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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신학연구소/[농촌 농업 기후]

무시무시한 식량전쟁! 아이티를 집어 삼키고 있는 미국!! 미국은 본래 농업제국,,,

by 농민만세 2019. 12. 21.

 

 

쌀농사가 무너지면



/고재섭 (국제슬로푸드 한국협회 상임이사)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1934441363260221&id=100000831283958


1986년 이전까지 아이티는
쌀을 거의 수입하지 않았다.
관세와 수입제한으로
자국 농업을 강력하게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독재자 장 클로드 뒤발리에가
1986년 탄핵되고 난 후
IMF로부터 2460만달러의 대출을 받았다.
뒤발리에가 도망가면서 국고를 비워버렸기 때문에
현금이 몹시 필요했던 아이티는
대출과 함께 대출조건도 받아들여야 했다.
쌀과 다른 농산물에 대한
관세보호조약을 철폐하고
수입물에 시장을 개방하며
농민들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는 것이다.

한편 미국은 1985년 식량안전법 통과로
쌀 농민에 대한 보조금을 대폭 늘렸다.
이렇게 엄청난 지원을 받는 미국 쌀은
아이티 쌀보다 시장에서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팔 수 있었다.
아이티 농민들은 결코 이
불공정 경쟁에 대항할 수 없었다.

2010년 아이티에 지진이 일어나자
클린턴 대통령은,
아이티의 쌀 농민들을 희생시켜서
미국 아칸소의 거대 농기업을 도왔다고 하면서
자신이 재임하는 동안
아이티로 하여금 쌀 관세를 낮추도록
강요한 데 대해 사과하였다.
그러나 이 사과 이후에도
변한 것은 하나도 없다.
이제 아이티에서 쌀 수입은
금액 기준으로 두 번째 큰 수입 품목이 되었고
국내 소비의 80%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다음은 트로이대학
경제학자 마이클 카스터너가
2017년 3월 14일 기고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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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농산물 덤핑은 어떻게 아이티를
가난과 대외의존으로 몰아넣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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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산물 덤핑은 미국의 대외 원조 중
가장 위험한 형태 중 하나다.
농산물 덤핑은 굶주린 아이들을 먹이기 위해
엄청난 양의 곡물을 무료로
또는 시장 가격 이하로 전달하는 것이다.
의도는 아름다워 보이지만
의도에 따르는 정책은 혐오스럽다.

2016년 5월, 미 농무부가 아이티에 보내려고
500톤의 땅콩을 선적했을 때,
“농산물덤핑” 논란이 있었다.
아이티와 원조 단체는
농산물덤핑 행위를 중지하라고 항의했다.
15만 명이 넘는 아이티 땅콩 농민의
생계를 악화시키기 때문이었다.
농민들은 공짜 농산물과는 경쟁할 수 없었다.
아이티는 경제 자유화와 관련하여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 산업에서 다른 산업으로의 전환은
매우 힘들거나 불가능하다.
아이티 시장을 무시하고
해외원조를 제공하겠다는 미국의 주장은
아이티의 경제 자립을 위험에 빠뜨린다.
우리가 아이티 경제에 간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아이티는 한때 강력한 쌀 산업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과 다른 채권국들의 압박으로
아이티는 1980 년대에 무역자유화를 시작했는데,
이 시기는 1985년 미국이
식량안전법(Food Security Act)에 의해
쌀 산업에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던 때였다.
1990년대 미국은 아이티에 덤핑 쌀을 보내야했다.
마이애미 항구에서 선적되어
'마이애미 쌀'로 알려진 이 쌀로
미국은 아이티 경제를 강타했다.

아이티에 수입된 쌀은
국내 생산을 대체하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폭락된 쌀 가격으로 인해
아이티인들은 쌀농사를 버리게 되었다.
미국이 자국의 쌀농사에 지급하는 보조금은
쌀농사를 짓는 많은 아이티의 농민을
몰락하게 만들고
아이티인들이 해외 원조에 의존케 하였다.
당시 아이티 지방에서는
주로 농업으로 생계를 이었다.
아이티 농민들은 민간 시장과
가격 체계를 통해 경쟁했지만
미국은 정상적인 과정으로 경쟁하지 않고
대신 비시장 가격으로
잉여 농산물을 판매하기로 결정했다.
아이티 농민들은 경쟁할 기회가 있었지만,
아이티가 빈곤을 퇴치할 기회를
미국 정책이 말살한 것이다.



원문 : https://fee.org/articles/how-us-crop-dumping-keeps-haiti-poor-and-dependent/ 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