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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신학연구소/[갈릴리 밥상 공동체]

제 1 장 한마음교회와 지역사회 선교 - 1.2.

by 농민만세 2020. 7. 14.

 

 

[ 제 1 장 / 1.2 교회와 세상의 사이에서 ]

 

한마음교회의 지역사회 선교와 자활 밥상 공동체
LOCAL COMMUNITY MISSION OF
THE HANMAEUM CHURCH AND
THE SELF-SUPPORT BAPSANG COMMUNITY



1.2. 교회와 세상의 사이에서

  이상 한마음교회에서의 목회 활동 중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은 단순히 어떤 가시적 성과를 이루었다는 것이 아니라, 한마음교회를 매우 강하게 배척하면서 적대적 대상으로 여기며 지탄하던 지역사회에 대해 제한된 자원의 한 농촌교회와 논자가 어떻게 대처해야 했는가 하는 것이다. 이런 현장의 상황 속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논자가 한 사람의 평범한 목회자로서 “나는 일반 목회자가 아닌 미전도 종족 선교사이다”라고 끊임없이 자신을 각성시켜야 하는 일이었다. 기독교 내부 문화와 종교적 언어에 잘 적응된 교인들이 모여 있는 교회당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수많은 일은, 논자로 하여금 교회와 세상의 중간지대 곧 ‘그 두 사이에 끼어 있다’(빌 1,13)던 바울의 고백처럼, 목회와 선교 그리고 교회와 세상에 대해서 참으로 많은 고민과 도전 그리고 배움의 자리에 있게 하였다. 이런 일들을 통해 논자는 자신과 교회에 무엇보다도 화육(化肉)의 신학 또는 성육신 신학적 요청이 특히 절실하다고 판단되었다. 나아가 오늘에 연속되고 있는 화육으로서의 부활과 함께 교회에 대한 지역사회의 소리 없는 질문에 올바로 대답하기 위해 기독교 복음을 세상의 언어로 번역하기의 중요성이 더욱 절감되었다.

1.2.1. 한마음교회와 지역사회의 질문

  앞서 진술한 대로 한마음교회는 설립된 이후 43년의 세월을 지나오는 동안 농촌의 면 소재지인 지역사회로부터 호된 지탄과 냉대를 받는 적대적 상황을 지나온 역사가 있다. 그것은 물론 교회의 주인이라고 자처하던 일부 교인들이 수십 년 동안 마을 주민으로서 지역사회의 이웃 주민들에게 지속하여 행한 보통의 상식을 넘는 행태들 때문이었다. 논자는 이런 아픈 역사를 통해서 지역주민들이 대체로 두 가지를 우리에게 질문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하느님이 있다면 왜 저런 자들을 그냥 두냐?”는 전형적인 신정론(神正論)적 질문이었고, 또 하나는 “너희의 그 예수가 도대체 지금 우리한테 무슨 소용 가치가 있는 것이냐?”는 소위 실용주의와는 또 다른 복음의 실제적 효용성에 대한 질문이었다. 동시에 그런 상황 한가운데에 있던 한마음교회 교인들의 질문이기도 했는데, 사실 이는 오늘날 세상이 우리의 교회를 향하여 묻는 뼈아픈 질문이라는 것이다. 그나마 이를 제대로 듣게 된 것은 부임 초기 4~5년 동안 그렇게 심히 적대적인 상황 속에서 논자가 한 사람의 목회자로서 주저하지 않고 교회 밖으로 나가 지역주민들의 저항과 냉대를 직접 몸으로 부딪치면서 직간접적인 선교의 일들을 꾸준히 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에 대하여 논자는 “그 어떤 말도 소용이 없다, 앞으로 오래 살면서 우리가 직접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라고 자신과 교인들을 꾸준히 각성시키면서 ‘우리의 예수에 대한 우리의 진술’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 것이다. 본래 기독교 신학은 질문하는 세상에 대한 자기 변증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던가.

  이에 대하여 갈릴리신학대학원 총장 홍정수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신앙이란 어떤 사람이 자기의 전부를 걸겠다고 자유로이 결단을 하는 행위, 그리고 그 같은 행위로 인하여 맺어지는 그 대상과의 관계라고 넓게 생각하자... 살아 있는 두 인격체의 상호관계는 정적인 것이 아니라 동적인 것이요, 동적이라 함은 엄격히 말해 사건적인 성격, 생동적인 성질을 그 안에 내포하기 때문이다. 곧 두 인격체의 사이와 같이, 신앙이란 것도 한 번 맺어지면 자동적으로 죽을 때까지 지속되는, 그런 고정적인 관계가 아니라 늘 새로이 정립되어야 하는 역동적 관계이다."17)

  그러므로 우리의 복음(Good News)이 우리 자신에게는 물론 기독교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들 또는 교회 밖의 사람 중 특히 어떤 일이든 진지하게 회의하고 물으며 보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해답을 구하는 이들에게 아무런 설득력이 없는 것이라면, 기독교와 그 교회는 존재하는 이유 자체가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 기독교라면 결국 폐쇄적인 또 하나의 신흥종교집단이 되어 가장 찬란한 본질을 갖고 있다가 가장 비참한 길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비극을 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기독교 교회들은 이런 세상을 향한 자기 변증을 위하여라도 자신의 교리를 만들어오던 시대를 넘어서서 더욱 선교적인 태도로 자신의 것을 세계를 향해 진술해야 한다는 시대적 과제를 안고 있다. 홍정수 교수는 이렇게 지적한다. “기독교가 선교(宣敎)하는 종교가 아니라면... 기독교인들끼리 모여서 ‘세상 사람들이 뭐라 하건 무슨 상관이야, 우린 믿는다’고 말하면서 태연할 수 있다. 그러나 불교처럼 기독교도 선교하는 종교다. 남들에게 자기들의 이야기를 ‘전해 줄’ 의무를 안고 있다.”18)

  특히 한마음교회처럼 자신을 비난하며 적대적인 지역사회를 향하여 자신과 자신의 복음을 변증 진술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선교적 상황에 내몰려 있는 교회들은 그처럼 ‘우리가 잘 믿고 있으니 다른 문제는 없다’며 지낼 수 없게 된다. 나아가 “우리의 신앙은 시대착오적인가?” “신앙은 일종의 병이 아닌가?”19)라고 묻는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시대의 질문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17년 동안 논자가 한마음교회의 담임 목회자로서 교인들의 특성에 대하여 알게 된 가장 큰 문제점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교회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놀랄 만큼 적으며 그 많은 직간접적인 전도 활동들에 대하여 거의 한 번도 직접 참여하지 않고 교회의 모든 일을 남의 일 또는 목회자만의 일로 여기는 현상인데, 이는 이미 수십 년 동안 교회가 지역사회로부터 공공연한 지탄의 대상이었던 이유 때문으로 보인다. 둘째는 지금껏 한국교회가 줄곧 열광해온 부흥회와 믿음의 기도는 만능이라는 신앙 행태를 매우 경계하고 냉소하는 현상으로, 특히 원주민 교인들은 ‘뭐든 기도하면 들어주신다’는 말은 허무맹랑하게 여기면서 “하느님 나라의 질서는 심는 대로 거두는 것이다, 심는 대로 거두기만 해도 큰 은혜다”는 말에는 상당히 긍정적으로 반응한다. 농촌교회의 노인 교인들은 오히려 기도 만능주의와 같은 무속적 요소에 고무될 것이라고 여기는 일반적인 통념과는 정반대되는 이런 모습에, 논자는 극단적으로 어려웠던 가난의 시기를 태안반도라는 지리적 사회적 상황 속에 살면서 매우 힘들지만 그래서 오히려 정직한 육체노동 곧 농사일과 해루질(갯벌 일)로 배곯는 자녀들을 키워낸 혹독한 현실 삶의 경험치일 것으로 진단한다. 저수지나 작은 냇물조차 없는 태안반도의 지형적 특성상 논농사는 거의 없었고 그나마 밭농사도 전적으로 기후에 의존해야 하는 천수답(天水畓) 농사였다. 불과 30여 년 전 전국적인 대 가뭄 때 ‘농촌에 양수기 보내기 운동’이 일어난 이후에야 비로소 지하수 관정(管井)을 곳곳에 설치하여 농사를 짓게 되었고, 대부분 울창한 소나무 숲이었던 야산을 농토로 개간하여 고추와 육쪽마늘 농사를 하게 되면서 겨우 극심했던 가난을 면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은 사회적 지리적 환경은 우리 지역사회 원주민들의 무의식을 지배하는 요소들이기에 매우 중요하게 보아야 한다. 더구나 ‘글줄이나 좀 안다’면서 ‘뭐든 기도만 하면 된다’며 말만 앞세우는 기성 교인들에 의하여, 순박했던 문맹의 대다수 주민은 온갖 억울한 소송의 피해자가 되는 일이 수십 년 동안 반복된 것 또한 우리 지역사회의 매우 심각한 사회적 병폐였던 것이고,20) 이런 사회적인 문제로 ‘밭 한때기라도 내 손으로 땀 흘려 농사지어 먹는 것이 곧 정의’라는 의식이 더욱 굳어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 대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이 묻고 또 묻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기독교 복음은 이 세계에 대하여 어떻게 유효한 것인가?” “그리스도 예수는 모든 사람에게 어떻게 여전히 좋은 소식인가?”

  여기에서 홍정수 교수가 안내하는 존 캅(John B. Cabb) 교수의 질문과 가르침들이 우리에게 더없이 중요한 핵심을 놓치지 않게 해 준다. 그리스도는 ‘한 때’ 좋은 소식일 수 있었지만, 오늘날의 우리는 그리스도가 ‘모든 사람에게’ 좋은 소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잘못된 점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자각 때문에, ‘그리스도는 또다시 좋은 소식이 될 수 있을까?’라고 묻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지금까지의 기독교라는 미망(迷妄)에서 깨어 이제는 ‘여전히 어리석은 기독교의 그리스도’를 보잘것없는 소식 또는 나쁜 소식이라고 여기는 세상 속에서 ‘그래도 그리스도는 여전히 좋은 소식일 것’이며, 정작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우리의 외부에 있는 무엇이 아니라 도리어 우리 자신들이 갖게 되는 섣부른 회의와 확신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존 캅 교수는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충실성”이 기독교 내부의 어떤 특수한 일련의 신념이나 실천들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말에 자신을 개방하고 그들로부터 배움으로 변화될 준비가 되어있는 세계 안에서 존재하기 위한 한 방식이 될 때, 비로소 우리의 그리스도를 회의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좋은 소식이 될 것이라고 역설한다.21)


   “그리스도교로부터 고통을 받아 온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 사는 사람들이 더 이상 일치와 획일을 주장하면서 자신들을 강요하지 않고 오히려 듣고 배우려 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될 것이다. 반면, 수많은 비 그리스도교인들은 그리스도에 의해 상징화되고 구현된 세계 내의 존재 방식이 그들도 치유하고 완성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됨으로써, 그리스도는 좋은 소식이 될 것이다. 이러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기 위해 그들 자신의 전통들이 함유하는 진리와 지혜를 포기한다거나, 혹은 전통적인 문화와 공동체를 포기할 필요는 없다. 이것은 오히려 그들 자신의 문화와 공동체의 창조적인 변혁에 참여함을 의미할 수 있다.”22)

   바로 이 점이 우리의 지역사회 선교 곧 ‘마을목회’ 방향에 대단히 중요한 이정표가 되는데, 이에 대하여 존 캅 교수는 다음과 같은 희망을 고무시켜 준다. 

   “그리스도 안에, 참된 그리스도 안에 산다는 것은 자유하게 되어 우리의 교회 속에서는 찾아보기 어렵게 된 평화와 기쁨을 아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한 그리고 모두를 위한 좋은 소식이다. 그러나 좋은 소식이신 그리스도는 생명과 사랑의 영이시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알게 된 하느님이시다. 그리스도는 살아 계시기 때문에, 교회가 지금은 스스로 모호하게 만들어버린 좋은 소식을 다시 발견하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는다. 그렇다. 그리스도는 우리 시대에 그리고 우리의 교회 속에서 다시 한번 좋은 소식이 될 수 있다.”23)

1.2.2. 현장의 요청에 대한 목회적 응답

  사실 이처럼 모든 현장의 목회 사역들은 당연히 오늘도 여전히 우리의 현장을 선교하시는 하느님(Missio Dei)의 부르심에 응하는 것이어야 하고, 그 부르심은 우리의 주변 현장의 사회적 요청들로 드러난다. 그러므로 그에 대한 우리의 응답은 그 현장에서 영속적으로 일어나는 ‘화육(化肉, Incarnation)의 사회화’라 할 수 있는 일종의 앙가주망(Engagement)이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해외 진출은 선교이고 국내 사역은 목회라는 단순 이분법적인 그릇된 관점이 한국교회를 지배해 왔다. 해외 선교 사역에도 교회를 세우고 교인들을 돌보며 독려하는 목회적 상황이 있고, 국내의 목회 사역에도 해외의 미전도 오지(奧地) 선교적인 방법론들이 적용되어야만 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는 상식적인 사실들을 간과한 결과이다.

  기독교를 사회 문화적 기반으로 삼으며 오랜 역사를 지나온 서방의 경우와 달리 우리나라의 경우는 그만큼의 역사 동안 종교 다원주의적 사회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한국 개신교는 이런 현실에 대한 선교적 관점의 진지한 논의조차 하지 않고 무려 1백 년을 넘겨 왔다. 어떤 경우든 미전도 종족 선교는 가장 먼저 선교사 자신이 그 종족의 언어를 배우는 일부터 시작된다. 그러면서 그 종족이 가지고 있는 생활과 문화적 관습들, 세계관과 가치관들에 대해 자신을 먼저 개방하고 동시에 그들의 것들을 존중하는 일로 이어진다. 이런 일이 선행되지 않는 선교는 결국 현지인들을 계몽의 대상으로 삼는 제국주의 정복자들의 행위가 되어 결국은 현지인들에게 배척을 받게 된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되었다.

  국내의 목회현장에도 이런 사려 깊은 선교학적 접근으로 더 늦기 전에 이제부터라도 깊이 논의하고 실천해야 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교회를 개척하거나 부임하여 목회 활동에 임하려면 역시 가장 먼저 교회 주변의 지역주민들이 수십 년 동안 일상에서 사용해온 삶의 언어들을 체득하고 그들의 생활 관습과 문화적 풍토와 의식들을 열린 자세로 지속하여 파악해야 한다. 특히 목회현장이 농촌일 경우 이는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는 일이다. 그렇지 않고 기독교 자신의 언어만을 사용하는 것은 한편 식민시대 정복자들의 강제 개종을 재현하는 것으로 자신의 선교적 목회현장과 스스로 단절하겠다는 어리석음이 아닐 수 없다. 교회와 세상 곧 지역사회의 이원론적 적대적 분리상황이 거의 해결되지 않고 갈등하면서 한국교회는 오늘에 이르렀으며, 벌써 1백 년을 훌쩍 넘긴 한국 개신교 역사에 아직도 ‘우리의 일상 곧 세속 언어로 우리의 이야기를 하는 우리의 신학’24)은 신학교에서조차 제대로 된 논제로 발전시키지 못하였다. 도대체 한국 개신교회는 진정으로 자신이 복음을 널리 전하려는 생각이 있기는 한 것인가?


1.2.3. 선교적 목회 리더십

   장신대 한국일 교수는 ‘선교적 목회’라는 개념을 주창하며 이렇게 설명한다.

   “교회가 더이상 지역사회로부터 분리된 교회로서 ‘구원의 방주’가 아니라 교회가 속한 지역사회를 선교현장으로 인식한 ‘선교적 교회’로서 자의식을 갖고자 할 때 기존의 교회를 중심으로 한 목회 역시 선교적 교회를 실천하는데 적합한 형태인 ‘선교적 목회’ 형태로의 변화를 요청받는다. 사실 ‘선교적 목회’라는 명칭은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지만, 필자가 선교적 교회에 적합한 목회 형태로 새롭게 사용한 용어이다.”25)

   그리고 한국일 교수는 지난 2017년 5월 16일 대전 대덕교회당에서 모인 ‘제7차 총회 농어촌목회자 협의회 대의원 총회’에서의 특강을 통해 논자가 펼쳐 와야만 했던 도전과 사역들을 사례로 들면서 그것을 ‘선교적 목회’26)라고 명명해 주었다.

   “필자가 만난 한 농촌교회 목회자는 10년 넘게 충청도의 한 작은 지역, 교인 수도 거의 변함이 없는 교회에서 목회 활동을 해왔다. 다른 교회와 마찬가지로 이 교회도 지역사회로부터 별 관심을 얻지 못하고 (...) 교인들은 지역주민들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교회의 부흥을 기대하는 것은 어려운 상태였다. 교회 안에서 어떤 돌파구를 찾지 못하던 목회자는 지역사회를 향해 문을 열고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선교적 교회론’을 듣고 새로운 시도들을 하였다. 토지 1천 평을 임대하여 밭농사를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목회자가 교회 밖으로 나가 농사를 지으면서 마을 주민들과 실제적인 만남을 갖게 되었다. 농사일에 관해 질문하고 대화를 하면서 자신이 그 동안 교회 내부적인 일과 교인들과의 관계 속에 갇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교회 밖에 나갈 때 지역주민들을 만날 수 있었고 이런 새로운 관계 형성은 교회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필자는 이와 같이 목회자가 교회 영역을 넘어서 지역사회로 나가 주민들을 만나게 되는 활동을 ‘선교적 목회’라고 부른다.”27)

   계속해서 한국일 교수는 논자의 고군분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신학적 자리매김을 분명히 해주었다.

   “한 지역의 담임 목회자로 지역사회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으며 주민들과 긴밀한 협력을 하고 있는 목회자는 자신이 17년 전에 이 교회 담임 목회자로 부임할 때 이미 선교적 교회의 이상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이 교회에 담임 목회자로 부임하는 것이 아니라 이 지역의 마을 지기로 부임한다’고 자신에게 선언한 것이다. 선교적 교회나 선교적 목회에 대한 체계적 신학 이론을 배우지 않았지만 이 목회자는 이미 그 이론과 원리를 자신의 교회와 목회 활동에서 실천하고 있었다.”28)

  한국일 교수는 이를 선교적 교회를 실현하는 선교적 목회 활동의 한 대표적 사례로 들면서, 이제는 교회 안으로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그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과감하게 교회와 목회자가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이에 필요한 것은 성장 시대의 ‘오는 구조(come-structure)’로부터 선교적 교회를 실현하는 ‘가는 구조(go-structure)’로 목회 방향과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일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선교적 목회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선교적 교회 이론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목회 활동의 영역을 확장하고, 제도권으로부터 운동성을 회복하는 선교적 목회 리더십을 형성해야 한다고 강조한다.29)

   “목회 리더십은 ‘오는 구조(come-structure)’이고 선교적 목회 리더십은 ‘가는 구조(go-structure)’이다. 전자는 교회적이고 신앙적이며 종교적 언어를 사용한다. 후자는 지역사회와 소통하는 ‘이중 언어(bilingual)’를 사용한다. 전자는 목회자와 그의 비전에 리더십의 초점을 둔다. 후자는 교인을 세우는 일에 리더십의 초점을 둔다. 전자는 교인의 자의식을 교회 안에서의 교회 생활에 있게 하고, 후자는 삶의 현장에서의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게 한다. 전자는 권위주의적이고 수직적이며 일방적인 의사소통을 하고, 후자는 상호 존중으로 소통한다.”30)

  이러한 ‘선교적 목회’에는 무엇보다도 지역사회의 필요와 사회적 요청에 민감하고, 일종의 ‘촌장(村長) 의식’으로 그에 부응하기 위해 무엇이든 솔선하는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의 자세가 있어야 한다. 매 주일 교회당의 빈자리가 채워지지는 않으나 재정적 자립을 할 만큼 교인들이 주일예배에 참석하고 있고, 목회자 가정의 생활비와 또 목회 활동비가 매달 잘 나오고, 큰 분란이 없이 한 주일 또 한 주일을 잘 보내고, 제직회에서 교인들이 목사의 말에 이의를 달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 교회는 평안하다, 하느님의 큰 은혜 속에 있다”고 여기는 경우를 종종 본다. 이는 적어도 5년 아니면 10년 단위로 그 교회 상황을 파악하고 지역사회를 돌아보는 목회적 선교적인 기본 안목이 없는 일이 아닐 수 없으며, 그 지역사회에 거주하여31) 선교하시는 하느님 또는 엠마오의 두 제자와 동행하는 주님32)의 관심과 의지를 도외시(度外視)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선교적 목회 활동가는 지역사회의 필요와 사회적 요청에 민감하게 된다’는 것은 이처럼 “오늘의 예수께서는 무슨 일을 어떤 상황에서 하고 계시는가?” 하는 심정적 동반 의식에서 시작된다. 이것이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이라고 역시 선교적 목회자였던 바울의 고백을 우리말 성서는 다음과 같이 번역한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느님이 내 증인이시니라.”(빌 1,8) 경쟁적으로 해외에 교회당을 짓고 현지 주민들을 많이 모아 사진으로 남기는 것을 선교의 성과라고 여기는 오늘의 한국교회가 자의적(恣意的)으로 이해하듯 바울의 선교 목적은 많은 교회를 개척 설립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울 자신의 그리스도 예수로써 로마 제국이라는 ‘온 세계’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을 선포하고 제시했던 것이었다. 선교적 목회란, 역시 독생자의 화육(化肉)이라는 하느님의 행동하는 사랑(요 3,16)으로부터 그리고 바울처럼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자신이 속한 지역사회를 관찰하고 거기에 참여하는 ‘앙가주망’(engagement) 곧 ‘눈길을 돌리는 주관으로서의 나’로부터 시작된다. 논자는 이 부분에서 충남 홍성군 신동리의 마을 이장이며 신동리교회의 담임목사인 오필승 목사33)의 경우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15년 전 오필승 목사가 부임한 충남 홍성군 장곡면 신동리에 위치한 신동리교회는 이미 폐쇄 직전에 놓여 있던 농촌교회로서 그가 가장 다급하게 들었던 지역사회의 사회적 요청은 “마을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오필승 목사는 ‘교회를 살리려면 전도해서 교인 수를 늘려야 한다’는 일반적인 목회자들의 상식과는 전혀 다른 관점으로 신동리교회와 지역사회의 필요에 부응한다. 그것은 ‘교회가 살아나려면 마을이 살아나야 하고, 마을이 살아나려면 온 주민이 행복하게 사는 마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부분이야말로 우리가 간과하지 않아야 하는 오필승 목사의 마을목회가 가지고 있는 핵심이며 출발점이다. 그것은 ‘교회가 살아나려면 마을이 살아나야 하고, 마을이 살아나려면 온 주민이 행복하게 사는 마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부분이야말로 우리가 간과하지 않아야 하는 오필승 목사의 마을목회가 가지고 있는 핵심이며 출발점이다. 이는 오필승 목사와 함께 2년 가까이 ‘갈릴리 신학대학원 박사 과정’의 동학(同學)을 위해 매주 서울을 오르내리며 하였던 많은 토론과 대화를 통해, 지금까지의 일반적인 목회 패러다임과는 매우 다른 선교적 목회 패러다임의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던 오필승 목사의 마을목회를 이해하고 파악하게 된 내용이다.34)


  이처럼 ‘마을목회자’ 곧 ‘선교적 목회 활동가’는 교회당 밖의 지역사회 곧 마을의 상황들 속에서 들리는 사회적 목소리에 민감하고 그것을 자신의 최우선 목회적 과제로 삼고 그 요청에 부응하는 데 있어서, 그 방법이나 형식 등에 매여 주저하지 않고 일단 그 현장으로 나아가 온몸으로 부딪치며 답을 구하게 된다. 신동리의 마을 이장으로도 봉사하고 있는 오필승 목사는 자신의 마을목회 또는 선교적 목회를 이해하지 못하는 기성 교인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고 하였다. “목사가 이장 일을 본다고요? 목사는 기도하고 심방해야지, 그런 일을 하면 교회 일은 언제 하나요?” 이럴 때마다 그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나는 소명 받은 목사이고 목사가 하는 일이 다 목회요 선교요 하느님의 일인데, 왜 그게 이상한 일입니까?” 이렇게 선교적 목회자들은 현재 한국교회의 심각하게 왜곡된 기독교적 세계관을 바로 세우는 일까지 해야 하는 경우를 자주 만나게 된다.

  그처럼 왜곡된 기독교 세계관이 성속(聖俗) 이원론적이고, 하느님 나라의 내재적 속성을 알지 못하고, 타율적이고 수동적이며 목회자가 어떤 신성의 매개자가 되어주기를 바라고 의존하는 미성숙한 교인들을 양산해 왔다. 그런 이유로 대부분 교인은 기존 목회 리더십을 원하고 선교적 목회 리더십은 이해하지 못하거나 저항한다. 이런 점에서 선교적 목회 활동을 실천하는 일은 기독교인이 한 사람도 없는 미전도 종족의 선교사들보다 더욱 복잡하고 어려운 점이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래서 선교적 목회 활동가들에게는 기성 교인들의 이런 경향을 선교적 교회 또는 선교적 리더십에로 연착륙하도록 이끄는 꾸준한 인내와 함께 지혜로운 설득과 앞서 솔선하는 실천이 있어야 한다. 그런 연유로 선교적 목회 활동가들은 일반 목회자들보다 2~3배 이상의 정신적 육체적인 노역(勞役)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

  논자는 지난 17년 동안 이런 기성 교인들의 의식을 선교적인 의식으로 깨워내고자 “목사는 교인들과 함께 한 사람의 보내심을 받은 마을 선교사로 살아야 한다”고 계속해서 일깨우며 솔선하고 있다. 더구나 그렇게 선교적 목회자가 교회당 밖의 마을 주민들과 소통하는 선교 활동으로 한편의 기성 교인들은 교회당 밖에서의 자신들의 생활이 그대로 목회자에게 알려지게 되는 위기감을 느끼기도 한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논자가 드디어 농사를 지으며 마을 주민들과 허물없는 소통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을 때 ‘목사님이 험한 농사일을 하면 어떻게 하냐?’며 가장 만류했던 이들이 바로 그렇게 마을 주민으로 살고 있는 자신들의 모습이 목회자에게 드러나지 않기를 바라는 이중적이고 가식적인 교회 생활이 현저했던 교인들로 ‘성속 이원론’적 신앙 행태에 충실한 이들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앞서 본받음으로써 우리의 사표(師表)가 된 바울(고전 11,1)은 이렇게 고백한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희망은, 내가 아무 일에도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온전히 담대해져서, 살든지 죽든지, 전과 같이 지금도, 내 몸에서 그리스도께서 존귀함을 받으시리라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사는 것이 그리스도이시니, 죽는 것도 유익합니다. 그러나 육신을 입고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 보람된 일이면, 내가 어느 쪽을 택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이 둘 사이에 끼어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훨씬 더 나으나, 내가 육신으로 남아 있는 것이 여러분에게는 더 필요할 것입니다.”(빌 1,20-24) 물론 오늘날 우리의 경우와는 또 다른 상황이었겠지만 선교적 목회자들은 “나는 이 둘 사이에 끼어 있습니다”라는 대목에 절실하게 공감한다. 한 사람의 목회자로서 교회와 지역사회의 사이에, 적잖이 혼란스럽고 이정표도 없고 앞선 발자국도 없이 놓여 있는 광야지대를 홀로 건너게 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마을목회자 또는 선교적 목회 활동가의 정체성에 대해서 아래 문단의 내용을 참고하면 나아갈 길이 더욱 명확해질 것이다. 일찍이 마을운동가로서 ‘마을기업’을 최초로 창안한 정기석 「마을 연구소」 소장은 전북일보에 연재한 “마을시민과 마을주의자 - 농촌 문제 스스로 책임질 '마을시민' 깊이 뿌리내려야”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농촌 마을공동체를 위해 헌신해야 하는 ‘마을주의자’들이 많이 나와야 함을 역설한다. 이는 농촌교회의 목회자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사회에 대하여 선교적 목회 활동가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훌륭한 이정표라고 본다.

  “농촌마을공동체의 미래와 운명은 외부의 전문가가 아닌 내부의 마을 주민(Commune Citizen)들이 스스로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농촌 마을에는 다양한 경험과 기술을 가진 ‘마을 시민’이 절실하다. 이러한 ‘마을 시민’이란 ‘지역공동체적 사회자본, 혁신적 인적자본으로서 마을 또는 지역사회 공동체사업에서 주체적 역할을 감당하는 지역주민’ (그리고) 용기 있고 지혜로운 창조적 귀농인을 말한다. 나아가 귀농인 또는 마을 주민이 ‘마을 시민’의 단계를 넘어 ‘마을주의자(Commune-ist)’의 경지로 올라선다. ‘마을주의자’는 (...) 무엇보다 나와 내 가족만 챙기지 않고, 남과 더불어 협동하고 연대할 수 있는 이타적이고 공익적인 마음가짐, 그리고 사회경제적인 마을공동체사업의 계획이 준비된 성숙하고 안정된 마을 주민을 말한다.”35)

  그리고 정기석은 지역사회 안에서 활동하는 마을운동가들의 덕목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역설하는데, 논자는 이것이 자신의 지역사회를 선교하시는 하느님의 부름에 부응하려고 하는 선교적 목회 활동가들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하는 덕목들이라고 본다.

  “결국 ‘마을주의자’란, 마을 속으로 뛰어 들어가, 마을 사람들과 더불어 부대끼며 생활하며 마을을 먹여 살리는 마을기업을 앞장서 세우고 꾸린다. 사람 사는 대안 마을을 일구면서 더불어 함께 사는 게 꿈이다. 머리는 도덕적이고 진보적이며 마음은 정의롭고 양심적이다. 말과 글은 용기 있고 지혜롭고 슬기로우면서 행동은 이타적이고 공동체적이다. 곧 세상을 좀 더 사람이 살만한 곳으로 바꾸려는 사회혁신적인 인간이다. ‘마을(Commune) 공동체의 가치를 따르는 공동체주의(communitarianism)를 믿고 받아들인다. 따라서 ‘공유된 가치’와 ‘공동선’을 무시하거나 훼손하는 일체의 ‘자유주의적 개인주의’를 반대한다.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자들은 자신이 처한 현재 상태와 보유한 가치가 그를 둘러싼 사회에 의해서 형성된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다. 그들은 오로지 자기 혼자 잘 나서 잘 사는 것으로 착각하고 사는 이들이라고 공동체주의자들은 비판한다. 하지만 마을주의자들은 공동체주의(communitarianism)의 정의(Justice)를 믿는다.”36)

1.2.4. 사회적 문제 해결사(social solutionist)

  '유엔미래포럼' 박영숙 대표가 「데일리안」에 기고한 "왜 이공계는 뜨고 인문계는 하락할까"라는 글은 선교적 목회자들에게 또 하나의 도전을 제기한다. '후기 정보화 사회는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공학(工學)의 부상(浮上)을 예고한다'는 내용인데, 지난 산업화시대 2백 년간 공학 교육은 각 국가의 부를 창조하기 위한 산업 일꾼을 키우는 데 목적을 두었고 제조업의 밑바탕이 되었다. 이후 산업화시대가 끝나고 정보화시대를 맞아 50년 동안은 공학 교육이 상대적으로 홀대받는 분위기였으나, 5~10년 후 다가오는 후기 정보화시대는 의식기술, 뇌 공학, 인지공학의 시대가 된다. 여기에 나노, 바이오, IT, 코그노(인지) 등이 합쳐 융합될 것이며, 이 같은 융합의 기술이 공학 교육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신 경제사회는 삶의 질 향상이 최대의 목표가 되고, 이 삶을 바꾸는 기술은 공학교육기술에서 나오며 메가 트렌드는 결국 문화도 바꾸게 된다. 첨단기술은 공학 없이 연결될 수 없고, 그래서 공학도는 인공위성의 시각 즉 조감도를 보는 시야(holistic view)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기술, 기능 그 너머를 보고, 지속 가능한 사회, 보안, 사회 인프라 구축, 지역사회공동체 결성 등 결국 공학도는 ‘사회문제해결사 (social solutionist)’ 즉 ‘미래의 해결사 (Tomorrow’s solutionist)’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2010년 11월 21일 IEEE(국제전기전자기술자협회)회의 참석자들이 공동으로 지적한 사항이다.”37)

   이런 이유로 미래의 공학 교육에서는 공학만이 아니라 사회성, 도덕성, 창의성이 있는 만능일꾼의 육성을 목표로 두고 교육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타인과 의사소통이 중요하므로 의사소통기술, 협동 협업 팀워크는 기본이며, 협업능력, 팀으로 협력을 끌어내는 지도력, 갈등 해소와 대안을 제시하는 능력을 갖추고, 의사소통을 통한 발 빠른 행동개시, 추진력 상황 판단력이 있어야 한다. 생애주기 계획을 짜고 실천하는 능력, 개인의 행복 추구능력, 타인의 권리존중, 흥미와 스스로 동기유발이 되도록 마인드를 갖추는 능력, 인류의 욕구를 이해하는 능력을 갖춰야 공학도로서의 자질을 다 갖춘 것이라는 주장이다.”38)

  이처럼 우리의 세계는 모든 학문과 전문 분야가 서로 소통하여 인류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변화시켜가려는 통섭(統攝, Consilience)의 시대라는 사실을 깊이 인지하고 또한 이에 부응하는 선교적 목회 활동가들도 ‘사회적 문제 해결사’ 내지는 ‘미래의 해결사’의 덕목을 갖추어가야 한다. 「예장뉴스」 편집장 유재무 목사는 2016년 3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P.C.K.) 총회 ‘제100회기 치유와 화해를 위한 지역 마을목회 컨퍼런스’ 소식을 전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21세기 한국교회는 전반적으로 서구교회처럼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하느님의 거룩함과 예수의 진실함을 잃어버렸다. 그동안 수적 성장과 자립화, 성장 프로그램 등 많은 연구와 조직들이 있었지만, 마을목회처럼 절절하고 진지하고 의미 있는 모임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더 이상 목적 없는 성장을 열망하고 그래서 더 편하고 높아지는 목회로 누리는 삶을 구가하자는 것이 아니다. 더 낮아지고 겸손하게 목사의 계급장을 떼고 내가 사는 마을로 나가보자는 것이다.”39)

  논자는 지난 2016년 11월, 호남신학대학에서 열린 101회기 총회 1차 마을목회 세미나40)에서 마을목회 사례 발표자로 나선 마을목회자들의 공통점을 다음과 같이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은 첫째로 자신들의 현장인 지역사회 곧 마을의 사회적 목소리를 그곳에서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으로 듣고 외면하지 못하는 귀와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둘째는 자신들이 처한 한계 상황들을 헤아리며 실천을 망설이는 영민함보다는 자신들의 귀에 들려온 지역사회의 목소리에 대하여 자신들이 우선 실천할 수 있는 솔루션(solution)들을 일단 실행으로 옮겨보는 실천가들이었으며, 셋째로 그들은 다름 아닌 ‘하느님 선교’(Missio Dei)의 부름에 자신들이 응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이들이었다. 세상을 변혁시키는 곧 ‘세상을 선교하시는 하느님(Missio Dei)’의 부름에 부응하는 목회자는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 곧 지역사회의 사회적 필요들에 예민할 수밖에 없고, 또 그것을 그곳에 계신 하느님의 부름으로 듣게 되며, 자신의 역량을 다하여 그에 대한 ‘사회적 문제 해결사’(social solutionist)로 활동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기에서 또 하나 세상의 사회적 필요들로 부르시는 하느님의 음성을 듣고 부응하려고 한다면 아래와 같이 정직한 문제 제기가 반드시 첨부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오늘의 한국교회가 지나치게 ‘초월적인 이적(異蹟)’ 곧 ‘심지 않은 것을 얻는 기적(奇蹟)’을 찾아 헤매고 있다는 문제 인식이다. 하느님은 정말로 노(櫓)를 저어주시는가? 아니면 노를 저을 수 있는 동인(動因)을 얻게 하시는가? 이 문제는 논자가 여기까지 헤쳐 나아오는 데에 큰 장애 요인 중 하나였다. 이는 한마음교회가 자활(自活)의 공동체가 되어 나아가 이웃을 돕게 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인 줄 알고 받아들이는 ‘어른’의 단계로 넘어가야 하는 결정적인 매듭 중 하나이다. 이에 대하여 갈릴리신학대학원 홍성현 원장은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은 사람 대신에 사람의 일을 하시려고 이 땅 일에 간섭하는 기적의 창조자가 더 이상 아니다.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짐은 인간의 어깨에 지워져 있다. 하느님은 고통, 악, 죽음, 약함, 자연의 비밀 또는 미래를 설명하기 위하여 고안된 어떤 것이 더 이상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발전시키도록 주어진 세계 안에서 자율적으로 살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만일 이 세계가 악, 미친 것 또는 잘못된 체계로 인하여 위협을 받을 때,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신적인 대리자를 불러들이지 말고 스스로 그 위협에 분연히 맞서 싸울 각오를 해야 한다. 만일 빈곤, 소외, 착취 및 억압이 사람들로 하여금 절망과 고통과 죽음의 상태에까지 몰고 간다면, 그리스도인들은 그 사람들을 그런 사회적 곤궁에서 해방시키기 위하여 벅찬 일들을 시작해야 한다.”41)

   한국교회 목회자 대부분은 교인들이 주체적이고 자발적인 성인(成人)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느님 나라의 부름에 응하며 살아가는 길을 가로막고, 스스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도록 성장과 발달이 멈춘 ‘유아(乳兒) 교인’에 머물러 있게 만들고 있다. 예를 들면, 더 이상 어른이 되지 않으려는 한국교회가 만능열쇠처럼 여기는 (마 7,7)은 사실 전혀 다른 의미의 예수 말씀이다. 그 본문의 “주실 것이요”는 결정적인 오역(誤譯)이다. 이는 ‘δοθησεται’이고 ‘διδωμι’의 3인칭 단수, 직설법, 미래, 수동태’이다. 그러므로 ‘(그 누군가가) 주신다’가 아니라 ‘그것이 그에게 주어질 것이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이 구절을 직역(直譯)하면 다음과 같다. “너희가 구하라. 그러면 그것이 너희에게 주어질 것이다. 너희가 찾으라. 그러면 너희가 찾을 것이다. 너희가 두드리라. 그러면 그것이 너희에게 열려질 것이다. 구하는 모든 사람은 ‘그래서 그것을 얻을 것’이고, 찾는 ‘그들이 찾을 것’이고, 그리고 두드리는 이에게 ‘그것이 열려질 것’이다.”(마 7,7-8) 이처럼 이 구절은 오히려 우리를 스스로 구하여 얻는 주체자로 각성케 하는 예수 말씀이다. 사실 한마음교회 노인 교인들은 이미 이를 잘 알고 있었다. “수십 년 동안 교회당에 와서 기도하지만, 밭에 나가서 풀을 매고 씨 뿌리고 거두는 건 내 손이더라!” 우리는 거짓 기적 신화로 교인들을 객체화시키고 종속시키며 타율적인 하부구조로 만드는 모든 것들을 경계해야 한다. 나아가 우리는 예수께서도 우리를 주종관계에 두지 않으실 것을 믿으면서 ‘주님’이라는 호칭도 일단 ‘우리/내가 가장 친애(親愛)하게 여길 이’로 대신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 각주

17) 홍정수, 『베 짜는 하느님 - 풀어 쓴 기독교신학』 (서울:한국기독교연구소, 2002/개정판), 53.

18) 앞의 책, 54.

19) 홍정수, 『베 짜는 하느님 - 이단자를 위한 한국신학』 (서울:조명문화사, 1991), 19-27 참고.

20) 문맹률이 상당히 높던 시기에 농촌에서는 ‘인감도장’을 마을 이장에게 맡겨 두었고 간혹 악덕 이장에 의해 엄청난 피해를 겪는 일이 종종 있었다. 지주의 머슴 또는 소작농들은 힘겨운 노동으로 마침내 몰락하는 지주의 농토를 매입하여 가난을 면하고 살게 되는 일은 예전의 농촌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었다. 당시에는 토지매매에서 필수적인 ‘경계측량’은 물론 심지어 ‘명의이전 등기’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구매한 농토를 대를 물려서 농사짓고 살아온 주민들이 다수였던 것을 악용, 지주의 후손 중 등기상의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이중 삼중으로 그 토지들을 매각하는 일을 상습적으로 행했던 이들이 있었다. 그처럼 교회까지 싸잡혀 호된 원성과 지탄의 대상이 되게 만들면서도 자신은 ‘하나님의 가호를 받는다’고 강변해 온 이전 시무 장로 같은 이들이다.

21) John B. Cabb Jr., “그리스도는 또다시 좋은 소식이 될 수 있을까?”, 홍정수 엮음, 『읽을거리 : 포스트모던 신학』 (서울:조명문화사, 1993), 230 참고. (이 소론은 존 캅 교수의 은퇴 기념 강연 내용이다)

22) 앞의 책, 238-239.

23) 앞의 책, 244.

24) 이에 대하여 갈릴리신학대학 총장 홍정수 교수의 특강, “교회 개혁은 신학교육의 개혁으로” - 다음의 동영상 게시물 참고.
http://blog.daum.net/ckaskan1/38

25) 한국일, 『선교적 교회의 이론과 실제』 (서울:장로회신학대학교 출판부, 2016), 313.

26) 논자는 이 같은 한국일 교수의 ‘선교적 목회’라는 용어에 적극적으로 동의하며, 한편으로는 ‘선교적 목회 활동’ 또는 그런 활동을 하는 목회자를 ‘선교적 목회자’라기 보다 ‘선교적 목회 활동가’로 부르기를 제안한다. 그것은 ‘선교적 목회’가 무엇보다도 ‘활동’으로서의 실천이어야 하고 또한 그런 사역에로 내몰리게 되기 때문이다.

27) 한국일, “세상을 품는 교회 (엡 1,23)”, 『2017 제7차 총회 농어촌목회자협의회 대의원 총회 자료집』 (미간행, 2017, 11.)

28) 앞의 책, 317.

29) 앞의 책, 한국일, 『선교적 교회의 이론과 실제』, 17. 참고.

30) 앞의 책, 319.

31) (요 1,14) “그 말씀은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의 영광을 보았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주신, 외아들의 영광이었다. 그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

32) 말하자면 ‘우리 지역사회 곧 마을로 걸어가는 우리와 홀연히 동행하시는 부활하신 예수님’.

33) 오필승 목사는 충남 홍성군 신동리 이장, 예장마을만들기네트워크 대표를 맡아 ‘마을목회’라는 명칭과 개념을 주창하였고 앞선 마을목회자로 활동하고 있다.

34) 오필승 목사는 논자가 부임 초기 5년 동안 실시하였던 지역아동센터와 각종 사회적 봉사활동들이 본 글에 기술한 대로 외부적인 요인들로 갑자기 중단된 후, 상당한 낙담으로 길을 잃고 있던 2011년 12월 어느 늦은 밤에 갑자기 방문하여 농사와 마을 일에 참여하기 등을 종용하였고, 논자는 그 기회를 통해 용기를 얻어 2012년부터 그동안 망설이고 있던 마을 주민을 만나기 위한 농사를 시작하였다.

35) 정기석, “농촌 문제 스스로 책임질 '마을시민' 깊이 뿌리내려야”, 전북일보 2017.9.13. 기사, 참고.
http://www.jjan.kr/news/articleView.html?idxno=1137964 (2017.10.16. 접근)

36) 앞의 기사.

37) 「데일리안」, “왜 이공계는 뜨고 인문계는 하락할까”, 2011.1.20. 기사.
http://www.dailian.co.kr/news/view/227995 (2017.11.22. 접근)

38) 앞의 기사. 39) 「예장뉴스」, “마을목회 컨퍼런스 열려”, 유재무 기자, 2016.3.12. 기사.
http://www.pck-good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008 (2017.10.22. 접근)

40) 「예장뉴스」, “제101회기 1차 마을목회 세미나 열려”, 이 진 기자, 2016.11.25. 기사 참고.
http://www.pck-good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243 (2017.10.22. 접근)

41) 홍성현, 『맑스주의자들의 종교비판』 (서울:제3세계신학연구소, 1988), 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