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세상 변혁 민중신학과 실천
그리고 성서비평학적 성서연구들과
인문학 독서와 공부들 등
신학적인 일들이야 처음부터였지만,
교회 목회 일은 정말이지,,
성서 연구하고, 예배 인도하고,
기도하고, 심방하는 일 밖에 모르던 내가
이렇게 지금 여기까지 와 있습니다,,
왜 나는,
1969년 초2학년 10월 마지막 주간 어느날
지금도 잊지 못하는 나의 벗
김원구에게 이끌려 교회에 다니기로 약속하고
그날 그의 교회 전도사님 댁을 방문했을 때
전도사님이 어린 내 손을 붙잡고 기도하시기 전
그 댁에 들어서면서 보인 예수님 초상화를
대하는 순간에 벌써 무언가가 어린 가슴 속에
훅~하고 들어와서 단 번에
나는 그 때부터 바로 신자가 되었던 걸까요,,
왜 나는,
유년주일학교 선생님들이 이야기해 주던
예수님 이야기가 그렇거도 재미있었고,,
매주일 출석상 요절암송상으로 받았던
예수님 초상화가 그려진 작은 카드들이
그리도 좋아했고 소중히 모았던 걸까요,,
왜 나는,
유년주일학교 부장 선생님이 설교하시며
'이ㅗ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지마는
마음은 멀도다, 마음은 멀도다'는 구절을
노랫말로 가르쳐 주며 울먹이시던 일과,,
또 어느 여선생님이 터다란 망치로
자기 손바닥에 대못을 치고는 정말로 아파서
피멍든 손을 안고 엉엉 울던 일들이
아직도 이리 선영한 걸까요,,
왜 나는,
그렇게 유별나게 예수님께로 집중 되었고,,
왜 나는, 초5학년 겨울에 결국 이 길로 소명되고,,
그리고 왜 나는,
부흥회에서 '주의 종, 났다'는 안수를 받은 뒤로
나는 정말로 주의 종은 처음부터 그렇게
'태어나는 걸로' 여기게 되고,,
결국 그로써 지금껏 어마어마한 사명이라는
엄청난 족쇄와 착고에 매여 살게 되었을까요,,
왜 나는,
중2 때부터 로마서와 특히
디모데전후서를 읽으며, 내 아들아~ 하는
바울 사도의 편지가 육성으로 들려서
혼자 벅차고 혼자 울컥 거리며
청소년기의 정체성을 갖게 되었을까요,,
언제부터인가 왜 나는,
복음서를 읽으며 예수 말씀들에 대한 감격보다
그냥,, 예수 앉으사, 예수 일어나 떠나가사,
예수 행로에 곤비하사, 예수 우시며 이르사,
예수 홀로 광야에 나가사,,,, 와 같은
구절들에 더 가슴이 뜨거워지게 된 걸까요,,
왜 나는,
예수님 십자가 장면보다 그 자리에 있었던
주의 모친과 사랑하는 제자가,,
예수님의 부활 장면보다 빈무덤으로 달려갔던
요한과 베드로와,, 특히 엠마오 제자와 주님의
모습들이 견딜 수 없이 생생하게 된 걸까요,,
왜 나는,
교회 안에서 온갖 일들을 겪으면서
그토록 분개하고 스스로 상처 내면서
애를 태우는 목사로 살 수밖에 없던 걸까요,,
이제 다시 돌아와
이 한 갈릴리의 주님을 삼가 뵈오면서
그저 다만 나의 진실을 다하여
온 맘 다 해, 날마다 예수님 찬미를
이제는 나의 삶으로써!
용맹스러운 실천으로 결사의 충정을 바치는
단순무구한 집행인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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