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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신학운동]

[교회 개혁을 위한 25개 신학 논제] 교회 안에서 실종된 예수를 다시 찾는 일이 교회 본질 회복의 첫걸음

by 농민만세 2017. 12. 16.

 

교회개혁을 위한 25개 신학 논제



교회 안에서 실종되었던 예수를 다시 찾는 일이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는 첫걸음이다.

/ 김준우(한국기독교연구소 소장, 기독교윤리학 전공)


1.

한국교회 개혁을 위한 단체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지 십여 년이 지났다. 이것은 군사독재 정권이 1960년대부터 시작한 경제개발의 저곡가-저임금 정책과 도시화-산업화 과정으로 인해 전통적인 농경사회가 급속도로 해체되고, 전통적 가치관이 혼란을 겪는 가운데, 정치적 탄압과 경제적 착취, 고향을 떠난 뿌린 뽑힌 사람들의 사회 심리적 소외감에 편승하여, 남한 인구의 25%가 기독교인이 될 만큼 급성장한 한국교회가 1980년대부터는 민주화 투쟁을 거쳐 소비사회로 진입하게 되어, 체제에 대한 비판정신과 여가문화가 점차 확산됨으로써, 1990년대부터는 교회성장이 정체되고, 교회성장주의의 폐해가 본격적으로 드러남으로써 사회적 신뢰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즉 한국사회의 산업화 과정과 민주화 과정에서 한국교회는 도시산업선교와 농촌선교, 인권운동 등을 통해 그 역사적 고통을 함께 나누었던 희망의 불빛이었고, 세계교회협의회와 연대하여 통일운동을 이끌어낸 견인차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으며, 오늘날에도 전국의 방방곡곡에서 자신들의 희생적인 삶을 통해 기독교의 복음을 실천하는 "구름 같이 허다한 증인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가 사회적으로 개혁의 대상으로 지탄받게 된 이유는 반독재 투쟁이 끝난 후, 한국교회협의회의 소속교단 확대로 인한 선명성의 문제도 다소 영향을 끼쳤을 것이지만, 무엇보다도 지난 30여 년 동안 계속된 한국교회의 일반적인 교회성장주의가 초래한 개(個) 교회주의와 대(大) 교회주의로 인한 교인쟁탈전, 무리한 교회 건축, 신학대학 졸업생의 과다 배출, 해외선교사 파송 경쟁, 교회의 사유화와 세습, 장로직분 매매, 여성 지도력의 부재, 교단분열과 교단장 선거를 둘러싼 억대의 금품살포와 파벌주의 등의 외적인 문제들, 그리고 한국교회의 신앙적인 측면에서 일반적인 기복신앙과 내세주의, 상명하복식의 비민주적 권위주의가 초래하는 온갖 폐해로 인해, 교회의 본질을 상실하고 교회 본연의 사명을 망각한 현실이 여실히 드러나기 시작했고, 특히 일부 성직자들과 기독교인들의 타락과 비리로 인해, 교회가 사회적 신뢰성을 상실한 것에 대해 사회로부터 지탄을 받기 시작한 때문이다.

오랜 냉전체제가 끝나고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한 이후 국내에서는 진보세력들이 시민운동들을 뿌리내리며 현실정치에 참여하는 사회문화적 격변 가운데, 인터넷을 통해 안티 기독교 사이트들이 한국사회의 반기독교 정서를 확산시키고, 매스컴들이 교회를 비판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일부 대형교회들이 "시대의 표징," 즉 독재시대의 이분법적 논리가 점차 다양성에 기초한 "열린사회"로 나아가고 있는 하느님의 새로운 현실을 읽지 못한 채, 자폐적이며 비윤리적인 행태들에 그 원인이 있었다.

특히 감리교의 대표적인 대형교회 가운데 하나인 K 교회의 K 목사는 1992년에 감신대 조직신학 교수 홍정수 박사에 대해 "예수 피 개/돼지 피 설"을 날조하여 일간신문에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홍 박사와 변선환 학장을 "통일교 비호자"라는 거짓 누명을 씌워 서울연회(당시 감독 N 목사)로부터 출교시키는 데 앞장섰으며, 여러 차례에 걸쳐 공영 텔레비전을 통해 그(K 목사)의 비리가 전국적으로 알려졌고, 교회 헌금 사용과 관련하여 실형을 선고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담임목사직을 수행하고 있는 현실이다.

또한 세계화의 거센 풍랑 속에 농민들과 노동자들이 더욱 궁핍해졌으며, 특히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에는 한국사회의 대다수 생산계층이 실직의 공포에 내몰리고 빈부격차가 더욱 심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대형교회들은 경제적 불안 심리에 편승하여 자신을 살찌우고 변칙적으로 세습시키는 데 분주할 뿐, 자신을 희생하고 고통을 분담하는 일에는 인색한 모습이었다.

2000년 이후 우리 사회에서 정치와 경제 분야는 일정부분 민주화·투명화 되고 있지만, 일부 대형교회들은 여전히 "마지막 남은 성역"으로서 비민주적 권위구조를 유지하고 있으며, 신자들의 정직한 질문을 봉쇄하고, 비판정신을 압살하고, 자주적인 사고능력을 박탈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특히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는 탈권위주의에 반대하며, 국가보안법 철폐, 사립학교법 개정, 과거사 진상규명법 등 각종 개혁정책에 반대하면서 시청 앞에서 여러 차례 성조기까지 휘날리며 친미반북 집회를 개최하는 등, 극우적 행태를 보임으로써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 혈안이 된 반개혁 세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비록 최근 들어 "중도 보수" 혹은 "진보적 기독교"의 기치를 내건 기독교 운동 단체들이 등장했지만, 교회개혁운동에는 아직 별다른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 것으로 판단된다.


2.

이런 상황 속에서 한국의 개신교가 급속도로 쇠퇴하고 있다는 사실은 교회개혁을 더욱 시급한 과제로 만들고 있다. 한국의 17개 주요 개신교 교단이 각각 정부에 보고한 통계에 따르면, 개신교인 수는 1995년의 1,450만 명에서 2001년의 1,282만 명으로, 6년 동안 약 11.6%가 감소하였다. 이처럼 급격한 쇠퇴의 가장 큰 원인은 젊은 층과 고학력자가 이탈하는 비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조사된 바 있으며, 이들이 기독교를 이탈하는 가장 큰 이유는 "믿을 수 없는 것을 믿는 것이 참 믿음이다"는 식의 반 지성주의와 목사의 권위주의, 그리고 몰상식한 전횡에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한국사회의 대졸자 비율이 74%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고학력자와 젊은 층의 이탈은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현재 농어촌의 몰락 속도와 도시 교회의 노령화 추세로 볼 때, 교회개혁은 한국교회의 사활이 걸린 문제라 할 수 있다.

참고로 전 세계적인 탈기독교 시대에 서양의 주요 교단들은 교인수가 매 10년마다 절반으로 줄어드는 추세에 있어, 한 세대가 지나면 제도적 교회의 죽음이 현실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국교회보다 더욱 훌륭한 교육시설, 교재, 교사들의 헌신에도 불구하고 서양의 교회가 임종을 맞이했다는 사실은 한국교회가 더 이상 성장주의 신학과 현재의 교회 구조로는 이 근본적인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하며, 이 근본적 위기에 대한 진지한 원인분석과 철저한 대책을 통해서만 교회개혁을 통한 생존이 가능하다는 사실 역시 분명해졌다.


3.

한국교회를 개혁하기 위한 모범적 사례는 16세기 종교개혁운동이다. 16세기에 많은 종교개혁자들이 제도적인 구조개혁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는데, 오직 루터의 종교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의 정치경제적인 요인들이 작용한 것이 사실이지만, 일차적으로는 "복음의 재발견"이 종교개혁의 원동력이 되었기 때문이다. 즉 교회의 제도적인 구조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 개혁의 원동력과 추진력이 되는 내면적인 개혁, 즉 신학적인 개혁이 선행되어야만 한다. 다시 말해서, 한국교회가 당면한 사회적 신뢰성 상실의 위기를 극복하여 교회의 쇠퇴를 막고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먼저 한국교회가 일반적으로 선포하는 "복음"의 신학적인 위기를 극복해야만 한다.


4.

"복음"의 판단 기준은 다음 세 가지 문제를 중심으로 해야 한다. 첫째, 교회가 "복음"으로 선포하는 내용이 신자들의 자기중심적인 욕망을 억제하고, 죄의식을 회개를 통해 하느님의 은총으로 해방시키며, 자기중심성을 초월하여 하느님 중심의 자기희생적 삶을 살도록 하는 "기쁜 소식"인가, 아니면 신자들의 죄의식에 면죄부를 주어 자기중심적인 욕망들을 강화시키는 "기쁜 소식," 즉 시장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개인적 풍요와 성공에 대한 우상숭배로서의 "싸구려 위로와 소망"인가?

둘째, 복음이 선포하는 "하느님의 은총"이 절망 속에 있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존엄성과 희망을 주며 그들을 하느님 앞에서 부자들과 동등한 존재로 간주하는 민중 해방적 복음인가, 아니면 하느님의 은총을 받지 못한 자들로 차별하고 굴종과 체념을 주입시키는 민중 억압적 복음인가?

셋째, 하느님과 신자들 사이에 사제들(목사들)의 중개역할을 필수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사제 중심적 복음인가, 아니면 사제들의 역할을 단순히 대표적이며 직능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평등주의적 복음인가? 종교개혁 당시에는 스콜라 신학이 가르친 하느님의 능동적 의(active justice), 즉 심판하고 징벌하는 하느님의 의가 아니라, 루터가 발견한 수동적 의(passive justice), 즉 신자들이 하느님의 의를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게 되는 "하느님의 은총"의 반 사제 중심적 복음을 재발견함으로써 종교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다.

1세기의 예수운동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유대교의 율법주의적인 하느님 이해, 즉 가난해서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민중들을 "세리들과 죄인들"로 차별함으로써 강압적으로 성전세를 징수하였던 사제 중심적이며 억압적인 하느님 이해와는 정반대되는 예수의 민중 해방적 하느님 이해, 즉 무한히 자비하신 "하느님의 은총"에 근거한 반 사제 중심적 "복음의 발견" 때문이었다.


5.

따라서 한국교회가 한국사회의 현실과 지배 이데올로기, 예컨대 분단체제와 국가안보체제, 그리고 시장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일반적으로 선포해왔던 복음이 반공주의-자본주의-군사주의에 대한 "대항 문화적 대항공동체(countercultural counterforce)로서의 교회"(윌리엄 윌리몬)를 위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이었는지, 아니면 그 체제와 결탁한 폭력과 경쟁과 사회적 배제의 이념을 "예수의 복음"으로 선포한 것인지, "하느님의 은총"에 근거한 민중 해방적 복음인지, 아니면 "싸구려 은총"과 "싸구려 소망"에 근거한 "민중의 아편" 기능을 수행했는지, 사제 중심적이며 계급적인 복음인지, 아니면 만인 평등주의적인 복음인지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반성이 요청된다. 이처럼 기독교의 위기의 본질에 대한 성찰과 신학교육의 혁신 없이, 최근 신학대학교 총장들이 한국교회의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영성교육과 정직성을 강조하고, 한국교회의 원로들이 죄책을 고백하는 것만으로는 교회의 쇠퇴 추세에 대응하기조차 미흡한 것으로 판단된다.


6.

기독교 교회의 본질은 예수운동(Jesus movement)이다. 예수운동을 위해 교회라는 조직과 기구가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예수운동과 예수의 정신이 살아 있지 않는 교회는 기독교가 아니다. 한국교회의 근본적인 신학적 위기의 본질은 기독교의 핵심인 예수가 교회 안에서 실종되었다는 사실이다. "한국교회는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던 예수의 부모들처럼(누가 2:44), 예수가 교회 안에서 실종된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홍정수). "구원자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있지만, 예수의 정신과 예수의 핵심적인 가르침인 "하느님 나라"를 위한 실천은 실종되었다는 말이다.

특히 한국교회는 예수의 가르침과는 정반대로,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치면서, 모든 타종교인들을 비롯해서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을 "지옥 갈 사람"으로 정죄하고 차별하였을 뿐만 아니라, 친미반공주의를 통해 레드 콤플렉스의 적개심과 증오심을 확산시켜왔으며, 아메리카제국의 전쟁신학을 지지하였고, 세계자본주의 체제를 무비판적으로 축복하고, 그 체제의 희생자들을 돌보는 일을 소홀히 하였으며, 전근대적인 신화적 세계관을 확산시켜 민주화에 역행하는 이기적 집단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것은 한 마디로 교회 안에서 예수가 실종된 때문이다. 이처럼 예수 없는 교회는 결코 기독교의 교회일 수 없다는 자명한 사실이 한국교회의 근본적인 위기의 뿌리이다.


7.

한국교회 안에서 예수가 실종된 가장 중요한 신학적 이유는 한국교회가 일반적으로 예수가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믿으라고 한 새로운 비전, 즉 "하느님의 나라"를 믿고 실행하기보다는, 예수의 손가락, 즉 예수 자신을 믿음의 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즉 한국교회를 비롯하여 전 세계 기독교가 일반적으로 선포해왔던 복음은 주로 바울과 베드로와 요한이 해석한 "케리그마의 그리스도," 즉 "구원자 그리스도 신화," 혹은 "예수에 관한 복음"이었지, "예수의 복음," 즉 예수 자신이 가르친 복음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기독교 신앙의 근거가 처음 제자들의 가르침에 근거했지, 예수 자신의 가르침에 근거한 것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케리그마의 그리스도"는 당시 인종적 및 계급적 차별과 정치적 박해, 경제적 착취 속에서 지배와 착취와 차별이 없는 새로운 하느님의 질서를 가르친 "예수의 복음"을 접한 처음 제자들의 감격과 찬송으로서, 예수 안에서 경험한 "하느님의 임재와 능력"으로 밖에는 달리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놀라운 "인간 승리"에 대한 신학적 고백이며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갈 새로운 삶의 모델이었지만, 점차 "예수에 관한 복음"이 "예수의 복음"을 대체하게 되었다.

이것은 주로 당시 지중해 연안에 흩어져 뿌리 뽑힌 채 "하느님의 나라"를 구현할 수 있는 정치적 역량을 상실한 유대인 기독교인들이 사회악보다는 개인의 죄성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생겨난 결과였다. 따라서 예수를 그 제자들의 가르침과 후대의 교리들로부터 해방시키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교회가 선포해왔던 원죄의 교리와 예수의 보혈에 의한 대속적 구원의 교리는 예수의 가르침인가, 아니면 주로 바울의 가르침인가?

이 세상(cosmos)과 인간의 육체(sarx)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는 예수의 가르침인가, 아니면 플라톤 철학의 영향인가? 사회적으로 힘없는 약자들에게 노예의 도덕, 즉 굴종과 체념을 가르치는 것이 예수의 가르침인가, 아니면 정치권력과 결탁한 교회 지도자들의 왜곡인가? 기독교인들의 탈정치화는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이처럼 "예수의 복음"을 다시 물을 수밖에 없는 것은 일차적으로 우리가 누구의 제자들인지를 확인하는 정체성의 물음이며 신앙고백의 정직성의 물음인 동시에 교회의 본질에 관한 물음이다.


8.

한국교회가 복음으로 선포해왔던 "예수에 관한 복음," 즉 "그리스도 신화"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독생자로서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시고 세상 죄를 용서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고, 부활하여 하느님 우편에 앉아 계시며, 언젠가는 재림하실 분으로서, 예수 자신, 곧 메시아를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여 영생을 얻게 하는 분이다. 전통적으로 이렇게 고백해왔던 "그리스도 신화"는 예수의 의미에 대한 고대 유대인들의 한 특정한 해석이며 신화적 표현이었다. 예수는 로마제국의 억압과 성전 지배체제의 착취와 차별에 맞서서 황제가 통치하는 제국의 질서에 정반대되는 통치 질서, 즉 "하느님이 통치하는 나라"를 가르치고 실행함으로써 정치범으로서 십자가에 처형당했다.

그러나 이처럼 예수가 목숨을 바쳤던 "하느님의 나라"는 교회사에서 신자들이 죽은 다음에 가는 나라로 내세화 되거나, 신자들의 마음속에서 이루어지는 나라로 내면화되거나, 제도적 교회가 하느님 나라와 동일시되어버림으로써, 탈 정치화되고 사사화(私事化)되었고 비역사화 되었다. 따라서 예수 자신이 "인류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십자가를 졌다든가, "피의 공로에 의한" 대속의 교리를 가르쳤다든가, 자신을 "믿는 사람들만 구원을 받는다."는 식으로는 결코 가르친 바 없으며, 그렇게 가르칠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기의 제자들이 뜻밖에 경험한 예수의 죽음의 의미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예수의 삶 속에서 발견한 하느님만의 성품과 능력과 구원에 대한 체험과 감격을 자신들의 전통적인 희생제사 제도와 속죄양 제도에 입각하여 고백함으로써, 예수의 죽음을 "유월절 어린양"으로 해석하게 되었고, 그 어린양이 "흠 없는 제물"이며 하느님의 아들이기 위해 동정녀 탄생 이야기로 고백되어지고, 예수는 하느님의 "독생자"로서 신성을 지닌 분으로 신격화되었고, 고대 사회의 높은 영아사망률 때문에 영아세례를 강조하기 위해 인간의 원죄 교리를 발전시키고, 마침내 인간 본성의 "전적인 타락"이라는 불가항력적인 교리를 발전시킴으로써, 결국 "구원자 그리스도 신화"를 완성시켜나간 것이 교회의 정통주의가 되었던 것이다.


9.

비록 이처럼 "예수의 복음"이 "예수에 관한 복음," 즉 "그리스도 신화"로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물론 기독교 역사상 "그리스도 신화"에 근거해서도 "그리스도를 본받아" 하느님의 은총에 의지해서 기독교인의 자유와 완전을 추구하며, 십자가의 복음에 근거하여 자신을 희생하고 남들을 섬기는 삶의 모범을 보인 성자들이 많이 있었다. 또한 "그리스도 신화"는 우주의 진화과정에서 우연과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주도적인 사랑, 즉 그의 독생자를 통한 희생적 사랑을 가르친다는 점에서, 우리의 삶의 궁극적인 무대가 냉혹하고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돌보심 가운데 있는 것임을 믿게 함으로써, 죽음의 불안과 삶의 무의미를 극복할 수 있게 하는 위로와, 그리스도의 대속에 의한 죄의 용서를 통해 새로운 출발을 가능하게 하는 하느님의 은총을 경험하도록 도우며, 그리스도의 완전을 향해 나아가도록 도전하는 것이 사실이다.


10.

그러나 기독교가 제국의 종교가 된 이후에는 "예수에 관한 복음"은 "구원자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강조함으로써 "예수의 복음"을 대체하게 된 것은 "그리스도를 본받아" 사는 실천을 약화시키는 데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즉 니케아-칼케돈 기독론에서 보듯이, 예수가 "하느님과 동일본질을 가진 유일한 인간"이라는 교리는 "나는 신의 아들인 예수처럼 살 수 없다"로 이어져, 결국 "나는 예수처럼 희생적으로 살고 싶지 않다"는 우리의 자기중심적 욕망에 대해 "신학적인 면죄부를 주었다"(한인철). 특히 "구원자 그리스도 신화"는 그리스도의 보편성을 강조함으로써 종교제국주의를 초래하였고, 현실 정치권력에 대한 신적인 재가를 뒷받침하고, 민중들의 죽음의 공포와 현실적 고통에 대한 위로와 심리적 안정감을 초월적으로 정당화하였으며,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유물론적 세계관과 풍요와 성공과 황금에 대한 우상숭배가 더욱 팽배하게 되었고, 마침내 교회성장주의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사는 자기 비움의 실천을 간과한 채, 자본주의 사회 속의 물신숭배를 더욱 부채질하게 되었다.

이처럼 "예수의 복음"이 "예수에 관한 복음"으로 둔갑하여 권력자들의 지배 이데올로기로 이용되고, 민중들의 현실적 고통을 위로하고 심리적 안정의 욕구를 충족시키게 된 것은 실질적으로 "예수의 복음"과 "예수에 관한 복음" 사이의 뛰어넘기 어려운 간격, 즉 "예수의 복음"의 철저한 자기희생적 명령들을 따르는 것이 너무 어렵고 힘들어 차라리 그 명령들을 회피하거나, 아니면 자신의 타협을 "예수에 관한 복음," 즉 "구원자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합리화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11.

어떤 이유에서건 이처럼 전통적으로 교회가 선포해왔던 복음이 예수 자신이 가르친 "예수의 복음"이 아니라, "예수에 관한 복음," 즉 "구원자 그리스도 신화"로 둔갑하였다는 사실은 당시 유대인들의 신앙고백적 적합성과 당시 그리스 로마 문화의 신인(divine-man) 영웅들과의 경쟁 속에서 그 선교적 타당성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오늘날에는 그 전통적 복음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특히 "그리스도 신화"의 동정녀 탄생 교리와 육체 부활 교리,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의 교리, 예수의 십자가의 보혈로 인한 대속의 교리 등은 결국 현대인들이 기독교의 복음을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들어놓았다.

교육을 받은 현대인들이 이해하고 정직하게 고백할 수 없는 복음은 더 이상 새로운 시대의 기독교의 복음이 될 수 없다. 신앙고백은 개인과 신앙 공동체의 정체성에 결정적인 요인이기 때문에, 신앙고백에 정직하지 못한 경우, 기독교 신자들의 자기정체성과 행동, 교회의 행태는 신앙과 상관없는 것이 되기 마련이다. 존 캅의 지적처럼({교회 다시 살리기}, {생각하는 기독교인이라야 산다}), 정직한 신앙고백만이 교회에 대한 헌신과 교회의 본질 회복을 기대할 수 있게 한다.


12.

오늘날 한국교회의 관습적 신앙단계에서 매우 일반적인 예수상, 즉 "그리스도 케리그마"에 대한 신화적-문자적 고백은 창조과학만큼이나 반지성적일 뿐 아니라 심각한 윤리적 폐해를 초래한다. 교회에서 흔히 가르치는 것처럼, 예수를 믿기만 하면, 이 세상에서 (삼박자) 축복을 받고, 또 죽은 다음에는 영생을 누린다고 가르치는 마당에, 교인들이 매우 이기적인 사람들이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지 않는가? 온갖 비리에 연루되어 감옥에 가는 기독교인들의 숫자가 비기독교인들 보다 못지않은 이유는 한국교회가 이처럼 "예수 이름으로" 은연중에 이기주의와 탐욕을 가르친 때문은 아닌가?

또한 세계적으로 1980년대 이후 경제 불황 속에서, 특히 신자유주의의 세계화라는 치열한 무한경쟁 시대에 접어들어, 기독교의 모든 주요 교단들이 급속하게 몰락하는데, 유독 가톨릭교회와 오순절 교단과 복음주의 교단만 교세가 성장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유산자들에게는 현세에서 자본의 무한 축적과 이윤의 무한 증식을 도모하게 하고, 무산자들에게는 내세에서의 영생을 약속하는 "예수에 관한 복음"은 오늘날과 같은 무한경쟁 사회에서 주문만 외우면 복을 내려주는 "도깨비 방망이"가 되거나, 현재의 착취와 경쟁, 박탈감을 견딜 수 있는 "민중의 아편" 기능을 충실히 감당하기 때문이 아닌가? 교회 성장에 대한 판단기준은 그것이 예수를 처형하는 데 앞장섰던 성전체제와 같은 억압적 종교의 성장인지, 즉 예수가 저주했던 무화과나무처럼(마가 11:12-25) 백해무익한 종교체제의 성장인지, 아니면 사람들이 더욱 풍성한 생명을 얻게 되는(요한 10:10) 예수 정신의 부흥인지를 판단기준으로 삼아야만 한다.


13.

또한 언젠가 재림하여 마지막 심판을 통해 이 세상의 온갖 악을 청산할 예수는 교인들에게 마지막 심판에 대한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고, 원수들에 대한 피의 보복과 전쟁의 화신으로 둔갑되지 않았는가? 상당수 평신도들이 "진노와 복수의 하느님/예수님"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게 된 배경에는 기독교의 대속의 교리가 가르쳐왔던 전통적인 하느님 이해, 즉 자신의 정의를 만족시키기 위해 독생자의 "피"와 목숨마저 요구하는 하느님의 잔인성, 그 피에 굶주린 하느님의 모습이 똬리를 틀고 앉아 있지 않는가? 멜 깁슨의 영화 [그리스도의 수난]이 끔찍한 모습으로 그리는 하느님의 모습은 결코 예수가 믿고 가르쳤던 "아빠" 하느님의 자애로운 모습은 아니지 않는가? 그리고 일부 성직자들은 이런 "진노와 복수의 하느님"을 이용하여 교인들을 율법주의와 교회중심주의로 옭아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궁극적으로 지옥에 대한 공포심과 죄의식은 아동기의 네거티브 통제 방식일 뿐이지, 성숙한 인간을 위한 교육방식은 아니다. 환경파괴 문제에 대해 가장 무관심한 집단이 기독교인들이라는 사실 역시, 예수 재림을 통한 신자들의 휴거를 고대하는 희망이 이 세상 현실에 대한 무책임성을 조장한 때문이 아닌가?


14.

결국 "예수에 관한 복음"은 결과적으로 "예수의 복음"을 왜곡하였을 뿐만 아니라, 예수를 배반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리스도 신화"가 특히 로마제국의 제국 종교가 된 이후,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의 교리, 그리스도의 유일회성과 보편적 절대성에 입각하여 타종교에 대한 배타주의와 종교 제국주의, "복종의 영성"(데이빗 그리핀)을 초래하고, 그리스도의 직분을 "왕과 제사장과 예언자"로 설명함으로써 그 대리자를 자임하는 사제들의 권위주의와 교회 계급주의, 사제중심주의 등이 초래된 것은 예수의 섬김과 평등주의 가르침을 정면으로 배반한 것이며 "그리스도의 깃발 아래 사탄적으로 행동한 것"(월터 윙크)이다.

기독교 2000 년 역사에서 "예수 이름으로" 저질러진 온갖 만행들, 예를 들어, 유대인 학대와 재산탈취, 여성 억압, 십자군 전쟁, 마녀사냥, 종교전쟁, 노예제도에 대한 신학적 정당화, 유색인종에 대한 정복과 착취 등의 만행들뿐만 아니라, 오늘날 특히 아메리카 제국의 보수 기독교 집단인 네오콘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는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 침공과 점령, 그리고 한국 기독교인들의 대부분을 사로잡고 있는 친미반공주의와 타종교인들에 대한 배타주의적 멸시와 차별은 예수를 잘못 믿어 생겨난 결과들이다.

지난 연말 동남아에서 수십만 명의 인명 피해를 냈던 쓰나미 재앙에 대해 어느 목사가 "이방인들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이라고 설교한 것은 목회자가 어떻게 "예수 이름으로" 하느님을 능멸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수십만 명의 이교도들의 목숨을 이처럼 파리 목숨처럼 여기고 죽게 만드는 하느님은 기독교의 "그리스도 신화"가 낳은 괴물이지, 예수가 가르친 하느님과는 전혀 반대되는 하느님이다. 따라서 이처럼 타종교인들에 대해 차별과 적개심을 가르치는 기독교의 배타주의는 정말로 예수의 가르침을 정면으로 배반한 것이다.

즉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햇볕을 주시고, 옳은 사람에게나 옳지 못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시는 하느님"(마태 5:45)을 가르친 예수는 타종교인들에 대해 적개심과 증오심을 가르친 바 없다. 따라서 기독교의 일반적인 배타주의는 예수의 가르침과는 정반대되는 주장이다. 기독교 역사상 예수의 정신에 따라 철저하게 이웃을 섬기며 평등주의를 실천하며 비폭력적으로 살려고 했던 종파들, 예를 들어, 메노나이트와 퀘이커 교도 등을 이단으로 정죄하였다는 사실 뿐 아니라, 교회가 예수를 배반하고 적그리스도가 된 가장 대표적 사례가 바로 타종교인들에 대한 배타주의와 종교 제국주의다. 기독교가 역사상 가장 종족학살을 많이 자행했던 폭력적이며 "가장 제국주의적이며 가장 비영성적이며, 실제로 윤리적이라고는 거의 말할 수 없는 신앙이 되어 버린"(랭던 길키) 근본적 이유는 예수의 복음을 배반한 때문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그리스도 신화"의 역사적 폐해들이 너무 엄청난 것이어서, 존 캅이 결론짓듯이, 예수 그리스도는 유태인들, 가난한 사람들, 여성들, 유색인종들, 학자들, 동식물들에게 결코 "기쁜 소식"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나쁜 소식"이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예수를 기독교의 정통적인 교리들, 즉 "예수에 관한 복음"으로부터 해방하기 위해 그 배후에 놓인 역사적인 교리화 과정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예수의 복음"을 다시 찾을 수 없다.


15.

더군다나, 오늘날에는 기독교의 정통적인 "그리스도 신화"의 거의 전부가 고대 지중해 지방의 밀의종교인 오시리스-디오니소스 신화와 똑같다는 사실이 밝혀짐으로써({예수는 신화다}), "그리스도 신화"에 매달려왔던 기독교의 절대성과 독특성, 진정성마저 부정되는 현실이다. 기독교의 독특성은 이제 더 이상 전통적인 "그리스도 신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예수"의 생애와 가르침에 있다. 즉 예수의 죽음의 의미에 대한 초기 제자들의 해석에 근거할 것이 아니라, "역사적 예수"의 삶과 가르침의 특징적 면모들에 근거해야만 한다.


16.

그 동안은 역사적 예수를 찾는 방법을 알지 못했었지만, 1980년대 이후 역사적 예수 연구를 통해, 특히 [예수 세미나]의 학자들을 통해 실종되었던 예수를 찾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 동안 역사적 예수 연구는 자료 문제 때문에 복음서들 배후의 역사적 예수를 알 수도 없으며,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기 때문에 탐구할 필요조차 없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예수의 비유들에 대한 새로운 연구와 예수 당시의 상황과 복음서들에 대한 학제간 연구, 새로운 문서들의 발견,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독교의 핵심적인 전통 교리들의 생성과정에 대한 연구를 통해, 실종되었던 예수를 다시 찾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특히 예수의 가르침의 진정성 여부에 대한 분석뿐만 아니라, 그 배경과 상황, 즉 유대인 전통의 종교적 배경과 로마제국의 지배 상황과 종교문화적 상황과의 관련 속에서 예수의 가르침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최근의 역사적 예수 연구, 특히 예수 세미나의 연구는 "복음서들의 예수" 배후에 있는 "예수의 복음"을 규명하여, 예수에 대한 초대교회의 해석된 복음이 아니라, 예수 자신이 가르친 복음을 해명하고 그 복음에 충실하고자 한다. 초대교회의 예수 해석("복음서들의 예수")이 예수 체험("예수의 복음")에서 비롯된 것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역사적 예수 연구는 초대교회 당시에 "메시아 마케팅"(로버트 펑크)이 이루어지기 이전의 "예수의 복음"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심지어 복음서들이 어떤 배경과 상황 속에서 어떤 구성원리를 기초로 하여 작성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유대인들의 회당에서의 성서일과에 대응하기 위한 전통적인 미드라쉬적 해석이라는 관점에서 이제는 매우 자세하게 알 수 있게 되었다({예수를 해방시켜라}).


17.

"예수의 복음"은 예수 자신의 영적인 경험과 제국의 착취, 사회적 종교적 모순에 대한 경험에 근거하여 그의 스승이었던 세례요한의 신학을 비판적으로 극복한 것이다. 기원전 6세기부터 계속되어왔던 강대국들의 식민지 지배체제 속에서, 국가 회복의 꿈이 계속해서 수포로 돌아가던 절망적 상황 속에서, 세례요한은 또 다시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기대하며 금식하면서 준비했던 묵시 종말론적 예언자였다. 그러나 "예수는 희망을 사랑으로 바꾸고, 미래의 종말론을 현재의 해방으로 바꿈으로써, 스스로를 종교와 묵시사상으로부터 해방"시켰다(토마스 쉬한). 예수 세미나는 예수를 세례요한과 같은 묵시 종말론자가 아니라, 유대교 신비가(마커스 보그)로서 인습적 지혜를 뒤집어엎는 전복적 지혜의 교사-마 5:38-42, 눅 6:29-30. 편집자 보충-이며 사회적 혁명가(크로산)였다고 주장한다.


18.

"예수의 복음"은 예수 자신의 하느님 체험에 근거한 복음으로서, 특히 사제들과 희생제사의 중개 없이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하느님 체험과 사회적 약자들의 인간다운 삶을 특별히 돌보시는 정의와 자비의 하느님에 대한 예언자적 전통에 서 있는 복음이다. 즉 성전체제가 가르쳤던 하느님의 거룩하심과 그에 입각한 사회 종교적 차별에 맞서서, 그런 차별을 무색하게 만드는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와 정의에 근거한 예언자 전통의 복음이다.

예수 자신이 당시 제사장들의 고유 권한이었던 죄의 용서를 직접 선포했던 이유는 바로 예수 자신이 체험한 하느님의 무한한 은총과 자비에 근거한 복음, 그 반사제중심적 복음 때문이었다. 따라서 예수의 복음은 로마제국의 세계화 앞에서, 살인적 폭력과 착취, 성전체제의 억압과 배제에 맞서서, 황제의 나라와 그 통치가 아니라, 하느님이 통치하는 나라의 대안적인 삶의 질서를 보여준 것이다. 즉 예수는 로마제국의 세계화라는 브로커 체제의 연고주의와 불의한 착취구조, 그로 인한 가족과 공동체의 해체에 맞서서, 또한 성전체제의 "거룩의 정치학"이라는 사회 종교적 차별과 배제의 구조에 맞서서,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에 근거한 무차별적 은총, 즉 인간의 무제약적 존엄성(버튼 맥)과 "함께 아파하는 삶의 정치학"(마커스 보그), 곧 평등주의에 입각한 "브로커 없는 나라"(크로산)를 가르쳤고 실행했다.

예수가 가르친 비유들의 이런 체제전복성은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 탕자의 비유, 큰 잔치의 비유, 포도원 품꾼의 비유,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 등에서 "내부인들," 곧 자신은 하느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고 그렇지 못한 "외부인들"에 대해 멸시하며 차별했던 자들이 마지막에는 그 자격을 박탈당하는 모습에서 여실히 드러난다(로버트 펑크). 또한 예수가 실천한 개방적인 밥상공동체와 무상의 치유, 그 평등주의는 "협력적 사회라는 복음"(아이슬러)의 공동체 운동이며, "지배 없는 탈지배적 질서"를 위하여 원수들에 대한 우리들 속의 증오심마저 뿌리 뽑는 "비폭력의 복음"(월터 윙크)이다. 예수의 복음의 바로 이런 반제국주의적 성격과 반성전체제적인 예언자적 성격 때문에, 예수를 죽이는 데 앞장선 사람들이 성전 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이었으며, 로마총독 빌라도는 예수를 정치범으로 처형하게 되었던 것이다.

예수는 하느님의 정의와 자비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교자였다. 따라서 우리가 제국의 통치자나 재벌의 총수를 "주님"으로 고백하지 않고, 비천한 가정에서 태어나 대의를 위해 순교한 예수를 우리의 "주님"으로 고백하는 것은 예수가 가르친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와 용서를 우리가 직접 경험할 수 있으며, 우리도 "부활의 증인"으로서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우리의 삶의 전형으로서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이며, 또한 예수가 가르친 하느님의 통치 질서가 우리의 인간성과 자유를 극대화하는 길이며, 공동체의 평화를 실현하는 진리임을 믿고 죽기까지 그를 본받아 하느님의 새로운 질서, 즉 이 땅 위에서 생명과 평화를 증진시키기 위해 헌신하겠다는 결단을 고백하는 것이다.


19.

이런 "예수의 복음"에 근거한 "예수에 관한 복음," 그 "그리스도 신화" 가운데 우선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독생자)"이라는 고백은 구약에서처럼 하느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맺는 사람들(예: 왕, 예언자, 이스라엘 백성들)을 표현하는 은유적 표현으로 출발하여, 점차 생물학적인 표현(예수의 생물학적 아버지는 하느님)으로 이해되었고, 마침내는 형이상학적 표현(삼위일체의 제2격인 성자)으로 이해되었다. 즉 예수 세미나의 역사적 예수 연구는 "예수=하느님의 아들"은 예수와 하느님 사이의 특별한 관계를 나타내는 은유적 표현이라고 주장한다.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로 지명된 시점 역시 바울에게는 "부활 때"(롬 1:4), 마가에게는 "세례 때"(1:11), 마태와 누가에게는 "잉태 때", 요한에게는 "태초에"로 거슬러 올라감으로써, 초대교회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로 지명된 때가 앞당겨졌다는 사실은 예수에 대한 신격화 작업이 서서히 진행되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우리가 주님으로 고백하는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교리는 예수에게만 배타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모두가 예수처럼 하느님의 영에 사로잡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시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그 창조와 구원의 과정에 헌신할 때, 예수처럼 우리도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신 분이 우리에게 주신 잠재력을 극대화시킨 "하느님의 딸/아들"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가르침으로 이해해야 한다.


20.

또한 "동정녀 탄생"의 교리는 문자적으로, 마리아의 자궁 속에 단 한 방울의 정액조차 들어가지 않은 상태로 예수가 임신되었다는 말이 아니다. 만일 복음서 기자가 이처럼 문자적인 의미로 기록했다면 그는 마리아를 인간이 아니라 단성 생식하는 아메바 같은 존재로 간주했다는 말이 된다. 또한 동정녀 탄생이 문자적으로, 산부인과적인 의미에서 사실이라면, 고대세계에서 예수 이외에 처녀에게서 태어났다고 주장된 인물들, 예를 들어, 알렉산더 대왕, 플라톤, 크리슈나, 네로, 석가모니, 모하멧 등도 신성을 지녔다는 뜻이 되지만, 그들이 처녀에게서 태어났다는 말은 그들이 신적인 존재들이라는 뜻이 아니라, 매우 특별한 인물이었다는 말이다.

마태복음서 저자가 1장에서 "처녀"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이사야 7:14의 "알마"(젊은 여인)라는 히브리어 단어를 그리스어 70인역에서 "파르테노스"(젊은 여인 혹은 처녀)라고 번역하면서 비롯된 것이며(스퐁 감독), 생물학적인 의미가 아니라, 신학적인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보그). 즉 동정녀 탄생은 인간 예수의 삶 속에서 하느님만의 성품과 능력과 구원을 경험한 제자들의 놀라움을 신화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따라서 동정녀 탄생의 교리는 예수처럼 우리도 우리 자신의 "인간성이 극대화된 상태"(존 쉘비 스퐁 감독)를 위해 분투 노력함으로써, 우리의 삶의 모습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우리들 안에서 "하느님의 성품과 능력"을 경험하도록 하려는 하느님의 부르심이며,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신다는 확증으로 이해해야 한다.


21.

또한 "예수의 부활 및 승천"은 성경 문자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비디오로 촬영할 수 있었던 사건이 아니라, 제국들의 살육과 불의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과 승리의 고백, 즉 "죽임의 죽음"(홍정수)이며 실제적인 체험으로서의 "육체 부활"로 이해해야 한다. 예수의 부활 이전에 이미 역사적으로 부활신앙이 먼저 태동하게 된 역사적 배경에 비추어 예수의 부활을 이해하면,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폭력적으로 자행한 억울한 주검들에 대한 하느님의 해원(解寃)이 부활신앙의 핵심으로서, 제국들의 살인적 통치와 불의한 법 집행이 무효임을 판결한 하느님의 정의를 고백한 것이다(호세 미란다). 예수의 부활은 예수의 하느님 나라에 대한 비전과 전략이 예수의 제자들의 "살과 피"를 통해 그대로 재현됨으로써(행 4:32-35), 예수의 "살과 피"가 계속적으로 경험되었으며, "강하게 구원의 능력을 발휘하였다는 의미에서 육체부활이다"(크로산). 이런 점에서 기독교인은 "부활의 증인," 곧 부활한 예수로서, 역사적 예수의 비전인 "하느님 나라"와 그 전략을 본받아 살아가려고 애쓰는 가운데, 하느님의 정의에 입각하여 이 땅 위에 생명과 평화를 증진시키고자 하는 사람, 즉 하느님의 구원과 창조 역사에 헌신하는 사람이다.


22.

예수의 "영혼 구원"은 제1 차축시대(800 BCE-200 CE) 이후 종교의 공통적인 구원론이었다. 즉 예수를 비롯해서 페르시아의 짜라투스트라, 이스라엘의 예언자들, 인도의 고타마 붓다, 중국의 공자, 노자, 장자, 그리스의 여러 철학자들이 이 시대의 정신적/종교적 거인들이었다. 이들이 모두 그 이전 시대의 원시종교의 특성들, 즉 인종적-부족적이며 일원론적이며 제의적인 자연종교들의 한계를 절감하고, 개인적으로 "시공의 세계를 초월하여 영원을 음미"하고, 이원론적인 관점에서 영원하며 초월적인 "저 세상"에서의 해방과 구원을 추구하게 된 것은 고대 제국들의 무자비한 정복전쟁과 권력 집중적 지배체제로 인한 민중들의 가중된 고통과 직결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처럼 제1 차축시대 이후의 역사적 종교들이 지향했던 영원하며 초월적인 "저 세상"에 기초한 신화는 기독교의 근본이 되어, 성경은 저 세상으로부터의 계시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저 세상으로부터 이 세상에 잠시 왔다가 다시 저 세상으로 올라가고, 신자들은 죽은 후 저 세상에서 영생을 누리게 된다는 신화를 낳았다. 그러나 로이드 기링이 {기로에 선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자세하게 분석한 것처럼, 제2 차축시대(1600-1800 CE)를 지나면서, 천문학, 지질학, 생물학, 사회학, 심리학, 종교학, 성서학 등의 발전을 통해, 비판의 핵심은 "저 세상"에 있었다. 따라서 제2 차축시대 이후에는 예전의 역사적 종교가 세속적 종교로 바뀌며, "저 세상성"은 "이 세상성"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기독교가 전통적인 이원론적 세계관과 영육 이원론을 극복하고, "교회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구호를 "이 세상 밖에서는 구원이 없다"로 바꾸며, 이 세상에 대해 책임 있는 통전적인 신학을 형성하기 위해 그 동안 무시해왔던 몸의 신학, 땅의 신학, 세계의 신학, 진화의 신학, 지구 공동체의 신학을 발전시킬 단계에 접어들었다.


23.

오늘 우리의 상황은 예수의 상황과 마찬가지로 제국주의가 지배하는 세계화와 사회적 빈부격차의 심화, 종교적 차별과 사회적 약자들의 절망감이 매우 깊은 현실이다. 즉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체제의 세계화라는 현실에서, 초국적 자본의 지배와 주변 제국들의 한반도 지배 야욕에 직면한 상황이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및 독도 영유권 주장, 그리고 미국의 대북 개입전략 등 제국주의에 대처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예수의 복음의 반제국주의적 성격을 분명하게 해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 성서의 하느님은 창조와 구원의 하느님, 즉 생명과 평화의 하느님이다. 하느님의 창조와 구원 사역을 가장 방해하는 세력은 제국들이다. 그러므로 성서는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세상 제국들의 지배와 착취에 맞서서 개인의 생명과 공동체의 평화를 증진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하느님의 반제국주의 운동에 관한 기록이다.

성서의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결코 제국주의를 찬양할 수 없으며, 제국의 필연적인 멸망과 제국의 전쟁신학의 폭력의 가면을 벗기고 그에 저항하는 과제를 맡고 있다(월터 윙크). 예수는 제국의 정복과 폭력과 지배와 착취에 정면으로 맞서서, 섬김과 나눔과 비폭력과 협동을 가르쳤다. 사회적 경쟁과 배제, 차별과 무관심에 정면으로 맞서서, 예수는 서로 의존하고 품어 안을 것을 가르쳤다. 종교적 자만심과 증오심에 정면으로 맞서서 하느님의 자비에 기초한 사랑과 자비를 가르쳤다. 극심한 취업난과 높은 실업률, 노동자의 절반이 넘는 비정규직의 노동조건의 악화 속에서 인간의 자아실현보다는 취업을 위한 비인간화 현실에서 예수의 복음의 핵심인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와 모든 인간, 특히 사회적 약자들의 무제약적 존엄성과 서로 간의 섬김과 나눔, 협동과 함께 아파함의 대안적인 삶의 방식을 구현함으로써 우리들 자신의 잠재력을 극대화하며 우리 이웃들도 잠재력을 극대화하도록 도울 때이다.


24.

결론적으로 교회개혁은 교회 안에서 실종된 예수와 "예수의 복음"을 정직하게 되찾아 그의 비전과 전략을 계승하는 신학적 개혁이 원동력이 될 것이며, 예수의 정신에 입각한 구조개혁이 이루어질 때 성공할 수 있으며 사회적 신뢰성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된다. 특히 교회개혁의 일차적 추진자는 교회의 지도력을 갖고 있는 사제들(목사들)이기 때문에, 그들 스스로의 특권과 권위주의를 포기하는 일에서부터 교회개혁은 구체화될 것으로 판단한다. 사제들(목사들)이 우선적으로 포기해야 할 것은 호칭의 권위주의, 설교와 성만찬의 권위주의, 축도의 권위주의 등으로서, 이런 독점적 권위주의를 포기할 때, 예수의 정신과 예수의 복음이 뿌리내리기 시작할 것으로 판단된다. 즉 우리말 "목사"는 한문으로 牧師로서, 평신도를 "양떼"(짐승)로 간주하며 자신은 그들을 돌보는(牧) 스승(師)으로 간주하는 권위주의를 드러내고 있다.

더군다나 가톨릭의 "신부"는 한문으로 神父, 즉 하느님(神)의 권위와 아버지(父)의 권위 모두를 쥐고 있는 절대적 권위로 치장한 호칭이다. 유교 전통이 아직도 우리의 생활과 의식 속에 강하게 남아 있는 현실에서 교회 지도자들에 대한 이런 외적인 권위는 예수의 정신을 가리는 것이 되기 쉽다. 차라리 담임자, 혹은 사제라는 호칭이 예수운동을 계승하는 교회에 어울리는 호칭일 것이다. 더군다나 민주적인 질서에서 성장한 세대들은 호칭이나 지위를 통한 외적인 권위에 대해 식상해 하며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존경심에 기초한 진정한 권위를 받아들이기 마련인데, 사제들의 진정한 권위는 삶의 성실성과 언행일치, 하느님의 통치질서의 기본인 섬김의 자세를 통한 지도력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설교와 성만찬, 축도 역시 예수가 반대했던 "브로커 체제," 즉 연고주의와 사제중심주의와 계급중심주의를 되살리는 역할을 하지 못하도록, 성경공부 중심으로 하며, 평신도들도 설교와 성만찬에 참여하도록 훈련시키는 일이 우선적으로 필요할 것으로 판단한다. 끝으로 평신도들을 위한 신학교육은 교회개혁뿐 아니라 교회의 생존을 위해서도 필수적인 것으로서, 영아세례는 있고 견신례(입교식)를 위한 집중교육은 없는 현실, 심지어 세례예비자 교육마저 형식적으로 하는 현실은 사제들(목사들)이 그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실로서 시급하게 시정되어야만 한다.


25.

종교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유대 기독교 전통의 "하느님의 강"(그레고리 라일리)은 고대 제국들의 지배체제의 억압에 맞서서 해방을 갈구하던 노예들에 의한 탈출과 반란에서 시작되어 가나안의 거친 골짜기들과 험난한 광야들을 거치며 메소포타미아, 특히 바빌로니아와 페르시아에서 흘러온 지류들, 그리고 그리스-로마의 지류들과 합류하여 점차 다양한 요소들을 품은 큰 강물이 되어 서구를 거쳐 줄기차게 흐르다가 한반도까지 촉촉하게 적시는 강물이 되었으며, 이제는 지구촌 시대에 전 지구적인 "신앙의 바다", 그 생명의 바다로 힘차게 흘러들고 있다. 하느님의 강은 한반도에서 한국인들의 심성과 한국의 문화에 어떤 풍요로움을 가져다주었으며, 어떤 폐해를 안겨주었는가? 가부장적이며 신분제 사회에서 운명론과 미신에 빠져 하느님의 정의와 도움을 갈망하던 목마른 이들에게 하느님의 강은 맑은 샘물이었다.

즉 하느님 앞에서의 존엄성과 평등성, 성령 안에서의 자유와 해방을 일깨워주었으며, 유교적 지배 이데올로기에 맞서서 초월적 하느님에 의한 현실의 상대화와 처음으로 "회개"를 통한 새로운 변혁의 주체적인 삶을 가능케 하였으며, 제국의 지배에 맞서 싸우던 이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새로운 공동체 현실을 희망 가운데 바라보며 헌신할 수 있게 하였다. 이제 남은 과제는 어떻게 한국교회의 폐해를 극복하여, 오늘날 세계사의 탁류와 한반도의 먹구름 속에서, 특히 오늘날처럼 교회 안과 밖에 사탄의 세력들과 우상숭배가 팽배한 현실 속에서 어떻게 이 생명의 강줄기를 통해 우리의 개인적 삶과 공동체를 정화시키며, 다음 세대들을 위해, 그리고 세계적 종교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지구적 영성"을 위해, 우리가 이 "하느님의 강"에 새롭게 창조적으로 덧붙일 요소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일 것이다. 오늘 우리들 예수의 제자들의 믿음과 실천이 이 두 가지 역사적 과제 모두를 결정지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성령이여, 우리를 도우소서.

본인은 아직 학문적으로나 신앙적으로나 부족한 점이 많지만, 이 스물 다섯 개 신학논제를 한국의 신학대학들과 교회들의 대문들 위에 걸어놓고, 교회개혁을 위한 신학적 논의가 시작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기도하는 바이다.


* 지난 7-8년 동안 나를 사로잡고 있었던 역사적 예수 연구를 요약한 중간보고서인 셈입니다. 지난 겨울 지리산 모임에서 밝힌 것처럼, 윤리학을 전공한 사람이 역사적 예수 연구를 소개하는 작업에 몰두하게 된 것은 또다시 종교재판이 벌어질 경우를 대비하여, 성서해석학에 입각한 진보적인 신학의 거점을 마련할 절박한 필요성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지난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나에게 의문시되었던 예수 물음에 대해 학문적 대가들을 통해 얻게 된 나의 해답을 부족한 상태로나마 정리하고 나니, 좀더 일찍 이처럼 명확한 신학노선을 배우지 못했던 것이 많이 아쉽기도 하지만, 이처럼 솔직한 신학을 할 수 있게 허락한 감리교신학 전통에 대해 눈물겹도록 고마울 따름입니다. 글 쓰고 난 후에 이처럼 자유로움을 느낀 적도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2005년 5월 12일, 김준우, 한국기독교연구소 소장)

원글 : 당당뉴스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8670

예수님의 이 난감한 상황을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