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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람과 경외/나의 골방

왜 나는,,

by 농민만세 2019. 12. 3.

 

물론 세상 변혁 민중신학과 실천

그리고 성서비평학적 성서연구들과

인문학 독서와 공부들 등

신학적인 일들이야 처음부터였지만,

 

교회 목회 일은 정말이지,,

성서 연구하고, 예배 인도하고,

기도하고, 심방하는 일 밖에 모르던 내가

이렇게 지금 여기까지 와 있습니다,,

 

왜 나는,

1969년 초2학년 10월 마지막 주간 어느날

지금도 잊지 못하는 나의 벗

김원구에게 이끌려 교회에 다니기로 약속하고

그날 그의 교회 전도사님 댁을 방문했을 때

전도사님이 어린 내 손을 붙잡고 기도하시기 전

그 댁에 들어서면서 보인 예수님 초상화를

대하는 순간에 벌써 무언가가 어린 가슴 속에

훅~하고 들어와서 단 번에

나는 그 때부터 바로 신자가 되었던 걸까요,,

 

왜 나는,

유년주일학교 선생님들이 이야기해 주던

예수님 이야기가 그렇거도 재미있었고,,

매주일 출석상 요절암송상으로 받았던

예수님 초상화가 그려진 작은 카드들이

그리도 좋아했고 소중히 모았던 걸까요,,

 

왜 나는,

유년주일학교 부장 선생님이 설교하시며

'이ㅗ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지마는

마음은 멀도다, 마음은 멀도다'는 구절을

노랫말로 가르쳐 주며 울먹이시던 일과,,

또 어느 여선생님이 터다란 망치로

자기 손바닥에 대못을 치고는 정말로 아파서

피멍든 손을 안고 엉엉 울던 일들이

아직도 이리 선영한 걸까요,,

 

왜 나는,

그렇게 유별나게 예수님께로 집중 되었고,,

왜 나는, 초5학년 겨울에 결국 이 길로 소명되고,,

그리고 왜 나는,

부흥회에서 '주의 종, 났다'는 안수를 받은 뒤로

나는 정말로 주의 종은 처음부터 그렇게

'태어나는 걸로' 여기게 되고,,

결국 그로써 지금껏 어마어마한 사명이라는

엄청난 족쇄와 착고에 매여 살게 되었을까요,,

 

왜 나는,

중2 때부터 로마서와 특히

디모데전후서를 읽으며, 내 아들아~ 하는

바울 사도의 편지가 육성으로 들려서

혼자 벅차고 혼자 울컥 거리며

청소년기의 정체성을 갖게 되었을까요,,

 

언제부터인가 왜 나는,

복음서를 읽으며 예수 말씀들에 대한 감격보다

그냥,, 예수 앉으사, 예수 일어나 떠나가사,

예수 행로에 곤비하사, 예수 우시며 이르사,

예수 홀로 광야에 나가사,,,, 와 같은

구절들에 더 가슴이 뜨거워지게 된 걸까요,,

 

왜 나는,

예수님 십자가 장면보다 그 자리에 있었던

주의 모친과 사랑하는 제자가,,

예수님의 부활 장면보다 빈무덤으로 달려갔던

요한과 베드로와,, 특히 엠마오 제자와 주님의

모습들이 견딜 수 없이 생생하게 된 걸까요,,

 

왜 나는,

교회 안에서 온갖 일들을 겪으면서

그토록 분개하고 스스로 상처 내면서

애를 태우는 목사로 살 수밖에 없던 걸까요,,

 

이제 다시 돌아와

이 한 갈릴리의 주님을 삼가 뵈오면서

그저 다만 나의 진실을 다하여

온 맘 다 해, 날마다 예수님 찬미를

이제는 나의 삶으로써!

용맹스러운 실천으로 결사의 충정을 바치는

단순무구한 집행인으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