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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신학연구소/[갈릴리 밥상 공동체]

제 2 장 우리의 밥, 밥상(床), 밥상 공동체 - 2.1. 2.2. 2.3. 2.4. 2.5.

by 농민만세 2020. 7. 16.

 

[ 제 2 장 우리의 밥, 밥사, 밥상(床) 공동체 / 2.1. The 'BapSang' Community / 2.2. '해원(解寃) 떡' / 2.3. 시향(時享), 시제(時祭) / 2.4. 해월 최시형의 밥 / 2.5. 다석 유영모의 밥과 밥상 ]

 

한마음교회의 지역사회 선교와 자활 밥상 공동체
LOCAL COMMUNITY MISSION OF 
THE HANMAEUM CHURCH AND 
THE SELF-SUPPORT BAPSANG COMMUNITY



제 2 장  우리의 밥, 밥상(床), 밥상 공동체


‘하늘에만 있는 하느님’ 또는 ‘하늘만 위하는 하늘’의 이야기라면 그것이 과연 오늘의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것인가? 더구나 ‘하늘을 위하는 땅’이라거나 ‘땅을 위하는 땅’의 이야기라 해도 결국 그것은 우리를 소외시켜 강제하는 구도가 되고 말 것이니 그래도 우리가 그것을 용인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그런데 기독교의 성서는 독특하게도 ‘땅에 있는 하늘’, ‘땅을 위하는 하늘’ 심지어 ‘그래서 땅이 된 하늘’만을 집중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그 덕분에 아직은 기독교가 유효하고 그럴 때만 기독교는 우리의 땅에서 그리고 우리의 세계에서 여전히 용인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땅에 있는 하늘이 위하는 그 땅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우리 인간의 생존에 무엇보다도 가장 기초적이고 중요한 ‘밥’을 이야기해 온 우리 땅의 우리 사람들과 우리의 성서를 우리의 언어로 다시 읽어야 하는 과제가 있다.


2.1. The 'BapSang' Community

  일반적으로 ‘밥상공동체’는 영문으로 ‘Dining Table Community’ 또는 ‘Table Fellowship Community’ 등으로 표기한다. 하지만 논자는 우리 한국인 고유의 문화 속에 오랜 세월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둘러앉은 식구(食口)들 앞에 차려지고, 한 집안과 마을공동체를 위해 차려져 나뉘었던 우리의 ‘밥상(床)’이 영어권 문화에서의 그것과 결코 같을 수 없을 것기에 본 논문의 영문 제목을 ‘The BapSang Community’라고 표기하였다.

  모두가 가난을 숙명처럼 여기고 살던 시절, 어스름한 저녁이 오면 할머니와 어머니는 짚단을 불쏘시개 삼아 솔가지를 꺾어 아궁이에 넣고 불을 살라 쌀독의 바닥을 긁어낸 보리쌀을 가마솥에 푹 삶아냈다. 집집이 뒤꼍 낮은 굴뚝에서 피는 저녁밥 짓는 연기에 종일 뛰놀던 아이들도 새끼 너구리 제집 찾듯 모두 돌아간 텅 빈 동네 마당, 늦게 하교하던 작은형이 멀리에서도 금방 알아보고 ‘막내야~’하고 부르곤 했다. 강원도 화천에서 군 복무하던 큰형이 편지에 넣어 보낸 흑백사진을 반길 새도 없이 거칠고 시커먼 보리밥을 한 그릇씩 차지하고는 밥알이 잔뜩 붙어있는 삶은 고구마를 먼저 한입 가득 베어 물고는 마냥 행복해 깔깔거렸다. 그 가난의 시절, 내 땅 한 뼘 없이 농사를 지었던 할아버지와 아버지도 그 철없던 막내 아이처럼 행복했을까? 방직 공장에서 돌아온 누나는 찬바람을 몰고 들어오며 말했다. “가난한 집 밥그릇 긁는 소리가 유난히 크다더니, 밖에까지 들려.”

  이 짜릿하도록 슬픈 밥상을 다른 나라의 어떤 말로 제대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본 논문에서 단 한 줄이나마 제대로 언급하지 못하고 다음으로 기약하는 북녘 동포들의 밥상은 또 어떤 밥상일까? 탈북 시인으로 외국어대학 행정학과에 재학 중인 이제 스물아홉 살의 이가연 시인은 첫 번째 시집 『밥이 그리운 저녁』에서 흰 쌀밥을 맘껏 먹게 된 남한에서의 새 삶을 통해 그리워하는 북녘 사람들의 모습을 아프도록 진솔하게 적고 있다.

<쌀독>
 /이가연76)

옆집 연희네 가족은 온 가족이 굶어 죽었다
그들의 이름을 쌀독에 묻었다
땅에서 굶어 죽어 또 다시 굶주릴까봐
쌀독에 묻었다.

<대한민국>
 /이가연

대한민국, 그저 고맙고 감사하다
쌀밥을 하루 2끼 배불리 먹을 수 있어서
더운 물에 샤워할 수 있어서
절로 절로 눈물이 빛난다.

  바로 그 ‘대한민국’에서 이미 살고 있는 우리 중 그 누가 대,한,민,국, 이 네 글자에 대해 이토록 절실할 수 있을까? 미국 주도의 경제제재로 처절히 유린 되는 북녘 가족들의 밥상은 어느 정도인 걸까? 쌀밥을 한 그릇 퍼 놓은 밥상 앞에서 우리 중 그 누가 이토록 애달플 수 있을까? 이제부터 우리의 밥과 밥상에 대해서 논하겠지만 또 다른 말이 필요 없이 이 단 몇 줄의 시구만으로 우리는 우리의 밥과 밥상에 더없이 겸허해진다. 자고로 밥이 하느님이고 밥상이 하느님의 품이다. 일찍이 박목월 시인은 밥상 앞에서 크게 두 팔 벌려 아이들을 품고, 등 뒤에는 허허로운 가난을 숨긴 아버지의 밥상을 이렇게 노래했다.

밥床 앞에서77)
 /박목월

나는 우리 信圭가
젤 예뻐
아암 文圭도 예쁘지.
밥 많이 먹는 애가
아버진 젤 예뻐.
낼은 아빠 돈 벌어가지고
이만큼 선물을 사갖고 오마.
이만큼 벌린 팔에 한 아름
비가 변한 눈 오는 空間

(중략)

어린 것을 내가 키우나.
하느님께서 키워 주시지
가난한 자에게 베푸시는 
당신의 뜻을
내야 알지만
床 위에 찬은 純植物性.
숟갈은 한죽에 다 차는데
많이 먹는 애가 젤 예뻐
언제부터 측은한 情으로
인간은 얽매어 살아왔던가.
이만큼 낼은 선물 사오께.
이만큼 벌린 팔을 들고
신이어. 당신 앞에
육신을 벗는 날,
내가 서리라.

  이처럼 우리의 ‘밥상(床)’은 다른 어떤 말로도 다르게 풀어 쓸 수 없는 ‘밥상’(bapsang)이다. 거기에는 정(情)과 사랑이 그리고 화해와 나눔이 있고 거기에는 가난할수록 더 풍요로운 신비가 있다.


2.2. ‘해원(解寃) 떡’

  17년 전 이곳 태안군 남면 면 소재지로 이주했을 때 우리 마을에는 논자가 40여 년 전 중학생 시절에 경험했던 농촌 고향마을의 명절 분위기가 거의 그대로 남아 있었다. 추석 이전에 마을 주변 곳곳에서는 조상 묘 앞에 두루마기를 입은 문중 사람들이 모여 시향(時享)을 지내고 있었고, 도회지에서 오랜만에 방문한 자녀들로 마을 분위기는 들떴으며, 면사무소 앞마당에 넓게 펴놓은 네모난 멍석을 둘러싼 마을 사람들의 윷놀이로 시끌벅적했다. 신정(新正)을 맞아 교회에서 새해를 맞는 신년감사예배를 드리는 일이 몹시 어색할 만큼, 음력 구정(舊正)을 당연히 설로 쇠고 있었고 정월 보름이 되면 아이들은 텅 빈 논바닥에서 밤늦도록 불놀이를 했다. 일반적으로 이처럼 추석이나 설이 되면 대부분 교인은 ‘조상 제사’ 문제로 심각해지곤 하는데, 그것을 강하게 금지하지 않고 ‘우리가 선교적인 마음이 있다면 그런 관습과 충돌하지 않고 전략적인 수용을 해야 한다’는 권고를 받아들지 못하고 각자 집에서는 어쩔 수 없이 조상제사 음식을 차리며 죄책감에 시달리는 것이었다. 논자는 이때 온 가족이 마당에 모여 떡메를 쳐서 낱알의 쌀알들을 부수고 으깨어 서로 달라붙는 떡 ‘인절미’를 만들어 먹는 이야기하면서 ‘해원 떡’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정경호 교수는 ‘생명 밥상 신학’을 논하면서 다음과 같이 우리의 전통문화 관습 속에 있는 ‘해원 떡’을 소개한다. “우리 민족은 해원(解寃)의 한 방법으로 하늘의 뜻이 담겨있는 밥을 함께 먹는 밥상 공동체를 통해서 용서와 화해를 나누었거나 혹은 원한을 푸는 떡 ‘해원 떡’을 만들어 미워하고 증오하는 사람에게 정중하게 선물하여 나누어 먹음으로써 원을 풀기도 하였다.”78)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 김영복 원장은 ‘해원 떡’, ‘풀이 떡’ 또는 ‘해원병(解怨餠)’이 정월 대보름날 전야에 법고를 치는 스님에게 아무 동네 아무개하고 원한이 있으니 이를 풀어야 하겠다는 마음으로 풀 사람의 이름을 쓴 단자를 떡과 함께 가져다주면 스님은 그 집을 찾아가 ‘아무 동네 아무개의 풀이 떡이요’ 하며 떡을 전달하여 지난 한 해 동안 맺혔던 서로의 원한을 푸는 우리 고유의 민속에 있는 양속(良俗)이었다고 말한다.

   “이 떡을 풀이 떡 또는 해원병(解怨餠)이라고 한다. 해원병(解怨餠)은 인절미(引切米)를 말한다. 한 덩어리를 올려놓고 함께 먹는 사람끼리 잡아끌어 떼어서 먹는 것이다. 한 음식을 떼어 먹음으로써 일심동체를 다지는 우리 전래의 풍습이다. (...) 인절미는 화해의 떡이다. 우리의 조상들은 새해맞이 민속으로 대보름 전후에 원풀이 떡을 해서 돌리기도 했다고 한다. 원망을 푼다고 해 ‘해원병(解怨餠)’ ‘해원 떡’이라 불린 이 떡으로 지난해 불편했던 관계를 씻고 새로운 출발을 하자는 참회와 화해의 선물이다. 그 떡을 먹음으로써 한 해 동안 적체된 원한을 푸는 아름다운 해원(解怨) 풍습인 것이다. 스님들이 이 풀이 떡 단자를 전하면서 그 배달의 대가로 퍼주는 곡식이나 금전을 요즘 흔히 말하는 떡값으로 속칭(俗稱)했던 것이다.”79)

  당연히 이 ‘해원(解寃)’은 우리의 성찬식에 녹여 들여야 하는 중요한 우리의 이야기이다. 논자는 한마음교회에서 이미 4년 전부터 매 주일 성찬이 있는 예배로 종교개혁자들인 존 칼뱅과 존 녹스의 개혁주의교회 본연의 예배를 복원해 왔는데, 앞으로 더 완성해 내야 하는 부분이 바로 이 ‘해원의 성만찬’ 부분이다. 이웃과의 관계는 물론 평생을 탄식과 억눌림 속에 살아오면서 사별한 ‘남편이나 시어머니’와 해원하지 못한 채, 특히 ‘하늘에 대한 원망’을 해결하지 못한 채 또 그로 인한 죄책감을 지닌 채 살고 있는 농촌 어르신 여성 교인들에게 꼭 필요한 ‘먼저 하느님과 해원하는 성찬식이며 예배’가 되도록 해야 한다.


2.3. 시향(時享), 시제(時祭)

  또 한 가지 한마음교회에서 주시해야 하는 것은 우리 마을의 문중들이 조상의 묘소 앞에 모여 지내는 ‘시제’ 또는 ‘시향’이다. 아쉽지만 우리 마을에서 동제(洞祭)80)는 마을 주민들이 거의 기억을 하지 못할 만큼 오래전에81) 사라졌지만, 시제는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10월경이면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기에 현재 남면 주민들과 한마음교회 교인들의 기억과 심성에도 상당 부분 흔적과 영향이 남아 있는 ‘공동체와 관련된’ 풍속이다. 우리나라에서 관습적으로 가장 널리 행해지는 제례 중 하나인 시제(時祭)는 음력 3월과 10월 중에 날을 택하여 기제사(忌祭祀)82)로 모시지 않는 5대조 이상의 조상을 해마다 한 번 그 묘소에서 받드는 제사를 가리킨다. 이 제사는 종중 혹은 문중 차원에서 주관하여 진행하는 것으로, 각자의 집에서 봉사(奉祀)의 대상이 되는 조상에 대해 차례를 지낸 후 묘소에 모여 성묘(省墓)하는 것과 구별된다. ‘시제’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용어이며, 이 외에도 묘제(墓祭), 묘사(墓祀), 시사(時祀), 시향(時享), 세일사(歲一祀) 등으로 불린다. 그 시기는 3월보다 10월에 더 광범위하게 행해지며, 제사로 모시는 조상의 대수가 올라감에 따라 참석하는 후손의 범위도 넓어지고, 이에 따라 제사를 주관하는 주체 역시 종중이나 문중 차원으로 확대 된다.83)

  시제는 친진(親盡, 친손이 끊어짐)되어 방치되거나 자손들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던 5대조 이상의 조상 묘소를 관리하고, 점차 흩어져 살기 시작하면서 만나기 힘들어지는 친족들 간의 친목을 도모하고 유대를 강화하고자 만들어진 문중 조직은 시제라는 정기적인 의례를 통하여 결속을 도모하였다. 이처럼 시제는 조상숭배라는 종교적 명분보다는 다른 문중 집단에 대해서는 자신의 문중을 과시하고 또한 문중 성원 간에 누구의 한 자손이라는 긍지와 자부심을 고양하는, 집단 성원들의 정체성 확립에 지대한 역할이 더 컸다.84)

  시제는 형식상으로는 조상에 대한 효를 나타내는 의례이긴 하나 내용상으로는 자손들의 문중(門中) 위세와 사회적인 지위 유지 및 획득이 더욱 큰 목적으로 부가되는 제례라고 볼 수 있다.85) 지금까지의 시제는 농업 중심의 생업환경이 주류였던 시기에 시제의 경제적인 토대인 위토답(位土畓)86)을 위주로 하여 문중의 결속력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기반이 되어 왔지만, 농촌인구의 고령화 및 감소와 젊은 세대의 도시 이주 증가 등은 위토답의 경작을 어렵게 하고 참석자의 감소 등으로 문중 조직의 기반을 약화시키는 등 사회적 문화적 변화를 보인다. 그것은 오늘날 개인의 사회적 정체성을 혈연공동체인 문중보다 우선시하는 사회적 문화적 급변화 현상으로 집안 문중에 대한 소속감은 전통사회의 그것보다 현저히 약화 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교에서 제사의 공간은 일상의 공간과 다르지 않다. 제사의 공간은 일상의 생활이 이루어지는 집이기 때문이다. (...) 조상을 모신 사당은 집 밖의 다른 곳이 아니라 집 안에 만들어진다. (...) 일상적 공간이란 부모가 생전에 거처하였던 공간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 같이 살면서 보고, 듣고, 느꼈던 부모에 대한 기억이 이 일상적 공간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돌아가신 부모를 살아계실 때 모셨던 것과 같이 섬기는 뜻’(事亡如事存之義)을 집 안에 거처하는 부모님의 사당을 통해서 구현해 나갈 수 있다. 이렇게 사당은 생전에 부모가 거처하였던 공간을 모방하고 재연(再演) 함으로써 삶의 연속성, 부모와 자식의 연속성을 확장시킨다.”87)

  이처럼 시제 또한 한 문중이 모여 살고 있던 농촌의 마을 안에 마련된 조상의 묘소에 문중의 자손들이 모두 모여 제사를 모시는 일로, 문중의 일가 친족들이 어린 시절부터 함께 어우러져 살고 있던 혈족사회의 대가족 공동체를 다시 확인하고 결속을 다지는 공동체 프로그램이었음을 알 수 있다. “처음부터 유교 문화에서 생성되어 발전된 의례인 제사는 신 또는 죽은 사람에게 음식을 준비하여 바치는 의식이다.”88)

   일반적으로 제사의 절차는 조상의 혼백을 모셔와 음식을 올리고 술을 바치고 그가 흠향하기를 기다렸다가 돌려보내는 과정이다. 제물은 희생의 날고기보다 밥과 국이 중심이 되고, 산사람이 먹는 것처럼 숟가락과 젓가락이 움직이고 식사를 마친 후에는 차까지 대접을 받는다. 이와 같은 ‘음식 나눔’은 가족 공동체에서 가장 일상적인 일 중 하나이다. 음식은 인간의 생존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오고 가는 양육과 공궤에서도 음식은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다. 음식은 삶의 필요 요건일 뿐 아니라 삶이 누릴 수 있는 기쁨의 대상 중 하나이다. 음식의 나눔은 삶의 조건과 기쁨을 공유하는 것이다. 음식은 이러한 가족의 경험을 재생산하고 재현하는 기제이다. 죽은 사람을 산 사람 섬기듯이 하는 제사의 기본 지침은 음식의 봉양을 통해 구체화 되는 것으로 제사는 살아생전에 올리던 음식 봉양의 재연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사는 삶의 연속성에 있다.89)


  한 마을에서 한 문중의 자손들이 모여 살던 대가족 공동체인 씨족 마을에서는 빈부의 격차는 존재하였지만, 밥을 굶는 이는 없었다. 청운의 꿈을 품고 대도시로 나갔다가 물려받은 땅을 모두 날리고 빈손으로 돌아온 훈 어르신네 맏아들도, 어울려 자랐던 동무들을 늘 앞섰지만 연일 낙방하는 사법고시를 포기하고 세상을 한탄하는 아랫말 서울 아재도, 시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소박맞고 돌아와 궂은날이면 소복에 머리를 풀어헤치고 앞들 내를 마냥 뛰어다니던 곱분이 누나도 모두 저마다 보호받고 함께 살 수 있었던 씨족 공동체 마을에서는 매년 농사일을 거두고 쌀쌀해지는 10월이면 한데 모여 시제를 지냈다. 아이들은 저마다 들떠서 시제가 끝나고 나누어지는 ‘봉송(封送)’을 기다렸고, 어르신들은 가난한 집에 보내는 봉송에는 큼지막한 돼지 비곗살을 얹어 넣어 아이들 손에 들려주었다.

  한마음교회는 우리 지역사회가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이러한 마을공동체의 밥상을 주의 깊게 보아야 한다. 물론 농촌의 혈족 중심의 마을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폐쇄성이나 타인들에 대한 배타성, 자신의 문중을 과시하는 허세, 문중 유산의 상속 등으로 다툼이 유발되는 등의 부정적 요소가 상당하긴 하지만, 그와 함께 이상과 같은 회상과 화해의 한마당으로서의 선 기능들의 긍정적 요소들을 되살려내도록 돕고 마침내 더 큰 공동체의 밥상을 차려 타지인과 나그네들까지 초청하고 치유하며 해방하는 공동체성을 복원시키는 하느님 나라의 ‘헌관’(獻官, 제례 주관자·집례축관·집사자)의 역할을 자처해야 하기 때문이다.


2.4. 해월 최시형의 밥

  해월(海月) 최시형(1827~1898)은 동학(東學)의 최제우 교조(敎祖)를 이어 제2대 교주로서 그의 스승 최제우나 이후 천도교(天道敎)90)의 사상에서도 발견되지 않는 '밥'에 대한 독특한 사상을 가르쳤다. '먹음'이 생명을 지닌 인간에게 중차대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으로 이 문제는 줄곧 회피되거나 소극적인 측면에서만 다루어져 왔다. 곧 동서를 막론하고 철학사에서 '먹음'은 늘 형이하학적인, 따라서 철학적 탐구 밖의 문제로 취급되거나 절제, 극복의 대상으로만 여겨졌다.91) 그러나 최시형은 '밥' 한 그릇이 상(床)에 오르기 위해 수많은 사람의 노동과 자연 생명이 자기 생명을 내어줌으로 가능하다는 점에 주목하여 밥 한 그릇에는 무수히 많은 생명이 응결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이런 이유로 밥을 먹는 행위 자체가 신성성(神聖性)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발견한다.92) 이렇게 최시형은 이 '먹음'이라는 생명의 유지를 목적으로 하는 자기중심적 행위가 지니는 의미를 전혀 다른 측면에서 이해한다. "하늘은 사람에 의지하고 사람은 먹는 데 의지하니, 만사를 안다는 것은 밥 한 그릇 먹는 데 있다.(天依人, 人依食, 萬事知, 食一碗)"93)는 것이다.

  최시형은 동학 교문 내에서 함께 식사하기 전에 반드시 ‘식고(食告)’라는 종교의례를 행하게 하였는데 그는 다음과 같이 그 의미를 천명한다. “사람이 천지의 녹(祿)인 줄 알면 반드시 식고하는 이치를 알 것이요, 어머니의 젖으로 자라는 줄 알면 반드시 효도로 봉양할 마음이 생길 것이다. 식고는 반포(反哺)의 이치94)요, 은혜를 갚는 도리니 음식을 대하면 반드시 천지에 고하여 그 은덕을 잊지 않는 것이 근본이 된다.”95) 이처럼 동학에서 먹음의 신성화(神聖化)는 식사 직전의 ‘식고 의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최시형은 먹음의 행위가 지니는 신성성(神聖性)을 천주(天主)와 사람 사이의 ‘감응(感應)’이라는 전통 유교 철학의 용어를 빌어 설명하고 있다. 

  “사람은 다 모신 하늘님의 영기로 사는 것이다. 사람이 먹고 싶어 하는 생각이 곧 하늘님이 감응하시는 마음이요, 먹고 싶어 하는 기운이 곧 하늘님이 감응하시는 기운이요, 사람이 맛있게 먹는 것이 하늘님이 감응하시는 정이요, 사람이 먹고 싶어 하는 생각이 없는 것이 하늘님이 감응하시지 않는 이치이다. 사람은 모신 하늘님의 영기(靈氣)가 있으면 사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죽는 것이다. 시체의 입에 밥 한 숟가락을 넣고 기다려도 밥 한 알도 먹지 못하니 이는 하늘님이 이미 사람의 몸에서 떠난 것이다. 그러므로 먹을 생각과 먹을 기운을 내지 못하는 것이니, 이는 하늘님이 감응하시지 못하는 이치다.”96)

  1885년(고종 22)의 설교에서 최시형은 '천지 만물이 모두 한울을 모시고 있다. 그러므로 이천식천(以天食天)은 우주의 상리(常理)이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사람들이 흔히 먹고 있는 음식도 한울(하느님)의 일부이기 때문에 사람이 한울의 일부인 음식을 먹는 것은 바로 '한울로써 한울을 먹는 것'이 된다는 의미다.97) 요컨대 최시형은 먹는 주체와 먹히는 대상을 동학의 '시천주(侍天主)' 교의에 입각하여 모두 하늘님이라고 규정함으로써 '먹음'의 행위 안에 신성성(神聖性)이 있음을 말한다.98) 밥을 먹기 전에 행하는 감사의 의례인 '식고(食告)', 타인에 대한 공경, 자연 생명에 대한 경외를 뜻하는 '경인(敬人)', '경물(敬物)'은 이런 의미에서 제기된 동학의 윤리 규범이다. 최시형은 먹게 하는 하늘님, 먹히는 하늘님, 먹는 하늘님이라는 종교적 눈으로 '먹음'의 현상이 낳는 역설을 설명했는데 이로부터 떠오르는 것은 '경인', '경물'의 생태학적 지평이라 하겠다.99) 이처럼 최시형의 '식(食)'에 대한 사유는 매우 극적이다. 최시형은 조선이 전통에서 근대의 문턱으로 들어서는 시점에 등장하여, 한편으로는 동양 전통철학의 자연 생명에 대한 풍부한 자유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상대적으로 전통철학에서는 명확하지 않은 자기희생을 하는 생명 운동의 주체성을 분명히 부각시키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근대에 접어들면서 적극적으로 긍정되기 시작한 욕망의 문제를 그 역시 사유의 중심으로 삼으면서도 이를 '시천주(侍天主)'의 종교적 시각으로 사유하고 종교적 언어로 표현함으로써 가장 기초적 욕망인 '먹음'을 신성화(神聖化)하고 있다.100)

  “사람은 밥에 의지하여 그 생성을 돕고, 하늘은 사람에 의지하여 그 조화를 드러낸다. 사람이 숨을 내쉬고 들이쉬고, 움직이고 정지하며, 굽히고 펴며, 입고 먹는 것은 모두 천주의 조화의 힘이니, 하늘과 사람이 함께 하는 기틀은 잠시라도 떠날 수 없다.(人依食而資其生成, 天依人而現其造化, 人之呼吸動靜屈伸衣食皆天主造化之力, 天人相與之機 須臾不可離也.)”101)


2.5. 다석 유영모의 밥과 밥상

  다석(多夕) 류영모(1890~1981)는 그의 구술(口述)을 제자 김흥호가 정리한 『제소리』라는 책에서 ‘밥’을 이야기하면서 먼저 불교에서 식사하기 전에 드리는 기도문인 ‘오관게(五觀揭)’를 예로 들어 밥 먹을 때 하는 기도로는 이 이상 좋은 기도가 없다고 추천한다. ‘오관게’는 다음과 같다.

  “손에 손이 많이 가고 힘에 힘도 퍽은 드려 (計切多少) 곱게도 지고 지며 바로도 되고 되어 온 이 밥을(量彼來處) 우리 지은 노릇으론(忖己德行) 구태여 받을 수 있사오리까(全決應供). 거듭 잘못이 없게스리(放心離過) 걸챔부치의 마음을 막고(貪等爲宗) 오직 깨나는 약으로(正思良藥) 우리 맡은 것을 마치기까지(爲療形枯) 몸에 이바지여 삼가 받들렵니다.”102)

  이를 다시 풀어 쓰면 다음과 같다.

  “①온갖 정성이 두루 쌓인 이 공양을(計功多少量彼來處) ②부족한 덕행으로 감히 공양을 받는구나(村己德行全缺應供) ③탐심을 버리고 허물을 막고(防心離過貪等爲宗) ④바른 생각으로 육신을 지탱하는 약을 삼으며(正思良藥爲療形枯) ⑤도를 이루고자 이제 먹노라(爲成道業膺受此食).”103)

  하루 한 끼의 식사만 했다고 하는 류영모에게도 물론 먹는다고 하는 것은 모든 생명의 본능으로 먹지 않으면 개체의 생명을 유지할 수 없기에 모든 생명은 모두 먹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는 “먹음 속에는 살(殺) 도(盜) 음(淫)이 꼭 들러붙게 마련이다. 집(盜)어야 잡(殺)아야 처(淫)너야 먹게 된다. 그러므로 이것을 최소한 줄여 끊고 끊었다가 생명의 보존만을 위해서 먹는 것이 아니면 훔침(盜)이요, 죽임이요(殺), 질음(淫)이 되고 만다.”104)고 하면서 결국 밥 먹음은 곧 ‘성만찬’이라고 한다.

  “밥은 내 안에 계시는 하느님께 드리는 제물이요 (...) 밥 먹는다는 것은 미사요, 제사요, 성만찬이다. (...) 그래서 그것은 예수가 십자가에서 자신을 바쳐 밥이 된 일이다. (...) 우리는 밥을 먹고 구차한 인생의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무한한 힘의 원동력으로 먹는 것이다. (...) 사람이 사람이 되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니까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먹는다. 그렇게 되면 조금이나마 쌀에 대하여 덜 미안하게 될 것이 아닌가. 내가 쌀로 하여금 하느님의 뜻을 이루게 하기 위하여 먹는 것이다.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일이니 그곳에 욕심이 붙을 수가 없다. (...)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 깨는 약으로 먹는 것이다.”105)

  류영모는 실제로 사람에게 꼭 필요한 먹을거리는 하루에 한 끼니면 충분하다는 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도 건강에 지장이 없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건강이 더 좋아졌다고 한다. 류영모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밥 먹고 잠자는 것을 바로 알기란 어렵다. 더욱이 바로 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밥을 먹는 데는 마디(節)가 있어야 한다. 사람은 제 때에 먹어야 한다. 끼니란 ‘끊이’라는 뜻으로 끊었다 잇는다는 뜻이다. 줄곧 먹어서는 안 된다. 끊었다가 먹어야 한다. 짐승을 길들일 때는 적당하게 굶기고 먹여야 한다. 우리의 몸도 짐승이다. 몸이 제멋대로 설치지 않게 하려면 몸을 알맞게 절제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106)

  “우리가 본연의 나인 ‘참 나’를 모르고서 어떻게 하느님을 알 수 있겠는가? 참 나를 모르고서 어떻게 이 사회에 사랑이 깃들 수 있겠는가? 사랑이 있어야 이 사회는 유기체로 돌아갈 수 있는데 참 나를 모르는 사회는 유기체가 될 수 없다. 어디가 아픈 곳인지, 어디가 쓰린 곳인지, 어디가 가려운 곳인지, 어디가 한스러운 곳인지 전혀 모르면서 어떻게 사회가 유기체로 돌아갈 수 있겠는가?”107)

  이처럼 류영모에게 있어서 밥은 제사에 바쳐진 예물이며 희생 제물이다. 그리하여 류영모에게 밥을 먹는 것은 제사 드리는 일이며 단순한 생물학적 생명 유지 차원을 뛰어넘는 예배의식이기 때문에 밥상은 예배를 위한 성스러운 제사상이고 밥과 국과 찬거리들은 모두 거룩한 희생 제물이다. 이 희생 제물로 사람이 산다. 이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필연적으로 갖는 영과 육이라는 이원화된 구조의 조화와 통일을 지향하는 밥 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데 류영모의 이와 같은 밥 정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밥 정신으로부터 유래한다. 그리하여 밥 중의 밥 곧 가장 거룩한 희생 제물은 자신의 살과 피로서 하느님의 성전(사람의 몸)108)을 살리는 직접적인 참 양식인 예수 그리스도로서 이 참 양식을 먹는 모든 이들을 영원히 살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전 인류가 반드시 먹어야 할 참 희생 제물 곧 유일한 참 양식이다.109) 그런데 이 참 양식은 두 가지 형상으로 주어진다. 하나는 하느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인 말씀의 양식이고 다른 하나는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써 세운 그리스도의 몸과 피인 성찬의 양식이다.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 말씀과 그리스도의 성찬을 먹고 마셔야만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110)

  말하자면 류영모의 밥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밀알’ 곧 ‘말씀의 씨알(씨ㆁㆍㄹ)’인데 그리스도라는 참 양식을 먹고 마시며 사는 하느님의 성전답게 참 양식인 밀알이 되는 것이며 그리하여 온 인류가 참 양식을 먹고 살 수 있도록 한 몫을 다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참 양식인 말씀의 씨알인 그리스도처럼 온 인류의 밥이 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그리스도인다움 곧 그리스도의 길을 따름이어야 하고 그 길은 그리스도처럼 양식 곧 씨알이 되는 길로 3단계의 길이다. 먼저 희생 제물인 밥의 길이다. 예수 그리스도처럼 하느님께는 감사의 제물로서 바쳐지고 이웃에게는 희생 제물 곧 밥이 되어줌으로써 하느님과 이웃을 위하여 제물이 되는 길이다. 이것은 다음 아닌 이웃에게 '씨 뿌려짐'이기에 그들도 다시 밥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데 한 몫을 다하는 것으로 밥 철학의 다음 단계인 상생(相生)의 단계로 나아간다.

 

  두 번째 상생의 길은 더불어 함께 살아가기 위해 이웃에게 밀알이 되는 나눔의 길이다. 그리스도가 하느님 말씀의 첫 밀알이 첫 씨알이 되어 씨 뿌려졌던 대로 참 양식인 그리스도를 우리 모두 다 같이 먹고 삶이 말씀의 밀알로서 충만해지자는 것이다. 당연히 류영모에게 나눔은 비단 말씀뿐만 아니라 물질적 밥도 당연히 포함되는 데 그러기 위해서는 내 몫을 줄여야 하기에 그는 근검절약과 절제된 식습관을 가졌고 물질적인 식욕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하기에 최소한의 식사로 하루를 살았다. 류영모에게 있어서 참 양식은 영적 양식인 하느님의 말씀과 성찬이며 참삶을 살게 하는 것으로서 이는 우리가 모두 염원하는 인격완성으로 가게 한다. 그리하여 세 번째는 인격완성의 길이다. 류영모는 이러한 두 단계의 길을 통해서 참 삶 곧 말씀의 밀알이 되어 씨알로서 사는 삶을 살게 되고 인격의 완성이 이루어 다른 이들의 참 양식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처럼 말씀의 밀알로서 거듭나는 것은 그 말씀이신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본체와 하나로 통일을 이루는 것 곧 지체의 자기완성이며 류영모의 밥 정신의 실현이다.111)

  이처럼 류영모가 밥을 '나누어 먹는 것'으로 보고 그것을 자신의 삶의 기본정신으로 삼은 것은 그의 기독교 이해, 예수 이해에서 나온 것이다. 예수 자신이 하느님 나라 운동으로서 밥상 공동체 운동을 펼쳤고 죽음을 앞두고는 '빵과 포도주'를 자신의 살과 피로 알고 먹으라고 하였다.112) 예수의 살과 피를 나누어 먹고 예수의 삶과 정신으로 사는 것을 다석은 기독교 신앙으로 이해했다. 류영모는 날마다 밥 먹고 물 마실 때마다 예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려고 했으며 이것이 신앙의 근본 행위라고 보았다. 밥에 관심을 집중하고 밥 먹는 일을 삶과 신앙의 근본 행위로 본 것은 예수의 삶과 정신을 이어받은 것이다. 날마다 밥을 먹고 물을 마실 때 예수의 살과 피로 알고 먹고 마시는 것은 기독교 정신과 신앙의 핵심이고 류영모의 삶과 정신의 중심에 속한다.113) 류영모는 '나의 공덕이 부족하다'는 불교의 오관게(五觀揭)에서 대자연의 공로, 하느님의 은혜와 선물이라는, 좀 더 적극적이고 신앙적인 생각으로 나아간 것이며, 마침내 '나의 몸'이 '하느님의 성전'이라는 바울의 생각과 성찬을 예배의 중심에 놓는 가톨릭의 예배의식에서 밥 먹음은 하느님께 드리는 예배라는 생각으로 발전시킨 것이다.114)

 

========= 각주

76) 이가연 : 탈북시인, 1987년 생, 황해남도 해주 생, 2011년 한국 정착, 2012년 대한문예신문사 등단, 지필문학 시인 문학상(시 부문), 경기도청 통일부 장관상(시 부문), 시집 『밥이 그리운 저녁』, 『엄마를 기다리며 밥을 짓는다』, 『인간은 고슴도치다』(출간 예정) (참고:YTN 뉴스 인터뷰, “24년은 지옥, 3년은 천국에서 살았다” 아래 링크는 인터뷰)
http://www.ytn.co.kr/_ln/0103_201409251446576547 (2017.11.30. 접근)

77) 박목월, 『박목월 신앙시집 - 크고 부드러운 손』, (서울:영산출판사, 1983), 266.

78) 정경호, “남북의 평화통일을 향한 상생(相生)의 윤리”, 『신학과 목회 20』, (경산:영남신학대학교 2003), 199.

79) 「뉴스천지」, 김영복, “절떡과 해원떡”, 2014.05.16. 기사,
http://www.newscj.com/news/articleView.html?idxno=241432 (2017.11.21. 접근)

80) 또는 동신제(洞神祭):마을을 지켜주는 신령에게 마을 주민 공동체가 자발적으로 드리는 제사.

81) 우리 마을 어르신들에 의하면 일제 때 남면 주재소 순사였던 ‘기무라(木村)’씨가 있을 때 즈음 사라졌다고 한다. 이 일본인 순사 ‘목촌 씨’는 ‘목천(목촌)이 닭 잡듯 한다’는 우리 마을 속담의 주인공으로 알려진 사람인데, 소설가 심훈(沈熏)의 소설 『영원의 미소』에도 등장하는 이야기이다. 관련 내용은 (링크 참고) :
http://blog.naver.com/jooroogol/220658952249 (2017.11.24. 접근)

82) 별세한 기일(期日)에 조상에게 드리는 제사

83) [네이버 지식백과] 항복:“시제 [時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59762&cid=46635&categoryId=46635 (2017.11.30. 접근)

84) 성태규, ?시제연구를 위한 한 시론?, ??충청문화연구?? (대전:한남대충청문화연구소, 1989) 263 참고.

85) 앞의 책, 279 참고.

86) 문중에서 시제 비용을 위해 따로 마련하여 농사짓도록 하는 밭이나 논.

87) 이 욱, “조상제사의 의미와 기억의 의례화(儀禮化)”, 『국학연구 19』 (서울:한국국학진흥원 2011), 489-490.

88) 앞의 논문, 492.

89) 앞의 논문, 495 참고.

90) 1905년, 동학의 제3대 교주 손병희가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함.

91) 황종원, “최시형 ‘식(食)’ 사상의 종교생태학적 의의”, 『신종교연구』 제26집, 2012. 116 참고.

92) 앞의 논문, 115 참고.

93) 앞의 논문, 119.

94) 反哺之孝: 새끼가 다 자란 뒤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되먹이는 까마귀의 효성이라는 뜻.

95) 앞의 논문, 125.

96) 앞의 논문, 125 참고.

97) [네이버 지식백과 검색], “이천식천 [以天食天]”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36258&cid=46652&categoryId=46652 (2017.11.2. 접근)

98) 황종원, 앞의 논문, 126 참고.

99) 앞의 논문, 137 참고.

100) 앞의 논문, 139 참고.

101) 앞의 논문, 140.

102) 김흥호, 『제소리』 (서울:도서출판 풍만, 1986), 129.

103) [네이버 지식백과] 항목:“오관게[五觀偈]” (두산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212208&cid=40942&categoryId=31543 (2017. 11.7 접근)

104) 김흥호, 앞의 책, 103.

105) 앞의 책, 129-131.

106) 박영호, 『다석 전기 - 류영모와 그의 시대』 (서울:교양인, 2012), 348-349.

107) 앞의 책, 349-350.

108) (고전 3,16-17/공동번역) “여러분은 자신이 하느님의 성전이며 하느님의 성령께서 자기 안에 살아 계시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만일 누구든지 하느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을 멸망시키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성전은 거룩하며 여러분 자신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109) 이승자, “니체와 다석 유영모의 밥 철학으로 조명하는 빈부의 양극화 해소, 삼투작용의 길”, 『철학과 문화』 Vol.20, (용인: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과문화연구소), 24-25 참고.

110) 앞의 논문, 26-27 참고.

111) 김흥호, 앞의 책, 129-134 참고.

112) 박재순, 『다석 유영모』 (서울:홍성사, 2017), 148.

113) 앞의 책, 148-149 참고.

114) 앞의 책, 150 참고. 그러나 논자는 ‘성만찬을 예배의 중심에 놓는 것’은 오히려 개혁주의교회 본연의 예배의식임을 여기에 밝혀 둔다. 이에 관련 내용은 ‘정장복 교수의 예배학’ 관련 서적들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