말고 여기에서 계약해달라는 것이었다. 먼저 살던 분이 일찍 떠나 집이 비어있는 동안 나는 이사갈 집 페인트를 직접 칠하고 도배하고 부분 수리를 했다. 23년 된 아파트가 신혼집처럼 깨끗해졌다.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우리는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와서 살다 보니 주변 환경이 좋고 쾌적하고 조용해서 참 좋았다. 더군다나 작년 5월 장인어른께서 갑자기 돌아가셔서 혼자 남으신 장모님을 옆에서 자주 찾아뵙고 위로해드릴 수 있는 거리에 살게 되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아내도 직장을 옮기기를 참 잘 했다. 그 이후 결과가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다. 나도 작년에 이사온 집에서 박사논문을 쓸 수 있었고, 서울에서 일터신학을 강의하고 연구할 수 있게 되었다.

 

김요한 목사님의 기도가 없었어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우리 이사 문제가 이런 방향으로 해결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김 목사님의 기도를 통해서 당신의 뜻을 분명하게 보여주셨고, 그 뜻을 우리가 신뢰했기 때문에 엉뚱한 곳이 아니라 서울에서 집을 구하려는 의지를 갖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늘 김 목사님께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 몇 달 간의 집 구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선한 뜻을 가지고 계시고, 그 뜻을 알기를 바란다는 사실을 아주 구체적으로 그리고 실존적으로 깨닫게 되었다. 이론이 아니라 삶으로. 이런 것이 성령의 은사를 통해 주시는 은혜가 아니라면 무엇일까?

 

 

읽어 볼수록 자꾸만 가중되는

궁금한 질문 하나!

 

글쎄, 잘 알겠는데,,

그 모든 게,,, 예수,와는 어떤 관계지?????

그게 오늘 여기의 나와 우리에게

예수님을 어떻게 알려주고, 예수님으로 살게 해 주는 데???

죽은 사람이 떼로 살아난들!!!!

하는 거!

 

답글로 질문을 올렸으니, 답변이 있으면

이곳에 이어 붙이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