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마음 칼럼 : “다시 만나는 네비우스-2”
우리의 유감스러움은 여기에 있다. 그런 네비우스 선교사를 2주간이나 직접 만난 우리 땅의 초기 미국 선교사들은 도대체 무엇을 배웠던 걸까? 어째서 그들 중 네비우스 선교사처럼 두 팔 걷어붙이고 극도로 가난했던 우리의 농어촌으로 들어가 황무지를 일구려고 덤벼든 이는 한 명도 없을까? 만일 그런 진정한 선교사역이 주류가 되었다면 오늘 한국교회는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여름 휴양지로 유명한 대천해수욕장 지리산 등등에서 2달씩 휴양하고, 전국 곳곳에 ‘양관(洋館)’을 건축하여 개인 주택으로 거주하며, ‘서양-백인-목사 우월주의’로 미개 종족을 계몽한다는 명목하에 식민지배를 경쟁적으로 늘려가던 서방 강대국들의 제국주의에 편승했던 그들의 본 모습은 언제까지 숨겨줘야 할까?
일제의 침략 아래 신음하던 당시 조선 민중의 실질적인 처지는 외면한 채 그러한 ‘벼랑 끝 절실함에서 나오는 열정적인 종교적 감정’만을 고무시키며, 자신들의 선교적 성과 달성을 추구했던 본 모습은 언제까지 가려주어야 할까? 위와 같은 네비우스 선교정책을 기조로 삼았으면서, 정작 최초의 신학교는 그들이 우리 땅에 온 지 17년만인 1901년에, 한국인 최초의 목사는 23년만인 1907년에야 ‘조선인을 목사로 세우는 일’에 많은 우려와 반대 토론 끝에 겨우 안수하였다.
존 리빙스턴 네비우스(John Livingston Nevius, 1829 - 1893)가 자신의 ‘선교 사역 방법론’에서 <현지 교회의 진정한 독립과 자립>을 위해 제시한 전략은 다음과 같다.
①선교사가 직접 널리 순회하며 전도한다. ②사역의 모든 분야는 성경이 중심이어야 한다. ③자전(自傳:Self-propagation) - 모든 신자는 성경을 가르치는 자가 되며 동시에 성경을 배우는 자가 된다. 모든 개인과 신자 소모임(기도처)들은 ‘휘묻이’로 사역을 확장 시킨다. ④자치(自治: Self-government) - 모든 소모임은 선임된 무보수 영수(領袖)의 관할을 받고, 순회 교구들은 유급 조사(助事)들의 관할을 받는다. 신자들을 훈련하여 훗날 구역, 지방, 전국의 지도자가 되게 한다. ⑤자급(自給:Self-support) - 신자들 스스로 마련한 예배당을 소유하고, 창립 즉시 순회 조사의 봉급을 지급하되 외부 자금으로 사례를 지급하지 않는다. ⑥모든 신자는 영수와 순회 조사 아래서 조직적인 성경 공부를 하고, 모든 영수와 조사도 성경연구모임을 통해 조직적으로 성경을 공부한다. ⑦성경을 통해 엄격하고 공정한 징계를 실시한다. ⑧다른 선교 단체와 협력하고 연합한다. 아니면 최소한 영역이라도 분리한다. ⑨법정 소송 사건 등의 문제에 간섭하지 않는다. ⑩민중의 경제적 문제에는 가능한 실질적인 도움을 주어야 한다.
이는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이외의 무엇에도 예속되지 않는 교회’가 되기 위한 것이다. 오늘날 농촌교회들의 경제적 자립만 논해서 안 되는 이유이다. 교회는 자립을 넘어서 자활해야 한다. /계속 (聾)
'[갈릴리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마음 칼럼] 나는 왜 농목으로 사는가? 095 (0) | 2021.07.31 |
---|---|
[한마음 칼럼] 나는 왜 농목으로 사는가? 094 (0) | 2021.07.24 |
목회자 생활비, 최저임금과 격차 더 벌어져,, 2260개 자립대상교회 월평균 58만 원 지원받아 (0) | 2021.07.16 |
[한마음 칼럼] 네비우스를 아시나요? 1 (0) | 2021.07.10 |
[한마음 칼럼] 나는 왜 농목으로 사는가 093 (0) | 2021.07.03 |