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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신학운동]

만군의 주 여호와? 마라나 타? 그리고 부활?!

by 농자천하/ 2017. 2. 25.

 


만군의 주 여호와? 마라나 타? 세월호 그리고 부활?!


제57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마이클 무어(Michael Moore)의 다큐멘터리, "화씨 911(Fahrenheit 911)"의 일부분을 캡쳐한 그림들이다. 도리어 기독교가 적으로 삼길 주저 않는 무슬림... 그 어머니의 울부짖음을 보자. (무슬림에 대한 한국 근본주의 기독교도들의 존경할 만큼 단순무구한 대처와 숭미주의에 입각한 놀라운 증오심에 대해서는 다음에~)

우리 야하웨-예슈아교의 3대 핵심;

"전능하신 만군의 여호와여, 우리의 원수를 갚아주소서!"
"마란아 타(מרנא תא)! 주여 오소서!"
그리고, 저 "부활의 희망!"

...등이 있는 그 결정적인 자리가 바로 여기이다. 저 평범한 일상의 사람들을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살육한 자들은 '만군의 주 여호와의 이름으로 치르는 거룩한 전쟁'이니 뭐니 하는 자들이었다. 자, 과연 그 누가 이 '사람'들의 원한을 풀어 주는가? 이들은 그 누구에게 하소연을 해야 하는가? "우리의 원수를 갚아 주소서! 우리에게 다시 오소서! 가장 억울한 죽음을 짊어진 분, 부활 폭죽의 시작! 당신처럼 억울하게 죽은 우리 자식들도 당신처럼 부활할 거라는 걸 우리는 기어코 끝까지 믿을 겁니다!"

야하웨-예슈아교의 자리는 다름 아닌 '히브리' 곧 주권도 영토도 보호자도 없이 광야를 떠돌며 자식을 먹여 살려내야 했던 떠돌이들의 숨가쁜 생존의 현장이었다. 지배자들과 가진 자들에게서 나오지 않은 거의 유일한 종교가 여기에 있다. 미안하지만 처자식을 두고 구도자의 길을 얼마든지 떠나도 되는 자리에서 나온 종교 또한 우리에게는 지나친 사치일 뿐이다.

갈릴리의 예슈아께서 살아내야 했던 '목수로서의 삶'이 차라리 짐승의 먹이나마 보장되었던 노예보다도 더 혹독한 소작농, 뼈 빠지게 일해서 대지주 제사장들과 헤롯에게 모두 빼앗기고 겨우 가족들 굶겨 죽이지 않을 만큼도 얻을 수 없어 뭐든 가리지 않고 고치고 만들며 끼니를 이어야 하는 '동네 목수'로 살면서, 동시에 헤롯의 대도시 건설에 징발되어야 했던... 저 갈릴리의 한 농사꾼 목수의 숨 막히는 삶터였던 광야에서 다시 만개했던 야하웨 신앙의 본질.

결코 허투루 쉽게 입에 담을 이야기가 아닌 거다... 오, 이 땅의 모든 어미 아비들의 억울한 눈물이 모두 사라지도록, 정의와 평화의 황제 그리스도여! 우리에게 오소서! 부활하신 분, 우리도 반드시 다시 살아나 짓밟혀 하소연조차 할 곳 없는 무지렁이들인 우리가 당신이 베푸시는 잔치에 초대 받게 될 것을 죽어도 희망하렵니다! 그렇게 세상이 뒤집어지는 날을 끝까지 희망하렵니다! 희망을 살아내렵니다! 그러니 야햐웨-예슈아의 영이어, 우리의 영이 되소서!!! 이런 거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 자신들의 국가로부터 보호 받기는 커녕 도리어 이 기막힌 참주정권과 그 추종자들의 증오심에 의해 적으로 내몰려 죄인 취급을 받아 온, 이 분들의 눈물을 외면할 수 없는 거다. 만약에 이런 정도의 한이 우리 가슴에는 없다면, 지금 우리가 그래도 그런 무지렁이 히브리 사람들의 처지는 아니라면, 이들을 위해라도 '주님' 찾지 말고 그냥 미안해 하면서, 이런 어미 아비들 가슴 속에도 최소한 일상의 평화가 깃들게 되길 빌면서, 진실로 전쟁과 차별과 착취 없는 세상을 빌면서 그저 주어진 제 삶이나마 열심히 살면 될 일이다... 함께 세상 뒤집는 일에 제대로 나설 게 아니라면 말이다.

이것이 성서가 말하는 사랑이며, 평화이고 또 그나마 용서...라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